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위-아폴로도로스의 기록에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는 『요약본epitome』 첫 머리에 소개되어 있다. 『요약본』은 『도서관』에서 소실되었던 내용들을 J. 프레이저가 바티칸 도서관과 예루살렘의 수도원에서 발견한 사본을 토대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이후에는 힙폴뤼토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와 탄탈로스와 펠롭스에 관한 내용 그리고 트로이 전쟁 및 오뒷세우스의 귀환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고전본문
..그리고 그(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에게로 가는 세 번째 공물 중에 들어가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자진해서 자신을 제공했다고 한다. 배는 검은 돛을 올리고 있었는데, 아이게우스는 아들에게, 만일 살아서 돌아온다면 배에 흰 돛을 펼치라고 일러두었다.
그가 크레테에 도착하였을 때, 미노스의 딸인 아리아드네가 그에 대한 사랑에 빠져, 만일 그가 자신을 아내로서 아테나이에 데려가는데 동의한다면 도와주겠노라고 알려온다. 테세우스가 그러겠다고 맹세하자, 그녀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나오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다이달로스가 충고한 대로,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을 준다. 테세우스는 이것을 문에다 묶어 놓고 풀면서 들어갔다. 미궁의 끝 부분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하여, 그를 주먹으로 쳐서 죽이고는 실을 당기면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밤중에 아리아드네와 아이들과 낙소스로 간다. 거기서 디오뉘소스가 아리아드네를 사랑하여 채어갔고, 렘노스로 데려다가 동침하여, 토아스, 스타퓔로스, 오이노피온 그리고 페파레토스를 낳는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때문에 괴로워서, 항해하며 배에 흰 돛을 펼치는 것을 잊었다. 그런데 아이게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배가 검은 돛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테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몸을 던져 죽었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 인들에 대한 지배권을 이어받았고 쉰 명에 이르는 팔라스의 아들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에게 맞서 일어서려는 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그에게 죽어, 그는 모든 지배권을 전부 혼자서 갖게 되었다.
토론하기
(1) 아이게우스가 테세우스의 배를 보고서 자결한 까닭은 무엇인가? 또 그가 투신한 바다가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2)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매체들 중 사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찾아서 이야기해보자.
(3) 공동체의 의식과 무의식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
해설읽기
신화는 금기시된 욕구의 안전한 체험 수단
신화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앞서의 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은 학자들의 관심과 학문적 배경 등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처럼 여러 관점들을 편중되지 않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신화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신화를 조망하는 각도에 따라서는 그것이 인간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온갖 금기시된 욕망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표면화된 것이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한결 안전한 방식으로 금지된 욕망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달랠 수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점 관점에서 신화를 바라볼 때의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제창된 학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심리학이 인간의 의식 구조를 각종 실험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학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은 그러한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욕망의 영역인 무의식의 존재를 가정하고 의식보다도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의식은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아래로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잠겨있다. 이때, 의식은 평소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각자의 내면으로 이성이 지배하고 있어 규칙과 질서에 따라 작동하는 반면, 무의식은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의식 하부에 자리를 잡고 은연중에 나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으로서 금기시되어 있는 욕구가 자리잡고 있는 영역이다. 평상시라면 무의식은 의식의 통제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지만, 강한 정신적 충격이나 내적 상처, 즉 트라우마가 주어지는 경우, 그 상처의 틈을 왜곡된 욕망이 비잡고 나와 의식의 감시를 뚫고 어떤 문제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당사자 스스로도 자신의 행위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고 있고 또 하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도저히 어떤 반복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틱 증상이 한 예가 될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신화를 바라보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벌거벗은 욕망의 알레고리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신화는 공동체에서 금지되어 있는 욕망의 알레고리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을 갖는다고 가정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동체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별 인간의 특성을 이어받을 수 있다. 즉, 공동체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개인에게 의식은 곧 이성을 가리키고 무의식은 욕망의 세계였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의식과 무의식은 무엇으로 구체화될 것인가? 공동체의 의식은 그 사회의 법률로 나타난다. 법률은 그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갖춘 집단의 이성이 규칙과 질서를 따라 도출해낸 결과물이다. 플라톤이 법률이야말로 그 국가의 영혼이라고 말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도 아마 이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반면, 공동체의 무의식은 고대에 신화로 표출된다는 것이 이 관점에서의 귀결이다.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압받는 금기시된 욕망이 내재된 영역인데, 신화 속에도 현실에서라면 법률과 관습에 의해 통제되어 마땅한 욕망에 근거해 자행될 수 있는 수많은 금기들, 예를 들어 근친상간, 친족살해와 같은 이야기가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화는 단지 패륜 모음집에 불과한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신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안전한 방식으로 금기시된 욕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해소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살인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고 죽음을 향한 충동도 느끼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욕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신화는 트로이 전쟁에서 잔인하게 썰려 나가는 도륙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살인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오뒷세우스의 저승 여행담을 통해 하데스도 간접적으로 여행하게 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금기시된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오늘날 대중문화가 수행하는 기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살인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지옥으로 달려가 악마를 때려잡는 체험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는 왜 꺼냈는데?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본문에서 소개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미노타우로스 신화는 바로 그렇게 안전한 방식으로 관리되지만 언제 말썽을 일으킬지 모르는 욕망의 알레고리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테의 왕 미노스의 부인인 파시파에가 낳은 자식이다. 미노스는 형제들과 왕위를 놓고 다툴 때,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보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 댓가로 반드시 그 황소를 다시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하고서. 그러나 신이 내린 황소를 본 미노스는 슬며시 생각을 바꾸어 다른 소를 제물로 바치고 신이 준 멋진 황소를 자기가 갖기로 한다.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내린 저주가 바로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그 황소에게 성욕을 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파시파에는 명장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받아 황소와 결합해 자식을 낳게 되는데 그게 바로 미노타우로스다. 미노스 왕은 자신의 왕비가 그런 해괴망측한 사태를 일으켜 괴물을 낳았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미노타우로스를 크레테 왕궁의 지하 미궁에 가두어 숨기고 일정한 주기로 아테네로부터 인간 남녀를 제공받아 그에게 먹이로 바치게 된다.
자, 그런데 왜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는가? 자신이 왕이고 왕비의 부끄러운 행위를 숨기고 싶었다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누가 왕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혹시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인 미노스가 죽일 수 없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욕구가 있다. 인간은 욕구가 사라지면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욕구가 사라지면 음식에 대한 욕구, 건강에 대한 욕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욕구마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노타우로스는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욕구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첫째, 미노타우로스가 갇혀있는 공간인 미궁은 길이 이리저리 얽힌데다 어떤 곳은 막혀있고 어떤 곳은 뚫려있다. 미궁이라는 장소는 불규칙적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이 가정하는 무의식과 매우 닮았다. 그 다음 둘째, 미노타우로스는 정기적으로 공물을 먹이로 바쳐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다. 먹이를 끊으면 죽어버리거나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미궁을 뛰쳐나와 말썽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미노타우로스는 타국으로부터 인간 제물을 받아 제공하는데 그러면 또 얼마간은 적당히 미궁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적당한 먹잇감으로 해소해줘야 관리할 수 있고 방치해두면 위험하다는 점도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 영역 속의 금기시된 욕구와 유사하다. 요컨대,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괴물이며 인간을 대표하는 미노스는 그런 욕망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어 정기적으로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리물을 던져줌으로써 최대한 안전한 방식으로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키워드
무의식, 미노타우로스, 욕망, 의식, 정신분석학, 테세우스, 트라우마
전후맥락
위-아폴로도로스의 기록에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는 『요약본epitome』 첫 머리에 소개되어 있다. 『요약본』은 『도서관』에서 소실되었던 내용들을 J. 프레이저가 바티칸 도서관과 예루살렘의 수도원에서 발견한 사본을 토대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미노타우로스 이야기 이후에는 힙폴뤼토스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와 탄탈로스와 펠롭스에 관한 내용 그리고 트로이 전쟁 및 오뒷세우스의 귀환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고전본문
..그리고 그(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에게로 가는 세 번째 공물 중에 들어가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자진해서 자신을 제공했다고 한다. 배는 검은 돛을 올리고 있었는데, 아이게우스는 아들에게, 만일 살아서 돌아온다면 배에 흰 돛을 펼치라고 일러두었다.
그가 크레테에 도착하였을 때, 미노스의 딸인 아리아드네가 그에 대한 사랑에 빠져, 만일 그가 자신을 아내로서 아테나이에 데려가는데 동의한다면 도와주겠노라고 알려온다. 테세우스가 그러겠다고 맹세하자, 그녀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에서 나오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다이달로스가 충고한 대로,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을 준다. 테세우스는 이것을 문에다 묶어 놓고 풀면서 들어갔다. 미궁의 끝 부분에서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하여, 그를 주먹으로 쳐서 죽이고는 실을 당기면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밤중에 아리아드네와 아이들과 낙소스로 간다. 거기서 디오뉘소스가 아리아드네를 사랑하여 채어갔고, 렘노스로 데려다가 동침하여, 토아스, 스타퓔로스, 오이노피온 그리고 페파레토스를 낳는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 때문에 괴로워서, 항해하며 배에 흰 돛을 펼치는 것을 잊었다. 그런데 아이게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배가 검은 돛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테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하여 몸을 던져 죽었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이 인들에 대한 지배권을 이어받았고 쉰 명에 이르는 팔라스의 아들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에게 맞서 일어서려는 자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그에게 죽어, 그는 모든 지배권을 전부 혼자서 갖게 되었다.
토론하기
(1) 아이게우스가 테세우스의 배를 보고서 자결한 까닭은 무엇인가? 또 그가 투신한 바다가 오늘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2)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매체들 중 사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찾아서 이야기해보자.
(3) 공동체의 의식과 무의식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
해설읽기
신화는 금기시된 욕구의 안전한 체험 수단
신화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앞서의 셀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은 학자들의 관심과 학문적 배경 등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처럼 여러 관점들을 편중되지 않고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신화를 이해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신화를 조망하는 각도에 따라서는 그것이 인간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온갖 금기시된 욕망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표면화된 것이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한결 안전한 방식으로 금지된 욕망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달랠 수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점 관점에서 신화를 바라볼 때의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제창된 학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심리학이 인간의 의식 구조를 각종 실험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학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은 그러한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욕망의 영역인 무의식의 존재를 가정하고 의식보다도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의식은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그 아래로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잠겨있다. 이때, 의식은 평소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각자의 내면으로 이성이 지배하고 있어 규칙과 질서에 따라 작동하는 반면, 무의식은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의식 하부에 자리를 잡고 은연중에 나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으로서 금기시되어 있는 욕구가 자리잡고 있는 영역이다. 평상시라면 무의식은 의식의 통제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지만, 강한 정신적 충격이나 내적 상처, 즉 트라우마가 주어지는 경우, 그 상처의 틈을 왜곡된 욕망이 비잡고 나와 의식의 감시를 뚫고 어떤 문제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당사자 스스로도 자신의 행위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고 있고 또 하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도저히 어떤 반복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틱 증상이 한 예가 될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신화를 바라보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벌거벗은 욕망의 알레고리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신화는 공동체에서 금지되어 있는 욕망의 알레고리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을 갖는다고 가정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동체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별 인간의 특성을 이어받을 수 있다. 즉, 공동체 역시 개인과 마찬가지로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개인에게 의식은 곧 이성을 가리키고 무의식은 욕망의 세계였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의식과 무의식은 무엇으로 구체화될 것인가? 공동체의 의식은 그 사회의 법률로 나타난다. 법률은 그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갖춘 집단의 이성이 규칙과 질서를 따라 도출해낸 결과물이다. 플라톤이 법률이야말로 그 국가의 영혼이라고 말했을 때 떠올렸던 생각도 아마 이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반면, 공동체의 무의식은 고대에 신화로 표출된다는 것이 이 관점에서의 귀결이다.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압받는 금기시된 욕망이 내재된 영역인데, 신화 속에도 현실에서라면 법률과 관습에 의해 통제되어 마땅한 욕망에 근거해 자행될 수 있는 수많은 금기들, 예를 들어 근친상간, 친족살해와 같은 이야기가 비일비재하게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화는 단지 패륜 모음집에 불과한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신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안전한 방식으로 금기시된 욕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해소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은 살인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고 죽음을 향한 충동도 느끼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욕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신화는 트로이 전쟁에서 잔인하게 썰려 나가는 도륙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살인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오뒷세우스의 저승 여행담을 통해 하데스도 간접적으로 여행하게 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금기시된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오늘날 대중문화가 수행하는 기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살인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지옥으로 달려가 악마를 때려잡는 체험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는 왜 꺼냈는데?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본문에서 소개한 미노타우로스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미노타우로스 신화는 바로 그렇게 안전한 방식으로 관리되지만 언제 말썽을 일으킬지 모르는 욕망의 알레고리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테의 왕 미노스의 부인인 파시파에가 낳은 자식이다. 미노스는 형제들과 왕위를 놓고 다툴 때,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보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 댓가로 반드시 그 황소를 다시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하고서. 그러나 신이 내린 황소를 본 미노스는 슬며시 생각을 바꾸어 다른 소를 제물로 바치고 신이 준 멋진 황소를 자기가 갖기로 한다.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내린 저주가 바로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그 황소에게 성욕을 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파시파에는 명장 다이달로스의 도움을 받아 황소와 결합해 자식을 낳게 되는데 그게 바로 미노타우로스다. 미노스 왕은 자신의 왕비가 그런 해괴망측한 사태를 일으켜 괴물을 낳았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미노타우로스를 크레테 왕궁의 지하 미궁에 가두어 숨기고 일정한 주기로 아테네로부터 인간 남녀를 제공받아 그에게 먹이로 바치게 된다.
자, 그런데 왜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는가? 자신이 왕이고 왕비의 부끄러운 행위를 숨기고 싶었다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누가 왕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혹시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인 미노스가 죽일 수 없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욕구가 있다. 인간은 욕구가 사라지면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욕구가 사라지면 음식에 대한 욕구, 건강에 대한 욕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욕구마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노타우로스는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욕구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첫째, 미노타우로스가 갇혀있는 공간인 미궁은 길이 이리저리 얽힌데다 어떤 곳은 막혀있고 어떤 곳은 뚫려있다. 미궁이라는 장소는 불규칙적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이 가정하는 무의식과 매우 닮았다. 그 다음 둘째, 미노타우로스는 정기적으로 공물을 먹이로 바쳐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다. 먹이를 끊으면 죽어버리거나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미궁을 뛰쳐나와 말썽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미노타우로스는 타국으로부터 인간 제물을 받아 제공하는데 그러면 또 얼마간은 적당히 미궁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적당한 먹잇감으로 해소해줘야 관리할 수 있고 방치해두면 위험하다는 점도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 영역 속의 금기시된 욕구와 유사하다. 요컨대,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괴물이며 인간을 대표하는 미노스는 그런 욕망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어 정기적으로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리물을 던져줌으로써 최대한 안전한 방식으로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키워드
무의식, 미노타우로스, 욕망, 의식, 정신분석학, 테세우스, 트라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