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작품이 시작하고 헤시오도스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사 여신들이다. 무사 여신들은 뮤즈들을 가리킨다. 시인들의 노래는 이론적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사 여신들이 보내주는 영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옛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헤시오도스는 물론 호메로스도 무사 여신들로부터 노래를 시작하곤 했다. 『신들의 계보』에서 헤시오도스는 무사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꽤 한참 쏟아낸다. 그녀들이 헬리콘 산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과 불멸하는 올륌포스의 신들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미하는 장면을 노래하다가 우연히 자신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일을 들려주며 ‘신들의 존경스러운 종족을 처음부터’ 찬양하기로 한다.
고전본문
가장 먼저 카오스(틈)가 생겨났고 그 다음으로
올륌포스의 눈 덮인 봉우리에 사는 모든 불사자들에게
안전한 거처인 가슴이 넓은 가이아(대지)와
또 혼탁한 구렁으로 대지 아래 길이 넓은 타르타로스와
불사하는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로스(성욕)가 생겼다.
…<중략>…
가이아는 먼저 그녀만 한 빛나는 우라노스(하늘)를 낳았다.
그가 자기를 완전히 휩싸 행복한 신들에게 언제나 안전한
거처가 될 수 있도록. 또 그녀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여신들의, 우거진 산속 깊이 사는 뉨페들의 쉼터인 긴 우레아(산)를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수확할 수 없는 바다를, 거칠게 부풀어 파도치는
폰토스(바다)를 낳았다. 사랑도 없이. 그러고 나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한 침대에 누워 깊이 소용돌이치는 오케아노스,
코이오스와 크리오스 또 휘페리온과 이아페토스
테이아와 레아, 테미스와 므네모쉬네
황금의 관을 쓴 포이베와 사랑스러운 테튀스를 낳았다.
그 다음으로 아이들 중 가장 어리고, 가장 화가 나 있고
가장 두려운 크로노스를 낳았다. 그는 힘센 아비를 미워했다.
…<중략>…
매복하고 있던 자식은 왼손을 뻗어 붙들었고
오른손으로 거대하고 긴 낫을 잡아
아버지의 성기를 거세하고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것은 아무런 결과도 없이 손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거기서 떨어지는 피를 가이아가 모두 받아서
해가 다 차자, 강력한 복수의 여신들과 장비에 있어서는
광이 나고 긴 창을 손에 쥔 거대한 거인들,
무한한 대지 위에서 멜리아라고 불리는 물푸레나무 요정들이 태어났으니까.
토론하기
(1) 가이아는 어떤 자식들을 낳았나? 그리고 가이아와 그 자식들의 존재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2) 왜 고대인들은 자연과 세계의 탄생을 신화의 형태로 설명해야 했을까?
(3) 신화가 과학적 기능을 얼마간 수행하지만, 그것이 과학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신화의 한계는 무엇인가?
해설읽기
『신들의 계보』의 내용과 그 안에 숨어있는 고대인들의 합리적인 생각들
[앞뒤맥락]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헤시오도스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무사 여신들을 노래한다. 헤시오도스는 그녀들에 대한 찬양을 한참 지속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한다.
그러니 말해주소서, 신들과 대지 그리고 강들이
거칠게 파도치는 끝없는 바다와 빛나는 별들이
그리고 저 위 넓은 하늘이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용한 본문이 이어진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창세신화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구절을 통해 카오스에서 시작해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분리로써 시공간의 탄생을 설명한다. 헤시오도스의 이야기 속에는 태초의 존재가 넷 등장한다. 태초의 존재들은 카오스와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와 타르타로스다. 이들 가운데 카오스가 가장 먼저 생겼고 그 뒤에 나머지 신들이 생겼다고 한다. 카오스는 우리에게 ‘혼돈’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벌어진 ‘빈틈’을 가리키기도 한다. 카오스의 빈틈은 장차 세상이 들어설 터를 제공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덩그러니 비어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카오스의 빈틈이 뭔가에 의해 메워져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은 가이아와 그의 자식들이다. 가이아는 그 자체로 ‘대지’를 의미하는데, 그녀는 스스로 산(우레아)과 바다(폰토스) 그리고 하늘(우라노스)을 낳았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식이기도 한 하늘과 성적으로 결합해 오케아노스부터 크로노스에 이르는 12명의 티탄들을 낳는다. 여기서 ‘하늘’과 ‘땅’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은 서로 성적으로 결합해 자식을 낳았는데, 이것은 성적 활동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적 활동은 반드시 그것의 원인으로서 성욕을 필요로 한다. 만약 성욕이 없다면 누구도 성적 활동이라는 힘든 육체노동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욕을 고대 희랍인들은 ‘에로스(성적 사랑)’라고 불렀고 이에 따라 헤시오도스도 그것을 태초의 존재 중 세 번째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럼 마지막 타르타로스는 뭘까? 타르타로스는 『오뒷세이아』에서 하데스 안쪽에 뚫린 구멍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하계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어둡고 무한한 심연을 상상해주길 바란다. 중요한 건 모습이 아니라 역할이다. 헤시오도스는 타르타로스가 특별히 어떤 활동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지 않는데도 그를 태초의 존재에 포함시켰다. 그것은 타르타로스가 세계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카오스와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는 모두 존재의 ‘생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만약 태초에 그 셋만 있었다면 이 세계는 무한히 확장하고 증식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무한히 자라야 할 것이고 곤충들도 계속 자라나서 괴물같은 크기가 되어야 하며 결국 이 세계 전체가 커지고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이 세계가 매우 균형있고 조화로운 것이어서 생성되는 것만큼 소멸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성되는 것들이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지가 설명되었기 때문에 소멸해서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설명되어야 했는데 이를 위한 장치가 타르타로스였던 것이다. 신화치고는 꽤 합리적이지 않은가?
철학 이전 시대의 철학, 과학 이전 시대의 과학
신화가 어린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면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합리성은 갖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화 속에 나름의 정합성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고대의 인류가 신화적 사유를 어떤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동원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 것도 그것의 존재가 불확실하고 따라서 정확한 앎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나를 공격할 의사가 있는지, 공격할 의사가 있다면 나는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막을 수 있다면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지 소문은 무성하지만 경험적으로 검증된 것이 없으니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분명히 두려워야 할 것도 알고 있으면 두렵지 않다.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는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지만, 우리는 동물원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즐거워하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곳의 호랑이들은 인간에게 길들여져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설령 호랑이가 나에게 덤벼든다고 해도 저들의 발톱은 투어 차량의 보강된 차체와 유리를 뚫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현대의 모든 지식을 잊은 채 원시시대로 돌아가 초원 한복판에 내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우리는 아주 원초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 끼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자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둥이 왜 치는지, 벼락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내리는 하늘의 벌은 아닌지, 지진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활동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하루 두려움과 공포을 안기는 대상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상을 ‘말’로 포착하고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학문을 통한 증명적 앎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철학도 과학도 갖지 못했던 옛 인류에게 앎과 지식은 먼 미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두려움을 떨쳐낼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계에 대해서 앎을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앎의 유사물’이라도 형성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서 철학적 사유에 입각한 앎이 태동하기 이전 시대의 고대 인류는, 그 대안으로 신화적 사유에 의거한 앎의 유사물을 만들어 세계에 대한 대안적인 설명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향한 그들의 불안에 당장은 대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떤 대상이나 현상의 기원과 원인을 설명하는 종류의 신화를 원인신화 또는 기원신화라고 부른다.
키워드
가이아, 기원신화, 에로스, 원인신화, 카오스, 타르타로스, 헤시오도스
전후맥락
작품이 시작하고 헤시오도스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사 여신들이다. 무사 여신들은 뮤즈들을 가리킨다. 시인들의 노래는 이론적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사 여신들이 보내주는 영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옛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헤시오도스는 물론 호메로스도 무사 여신들로부터 노래를 시작하곤 했다. 『신들의 계보』에서 헤시오도스는 무사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꽤 한참 쏟아낸다. 그녀들이 헬리콘 산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과 불멸하는 올륌포스의 신들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미하는 장면을 노래하다가 우연히 자신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일을 들려주며 ‘신들의 존경스러운 종족을 처음부터’ 찬양하기로 한다.
고전본문
가장 먼저 카오스(틈)가 생겨났고 그 다음으로
올륌포스의 눈 덮인 봉우리에 사는 모든 불사자들에게
안전한 거처인 가슴이 넓은 가이아(대지)와
또 혼탁한 구렁으로 대지 아래 길이 넓은 타르타로스와
불사하는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로스(성욕)가 생겼다.
…<중략>…
가이아는 먼저 그녀만 한 빛나는 우라노스(하늘)를 낳았다.
그가 자기를 완전히 휩싸 행복한 신들에게 언제나 안전한
거처가 될 수 있도록. 또 그녀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여신들의, 우거진 산속 깊이 사는 뉨페들의 쉼터인 긴 우레아(산)를 낳았다.
그리고 그녀는 수확할 수 없는 바다를, 거칠게 부풀어 파도치는
폰토스(바다)를 낳았다. 사랑도 없이. 그러고 나서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한 침대에 누워 깊이 소용돌이치는 오케아노스,
코이오스와 크리오스 또 휘페리온과 이아페토스
테이아와 레아, 테미스와 므네모쉬네
황금의 관을 쓴 포이베와 사랑스러운 테튀스를 낳았다.
그 다음으로 아이들 중 가장 어리고, 가장 화가 나 있고
가장 두려운 크로노스를 낳았다. 그는 힘센 아비를 미워했다.
…<중략>…
매복하고 있던 자식은 왼손을 뻗어 붙들었고
오른손으로 거대하고 긴 낫을 잡아
아버지의 성기를 거세하고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것은 아무런 결과도 없이 손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거기서 떨어지는 피를 가이아가 모두 받아서
해가 다 차자, 강력한 복수의 여신들과 장비에 있어서는
광이 나고 긴 창을 손에 쥔 거대한 거인들,
무한한 대지 위에서 멜리아라고 불리는 물푸레나무 요정들이 태어났으니까.
토론하기
(1) 가이아는 어떤 자식들을 낳았나? 그리고 가이아와 그 자식들의 존재는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2) 왜 고대인들은 자연과 세계의 탄생을 신화의 형태로 설명해야 했을까?
(3) 신화가 과학적 기능을 얼마간 수행하지만, 그것이 과학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신화의 한계는 무엇인가?
해설읽기
『신들의 계보』의 내용과 그 안에 숨어있는 고대인들의 합리적인 생각들
[앞뒤맥락]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헤시오도스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무사 여신들을 노래한다. 헤시오도스는 그녀들에 대한 찬양을 한참 지속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한다.
그러니 말해주소서, 신들과 대지 그리고 강들이
거칠게 파도치는 끝없는 바다와 빛나는 별들이
그리고 저 위 넓은 하늘이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용한 본문이 이어진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창세신화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구절을 통해 카오스에서 시작해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분리로써 시공간의 탄생을 설명한다. 헤시오도스의 이야기 속에는 태초의 존재가 넷 등장한다. 태초의 존재들은 카오스와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와 타르타로스다. 이들 가운데 카오스가 가장 먼저 생겼고 그 뒤에 나머지 신들이 생겼다고 한다. 카오스는 우리에게 ‘혼돈’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벌어진 ‘빈틈’을 가리키기도 한다. 카오스의 빈틈은 장차 세상이 들어설 터를 제공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덩그러니 비어있는 공간에 불과하다. 카오스의 빈틈이 뭔가에 의해 메워져야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 역할을 맡은 것은 가이아와 그의 자식들이다. 가이아는 그 자체로 ‘대지’를 의미하는데, 그녀는 스스로 산(우레아)과 바다(폰토스) 그리고 하늘(우라노스)을 낳았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식이기도 한 하늘과 성적으로 결합해 오케아노스부터 크로노스에 이르는 12명의 티탄들을 낳는다. 여기서 ‘하늘’과 ‘땅’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은 서로 성적으로 결합해 자식을 낳았는데, 이것은 성적 활동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적 활동은 반드시 그것의 원인으로서 성욕을 필요로 한다. 만약 성욕이 없다면 누구도 성적 활동이라는 힘든 육체노동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욕을 고대 희랍인들은 ‘에로스(성적 사랑)’라고 불렀고 이에 따라 헤시오도스도 그것을 태초의 존재 중 세 번째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럼 마지막 타르타로스는 뭘까? 타르타로스는 『오뒷세이아』에서 하데스 안쪽에 뚫린 구멍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하계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어둡고 무한한 심연을 상상해주길 바란다. 중요한 건 모습이 아니라 역할이다. 헤시오도스는 타르타로스가 특별히 어떤 활동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지 않는데도 그를 태초의 존재에 포함시켰다. 그것은 타르타로스가 세계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카오스와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는 모두 존재의 ‘생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서 만약 태초에 그 셋만 있었다면 이 세계는 무한히 확장하고 증식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무한히 자라야 할 것이고 곤충들도 계속 자라나서 괴물같은 크기가 되어야 하며 결국 이 세계 전체가 커지고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이 세계가 매우 균형있고 조화로운 것이어서 생성되는 것만큼 소멸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성되는 것들이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인지가 설명되었기 때문에 소멸해서 사라지는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설명되어야 했는데 이를 위한 장치가 타르타로스였던 것이다. 신화치고는 꽤 합리적이지 않은가?
철학 이전 시대의 철학, 과학 이전 시대의 과학
신화가 어린아이들을 재우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다면 앞서 이야기한 정도의 합리성은 갖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화 속에 나름의 정합성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고대의 인류가 신화적 사유를 어떤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동원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귀신이 무섭다고 하는 것도 그것의 존재가 불확실하고 따라서 정확한 앎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나를 공격할 의사가 있는지, 공격할 의사가 있다면 나는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막을 수 있다면 무엇으로 막을 수 있는지 소문은 무성하지만 경험적으로 검증된 것이 없으니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분명히 두려워야 할 것도 알고 있으면 두렵지 않다. 맹수 중의 맹수인 호랑이는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지만, 우리는 동물원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즐거워하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곳의 호랑이들은 인간에게 길들여져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설령 호랑이가 나에게 덤벼든다고 해도 저들의 발톱은 투어 차량의 보강된 차체와 유리를 뚫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현대의 모든 지식을 잊은 채 원시시대로 돌아가 초원 한복판에 내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우리는 아주 원초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 끼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자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둥이 왜 치는지, 벼락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내리는 하늘의 벌은 아닌지, 지진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활동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하루 두려움과 공포을 안기는 대상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상을 ‘말’로 포착하고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학문을 통한 증명적 앎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철학도 과학도 갖지 못했던 옛 인류에게 앎과 지식은 먼 미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두려움을 떨쳐낼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계에 대해서 앎을 가질 수 없다면, 적어도 ‘앎의 유사물’이라도 형성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서 철학적 사유에 입각한 앎이 태동하기 이전 시대의 고대 인류는, 그 대안으로 신화적 사유에 의거한 앎의 유사물을 만들어 세계에 대한 대안적인 설명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를 향한 그들의 불안에 당장은 대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떤 대상이나 현상의 기원과 원인을 설명하는 종류의 신화를 원인신화 또는 기원신화라고 부른다.
키워드
가이아, 기원신화, 에로스, 원인신화, 카오스, 타르타로스, 헤시오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