전후맥락
칼리아스의 집에 모인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대화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소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를 대신하여 그가 프로타고라스에게 무엇을 배워서 어떠한 면에서 더 나은 자가 되는 것인지 묻는다.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가르친다고 공언하는 것이 ‘시민적 기술’ 또는 ‘사람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드는 것’임을 지적하며 그것들은 모두 인간적 훌륭함, 다시 말해 미덕들인데 자신은 그것을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자신과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흠모해서 그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찾아왔으니 자신이 덕을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해 온 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하겠다며 크게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공적인 차원에서 제기하는 논거다. 그것은 아테네인들은 분명 현명한 사람들인데, 소수의 전문가가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모아 도시의 안건을 처리하는 그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곰곰이 살펴보면 미덕을 교육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첫째 논거와 짝을 이루어 사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논거다. 아테네인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민인 페리클레스조차도 자신이 가장 뛰어난 인간적 혹은 시민적 훌륭함에 대해서는 자기 자식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을 마치자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이어진다. 그는 나이 지긋한 현인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연출하며 운치있는 신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테네의 민주정이 어째서 모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인류가 공동체의 성립을 가능케 하는 미덕을 제우스로부터 골고루 받아서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형제는 동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균등하게 능력을 분배하려 했으나 인간에게 능력을 주기 전에 재료를 전부 써버린다. 프로메테우스가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나의 공방에 올라가 기술과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지만 인류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해 맹수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한다. 이 모습을 본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수치심과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분배한다. 그러자 인간들은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단결하기 시작하여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의 민주정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이고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어디까지나 신화요 이야기일 뿐, 강제력이 없다. 프로타고라스는 이제 이야기가 아니라 논변을 사용하여 미덕의 교육 가능성을 밝혀 보여준다.
고전본문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덕을 본성적으로 타고난다거나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세심한 준비를 거친 이후의 교육과 습득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부터 설득해보도록 하지요. 그들의 이웃이 본성이나 운에 의해서 맞이한 나쁨의 경우, 누구도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꾸짖거나, 훈계하거나 처벌하지 않지요. 단지 그들을 동정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못생겼거나, 키가 작거나, 몸이 병약하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추측키로, 사람들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그런 것들이 선천적이고 운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력과 연습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얻는다고 생각되는 좋음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결여하고 있고 오직 그것에 반대되는 나쁨만 가진 자들에게 분명히 분노와 처벌과 질책이 있게 되지요. 그런 나쁨 중 일부가 불의와 불경이고 간단히 말해서 시민적 미덕에 반대되는 모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경우에는 누구나 그의 동료 시민을 책망하고 꾸짖는데 이는 분명 덕은 노력과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 그 이유는 당신이 처벌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또 그것이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덕을 구해서 획득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야생동물처럼 무지성적인 복수를 하지 않는 한, 누구도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단지 그의 잘못 자체 때문에 처벌하는게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징계하는 사람은 지나간 죄에 대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는 이미 벌어진 일을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서, 잘못을 저질러 처벌을 받는 그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는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미덕이 교육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방을 위해서 처벌을 한다는 점을 보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징계와 처벌이 마땅하다고 보는 모든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입장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 대상으로부터 징계와 처벌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특히 당신이 동료 시민들인 아테네인들의 경우에 특별히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논의에 따르자면 아테네인들도 역시 미덕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당신의 동료 시민들이 대장장이가 의회에서 조언을 하는 것을 용인할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구두 수선공의 조언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과 그들이 덕을 교육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을 밝혀 보였습니다. 소크라테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주어진 것 같군요…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23c-324d.
토론하기
(1)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이 될 수 있을지 근거와 함께 이야기해보자.
(2) 미덕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누구가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적으로 훌륭하고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훌륭함을 두루 갖춘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해설읽기
프로타고라스의 대답은 적절했나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가 미덕은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듣고 난 후 신화와 논변을 절반씩 섞어 답변을 한다.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준 신화 이야기는 다른 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인용된 본문 내용은 신화를 통한 설명이 끝난 뒤, 미덕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논변으로 밝혀 보이는 장면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의 답변이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될 거라고 자신하는 모양이다. 소피스트 중 최고의 소피스트인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청중들도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분량이 많아 본문에 담지는 못했지만 신화 이야기부터 보자면 상당히 멋지고 운치가 있어 프로타고라스의 이 답변을 ‘위대한 연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답변이 끝난 뒤 소크라테스도 혼을 빼앗긴 채 프로타고라스가 뭔가 더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면서 잠시 기다렸고 ‘작은 것 하나가 걸리지만’ 거의 설득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답변의 구성과 외형과 달리 그 내용에 있어서는 놓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논의되는 대상을 충분히 규정하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대해서 토론하고 검토할 때, 그 논의가 공전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는 논의되는 대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언어는 같은 발음을 가져도 의미가 다른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애매어의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배’에 대해서 아무런 정의없이 논의를 하게 되면 한 사람은 선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신체의 한 부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혹은 두 사람 모두 배에 대해서 토론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은 어선을 기준으로 말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군함을 기준으로 말을 한다면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문답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고 있는 ‘미덕’은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덕이다. 그가 말하는 미덕은 아테네 최고의 시민이자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가 가지고 있는 덕이고 아테네인들이 의회에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 요구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프로타고라스의 덕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덕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미덕은 인간을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것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미덕인 셈이다. 본문에서도 징계와 처벌의 동기가 단순한 보복에 있는지 아니면 교육을 통한 개선에 있는지에 따라 인간과 야생동물을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덕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에 있어서는,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미덕을 갖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관련 지식을 쌓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학교에서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앎과 지식 대신에 행위와 습관을 쌓는 방법이 있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축구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앎과 지식을 쌓으면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천만에. 축구를 직접 함으로써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 기타에 관해서 박식해지면 기타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렵다. 기타를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기타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미덕을 갖춘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미덕’을 조금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미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덕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고대 희랍에서는 대표적으로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와 정의를 4주덕으로 꼽았다. 이 4주덕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혜로운 행위와 용감한 행위 그리고 절제있는 행위와 정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각각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행동을 단지 몇 차례 반복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관건은 그러한 행동의 실천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있다.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용감한 행위를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절제나 정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간신히 한 번 실천할 수 있을 테지만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느껴지다가 언젠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때가 온다. 마치 처마 밑에 깔아놓은 석판을 송곳으로 반복해서 긋다보면 선이 생기고 점점 홈이 깊게 파여 나중에는 파인 홈을 따라서 빗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하나하나의 행동과 실천이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급기야 습관이라는 굳은살로 남을 때, 비로소 성품 안에 미덕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스승의 스승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다고 한다.
키워드
덕, 미덕, 소크라테스, 시민적 지혜, 인간적 훌륭함, 좋은 사람, 탁월성, 프로타고라스, 훌륭함
전후맥락
칼리아스의 집에 모인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대화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소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를 대신하여 그가 프로타고라스에게 무엇을 배워서 어떠한 면에서 더 나은 자가 되는 것인지 묻는다.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가르친다고 공언하는 것이 ‘시민적 기술’ 또는 ‘사람들을 좋은 시민으로 만드는 것’임을 지적하며 그것들은 모두 인간적 훌륭함, 다시 말해 미덕들인데 자신은 그것을 교육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자신과 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흠모해서 그에게 배움을 청하고자 찾아왔으니 자신이 덕을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해 온 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마땅하겠다며 크게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공적인 차원에서 제기하는 논거다. 그것은 아테네인들은 분명 현명한 사람들인데, 소수의 전문가가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모아 도시의 안건을 처리하는 그들의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곰곰이 살펴보면 미덕을 교육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첫째 논거와 짝을 이루어 사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논거다. 아테네인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민인 페리클레스조차도 자신이 가장 뛰어난 인간적 혹은 시민적 훌륭함에 대해서는 자기 자식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을 마치자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이어진다. 그는 나이 지긋한 현인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연출하며 운치있는 신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테네의 민주정이 어째서 모든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인류가 공동체의 성립을 가능케 하는 미덕을 제우스로부터 골고루 받아서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형제는 동물들이 균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균등하게 능력을 분배하려 했으나 인간에게 능력을 주기 전에 재료를 전부 써버린다. 프로메테우스가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나의 공방에 올라가 기술과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지만 인류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해 맹수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한다. 이 모습을 본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수치심과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분배한다. 그러자 인간들은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단결하기 시작하여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의 민주정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이고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어디까지나 신화요 이야기일 뿐, 강제력이 없다. 프로타고라스는 이제 이야기가 아니라 논변을 사용하여 미덕의 교육 가능성을 밝혀 보여준다.
고전본문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덕을 본성적으로 타고난다거나 자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획득한 사람들에 의한 세심한 준비를 거친 이후의 교육과 습득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금부터 설득해보도록 하지요. 그들의 이웃이 본성이나 운에 의해서 맞이한 나쁨의 경우, 누구도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꾸짖거나, 훈계하거나 처벌하지 않지요. 단지 그들을 동정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못생겼거나, 키가 작거나, 몸이 병약하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추측키로, 사람들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추함 같은 그런 것들이 선천적이고 운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력과 연습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얻는다고 생각되는 좋음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을 결여하고 있고 오직 그것에 반대되는 나쁨만 가진 자들에게 분명히 분노와 처벌과 질책이 있게 되지요. 그런 나쁨 중 일부가 불의와 불경이고 간단히 말해서 시민적 미덕에 반대되는 모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경우에는 누구나 그의 동료 시민을 책망하고 꾸짖는데 이는 분명 덕은 노력과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 그 이유는 당신이 처벌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또 그것이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 대해서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생각해본다면 사람들이 덕을 구해서 획득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야생동물처럼 무지성적인 복수를 하지 않는 한, 누구도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단지 그의 잘못 자체 때문에 처벌하는게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징계하는 사람은 지나간 죄에 대해서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는 이미 벌어진 일을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서, 잘못을 저질러 처벌을 받는 그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처벌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는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미덕이 교육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방을 위해서 처벌을 한다는 점을 보았듯이 말이지요. 그러므로 이것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징계와 처벌이 마땅하다고 보는 모든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입장입니다. 사람들은 통상 그들이 잘못을 저지른 대상으로부터 징계와 처벌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특히 당신이 동료 시민들인 아테네인들의 경우에 특별히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논의에 따르자면 아테네인들도 역시 미덕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당신의 동료 시민들이 대장장이가 의회에서 조언을 하는 것을 용인할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구두 수선공의 조언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과 그들이 덕을 교육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을 밝혀 보였습니다. 소크라테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주어진 것 같군요…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323c-324d.
토론하기
(1)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이 될 수 있을지 근거와 함께 이야기해보자.
(2) 미덕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누구가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적으로 훌륭하고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훌륭함을 두루 갖춘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해설읽기
프로타고라스의 대답은 적절했나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가 미덕은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듣고 난 후 신화와 논변을 절반씩 섞어 답변을 한다.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준 신화 이야기는 다른 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인용된 본문 내용은 신화를 통한 설명이 끝난 뒤, 미덕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논변으로 밝혀 보이는 장면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의 답변이 ‘당신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이 될 거라고 자신하는 모양이다. 소피스트 중 최고의 소피스트인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청중들도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분량이 많아 본문에 담지는 못했지만 신화 이야기부터 보자면 상당히 멋지고 운치가 있어 프로타고라스의 이 답변을 ‘위대한 연설’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답변이 끝난 뒤 소크라테스도 혼을 빼앗긴 채 프로타고라스가 뭔가 더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면서 잠시 기다렸고 ‘작은 것 하나가 걸리지만’ 거의 설득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답변의 구성과 외형과 달리 그 내용에 있어서는 놓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논의되는 대상을 충분히 규정하고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대해서 토론하고 검토할 때, 그 논의가 공전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는 논의되는 대상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언어는 같은 발음을 가져도 의미가 다른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에 ‘애매어의 오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배’에 대해서 아무런 정의없이 논의를 하게 되면 한 사람은 선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신체의 한 부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혹은 두 사람 모두 배에 대해서 토론하기는 하지만 한 사람은 어선을 기준으로 말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군함을 기준으로 말을 한다면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문답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고 있는 ‘미덕’은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덕이다. 그가 말하는 미덕은 아테네 최고의 시민이자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가 가지고 있는 덕이고 아테네인들이 의회에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 요구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프로타고라스의 덕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덕이다. 프로타고라스의 미덕은 인간을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것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미덕인 셈이다. 본문에서도 징계와 처벌의 동기가 단순한 보복에 있는지 아니면 교육을 통한 개선에 있는지에 따라 인간과 야생동물을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덕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에 있어서는, 프로타고라스의 답변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미덕을 갖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관련 지식을 쌓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학교에서 이미 하고 있기도 하고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럼 다른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앎과 지식 대신에 행위와 습관을 쌓는 방법이 있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축구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대한 앎과 지식을 쌓으면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천만에. 축구를 직접 함으로써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 기타에 관해서 박식해지면 기타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렵다. 기타를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기타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미덕을 갖춘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미덕’을 조금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미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덕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고대 희랍에서는 대표적으로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와 정의를 4주덕으로 꼽았다. 이 4주덕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혜로운 행위와 용감한 행위 그리고 절제있는 행위와 정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각각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행동을 단지 몇 차례 반복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덕을 갖춘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관건은 그러한 행동의 실천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있다.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용감한 행위를 반복해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절제나 정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큰 마음을 먹어야 간신히 한 번 실천할 수 있을 테지만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느껴지다가 언젠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때가 온다. 마치 처마 밑에 깔아놓은 석판을 송곳으로 반복해서 긋다보면 선이 생기고 점점 홈이 깊게 파여 나중에는 파인 홈을 따라서 빗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처럼, 사람도 하나하나의 행동과 실천이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급기야 습관이라는 굳은살로 남을 때, 비로소 성품 안에 미덕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스승의 스승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다고 한다.
키워드
덕, 미덕, 소크라테스, 시민적 지혜, 인간적 훌륭함, 좋은 사람, 탁월성, 프로타고라스, 훌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