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희랍에서는 '에로스'로 불리는 사랑과 '필리아'로 불리는 사랑이 서로 달랐다. 에로스가 성적인 의미의 사랑이라면, 필리아는 좀 더 순수한 의미의 애정이다. 이 필리아적 애정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필두로 해서 친구들 간의 사랑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 그래서 필리아는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애정'으로 불리며 그 외에도 '친애'나 '우정' 등의 의미로도 읽힌다. 『뤼시스』의 소크라테스는 필리아의 본질이 무엇인지 뤼시스와 메넥세노스를 상대로 대화를 나눈다. 그는 '필리아란 무엇인가'하는 추상적인 문제에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접근한다. 이 셀묶음은 『뤼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친구의 후보로 검토하는 대상들 중 일부를 곱씹어본다.
소크라테스는 메넥세노스를 상대로 필리아로 엮인 친구 관계가 상호적 관계일 가능성에 이어서 일방적 관계일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그리고 만약 친구 관계가 일방적 관계라면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가 되는 것인지 혹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가 되는 것인지 이어서 검토하지만 두 사람은 위 세 가지 가능성 모두로부터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 두 사람은 논의가 방법상으로도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렁에 빠져 곤란해 하고 소크라테스는 얼굴까지 붉게 상기된 메넥세노스 대신, 이번에는 뤼시스를 상대로 비슷한 자들끼리 친구가 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고전본문
“우리는 시인들을 따라 계속 나아가야 할 것 같네. 이들은 지혜의 아버지요 지도자니까. 그러니 그들이 친구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로 밝혀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사소한 것이 아닐세. 그들에 의하면 신 자신은 그들을 서로에게 이끌어 친구로 만든다고 하지. 나는 그들이 이런 식으로 노래했던 것 같네.
신은 비슷한 자를 비슷한 자에게 이끈다
“이들은 맞는 말을 하는 것인가?”
“아마도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절반만.” 내가 말했네. “맞을 수도 있고 어쩌면 사실 전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나쁜 사람은 자기처럼 나쁜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더 적대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우리에겐 보이네. 해를 입히거든. 그리고 해를 입히는 사람들과 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서로 친구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네. 그렇지 않나?
“불가능하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그 말의 절반은 사실이 아닐 것이네. 나쁜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자들이라면 말이야.“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시인들의 말이 훌륭한(좋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하고 친구인 걸로 보이는 반면, 나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바로 그들에 있어서 결코 자기들끼리도 비슷하지 않고 자기들이 자기들에게 그렇지도 못하며 오히려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는 걸로 보이네.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와 비슷하지 않고 어긋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슷해지거나 그래서 친구가 되는 일이 거의 없을 거야. 자네도 그렇다고 생각되는가?”
“제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이렇게 보이네, 친구여. 그들이 암시하는 바는 자기와 비슷한 자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훌륭한(좋은) 사람은 오직 훌륭한 사람에게만 진정한 친구이고, 나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 어느 쪽에도 참된 사랑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야. 자네도 동의가 되는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누가 친구들인지 알고 있는 것이로군. 저 이야기가 우리의 친구들은 다름 아닌 훌륭한 자들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니 말일세.”
“저 역시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네.
“나도 동의하네.” 내가 말했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제우스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게 뭔지 알아보세.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비슷한 만큼 친구가 되고, 그러한 자는 그러한 자에게 유익한가? 무엇보다도, 이걸 보게. 비슷한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비슷한 그 어떤 것이든 그것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또 어떤 해악을 가할 수 있는가? 비슷한 것에게는 이익이나 해악을 가할 수 있으면서 스스로에게는 그럴 수 없는가? 혹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겪을 수 있는 것을 비슷한 다른 것에 의해서는 겪을 수 없는가? 그런 것들이 서로 조력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럴 수 있을까?”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2) 비슷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이 집단을 형성하는 데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3) 비슷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이 집단을 형성하는 분위기가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학교는 그에 대해 어떤 대응을 취해야 할까?
해설읽기
친구는 소중한 존재다.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친구로 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 쌓이면 그런 친구들로부터 어떤 공통점이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내 주변의 친구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기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상대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친구들이다. 이런 점을 보면 유유상종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직업은커녕 업종조차 겹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전공도 제각각이다. 사람은 자기와 다른 매력에 끌린다고도 하는데 그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며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걸까? 누군가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며, 또 다른 이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곤 한다. 이 두 가지 사고방식 중 어느 쪽이 사실에 더 가까울까? 일반화하기 어려운 이 문제의 결론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든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뤼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친구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뤼시스 및 메넥세노스와 더불어 대화를 나눈다. 이를 위하여 그는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하여 친구가 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앞서 메넥세노스를 상대로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을 모두 기각한 소크라테스는 이제 뤼시스와 함께 ‘비슷한 자’와 ‘비슷하지 않은 자’가 친구일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해보려 한다. 즉,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과 ‘비슷하지 않은 자가 비슷하지 않은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이 그것들이다. 먼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전자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은 일종의 유유상종설이다. 어떤 이와 비슷한 자가 그에게 친구가 되는 것일까. ‘신은 언제나 비슷한 자를 비슷한 자에게 이끈다’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7권의 인용문은 그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고대 희랍에서 시인들은 대중들의 교육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호메로스는 그러한 시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인 중의 시인이니 위 시행은 유유상종설에 꽤 큰 권위를 보태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그렇기에 희망에 차서 타진하기 시작한 유유상종설이겠지만, 속된 말로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일부 맞는 부분이 있긴 해도 친구관계 전체에 걸쳐 단언할 수 있는 규칙은 아니라는 점이 금새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압축적으로 정리해보자.
유유상종설 비판 I : 누구도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을 훌륭한 자와 나쁜 자 그리고 훌륭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중간적인 자로 분류하고 친구 관계를 그들 사이의 관계로 환원시켜 설명하자면, 유유상종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은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 대해 집중된다.
훌륭한 자
훌륭한 자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
나쁜 자
나쁜 자
유유상종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응? 잠깐만. 그건 말도 안 된다. 나쁜 사람이 왜 나쁜가? 교제하는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나쁘다. 그러므로 해악을 끼치는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다른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해악을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누가 해악을 끼치는 자와 친구가 되려고 할까? 해악을 끼치는 자와 해악을 당하는 자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당한 귀결을 불러온 최초의 가정인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도 참일 수 없다. 굳이 복잡한 논증에 호소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친구를 사귀려는 악당의 입장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당이라고 해도 우리 스스로 상대방을 인간쓰레기에 나쁜 놈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친구로 여기기는 어렵다. 남들이 모두 욕해도, 그래도 의리가 있다든가, 성격은 나빠도 이익 배분은 확실하다든가 등 적어도 내가 보기에 어떤 ‘좋은 점’이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다 (가정_유유상종설)
훌륭한 자는 훌륭한 자에게 친구다 (1)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면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3 조건증명)
나쁜 자는 나쁜 자의 친구가 아니다
5-1. 친구는 교제의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니다
5-2. 나쁜 자는 교제의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자다
5-3. 나쁜 자는 친구가 아니다 (5-1. 5-2)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아니다 (4, 5 후건부정)
유유상종설 비판 II : 나쁜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하나 더 제시한다. 그것은 어떤 이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는 세상 그 누구와도 비슷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면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나쁜 사람은 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비슷할 수 없다. 나쁜 사람은 너무나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런 사람은 일관성이 없다. 화장실 갈 때의 마음이 다르고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 아침에 했던 말과 저녁에 하는 말이 같지 않다. 어제의 그 사람은 오늘의 그 사람과 몸은 같아도 의식과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내일의 그 사람은 또 오늘과 다를 것이다. 이처럼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나쁜 사람은 다른 나쁜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도 더 이상 절대적일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면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3 조건증명)
나쁜 자는 나쁜 자의 친구가 아니다
2-1. 친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다
2-2.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슷한 사람이 아니다
2-3.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2-4. 나쁜 자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이다
2-5. 나쁜 자는 친구가 아니다 (5-1. 5-2)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아니다 (4, 5 후건부정)
지금까지 살펴 본 유유상종설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은 올바른 것일 수 없는데, 그것은 첫째, 나쁜 자는 해악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자발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 그는 너무나 변덕스러운 나머지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일관성도 지키지 못해 그 누구와도 비슷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이처럼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만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다. 애초에 나쁜 자가 아니라 훌륭한 자가 훌륭한 자에게 친구가 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검토가 반쪽짜리가 되지 않도록 남아있는 유력한 후보인 훌륭한 자가 훌륭한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로 한다.
키워드
뤼시스, 사랑, 소크라테스, 애정, 에로스, 우정, 친애, 플라톤, 필리아
전후맥락
소크라테스는 메넥세노스를 상대로 필리아로 엮인 친구 관계가 상호적 관계일 가능성에 이어서 일방적 관계일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그리고 만약 친구 관계가 일방적 관계라면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가 되는 것인지 혹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가 되는 것인지 이어서 검토하지만 두 사람은 위 세 가지 가능성 모두로부터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 두 사람은 논의가 방법상으로도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렁에 빠져 곤란해 하고 소크라테스는 얼굴까지 붉게 상기된 메넥세노스 대신, 이번에는 뤼시스를 상대로 비슷한 자들끼리 친구가 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고전본문
“우리는 시인들을 따라 계속 나아가야 할 것 같네. 이들은 지혜의 아버지요 지도자니까. 그러니 그들이 친구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로 밝혀 보고 있는 것은 분명 사소한 것이 아닐세. 그들에 의하면 신 자신은 그들을 서로에게 이끌어 친구로 만든다고 하지. 나는 그들이 이런 식으로 노래했던 것 같네.
신은 비슷한 자를 비슷한 자에게 이끈다
“이들은 맞는 말을 하는 것인가?”
“아마도 맞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절반만.” 내가 말했네. “맞을 수도 있고 어쩌면 사실 전부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나쁜 사람은 자기처럼 나쁜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더 적대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우리에겐 보이네. 해를 입히거든. 그리고 해를 입히는 사람들과 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서로 친구가 된다는 건 불가능하네. 그렇지 않나?
“불가능하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그 말의 절반은 사실이 아닐 것이네. 나쁜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자들이라면 말이야.“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시인들의 말이 훌륭한(좋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하고 친구인 걸로 보이는 반면, 나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바로 그들에 있어서 결코 자기들끼리도 비슷하지 않고 자기들이 자기들에게 그렇지도 못하며 오히려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는 걸로 보이네.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와 비슷하지 않고 어긋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슷해지거나 그래서 친구가 되는 일이 거의 없을 거야. 자네도 그렇다고 생각되는가?”
“제게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이렇게 보이네, 친구여. 그들이 암시하는 바는 자기와 비슷한 자가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훌륭한(좋은) 사람은 오직 훌륭한 사람에게만 진정한 친구이고, 나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 어느 쪽에도 참된 사랑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야. 자네도 동의가 되는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누가 친구들인지 알고 있는 것이로군. 저 이야기가 우리의 친구들은 다름 아닌 훌륭한 자들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니 말일세.”
“저 역시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네.
“나도 동의하네.” 내가 말했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 제우스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게 뭔지 알아보세.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비슷한 만큼 친구가 되고, 그러한 자는 그러한 자에게 유익한가? 무엇보다도, 이걸 보게. 비슷한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비슷한 그 어떤 것이든 그것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또 어떤 해악을 가할 수 있는가? 비슷한 것에게는 이익이나 해악을 가할 수 있으면서 스스로에게는 그럴 수 없는가? 혹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겪을 수 있는 것을 비슷한 다른 것에 의해서는 겪을 수 없는가? 그런 것들이 서로 조력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서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럴 수 있을까?”
토론하기
(1) 소크라테스는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2) 비슷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이 집단을 형성하는 데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3) 비슷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이 집단을 형성하는 분위기가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학교는 그에 대해 어떤 대응을 취해야 할까?
해설읽기
친구는 소중한 존재다.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친구로 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 쌓이면 그런 친구들로부터 어떤 공통점이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내 주변의 친구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기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상대 입장을 먼저 헤아리는 친구들이다. 이런 점을 보면 유유상종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직업은커녕 업종조차 겹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전공도 제각각이다. 사람은 자기와 다른 매력에 끌린다고도 하는데 그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며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걸까? 누군가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며, 또 다른 이는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곤 한다. 이 두 가지 사고방식 중 어느 쪽이 사실에 더 가까울까? 일반화하기 어려운 이 문제의 결론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든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뤼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친구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뤼시스 및 메넥세노스와 더불어 대화를 나눈다. 이를 위하여 그는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하여 친구가 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앞서 메넥세노스를 상대로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을 모두 기각한 소크라테스는 이제 뤼시스와 함께 ‘비슷한 자’와 ‘비슷하지 않은 자’가 친구일 가능성을 새롭게 확인해보려 한다. 즉,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과 ‘비슷하지 않은 자가 비슷하지 않은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이 그것들이다. 먼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전자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은 일종의 유유상종설이다. 어떤 이와 비슷한 자가 그에게 친구가 되는 것일까. ‘신은 언제나 비슷한 자를 비슷한 자에게 이끈다’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7권의 인용문은 그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고대 희랍에서 시인들은 대중들의 교육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호메로스는 그러한 시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인 중의 시인이니 위 시행은 유유상종설에 꽤 큰 권위를 보태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그렇기에 희망에 차서 타진하기 시작한 유유상종설이겠지만, 속된 말로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일부 맞는 부분이 있긴 해도 친구관계 전체에 걸쳐 단언할 수 있는 규칙은 아니라는 점이 금새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압축적으로 정리해보자.
유유상종설 비판 I : 누구도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을 훌륭한 자와 나쁜 자 그리고 훌륭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중간적인 자로 분류하고 친구 관계를 그들 사이의 관계로 환원시켜 설명하자면, 유유상종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은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 대해 집중된다.
훌륭한 자
훌륭한 자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
나쁜 자
나쁜 자
유유상종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응? 잠깐만. 그건 말도 안 된다. 나쁜 사람이 왜 나쁜가? 교제하는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나쁘다. 그러므로 해악을 끼치는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다른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해악을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누가 해악을 끼치는 자와 친구가 되려고 할까? 해악을 끼치는 자와 해악을 당하는 자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당한 귀결을 불러온 최초의 가정인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도 참일 수 없다. 굳이 복잡한 논증에 호소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친구를 사귀려는 악당의 입장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당이라고 해도 우리 스스로 상대방을 인간쓰레기에 나쁜 놈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친구로 여기기는 어렵다. 남들이 모두 욕해도, 그래도 의리가 있다든가, 성격은 나빠도 이익 배분은 확실하다든가 등 적어도 내가 보기에 어떤 ‘좋은 점’이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다 (가정_유유상종설)
훌륭한 자는 훌륭한 자에게 친구다 (1)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면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3 조건증명)
나쁜 자는 나쁜 자의 친구가 아니다
5-1. 친구는 교제의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니다
5-2. 나쁜 자는 교제의 대상에게 해를 끼치는 자다
5-3. 나쁜 자는 친구가 아니다 (5-1. 5-2)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아니다 (4, 5 후건부정)
유유상종설 비판 II : 나쁜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하나 더 제시한다. 그것은 어떤 이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는 세상 그 누구와도 비슷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면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 하겠지만, 나쁜 사람은 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비슷할 수 없다. 나쁜 사람은 너무나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런 사람은 일관성이 없다. 화장실 갈 때의 마음이 다르고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 아침에 했던 말과 저녁에 하는 말이 같지 않다. 어제의 그 사람은 오늘의 그 사람과 몸은 같아도 의식과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내일의 그 사람은 또 오늘과 다를 것이다. 이처럼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나쁜 사람은 다른 나쁜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도 더 이상 절대적일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면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다 (1~3 조건증명)
나쁜 자는 나쁜 자의 친구가 아니다
2-1. 친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다
2-2.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슷한 사람이 아니다
2-3.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2-4. 나쁜 자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사람이다
2-5. 나쁜 자는 친구가 아니다 (5-1. 5-2)
비슷한 자는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아니다 (4, 5 후건부정)
지금까지 살펴 본 유유상종설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라는 주장은 올바른 것일 수 없는데, 그것은 첫째, 나쁜 자는 해악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자발적으로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 그는 너무나 변덕스러운 나머지 심지어 자기 자신과의 일관성도 지키지 못해 그 누구와도 비슷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자가 비슷한 자에게 친구가 된다’는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이처럼 나쁜 자와 나쁜 자의 관계에만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다. 애초에 나쁜 자가 아니라 훌륭한 자가 훌륭한 자에게 친구가 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검토가 반쪽짜리가 되지 않도록 남아있는 유력한 후보인 훌륭한 자가 훌륭한 자에게 친구일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