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자 그리스 연합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전사들이 불리해진 전황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싸워보지만, 헥토르와 기세가 오른 트로이군의 공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하나 둘씩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이송된다. 결국 그들은 트로이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들의 함선이 있는 본진까지 밀려나게 된다. 그리스 연합군의 본진은 방벽과 함선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지만 전사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패색은 점차 짙어진다. 이때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동료 파트로클로스는 본진에 붙은 불과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실려오는 동료 전사들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그는 친구들의 곤경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무정한 사람이라며 아킬레우스를 비난하면서, 정녕 직접 싸우지 않을 작정이라면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빌려 입고 싸우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동료의 청을 외면할 수 없었던 아킬레우스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무구를 빌려주고 동료의 출전을 허락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선전에 고무된 파트로클로스는 약속을 어기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다가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전장에 나가 헥토르의 목을 베면 자기 자신도 곧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는 점을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로부터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복수를 다짐한다.
고전본문
“얘야! 왜 우는 것이냐? 네 마음에 어떤 슬픔이 찾아왔느냐?
말해보아라. 숨기지 말거라. 너는 손을 높여 아카이아인들의 모든 아들들이
뱃고물에 갇힌 채 곤란한 일을 겪어 너를 원하게 해달라고 기원했고
제우스께서 정말로 그 일들을 이루어 주셨는데 말이다.”
그러자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무겁게 탄식하며 말했다.
“저의 어머니시여, 올륌포스에 사시는 제우스께서는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모든 동료들보다 더, 아니 제 머리만큼 사랑하는 동료
파트로클로스가 죽임을 당했는데 무엇이 기쁘겠어요. 전 그를 잃었습니다.
헥토르가 그를 죽이고서 엄청나게 놀라운 아름다워 보이는
무구들을 벗겨갔어요. 그것들은 신들이 당신을 필멸의 운명을 가진 남자
펠레우스의 침상으로 보내시던 날에 빛나는 선물로 주신 것들입니다.
차라리 어머니 당신은 저기 바닷속 불사하는 여신들과 함께 사시고,
아버지 펠레우스께서는 필멸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아 결혼하셨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아들이 죽게 됨에 따라서 어머니 마음 속에는
무수한 슬픔이 생길 것이며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을
환영하지도 못하실 겁니다. 제 창에 맞아 헥토르가 먼저 생을 마감하고
메노이티오스의 아들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댓가를 갚지 않는 한,
제 마음은 살아서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에게 테티스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말했다.
“내 아들아,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너는 일찍 죽을 운명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헥토르 다음으로는 네가 죽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크게 분노하여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었으면 합니다! 동료가 죽임을 당할 때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그는 고향으로부터 매우 먼 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저는 그를 파멸로부터 지켜줘야 했습니다.
이제 전 사랑하는 조국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파트로클로스에게도 신과 같은 헥토르에 의해 제압된 수많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저는 빛이 되어주지 못한 채
대지의 쓸모없는 짐짝이 되어 함선 옆에 있어왔어요.
회의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더 낫더라도 전쟁에서라면 청동 갑주를 입은
아카이오이인들 중 누구도 저와 동등하지 못한데 말입니다.
불화는 신들로부터도 인간들로부터도 사라지고, 현명한 자들조차
화나게 만드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그것은 흘러내리는 꿀보다 훨씬 달콤해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연기처럼 커지지요.
꼭 그처럼 저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 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강력한 헤라클레스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의 여신과 헤라의 무서운 노여움에 제압되고 말았어요.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트로이아 여인들과 가슴이 불룩한
다르다니에 여인들로 하여금 부드러운 얼굴에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통탄하게 해주고 싶어요. 또 제가 전쟁에서
이미 충분히 쉬었다는 것을 알려주겠어요. 그러니 제 출전을
모정으로 막지 마세요. 저를 설득하지 못하실 거예요.”
토론하기
(1) 아킬레우스는 어떤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찾아보고 그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말해보자.
(2) 공동체가 권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현대의 신화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공동체가 권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신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본성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의 몸이 아프지 않고 늘 건강하기를 바란다. 물론 몸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에서 부모는 자녀 가까이 두는 물건들을 고를 때 허투루 선택하는 법이 없다. 적어도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덜 좋은 것을 고르지는 않는다. 아이 방 벽지의 색상, 아이가 쓸 책상의 높이, 아이 방의 조명 밝기 등 모두 숙고해서 정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사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미취학 아동을 가진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하는 책들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위인전이다. 자기 자녀가 역사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데 왜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곁에 두도록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자녀들이 위인전에 등장하는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 본받도록 하려는 취지에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각도에서,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권장하는 도덕적 가치나 제도 등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신화를 헌장신화라고 한다. 본 셀묶음의 첫 번째 셀에서 이야기한 원인신화가 자연에 관한 신화적 설명이었다고 한다면, 헌장신화는 사회에 대한 신화적 설명이다.
대중들의 교육자, 시인. 대중교육의 매체, 신화.
다양한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해야 하고 다시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공통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 공통적 토대에는 언어, 역사, 문화, 종교 등 수많은 요소가 결부되는데, 현대의 국가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공교육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개인들이 해당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교육을 받은 개인조차도 작은 차이를 계기로 공동체 내부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예컨대, 단일 민족국가라고 이야기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성별이나 연령 심지어 혈액형과 같은 사소한 차이를 기준으로 격렬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물론 공교육 제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일대의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과 공존해야 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나아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상술했다시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동일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라는 정체성을 제공한 요인에는 언어나 역사 그리고 문화와 종교 등의 공통 기반이 있는데, 신화 역시 문화와 종교의 한 부분으로서 포함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는 (그들은 ‘헬라스’라고 불렀다) 근대의 영토 국가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언어와 관습 및 전통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은 아테네나 아르고스 같은 폴리스들이 서로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아테네인이든 아르고스인이든 아니면 다른 폴리스 사람이든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피스트나 철학자들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학교와 교사를 대신해서 대중들을 상대로 신화를 들려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인들이었다. 시인들은 거처를 옮겨가며 신화를 소재로 노래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신들과 영웅들을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되었다. ‘아! 나도 아킬레우스처럼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네메아의 사자와 하데스의 케르베로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헤라클레스야말로 정말 용감한 사나이야!’ 이제 고대 그리스인들은 같은 신화를 공유하면서 같은 신과 같은 영웅을 귀감으로 여기는 공통 기반을 갖게 된다. 그로부터 유사한 교훈을 얻어 유사한 윤리적 가치를 공유할 수도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개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할 수 있도록 공통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화 교육이라면, 당시 그리스의 시인들은 신화를 통해 그리스인들의 사회화를 도왔던 대중 교육자요, 신화는 그들이 사용한 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교육, 시인, 신화, 아킬레우스, 일리아스, 헌장신화, 호메로스
전후맥락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자 그리스 연합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전사들이 불리해진 전황을 극복하고자 열심히 싸워보지만, 헥토르와 기세가 오른 트로이군의 공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하나 둘씩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이송된다. 결국 그들은 트로이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들의 함선이 있는 본진까지 밀려나게 된다. 그리스 연합군의 본진은 방벽과 함선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지만 전사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패색은 점차 짙어진다. 이때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동료 파트로클로스는 본진에 붙은 불과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실려오는 동료 전사들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그는 친구들의 곤경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무정한 사람이라며 아킬레우스를 비난하면서, 정녕 직접 싸우지 않을 작정이라면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빌려 입고 싸우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동료의 청을 외면할 수 없었던 아킬레우스는 적진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조건으로 무구를 빌려주고 동료의 출전을 허락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선전에 고무된 파트로클로스는 약속을 어기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다가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전장에 나가 헥토르의 목을 베면 자기 자신도 곧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는 점을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로부터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복수를 다짐한다.
고전본문
“얘야! 왜 우는 것이냐? 네 마음에 어떤 슬픔이 찾아왔느냐?
말해보아라. 숨기지 말거라. 너는 손을 높여 아카이아인들의 모든 아들들이
뱃고물에 갇힌 채 곤란한 일을 겪어 너를 원하게 해달라고 기원했고
제우스께서 정말로 그 일들을 이루어 주셨는데 말이다.”
그러자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무겁게 탄식하며 말했다.
“저의 어머니시여, 올륌포스에 사시는 제우스께서는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모든 동료들보다 더, 아니 제 머리만큼 사랑하는 동료
파트로클로스가 죽임을 당했는데 무엇이 기쁘겠어요. 전 그를 잃었습니다.
헥토르가 그를 죽이고서 엄청나게 놀라운 아름다워 보이는
무구들을 벗겨갔어요. 그것들은 신들이 당신을 필멸의 운명을 가진 남자
펠레우스의 침상으로 보내시던 날에 빛나는 선물로 주신 것들입니다.
차라리 어머니 당신은 저기 바닷속 불사하는 여신들과 함께 사시고,
아버지 펠레우스께서는 필멸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아 결혼하셨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아들이 죽게 됨에 따라서 어머니 마음 속에는
무수한 슬픔이 생길 것이며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을
환영하지도 못하실 겁니다. 제 창에 맞아 헥토르가 먼저 생을 마감하고
메노이티오스의 아들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댓가를 갚지 않는 한,
제 마음은 살아서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에게 테티스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말했다.
“내 아들아,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너는 일찍 죽을 운명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헥토르 다음으로는 네가 죽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발이 빠른 아킬레우스가 크게 분노하여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었으면 합니다! 동료가 죽임을 당할 때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그는 고향으로부터 매우 먼 곳에서
목숨을 잃었고 저는 그를 파멸로부터 지켜줘야 했습니다.
이제 전 사랑하는 조국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파트로클로스에게도 신과 같은 헥토르에 의해 제압된 수많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저는 빛이 되어주지 못한 채
대지의 쓸모없는 짐짝이 되어 함선 옆에 있어왔어요.
회의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더 낫더라도 전쟁에서라면 청동 갑주를 입은
아카이오이인들 중 누구도 저와 동등하지 못한데 말입니다.
불화는 신들로부터도 인간들로부터도 사라지고, 현명한 자들조차
화나게 만드는 분노도 사라지기를. 그것은 흘러내리는 꿀보다 훨씬 달콤해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연기처럼 커지지요.
꼭 그처럼 저는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에게 분노했지요.
하지만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해야지요.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크로노스의 아드님 제우스 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강력한 헤라클레스도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의 여신과 헤라의 무서운 노여움에 제압되고 말았어요.
제게도 똑같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다면 저도 죽은 뒤
꼭 그처럼 누워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탁월한 명성을
얻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트로이아 여인들과 가슴이 불룩한
다르다니에 여인들로 하여금 부드러운 얼굴에서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통탄하게 해주고 싶어요. 또 제가 전쟁에서
이미 충분히 쉬었다는 것을 알려주겠어요. 그러니 제 출전을
모정으로 막지 마세요. 저를 설득하지 못하실 거예요.”
토론하기
(1) 아킬레우스는 어떤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찾아보고 그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말해보자.
(2) 공동체가 권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현대의 신화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공동체가 권장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신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본성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의 몸이 아프지 않고 늘 건강하기를 바란다. 물론 몸만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에서 부모는 자녀 가까이 두는 물건들을 고를 때 허투루 선택하는 법이 없다. 적어도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덜 좋은 것을 고르지는 않는다. 아이 방 벽지의 색상, 아이가 쓸 책상의 높이, 아이 방의 조명 밝기 등 모두 숙고해서 정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사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미취학 아동을 가진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하는 책들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위인전이다. 자기 자녀가 역사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데 왜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곁에 두도록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자녀들이 위인전에 등장하는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 본받도록 하려는 취지에서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각도에서,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권장하는 도덕적 가치나 제도 등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신화를 헌장신화라고 한다. 본 셀묶음의 첫 번째 셀에서 이야기한 원인신화가 자연에 관한 신화적 설명이었다고 한다면, 헌장신화는 사회에 대한 신화적 설명이다.
대중들의 교육자, 시인. 대중교육의 매체, 신화.
다양한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해야 하고 다시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공통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 공통적 토대에는 언어, 역사, 문화, 종교 등 수많은 요소가 결부되는데, 현대의 국가들은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공교육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개인들이 해당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이러한 교육을 받은 개인조차도 작은 차이를 계기로 공동체 내부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예컨대, 단일 민족국가라고 이야기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성별이나 연령 심지어 혈액형과 같은 사소한 차이를 기준으로 격렬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물론 공교육 제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일대의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과 공존해야 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나아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상술했다시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동일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라는 정체성을 제공한 요인에는 언어나 역사 그리고 문화와 종교 등의 공통 기반이 있는데, 신화 역시 문화와 종교의 한 부분으로서 포함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는 (그들은 ‘헬라스’라고 불렀다) 근대의 영토 국가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언어와 관습 및 전통을 공유하는 문화 공동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은 아테네나 아르고스 같은 폴리스들이 서로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아테네인이든 아르고스인이든 아니면 다른 폴리스 사람이든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피스트나 철학자들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학교와 교사를 대신해서 대중들을 상대로 신화를 들려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인들이었다. 시인들은 거처를 옮겨가며 신화를 소재로 노래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서 신들과 영웅들을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되었다. ‘아! 나도 아킬레우스처럼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네메아의 사자와 하데스의 케르베로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헤라클레스야말로 정말 용감한 사나이야!’ 이제 고대 그리스인들은 같은 신화를 공유하면서 같은 신과 같은 영웅을 귀감으로 여기는 공통 기반을 갖게 된다. 그로부터 유사한 교훈을 얻어 유사한 윤리적 가치를 공유할 수도 있다. 요컨대, 서로 다른 개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할 수 있도록 공통적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화 교육이라면, 당시 그리스의 시인들은 신화를 통해 그리스인들의 사회화를 도왔던 대중 교육자요, 신화는 그들이 사용한 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교육, 시인, 신화, 아킬레우스, 일리아스, 헌장신화, 호메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