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올란도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귀공자로 태어나 러시아 공주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영국대사로 부임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올란도는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나 자신의 몸이 여성으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여자의 몸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올란도는 이제 여성 귀족으로 살아가는데, 아래의 인용문은 18세기 말 여성으로 변모한 올란도가 19세기를 맞아 ‘결혼 문제’로 곤란에 처한 상황을 ‘결혼 반지’에 초점을 맞춰 패러디하고 있다. 빅토리아 조에 이르러 사람들은 갑자기 결혼 반지에 집착해 결혼 반지를 끼지 않은 사람은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음을 비판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고전본문
“바솔로뮤, 자네 반지를 좀 보여주게,”라고 말하며 그녀[올란도]는 반지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 말을 듣자 바솔로뮤는 마치 악당에게 가슴팍을 얻어맞은 시늉을 했다. 놀라서 한 두발자국 뒤로 물러나 손을 움켜쥐고는, 매우 우아하게 획 뒤로 감췄다. “안 됩니다”라고 그녀는 결의에 차서 위엄 있게 말했다. 마님께서 원하시면 보여드릴 수 있지만, 결혼반지를 빼는 일이라면 대주교님도, 교황님도, 왕좌에 앉아 계신 빅토리아 여왕께서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편 토머스가 25년하고 6개월 3주 전에 그녀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주었고, 그동안 쭉 끼고 잤고, 끼고 일했고, 끼고 세탁을 했고, 끼고 기도했으며, 낀 채 무덤에 묻히겠다고 말했노라고 했다. 실제로 올란도가 알아들은 바솔로뮤의 말뜻은—흥분된 그녀의 목소리는 자주 끊겼는데—자기가 천사들과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이 반지의 광택 덕분이고, 단 한 순간이라도 이 반지를 빼놓는다면 그 광택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올란도는 창가에 서서 비둘기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군.” 그녀는 그 복잡함에 놀랐다.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금반지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녁식사 초대에 갔다. 결혼 반지 투성이였다. 교회에 갔다. 사방이 결혼 반지였다.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가는 것, 두툼한 것, 장식 없는 것, 매끈한 금으로 된 것, 또는 합금으로 된 반지들이 모두의 손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 도시 사람들의 새로운 습관이 보였다. 예전에는 소년이 소녀와 산사나무 울타리 아래서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올란도는 예전에 이런 여러 쌍의 남녀들을 채찍 끝으로 찰싹 때리고는 웃으며 지나가곤 했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변했다. 남녀 쌍쌍이 찰싹 들러붙은 채, 길 한가운데를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여자의 오른팔은 어김없이 남자의 왼팔을 끼고 있었고, 남자의 손가락은 여자의 손가락과 깍지를 꼭 끼고 있었다. 이따금 말이 코를 그들 사이에 들이밀어야 비로소 움직였는데, 그럴 때도 한 몸이 되어 길 한쪽으로 힘겹게 움직여 갔다. 올란도는 인류에 관한 새로운 교리가 발견된 것이라고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어쩌다가 인류는 남녀 한 쌍 씩 달라붙어 버렸는데, 누가 언제 그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그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자연’은 아닌 것 같았다. 비둘기나 토끼나 사슴 사냥개를 보아도, 적어도 엘리자베스 조 이래로 ‘자연’이 종래의 관습을 바꾸었다 거나 수정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동물들 사이에는 찰싹 붙어 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여왕이나 멜번른 경(빅토리아 여왕 치세에 첫 번째 수상)이 그렇게 한 것일까? 결혼이라는 위대한 발견은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여왕은 개를 좋아하며, 멜버른 경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던 생각이 났다. 이것은 낯설고 혐오스러웠다. 사실 이처럼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은 그녀의 품위와 위생관념에 비추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그 괴로운 손가락이 따끔거리고 쑤셔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 마침내 가장 필사적인 치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시대정신에 무조건 항복하고 남편을 하나 얻는 것이었다.
토론하기
(1) 결혼반지는 언제부터 결혼의 상징이었을까? 결혼한 사람이 반지를 끼는 관습은 한국과 서양이 좀 다른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 보자.
(2) 빅토리아 조 영국에서는 결혼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결혼이 그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3) 글에 등장하는 올란도의 하녀 바솔로뮤는 결혼반지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거의 종교적 성물을 모시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녀는 결혼반지가 자신의 결혼을 상징하는 것이고 결혼은 종교처럼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 여긴다. 요즘은 결혼한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이혼을 하기도 한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그 사랑은 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 사랑이 변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반지로 한번 묶이면 변하던 변치 않던 영원히 서로에게 묶여 있어야 할까? 사랑과 구속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해설읽기
원래 남성, 그것도 귀족 남성으로 태어났던 올란도는 온갖 특권과 자유를 누렸다. 그런데 그가 여성으로 변신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일단 옷으로 몸을 잘 가려야 했고, 혼자서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파티와 모임에서 정치나 종교 예술 등을 주제로한 흥미로운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19세기가 되자 남편이 없는 여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정도 과장된 묘사지만 거리는 온통 결혼해서 짝을 이룬 남녀들로 가득했고, 그들을 서로 찰싹 붙어있었다. 그건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 울프의 시각이다. 남녀가 사랑하고 짝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항상 찰싹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면 서로를 구속하게 된다. 결혼이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특히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제도라면,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19세기 빅토리아 조의 영국은 특히나 가정을 신성하게 여기고 여성의 사명을 가정의 천사가 되어 남편과 자녀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자신도 9명의 자녀를 두었고, 남편인 알버트 공이 죽은 후 남은 일생동안 검은 상복을 입고 생활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울프는 올란도의 시선을 빌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올란도가 18세기 말에 여성으로 변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문학에서 여성이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소설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소설은 시나 드라마에 비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여성의 삶의 주 무대는 가정이었고, 결혼은 여성의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라는 전문활동은 “결혼”과 가정에서의 의무라는 여성의 전통적 역할과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소설은 400여년의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탄생하는 소설 속 여성 시인이 오래도록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졌던 결혼과 가정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묘사하고 있다.
여성이 작가가 되려 할 때, 또는 시인이 되려 할 때, 오랜 세월 여성의 천직으로 여겨져 온 가정과 결혼이 문제가 된다.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듯이 작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자유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특히 가정과 결혼이 여성의 가장 고귀한 사명이라 칭송했던 19세기의 “시대 정신”은 여성 작가들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은 삶에서 결혼 이외의 선택지가 거의 없었던 반면, 올란도가 시인으로 등장하는 20세기는 산업화와 세계대전을 겪으며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가정에 머물던 전통적 여성상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격변의 시대였다. 엘리자베스 시대에서 20세기까지를 변화하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작 정신을 요구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여성의 삶의 가장 핵심이라 여겨져 온 결혼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소설 속 올란도는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가짜 결혼 반지를 사서 끼다가, 결국은 시대정신에 맞춰 남편을 구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올란도는 마침내 남편을 구하는데 성공하는데 …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키워드
결혼 결혼반지, 버지니아 울프, 빅토리아 시대, 여성, 여성의 예속
전후맥락
올란도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귀공자로 태어나 러시아 공주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영국대사로 부임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올란도는 깊은 잠에 들었다 깨어나 자신의 몸이 여성으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여자의 몸으로 영국으로 돌아온 올란도는 이제 여성 귀족으로 살아가는데, 아래의 인용문은 18세기 말 여성으로 변모한 올란도가 19세기를 맞아 ‘결혼 문제’로 곤란에 처한 상황을 ‘결혼 반지’에 초점을 맞춰 패러디하고 있다. 빅토리아 조에 이르러 사람들은 갑자기 결혼 반지에 집착해 결혼 반지를 끼지 않은 사람은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음을 비판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고전본문
“바솔로뮤, 자네 반지를 좀 보여주게,”라고 말하며 그녀[올란도]는 반지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 말을 듣자 바솔로뮤는 마치 악당에게 가슴팍을 얻어맞은 시늉을 했다. 놀라서 한 두발자국 뒤로 물러나 손을 움켜쥐고는, 매우 우아하게 획 뒤로 감췄다. “안 됩니다”라고 그녀는 결의에 차서 위엄 있게 말했다. 마님께서 원하시면 보여드릴 수 있지만, 결혼반지를 빼는 일이라면 대주교님도, 교황님도, 왕좌에 앉아 계신 빅토리아 여왕께서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편 토머스가 25년하고 6개월 3주 전에 그녀의 손가락에 이 반지를 끼워주었고, 그동안 쭉 끼고 잤고, 끼고 일했고, 끼고 세탁을 했고, 끼고 기도했으며, 낀 채 무덤에 묻히겠다고 말했노라고 했다. 실제로 올란도가 알아들은 바솔로뮤의 말뜻은—흥분된 그녀의 목소리는 자주 끊겼는데—자기가 천사들과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이 반지의 광택 덕분이고, 단 한 순간이라도 이 반지를 빼놓는다면 그 광택은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올란도는 창가에 서서 비둘기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군.” 그녀는 그 복잡함에 놀랐다.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금반지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저녁식사 초대에 갔다. 결혼 반지 투성이였다. 교회에 갔다. 사방이 결혼 반지였다.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가는 것, 두툼한 것, 장식 없는 것, 매끈한 금으로 된 것, 또는 합금으로 된 반지들이 모두의 손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녀의 눈에 도시 사람들의 새로운 습관이 보였다. 예전에는 소년이 소녀와 산사나무 울타리 아래서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올란도는 예전에 이런 여러 쌍의 남녀들을 채찍 끝으로 찰싹 때리고는 웃으며 지나가곤 했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변했다. 남녀 쌍쌍이 찰싹 들러붙은 채, 길 한가운데를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여자의 오른팔은 어김없이 남자의 왼팔을 끼고 있었고, 남자의 손가락은 여자의 손가락과 깍지를 꼭 끼고 있었다. 이따금 말이 코를 그들 사이에 들이밀어야 비로소 움직였는데, 그럴 때도 한 몸이 되어 길 한쪽으로 힘겹게 움직여 갔다. 올란도는 인류에 관한 새로운 교리가 발견된 것이라고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어쩌다가 인류는 남녀 한 쌍 씩 달라붙어 버렸는데, 누가 언제 그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그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자연’은 아닌 것 같았다. 비둘기나 토끼나 사슴 사냥개를 보아도, 적어도 엘리자베스 조 이래로 ‘자연’이 종래의 관습을 바꾸었다 거나 수정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동물들 사이에는 찰싹 붙어 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여왕이나 멜번른 경(빅토리아 여왕 치세에 첫 번째 수상)이 그렇게 한 것일까? 결혼이라는 위대한 발견은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나 여왕은 개를 좋아하며, 멜버른 경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던 생각이 났다. 이것은 낯설고 혐오스러웠다. 사실 이처럼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은 그녀의 품위와 위생관념에 비추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그 괴로운 손가락이 따끔거리고 쑤셔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 마침내 가장 필사적인 치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시대정신에 무조건 항복하고 남편을 하나 얻는 것이었다.
토론하기
(1) 결혼반지는 언제부터 결혼의 상징이었을까? 결혼한 사람이 반지를 끼는 관습은 한국과 서양이 좀 다른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 보자.
(2) 빅토리아 조 영국에서는 결혼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결혼이 그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3) 글에 등장하는 올란도의 하녀 바솔로뮤는 결혼반지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거의 종교적 성물을 모시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녀는 결혼반지가 자신의 결혼을 상징하는 것이고 결혼은 종교처럼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 여긴다. 요즘은 결혼한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이혼을 하기도 한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그 사랑은 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 사랑이 변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반지로 한번 묶이면 변하던 변치 않던 영원히 서로에게 묶여 있어야 할까? 사랑과 구속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해설읽기
원래 남성, 그것도 귀족 남성으로 태어났던 올란도는 온갖 특권과 자유를 누렸다. 그런데 그가 여성으로 변신하자 상황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일단 옷으로 몸을 잘 가려야 했고, 혼자서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파티와 모임에서 정치나 종교 예술 등을 주제로한 흥미로운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19세기가 되자 남편이 없는 여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정도 과장된 묘사지만 거리는 온통 결혼해서 짝을 이룬 남녀들로 가득했고, 그들을 서로 찰싹 붙어있었다. 그건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이 울프의 시각이다. 남녀가 사랑하고 짝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항상 찰싹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려면 서로를 구속하게 된다. 결혼이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특히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제도라면,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19세기 빅토리아 조의 영국은 특히나 가정을 신성하게 여기고 여성의 사명을 가정의 천사가 되어 남편과 자녀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자신도 9명의 자녀를 두었고, 남편인 알버트 공이 죽은 후 남은 일생동안 검은 상복을 입고 생활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울프는 올란도의 시선을 빌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올란도가 18세기 말에 여성으로 변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문학에서 여성이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소설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소설은 시나 드라마에 비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여성의 삶의 주 무대는 가정이었고, 결혼은 여성의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라는 전문활동은 “결혼”과 가정에서의 의무라는 여성의 전통적 역할과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소설은 400여년의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탄생하는 소설 속 여성 시인이 오래도록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졌던 결혼과 가정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에 초점을 맞춰 묘사하고 있다.
여성이 작가가 되려 할 때, 또는 시인이 되려 할 때, 오랜 세월 여성의 천직으로 여겨져 온 가정과 결혼이 문제가 된다.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듯이 작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자유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특히 가정과 결혼이 여성의 가장 고귀한 사명이라 칭송했던 19세기의 “시대 정신”은 여성 작가들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엘리자베스 시대를 살았던 여인들은 삶에서 결혼 이외의 선택지가 거의 없었던 반면, 올란도가 시인으로 등장하는 20세기는 산업화와 세계대전을 겪으며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가정에 머물던 전통적 여성상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격변의 시대였다. 엘리자베스 시대에서 20세기까지를 변화하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가장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작 정신을 요구하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여성의 삶의 가장 핵심이라 여겨져 온 결혼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소설 속 올란도는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가짜 결혼 반지를 사서 끼다가, 결국은 시대정신에 맞춰 남편을 구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올란도는 마침내 남편을 구하는데 성공하는데 …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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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결혼반지, 버지니아 울프, 빅토리아 시대, 여성, 여성의 예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