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결혼식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받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다양해서 무조건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고, 반면에 결혼은 개인에 대한 구속이라 생각해 독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해도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기 어렵기도 하고, 때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결혼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 셀묶음은 이런 여러가지 문제를 다각적으로 짚어보는데 목적이 있다. 왜 어른들은 자꾸 결혼하라 하는지?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것이 좋은 결정인지? 사랑하는 상대를 구속하고 소유하려는 비틀어진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 등등을 살펴볼 것이다.
아들없이 딸만 다섯인 베넷 씨 가족의 재산은 베넷 씨가 사망하면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되도록 되어 있다. 영국 특유의 ‘한정 상속’ 재산인 것이다. 그래서 베넷 씨 집안에서는 한 명의 딸이라도 부유한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하면, 베넷 씨가 죽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가 생기는 것이라 딸들의 결혼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혼이 단지 개인적인 사랑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딸 제인은 빙리와 순조롭게 결혼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 베넷 씨가 죽은 후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가장 가까운 친척 콜린즈가 등장한다. 콜린즈는 최근에 목사가 된 인물로 베넷 가의 딸 중 한 사람과 결혼해 상속으로 인해 빚어질 곤란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나섰다. 베넷 씨 집안에서는 반가워할 제안이었다. 문제는 콜린즈라는 인물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외모는 물론이고 태도나 성격이 촌스럽고 아첨꾼에 잘난 척까지 한마디로 누구도 쉽게 좋아하기 어려운 인물로 묘사된다. 잘생기고 돈 많고 우아한 귀족 다아시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 하겠다. 콜린즈는 엘리자베스를 선택해 구혼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죽으면 죽었지 콜린즈와 결혼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화가 난 콜린즈를 달래기 위해 베넷 씨 가족은 식사 초대에 함께 가는 등 이웃에 사는 루커스씨 집 식구들과 어울린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지 사흘 만에, 콜린즈는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럿 루커스에게 청혼하고 약혼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샬럿 루커스가 어떻게 콜린즈와 약혼하는지에 관한 상황설명과 충격을 받은 엘리자베스와 샬럿의 대화이다.
고전본문
베넷 가 사람들은 루커스 씨네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었는데, 그 때도 루커스 양은 내내 친절하게 콜린즈 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기회를 보아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저 사람이 아주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도움이 되어 기쁘고 자신의 시간을 좀 희생한 보람이 있다고 샬럿이 친구에게 말했다. 아주 상냥한 말씨로 말이다. 그러나 샬럿의 친절에는 엘리자베스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목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콜린즈 씨의 시선을 자기에게 끌어들여 다시 엘리자베스에게 되돌아 가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것이 루커스 양의 계획이었다. 상황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들이 저녁에 헤어질 무렵에는 콜린즈 씨가 그렇게 빨리 하트퍼드셔를 떠날 사정만 아니었다면 샬럿이 성공을 확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점에서 루커스 양은 콜린즈 씨의 정열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콜린즈가 다음날 아침 롱본 저택을 살짝 빠져나와 루커스 저택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
뒤이어 루커스 경과 그의 부인은 둘의 결혼에 동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얼른 기쁘게 동의해 주었다 콜린즈 씨의 현재의 상황만 보아도, 챙겨줄 재산이 거의 없는 딸에게는 훌륭한 혼처였다. 게다가 그는 장차 부유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루커스 부인은 전에 없던 관심을 보이며 베넷 씨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세어보기 시작했다. […] 남자 형제들은 샬럿이 노처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상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샬럿 자신은 꽤 담담한 편이었다. 그녀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콜린즈 씨는 분명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함께 있기에 기분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와 같이 사는 것은 지루하고 그가 말하는 그녀에 대한 애정도 근거 없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더라도 그는 남편이 되어 줄 것 아닌가. 남자나 혼인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혼한다는 것 그것만이 늘 샬럿의 목표였다. 그것은 교육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처녀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 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도 결혼은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에 틀림없었다. 이 예방책을 이제야 손에 넣은 것이다. 결국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한 번도 예뻤던 적이 없지만 미인이 누리는 행운을 마음껏 맛보았다. 이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엘리자베스 베넷이 경악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우정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놀랄 것이고 그녀를 비난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마음에 상처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자신이 직접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콜린즈 씨와 약혼했다고? 세상에, 샬럿…. 이건 말도 안돼!”
대화하는 동안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루커스 양은 이런 직접적인 비난에 한 순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을 에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여서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고 침착하게 말했다.
“왜 놀라, 엘리자베스, 콜린즈 씨가 네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여자의 호감을 살 수 없을 거라 여기는 거야?
엘리자베스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애써 이 혼담이 참 기쁜 일이며 샬럿에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빈다고 깔끔한 태도로 말했다.
“네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하고 샬럿이 말했다. “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해, 무척 놀랐을 거야. 콜린즈 씨가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게 바로 엊그제였으니까.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너도 내가 잘했다고 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야.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어.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일 뿐이야. 콜리즈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도 다른 어떤 커플 못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엘리자베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다른 가족들과 어울렸다. 샬럿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비로소 샬럿의 말을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콜린즈 씨가 사흘 동안에 두 사람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샬럿이 실제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에 대해 샬럿이 자신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은 엘리자베스도 항상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샬럿이 실제로 세속적인 이익을 앞세워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콜린즈 씨의 아내가 된 샬럿, 진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샬럿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마음이 더 무거웠다.
토론하기
(1) 샬럿 루커스가 콜린즈 씨와 결혼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는 맘에 들지 않는 남자하고라도 결혼하는 것이 가난하게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자기 능력으로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결혼에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 외에 남녀 모두 배우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집안, 재산, 직업 등)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해 보자.
(2) 엘리자베스는 집안의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콜린즈 씨의 청혼을 거절한다. 엘리자베스의 결정은 옳은 것일까? 나중에 운 좋게도 다아시 씨와 결혼하게 되어 사랑과 돈과 지위를 한꺼번에 다 얻게 되지만, 현실에서 그런 행운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만일 딸들 중 아무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베넷 씨가 죽었다면, 가족들은 문자 그대로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텐데 말이다. 여러분이 엘리자베스라면 어떻게 행동할 지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엘리자베스는 사랑과 애정을 바탕으로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반면, 샬럿은 그녀의 미래를 보장하고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현실적인 결혼을 추구한다. 샬럿이 (엘리자베스에게 거절당하고 사흘 만에 자신에게 청혼한) 콜린즈씨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현실적인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다. 그녀가 콜린즈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와의 결혼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경제적 안정보다 상호 존중과 애정, 공유된 가치에 기반한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낭만적인 결혼관을 대표한다.
낭만적인 결혼관의 등장은 중산층의 등장과 소설의 발생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정리하자면 18~19세기 중산층이 사회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개인주의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사랑’이라는 개인의 정서적 욕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결혼이 주로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요시한 가족 간의 합의였던 반면에, 새시대의 결혼은 점점 더 사랑과 애정에 기초한 개인적인 선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개인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과거에 결혼을 지배했던 전통적인 가부장적 규범은 도전에 직면했다.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얻으면서, 그들은 소설 속 엘리자베스처럼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설 속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독신으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가족의 미래를 보장해 줄 콜린즈씨의 청혼을 거절하고, 부유한 귀족인 다아시의 청혼도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그를 사랑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한 진정한 마음을 발견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엘리자베스의 행동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이기적이고 무책임할 뿐 아니라 분별없는 것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와 이웃에 사는 친구 샬럿이 결혼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은 전통적인 결혼관과 새로이 등장한 사랑에 기반한 결혼관의 대비를 잘 보여준다.
키워드
결혼, 결혼 조건, 남녀간의 사랑, 신분 상승, 제인 오스틴
전후맥락
아들없이 딸만 다섯인 베넷 씨 가족의 재산은 베넷 씨가 사망하면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상속되도록 되어 있다. 영국 특유의 ‘한정 상속’ 재산인 것이다. 그래서 베넷 씨 집안에서는 한 명의 딸이라도 부유한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하면, 베넷 씨가 죽더라도 나머지 가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가 생기는 것이라 딸들의 결혼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혼이 단지 개인적인 사랑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딸 제인은 빙리와 순조롭게 결혼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 베넷 씨가 죽은 후 집안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가장 가까운 친척 콜린즈가 등장한다. 콜린즈는 최근에 목사가 된 인물로 베넷 가의 딸 중 한 사람과 결혼해 상속으로 인해 빚어질 곤란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겠다고 나섰다. 베넷 씨 집안에서는 반가워할 제안이었다. 문제는 콜린즈라는 인물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외모는 물론이고 태도나 성격이 촌스럽고 아첨꾼에 잘난 척까지 한마디로 누구도 쉽게 좋아하기 어려운 인물로 묘사된다. 잘생기고 돈 많고 우아한 귀족 다아시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 하겠다. 콜린즈는 엘리자베스를 선택해 구혼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죽으면 죽었지 콜린즈와 결혼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화가 난 콜린즈를 달래기 위해 베넷 씨 가족은 식사 초대에 함께 가는 등 이웃에 사는 루커스씨 집 식구들과 어울린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지 사흘 만에, 콜린즈는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럿 루커스에게 청혼하고 약혼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샬럿 루커스가 어떻게 콜린즈와 약혼하는지에 관한 상황설명과 충격을 받은 엘리자베스와 샬럿의 대화이다.
고전본문
베넷 가 사람들은 루커스 씨네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었는데, 그 때도 루커스 양은 내내 친절하게 콜린즈 씨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기회를 보아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저 사람이 아주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도움이 되어 기쁘고 자신의 시간을 좀 희생한 보람이 있다고 샬럿이 친구에게 말했다. 아주 상냥한 말씨로 말이다. 그러나 샬럿의 친절에는 엘리자베스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목적이 있었다. 그녀의 목적은 바로 콜린즈 씨의 시선을 자기에게 끌어들여 다시 엘리자베스에게 되돌아 가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것이 루커스 양의 계획이었다. 상황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들이 저녁에 헤어질 무렵에는 콜린즈 씨가 그렇게 빨리 하트퍼드셔를 떠날 사정만 아니었다면 샬럿이 성공을 확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점에서 루커스 양은 콜린즈 씨의 정열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콜린즈가 다음날 아침 롱본 저택을 살짝 빠져나와 루커스 저택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
뒤이어 루커스 경과 그의 부인은 둘의 결혼에 동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얼른 기쁘게 동의해 주었다 콜린즈 씨의 현재의 상황만 보아도, 챙겨줄 재산이 거의 없는 딸에게는 훌륭한 혼처였다. 게다가 그는 장차 부유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루커스 부인은 전에 없던 관심을 보이며 베넷 씨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세어보기 시작했다. […] 남자 형제들은 샬럿이 노처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상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샬럿 자신은 꽤 담담한 편이었다. 그녀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콜린즈 씨는 분명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함께 있기에 기분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와 같이 사는 것은 지루하고 그가 말하는 그녀에 대한 애정도 근거 없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더라도 그는 남편이 되어 줄 것 아닌가. 남자나 혼인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혼한다는 것 그것만이 늘 샬럿의 목표였다. 그것은 교육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처녀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 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도 결혼은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에 틀림없었다. 이 예방책을 이제야 손에 넣은 것이다. 결국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한 번도 예뻤던 적이 없지만 미인이 누리는 행운을 마음껏 맛보았다. 이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엘리자베스 베넷이 경악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우정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놀랄 것이고 그녀를 비난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마음에 상처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자신이 직접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콜린즈 씨와 약혼했다고? 세상에, 샬럿…. 이건 말도 안돼!”
대화하는 동안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루커스 양은 이런 직접적인 비난에 한 순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을 에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여서 그녀는 곧 평정을 되찾고 침착하게 말했다.
“왜 놀라, 엘리자베스, 콜린즈 씨가 네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여자의 호감을 살 수 없을 거라 여기는 거야?
엘리자베스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애써 이 혼담이 참 기쁜 일이며 샬럿에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빈다고 깔끔한 태도로 말했다.
“네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하고 샬럿이 말했다. “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해, 무척 놀랐을 거야. 콜린즈 씨가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게 바로 엊그제였으니까.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너도 내가 잘했다고 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야.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어.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안락한 가정일 뿐이야. 콜리즈 씨의 성격과 집안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도 다른 어떤 커플 못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엘리자베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다른 가족들과 어울렸다. 샬럿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엘리자베스는 그제야 비로소 샬럿의 말을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콜린즈 씨가 사흘 동안에 두 사람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샬럿이 실제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에 대해 샬럿이 자신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은 엘리자베스도 항상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샬럿이 실제로 세속적인 이익을 앞세워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콜린즈 씨의 아내가 된 샬럿, 진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샬럿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 속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마음이 더 무거웠다.
토론하기
(1) 샬럿 루커스가 콜린즈 씨와 결혼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는 맘에 들지 않는 남자하고라도 결혼하는 것이 가난하게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자기 능력으로 경제적 독립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결혼에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 외에 남녀 모두 배우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집안, 재산, 직업 등)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해 보자.
(2) 엘리자베스는 집안의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콜린즈 씨의 청혼을 거절한다. 엘리자베스의 결정은 옳은 것일까? 나중에 운 좋게도 다아시 씨와 결혼하게 되어 사랑과 돈과 지위를 한꺼번에 다 얻게 되지만, 현실에서 그런 행운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만일 딸들 중 아무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베넷 씨가 죽었다면, 가족들은 문자 그대로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텐데 말이다. 여러분이 엘리자베스라면 어떻게 행동할 지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엘리자베스는 사랑과 애정을 바탕으로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반면, 샬럿은 그녀의 미래를 보장하고 경제적 안정을 제공할 현실적인 결혼을 추구한다. 샬럿이 (엘리자베스에게 거절당하고 사흘 만에 자신에게 청혼한) 콜린즈씨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현실적인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다. 그녀가 콜린즈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와의 결혼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경제적 안정보다 상호 존중과 애정, 공유된 가치에 기반한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낭만적인 결혼관을 대표한다.
낭만적인 결혼관의 등장은 중산층의 등장과 소설의 발생과 같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정리하자면 18~19세기 중산층이 사회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개인주의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사랑’이라는 개인의 정서적 욕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결혼이 주로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요시한 가족 간의 합의였던 반면에, 새시대의 결혼은 점점 더 사랑과 애정에 기초한 개인적인 선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개인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과거에 결혼을 지배했던 전통적인 가부장적 규범은 도전에 직면했다.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얻으면서, 그들은 소설 속 엘리자베스처럼 사랑을 바탕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설 속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독신으로 남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가족의 미래를 보장해 줄 콜린즈씨의 청혼을 거절하고, 부유한 귀족인 다아시의 청혼도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인 그를 사랑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한 진정한 마음을 발견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엘리자베스의 행동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이기적이고 무책임할 뿐 아니라 분별없는 것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와 이웃에 사는 친구 샬럿이 결혼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은 전통적인 결혼관과 새로이 등장한 사랑에 기반한 결혼관의 대비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