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르고호 원정대』는 이올코스 출신의 영웅 이아손이 원정대를 조직해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나는 원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자의 사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얼마후 펠리아스는 강을 건너다 한쪽 신발을 잃어버린 채로 펠리아스가 베푼 잔치에 참여한 이아손을 발견하고서 그를 죽일 작정으로 황금양털을 찾아 머나먼 콜키스에 다녀오라는 명을 내린다.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지만 이아손은 왕의 명령을 따르기로 하고 그리스 전역에서 최고의 영웅들을 모집해 마법의 배 아르고 호를 타고 원정길에 나선다. 콜키스로 향하는 동안 여러 신기한 사건과 모험을 겪으며 끝내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은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그곳의 왕 아이에테스로부터 황금양털을 탈취하지만, 아이에테스가 콜키스의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자신의 남동생 압쉬르토스를 토막 내어 살해한 후 바다에 유기해 아이에테스의 추격을 늦추고 아르고호 원정대는 그 틈을 타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 후 그들은 콜키스를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모험을 겪게 되지만, 끝내 이올코스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고전본문
…그것은 펠리에스가 이러한 신탁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를
밉살스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누구든지 대중으로부터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자가 오는 것을 보거든 이 사람의 사주로 죽으리라는.
오래지 않아 그 참다운 말씀에 따라 이에손이
겨울 아나우로스 강의 흐름을 걸어서 건너다
신발 한 짝은 진흙 속에서 구해냈으나 다른 쪽은 밑에 남겨
곧장 홍수가 그것을 가져가 버렸다.
그는 즉시 펠리에스에게로 갔다. 잔치에 참여하러.
펠리에스는 즉시 이에손을 보고 주목하였으며 그에게
맡길 고통스런 항해의 노역을 생각해냈다. 그가 바다에서 혹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귀향을 잃어버리도록 …<중략>…
곧 펠라스고이 인들의 곡식 밭 풍성한 땅이 희미하게
가라앉고,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펠리온 산의
절벽들을 지나게 되었다. 세피아 곶이 가라앉고
바다 가운데 있는 스키아토스가 나타났으며, 또 멀리서부터
페이레사아이와 마그네시아의 평온한 땅의
곶이, 그리고 돌롭스의 무덤이 나타났다. 저들은
저녁에 바람이 반대로 불자 여기서 상륙하였고
그에게 존경을 바쳐 어스름에 양고기 제물을
태워 올렸다. 그때 바다는 파도로 요동하였다. 그들은 ㅇ틀 동안
그 곶에서 쉬었다. 그러나 사흘째에 배를
끌어내었고, 거대한 돛을 높이 펼쳐 당겼다. …<중략>…
“이제 우리는 콜키스 땅과 파시스의 흐름에
당도하였소.”…”나는 아이에테스의 집으로 가겠소.
프릭소스의 아들들과 덧붙여 두 명의 동료를 데리고서.
그를 만나면 우선 말로 시험해 볼 참이오…“
왕의 마음은 가슴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을 견주고 있었다.
그들을 공격하여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힘을 시험해 볼 것인지. 그런데 후자가
더 나아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여 말했다.
“내게는 청동의 발을 가진 두 마리 황소가 있어서, 아레스의 벌판에서
두루 풀 뜯고 있는데, 입에서는 불길을 뿜어낸다.
나는 그것들을 멍에 씌워 아레스의 굳은 묵정밭
네 정보에 걸쳐 몰아, 그것을 밭둑까지 쟁기로 얼른 가르고는,
무서운 뱀의, 무장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며 자라는
이빨들을 심어 넣는다. 그리고 즉시 둘러서서 맞서는 그들을
나의 창으로 제압하여 베어버린다.
아침 일찍 소들을 멍에 지우고, 오후면 수확을 마치지.
한데 그대가 이 일을, 그만한 것을 해낸다면,
그 날로 그 털가죽을 왕에게로 가져갈 수 있으리라.“
…메데이아의 심장은 가슴 속에서 내려앉았고, 눈은 곧장
안개로 에워싸였다. 뜨거운 홍조가 뺨을 물들였다.
아이손의 아들은 그녀가 신이 보낸 미망에 빠져 있음을
알았고, 이와 같이 달래어 말했다.
“처녀여, 나를 왜 그렇게 두려워하시오, 내 앞에서 너무 많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우리가 서로 호의를 가지고서, 분명하게 말하고
또 물으십시오. 그리고 듣기 좋은 말로 나를 속이지도 마십시오.
처음에 그대가 내 마음을 만족시킬 마법의 약을 주기로
그대의 자매에게 약속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눈길을 옆으로 던지며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얼른 향기로운 띠로부터 마법의 약을 아낌없이
꺼냈다. 그러자 그는 기뻐하며 얼른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 둘은 때로 부끄러워 눈을 땅으로
향했다가 때로 다시 서로에게 눈길을 던지곤 하였다.
“만일 당신이 희랍 땅에 당도한다면,
그대는 부부의 침실 안에 우리의 침대를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정해진 죽음이 우리를 에워싸 덮기 전에는.“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듣자 그녀의 내부에서 정신이 녹아내렸다.
…새벽이 되자 아이에테스는 그 이빨들을 가져가도록 흔쾌히 주었다.
이에손이 경기의 끝을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사 소들에게 멍에를 지운다 하더라도.
그 사이 이에손은 메데이아의 충고에 따라
마법의 약을 적셔서 방패와 강한 창과
칼 주위에 두루 발랐다. 주위의 동료들은
힘을 가해 그 무기들을 시험하였으나, 저 창을
조금도 구부릴 수 없었고, 그것은 강한 손 안에서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남아있었다.
…이에손은 계략을 많이 가진 메데이아의 충고를 기억하였고
들판에서 둥그렇고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아이손의 아들은 땅에서 난 자들에게 돌진하였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고서. 그리고 사방으로 내리쳐 베었다.
이아손은 이삭을 베었다. 아이에테스 왕의 가슴은 무거운 근심이 닥쳐왔다.
…메데이아는 두 손으로 이들의 무릎을 감싸 안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친구들이여, 불행한 나를 구해주세요. 그리고 당신들
자신들도, 아이에테스로부터,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말았고,
그 어떤 수단도 그것을 치유할 수 없으니까요. 배를 타고서
도망칩시다. 그분이 빠른 말들 위에 오르기 전에.
황금양털 가죽은 내가 드리겠어요. 지키는 뱀을 잘 재우고서.“
…이에손과 메데이아는 길을 따라 신성한 숲을 향하여 갔다.
거대한 참나무를 찾으며. 그 위에는 양털 가죽이 얹혀 있었다.
하지만 정면에 날카로운 뱀이 긴 목을 늘이고서 다가오는
그들을 잠자지 않는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무섭게 쉭쉭대며.
그것이 그렇게 휘감고 있을 때 처녀는 눈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이에손은 참나무에서 황금의 양털 가죽을 취하였다.
처녀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굳건히 서서
약을 그 짐승의 머리에 발랐다. 이에손 자신이 그녀에게
자기 배로 다시 돌아오라고 이를 때까지.
그리고 아레스의 그늘 짙은 숲을 떠났다.
토론하기
(1)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이아손이 정말로 황금양털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까? 또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황금양털을 댓가로 이아손에게 부과한 노역은 무엇이었나?
(2) 신화가 직접 향유되는 것은 개인에 의해서지만, 동시에 그것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문화적 기반을 형성하기도 한다. 신화가 수행하는 사회·문화적 기능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아르고호 원정대』와 그 뒷이야기
인용한 본문은 『아르고호 원정대』 전체 가운데 작품의 시작 부분부터 황금양털을 얻고 콜키스를 빠져나와 귀향길에 오르는 장면까지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분량이 길어 내용을 생략하며 발췌하였다. 본문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귀향길 이후의 일까지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원정대는 콜키스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모험을 겪으며 간신히 이올코스에 도착한다. 『아르고호 원정대』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아손과 메데이아에 대해서는 그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들은 이올코스에 돌아가 부부가 되지만, 이아손이 원정에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펠리아스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메데이아가 자신의 마법으로 펠리아스 왕을 살해한다. 늙은 펠리아스를 회춘시켜 주겠다며 그의 딸들을 불러 모은 다음, 늙은 양을 끓는 솥에 넣고 어린 양으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줘서 자신을 믿도록 만든 다음, 아버지의 회춘을 바라는 그녀들이 펠리아스를 똑같이 끓는 솥에 넣어 죽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올코스에서 추방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넘어가 10여년 간 살게 되지만, 이아손은 그곳의 왕녀인 글라우케와 재혼하려 하자 메데이아이 낳은 이아손의 두 아들들을 죽여 복수한 후 아테네로 망명해 테세우스가 오기 전까지 아이게우스 왕 곁에서 머문다.
제의 전승 수단으로서의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는 고대 사회에서 큰 중요성을 가졌던 통과 제의 중 하나인 성인식의 절차와 과정을 반영하고 그것을 전승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신화는 신과 관련된 담론이기 때문에 그것이 종교적 속성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고대의 종교 의식 중에서도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성인식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의료 수준이 낮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확률이 커서 아이가 태어나 성인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낮았다. 소수의 인원으로 꾸려지는 부족 사회에서는 성인 공동체 구성원이 한 명 늘어나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부족 전체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성인식은 가장 중요한 제의 중 하나로 부상한다. 그런데 성인식의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성인으로 거듭나고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당사자는 1. 공동체의 생활공간에서 어떤 과제를 부여 받고 2.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출발해 낯선 장소로 이동한다. 3. 그리고 그 낯선 장소에서 부여받았던 과제를 해결한 뒤 4. 다시금 그 낯선 장소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원래의 생활공간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5. 과제 해결의 결과물을 통해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아르고호 원정대』는 이러한 구성과 순서에 부합한다. 1. 이아손은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에게 과제를 부여받고 2. 자신의 고향인 이올코스에서 출발해 머나먼 콜키스로 모험을 떠난다. 3.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은 아이에테스의 노역과 아레스의 숲을 지키는 뱀을 물리치고 끝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은 다음 4. 콜키스를 떠나 다시 이올코스로 돌아온다. 5. 이올코스에 돌아온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가져오는데 성공하고 메데이아와 부부가 된다.
| 성인식 | 단계 | 아르고호 이야기 |
| 마을에서 과제를 받다 | 1 |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에게 과제를 부여받다 |
| 익숙한 장소에서 출발해 낯선 장소로 이동하다 | 2 | 이올코스에서 출발해 콜키스로 이동하다 |
| 낯선 장소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다 | 3 | 콜키스에서 모험 끝에 황금 양털을 얻다 |
| 과제를 해결한 후 집으로 돌아오다 | 4 |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올코스로 돌아오다 |
| 성인으로 인정받다 | 5 |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신부로 얻다 |
학자들은 신화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제시한다. 신화는 인간의 정신과 문명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는데,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학자들의 배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들 가운데는 그것이 신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특정한 문화와 관습을 전달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두 번째 셀에서 이야기했던 헌장신화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아르고호 원정대』는 공동체 안에서 바람직하다고 권장되는 윤리·도덕적 가치보다 한결 구체적인 제의 절차와 관습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층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워드
메데이아, 문화,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 이아손, 전승, 펠리아스
전후맥락
『아르고호 원정대』는 이올코스 출신의 영웅 이아손이 원정대를 조직해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나는 원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자의 사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는다. 얼마후 펠리아스는 강을 건너다 한쪽 신발을 잃어버린 채로 펠리아스가 베푼 잔치에 참여한 이아손을 발견하고서 그를 죽일 작정으로 황금양털을 찾아 머나먼 콜키스에 다녀오라는 명을 내린다.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지만 이아손은 왕의 명령을 따르기로 하고 그리스 전역에서 최고의 영웅들을 모집해 마법의 배 아르고 호를 타고 원정길에 나선다. 콜키스로 향하는 동안 여러 신기한 사건과 모험을 겪으며 끝내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은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그곳의 왕 아이에테스로부터 황금양털을 탈취하지만, 아이에테스가 콜키스의 군대를 이끌고 추격한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자신의 남동생 압쉬르토스를 토막 내어 살해한 후 바다에 유기해 아이에테스의 추격을 늦추고 아르고호 원정대는 그 틈을 타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 후 그들은 콜키스를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모험을 겪게 되지만, 끝내 이올코스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고전본문
…그것은 펠리에스가 이러한 신탁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를
밉살스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누구든지 대중으로부터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자가 오는 것을 보거든 이 사람의 사주로 죽으리라는.
오래지 않아 그 참다운 말씀에 따라 이에손이
겨울 아나우로스 강의 흐름을 걸어서 건너다
신발 한 짝은 진흙 속에서 구해냈으나 다른 쪽은 밑에 남겨
곧장 홍수가 그것을 가져가 버렸다.
그는 즉시 펠리에스에게로 갔다. 잔치에 참여하러.
펠리에스는 즉시 이에손을 보고 주목하였으며 그에게
맡길 고통스런 항해의 노역을 생각해냈다. 그가 바다에서 혹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귀향을 잃어버리도록 …<중략>…
곧 펠라스고이 인들의 곡식 밭 풍성한 땅이 희미하게
가라앉고,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펠리온 산의
절벽들을 지나게 되었다. 세피아 곶이 가라앉고
바다 가운데 있는 스키아토스가 나타났으며, 또 멀리서부터
페이레사아이와 마그네시아의 평온한 땅의
곶이, 그리고 돌롭스의 무덤이 나타났다. 저들은
저녁에 바람이 반대로 불자 여기서 상륙하였고
그에게 존경을 바쳐 어스름에 양고기 제물을
태워 올렸다. 그때 바다는 파도로 요동하였다. 그들은 ㅇ틀 동안
그 곶에서 쉬었다. 그러나 사흘째에 배를
끌어내었고, 거대한 돛을 높이 펼쳐 당겼다. …<중략>…
“이제 우리는 콜키스 땅과 파시스의 흐름에
당도하였소.”…”나는 아이에테스의 집으로 가겠소.
프릭소스의 아들들과 덧붙여 두 명의 동료를 데리고서.
그를 만나면 우선 말로 시험해 볼 참이오…“
왕의 마음은 가슴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을 견주고 있었다.
그들을 공격하여 그 자리에서 죽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힘을 시험해 볼 것인지. 그런데 후자가
더 나아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여 말했다.
“내게는 청동의 발을 가진 두 마리 황소가 있어서, 아레스의 벌판에서
두루 풀 뜯고 있는데, 입에서는 불길을 뿜어낸다.
나는 그것들을 멍에 씌워 아레스의 굳은 묵정밭
네 정보에 걸쳐 몰아, 그것을 밭둑까지 쟁기로 얼른 가르고는,
무서운 뱀의, 무장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며 자라는
이빨들을 심어 넣는다. 그리고 즉시 둘러서서 맞서는 그들을
나의 창으로 제압하여 베어버린다.
아침 일찍 소들을 멍에 지우고, 오후면 수확을 마치지.
한데 그대가 이 일을, 그만한 것을 해낸다면,
그 날로 그 털가죽을 왕에게로 가져갈 수 있으리라.“
…메데이아의 심장은 가슴 속에서 내려앉았고, 눈은 곧장
안개로 에워싸였다. 뜨거운 홍조가 뺨을 물들였다.
아이손의 아들은 그녀가 신이 보낸 미망에 빠져 있음을
알았고, 이와 같이 달래어 말했다.
“처녀여, 나를 왜 그렇게 두려워하시오, 내 앞에서 너무 많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우리가 서로 호의를 가지고서, 분명하게 말하고
또 물으십시오. 그리고 듣기 좋은 말로 나를 속이지도 마십시오.
처음에 그대가 내 마음을 만족시킬 마법의 약을 주기로
그대의 자매에게 약속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눈길을 옆으로 던지며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얼른 향기로운 띠로부터 마법의 약을 아낌없이
꺼냈다. 그러자 그는 기뻐하며 얼른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그 둘은 때로 부끄러워 눈을 땅으로
향했다가 때로 다시 서로에게 눈길을 던지곤 하였다.
“만일 당신이 희랍 땅에 당도한다면,
그대는 부부의 침실 안에 우리의 침대를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으로부터
나누지 못할 것입니다. 정해진 죽음이 우리를 에워싸 덮기 전에는.“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듣자 그녀의 내부에서 정신이 녹아내렸다.
…새벽이 되자 아이에테스는 그 이빨들을 가져가도록 흔쾌히 주었다.
이에손이 경기의 끝을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사 소들에게 멍에를 지운다 하더라도.
그 사이 이에손은 메데이아의 충고에 따라
마법의 약을 적셔서 방패와 강한 창과
칼 주위에 두루 발랐다. 주위의 동료들은
힘을 가해 그 무기들을 시험하였으나, 저 창을
조금도 구부릴 수 없었고, 그것은 강한 손 안에서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남아있었다.
…이에손은 계략을 많이 가진 메데이아의 충고를 기억하였고
들판에서 둥그렇고 커다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아이손의 아들은 땅에서 난 자들에게 돌진하였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고서. 그리고 사방으로 내리쳐 베었다.
이아손은 이삭을 베었다. 아이에테스 왕의 가슴은 무거운 근심이 닥쳐왔다.
…메데이아는 두 손으로 이들의 무릎을 감싸 안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친구들이여, 불행한 나를 구해주세요. 그리고 당신들
자신들도, 아이에테스로부터,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말았고,
그 어떤 수단도 그것을 치유할 수 없으니까요. 배를 타고서
도망칩시다. 그분이 빠른 말들 위에 오르기 전에.
황금양털 가죽은 내가 드리겠어요. 지키는 뱀을 잘 재우고서.“
…이에손과 메데이아는 길을 따라 신성한 숲을 향하여 갔다.
거대한 참나무를 찾으며. 그 위에는 양털 가죽이 얹혀 있었다.
하지만 정면에 날카로운 뱀이 긴 목을 늘이고서 다가오는
그들을 잠자지 않는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무섭게 쉭쉭대며.
그것이 그렇게 휘감고 있을 때 처녀는 눈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이에손은 참나무에서 황금의 양털 가죽을 취하였다.
처녀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굳건히 서서
약을 그 짐승의 머리에 발랐다. 이에손 자신이 그녀에게
자기 배로 다시 돌아오라고 이를 때까지.
그리고 아레스의 그늘 짙은 숲을 떠났다.
토론하기
(1)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이아손이 정말로 황금양털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까? 또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가 황금양털을 댓가로 이아손에게 부과한 노역은 무엇이었나?
(2) 신화가 직접 향유되는 것은 개인에 의해서지만, 동시에 그것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문화적 기반을 형성하기도 한다. 신화가 수행하는 사회·문화적 기능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토론해보자.
해설읽기
『아르고호 원정대』와 그 뒷이야기
인용한 본문은 『아르고호 원정대』 전체 가운데 작품의 시작 부분부터 황금양털을 얻고 콜키스를 빠져나와 귀향길에 오르는 장면까지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분량이 길어 내용을 생략하며 발췌하였다. 본문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귀향길 이후의 일까지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원정대는 콜키스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모험을 겪으며 간신히 이올코스에 도착한다. 『아르고호 원정대』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아손과 메데이아에 대해서는 그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들은 이올코스에 돌아가 부부가 되지만, 이아손이 원정에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펠리아스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자 앙심을 품은 메데이아가 자신의 마법으로 펠리아스 왕을 살해한다. 늙은 펠리아스를 회춘시켜 주겠다며 그의 딸들을 불러 모은 다음, 늙은 양을 끓는 솥에 넣고 어린 양으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줘서 자신을 믿도록 만든 다음, 아버지의 회춘을 바라는 그녀들이 펠리아스를 똑같이 끓는 솥에 넣어 죽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올코스에서 추방된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코린토스로 넘어가 10여년 간 살게 되지만, 이아손은 그곳의 왕녀인 글라우케와 재혼하려 하자 메데이아이 낳은 이아손의 두 아들들을 죽여 복수한 후 아테네로 망명해 테세우스가 오기 전까지 아이게우스 왕 곁에서 머문다.
제의 전승 수단으로서의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는 고대 사회에서 큰 중요성을 가졌던 통과 제의 중 하나인 성인식의 절차와 과정을 반영하고 그것을 전승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신화는 신과 관련된 담론이기 때문에 그것이 종교적 속성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고대의 종교 의식 중에서도 특별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성인식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의료 수준이 낮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확률이 커서 아이가 태어나 성인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낮았다. 소수의 인원으로 꾸려지는 부족 사회에서는 성인 공동체 구성원이 한 명 늘어나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부족 전체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성인식은 가장 중요한 제의 중 하나로 부상한다. 그런데 성인식의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성인으로 거듭나고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당사자는 1. 공동체의 생활공간에서 어떤 과제를 부여 받고 2.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출발해 낯선 장소로 이동한다. 3. 그리고 그 낯선 장소에서 부여받았던 과제를 해결한 뒤 4. 다시금 그 낯선 장소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원래의 생활공간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5. 과제 해결의 결과물을 통해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아르고호 원정대』는 이러한 구성과 순서에 부합한다. 1. 이아손은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에게 과제를 부여받고 2. 자신의 고향인 이올코스에서 출발해 머나먼 콜키스로 모험을 떠난다. 3. 콜키스에 도착한 이아손과 원정대원들은 아이에테스의 노역과 아레스의 숲을 지키는 뱀을 물리치고 끝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은 다음 4. 콜키스를 떠나 다시 이올코스로 돌아온다. 5. 이올코스에 돌아온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가져오는데 성공하고 메데이아와 부부가 된다.
| 성인식 | 단계 | 아르고호 이야기 |
| 마을에서 과제를 받다 | 1 |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에게 과제를 부여받다 |
| 익숙한 장소에서 출발해 낯선 장소로 이동하다 | 2 | 이올코스에서 출발해 콜키스로 이동하다 |
| 낯선 장소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다 | 3 | 콜키스에서 모험 끝에 황금 양털을 얻다 |
| 과제를 해결한 후 집으로 돌아오다 | 4 |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올코스로 돌아오다 |
| 성인으로 인정받다 | 5 |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신부로 얻다 |
학자들은 신화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을 제시한다. 신화는 인간의 정신과 문명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는데,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학자들의 배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들 가운데는 그것이 신화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특정한 문화와 관습을 전달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두 번째 셀에서 이야기했던 헌장신화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아르고호 원정대』는 공동체 안에서 바람직하다고 권장되는 윤리·도덕적 가치보다 한결 구체적인 제의 절차와 관습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층위에 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워드
메데이아, 문화, 신화, 아르고호 원정대, 이아손, 전승, 펠리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