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우리에게 언어는 어떠한 존재인가? 우리의 말은 그저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생각을 그저 옮기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말을 하면서 비로소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언어는 내가 마주한 세상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얼굴이, 행동이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비로소 내뱉도록 한 것은 아닐까? 나의 말에 동의할 수 있다는 상대방의 표정, 또는 나의 말을 아직 이해할 수 없으니 더 이야기해보라는 상대방의 무언의 요구가 나의 말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화가를 사로잡는 세계의 광경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더 표현될 것이 있다고 외치는 세계의 광경들이 화가로 하여금 붓을 들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고전본문
만일 기호가 다른 기호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윤곽이 드러나는 한에서만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기호의 의미는 완전히 언어 속에 박혀 있을 것이다. 파롤(말하기, 발화)은 언제나 파롤의 바탕 위에서 작용하므로 파롤은 발화라는 거대한 직물 속에서 하나의 주름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 따라서 여기에 언어의 불투명성이 있다. 언어는 순수한 의미를 그 어디에도 두지 않는다. […] 의미는 오직 언어적인 것에 의해서만 한정되며, 단어 안에 끼워진 채로만 언어 속에 나타난다. […] 언어는 하나의 수단을 넘어서 하나의 존재와 같은 무엇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현존하게 할 수 있다. […] 만일 언어가 원본 텍스트의 번역이나 암호화된 판본이라는 생각을 쫓아버린다면,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말하자면 침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붓이 그리는 선이 대상의 외관을 재구성할 때, 대상을 대체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지각된 세계의 암시적 논리다. […]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리는 순간 “더 멀리 나아간” 것은, 시선과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들의 만남, 존재해야 할 것과 존재하는 것과의 만남을 복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 따라서 예술은 동결된 실존과는 다른 것이어야 하고,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듯 “초존재”(surexistence)여야만 한다. […] 현대 회화는 사물들을 닮지 않은 진리, 즉 외부 모델도, 미리 결정된 표현 수단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인, 그러한 하나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메를로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중에서
토론하기
(1) 윗글에서 ‘언어의 불투명성’이란 무슨 뜻인가? 언어는 “하나의 수단을 넘어서 존재와 같은 무엇이다”라는 말을 통해 이를 설명해보시오.
2)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언어가 단지 우리의 사유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생각이 언어화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 경험에 대해서 기술해 보시오.
3) 윗글의 저자는 회화가 화가 주체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보다는 화가의 ‘지각’이 붓을 움직이도록 한다고 말한다. 특히 “시선과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의 만남”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물을 볼 때, 그러한 봄은 내가 의도하여서 일어나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물이 나의 시선을 부추기는 측면을 강조한다. 화가의 표현은 이처럼 화가의 시선을 부추기고, 표현하도록 부추기는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회화의 표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초존재’의 상태를 고흐의 「까마귀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시오.
해설읽기
언어학자 소쉬르는 의미가 기호들 사이의 차이와 간격에 의해서만 구성됨을 밝힌다. 메를로-퐁티는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논문모음집 『기호들』에 수록)에서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학을 참조하면서 표현 현상의 존재론적 함축에 주목하게 된다.
의미가 의식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호와 기호 사이의 차이와 간격에 의해’ 구체화된다면, 주체가 의미를 미리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미는 오직 주체가 표현을 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며, 발화되기 이전의 순수하고 완성된 형태의 의미는 없다. 다시 말해 의미는 발화 과정, 그 생성 속에서만 나타나기에, 언어는 단순히 하나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발생적 장, 즉 ‘존재’ 자체가 된다. 메를로-퐁티는 원본으로서 선재하는 사유를 충실히 번역해내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관념이 사실상 허구임을 보이면서 존재로서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처럼 표현에 앞서 전해야 할 완전한 의미는 없다고 할 때, 표현의 ‘완벽함’은 허구라 말한다. 의미는 이렇듯 표현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표현 개념에서 주체/대상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해체되고 문제가 존재론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특히 화가의 작업 방식은 표현의 존재론적 의미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화가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주체’로서의 화가이기 보다는 화가의 ‘지각’이다. 표현에 앞서 화가의 머릿속에 미리 존재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없다. 화가는 그리기 위해 세계 앞으로 나아가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들에 자신을 열어놓는다.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릴 때 그의 시선은 일방적으로 사물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물도 그의 시선을 수동적인 것으로서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공고히 있지 않고 사물들과 만나기를 택했고, 그 사물들 속에서 무언가 그려져야 할 것이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화가의 시선이 그러한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들과 만난다는 것은 지각이 순수 능동도, 순수 수동도 아닌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존재자들의 긴밀한 얽힘 속에 발아해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화가가 지각함으로써 그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표현은 끊임없이 새로이 생성되는 존재를 설명한다. ‘표현’으로서의 예술은 전통적 실체 개념을 넘어서 매순간 새로운 발생 과정 중에 있는 존재, 그리하여 단 한순간도 고정시킬 수 없는 존재, 이른바 ‘초존재’를 보여준다. 예술가의 작업은 언제나 계속되는 ‘물음’과 함께 작업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메를로-퐁티는 “모든 회화는 언제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나 이루지 못한 노력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과 함께 발생하는 회화의 이 같은 필연적 불완전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키워드
고흐, 기호, 불투명성, 소쉬르, 언어, 초존재,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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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언어는 어떠한 존재인가? 우리의 말은 그저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생각을 그저 옮기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말을 하면서 비로소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언어는 내가 마주한 세상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얼굴이, 행동이 나로 하여금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비로소 내뱉도록 한 것은 아닐까? 나의 말에 동의할 수 있다는 상대방의 표정, 또는 나의 말을 아직 이해할 수 없으니 더 이야기해보라는 상대방의 무언의 요구가 나의 말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화가를 사로잡는 세계의 광경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더 표현될 것이 있다고 외치는 세계의 광경들이 화가로 하여금 붓을 들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고전본문
만일 기호가 다른 기호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윤곽이 드러나는 한에서만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기호의 의미는 완전히 언어 속에 박혀 있을 것이다. 파롤(말하기, 발화)은 언제나 파롤의 바탕 위에서 작용하므로 파롤은 발화라는 거대한 직물 속에서 하나의 주름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 따라서 여기에 언어의 불투명성이 있다. 언어는 순수한 의미를 그 어디에도 두지 않는다. […] 의미는 오직 언어적인 것에 의해서만 한정되며, 단어 안에 끼워진 채로만 언어 속에 나타난다. […] 언어는 하나의 수단을 넘어서 하나의 존재와 같은 무엇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현존하게 할 수 있다. […] 만일 언어가 원본 텍스트의 번역이나 암호화된 판본이라는 생각을 쫓아버린다면, 우리는 ‘완벽한’ 표현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모든 언어는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말하자면 침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붓이 그리는 선이 대상의 외관을 재구성할 때, 대상을 대체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지각된 세계의 암시적 논리다. […]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리는 순간 “더 멀리 나아간” 것은, 시선과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들의 만남, 존재해야 할 것과 존재하는 것과의 만남을 복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 따라서 예술은 동결된 실존과는 다른 것이어야 하고,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듯 “초존재”(surexistence)여야만 한다. […] 현대 회화는 사물들을 닮지 않은 진리, 즉 외부 모델도, 미리 결정된 표현 수단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인, 그러한 하나의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한다.
-메를로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중에서
토론하기
(1) 윗글에서 ‘언어의 불투명성’이란 무슨 뜻인가? 언어는 “하나의 수단을 넘어서 존재와 같은 무엇이다”라는 말을 통해 이를 설명해보시오.
2)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언어가 단지 우리의 사유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생각이 언어화되면서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 경험에 대해서 기술해 보시오.
3) 윗글의 저자는 회화가 화가 주체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보다는 화가의 ‘지각’이 붓을 움직이도록 한다고 말한다. 특히 “시선과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의 만남”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물을 볼 때, 그러한 봄은 내가 의도하여서 일어나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물이 나의 시선을 부추기는 측면을 강조한다. 화가의 표현은 이처럼 화가의 시선을 부추기고, 표현하도록 부추기는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회화의 표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초존재’의 상태를 고흐의 「까마귀들」의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시오.
해설읽기
언어학자 소쉬르는 의미가 기호들 사이의 차이와 간격에 의해서만 구성됨을 밝힌다. 메를로-퐁티는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논문모음집 『기호들』에 수록)에서 이러한 소쉬르의 언어학을 참조하면서 표현 현상의 존재론적 함축에 주목하게 된다.
의미가 의식 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호와 기호 사이의 차이와 간격에 의해’ 구체화된다면, 주체가 의미를 미리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미는 오직 주체가 표현을 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며, 발화되기 이전의 순수하고 완성된 형태의 의미는 없다. 다시 말해 의미는 발화 과정, 그 생성 속에서만 나타나기에, 언어는 단순히 하나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발생적 장, 즉 ‘존재’ 자체가 된다. 메를로-퐁티는 원본으로서 선재하는 사유를 충실히 번역해내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관념이 사실상 허구임을 보이면서 존재로서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처럼 표현에 앞서 전해야 할 완전한 의미는 없다고 할 때, 표현의 ‘완벽함’은 허구라 말한다. 의미는 이렇듯 표현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러한 표현 개념에서 주체/대상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해체되고 문제가 존재론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특히 화가의 작업 방식은 표현의 존재론적 의미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화가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주체’로서의 화가이기 보다는 화가의 ‘지각’이다. 표현에 앞서 화가의 머릿속에 미리 존재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없다. 화가는 그리기 위해 세계 앞으로 나아가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들에 자신을 열어놓는다. 고흐가 「까마귀들」을 그릴 때 그의 시선은 일방적으로 사물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물도 그의 시선을 수동적인 것으로서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공고히 있지 않고 사물들과 만나기를 택했고, 그 사물들 속에서 무언가 그려져야 할 것이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화가의 시선이 그러한 “시선을 간청하는” 사물들과 만난다는 것은 지각이 순수 능동도, 순수 수동도 아닌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존재자들의 긴밀한 얽힘 속에 발아해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화가가 지각함으로써 그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표현은 끊임없이 새로이 생성되는 존재를 설명한다. ‘표현’으로서의 예술은 전통적 실체 개념을 넘어서 매순간 새로운 발생 과정 중에 있는 존재, 그리하여 단 한순간도 고정시킬 수 없는 존재, 이른바 ‘초존재’를 보여준다. 예술가의 작업은 언제나 계속되는 ‘물음’과 함께 작업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메를로-퐁티는 “모든 회화는 언제나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나 이루지 못한 노력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음과 함께 발생하는 회화의 이 같은 필연적 불완전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키워드
고흐, 기호, 불투명성, 소쉬르, 언어, 초존재,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