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러시아 상징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에서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신예술 사조로서 등장했다. 상징주의는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사실주의 예술관을 거절하고 예술의 본질을 미(美)에서 찾았고 사실주의 예술의 과도한 이념성과 강한 사회적 개입(앙가주망)의 요구를 비판하였다. 이에 당시 사실주의 예술관과 입장을 같이하며 예술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회비평적 문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징주의의 예술관이 현실 및 사회로부터 유리된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브류소프는 시인, 즉 예술가에게 직접적으로 사회적 요구를 부과하는 일은 직업상의 의무에 이념적 요구를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시인이 시로써 사회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면, 의사는 범죄자를 치료하면 안되며, 기술자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물건만 생산해야 한다. 기술자, 의사 등에게는 직접적인 사회적 의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시가 현실 삶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시인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업(業)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시(詩)는 사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이처럼 예술과 사회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관해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예술이 고유한 영역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를 연구하는 고유한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고유한 사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한다. 예술이 자신의 사명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고전본문
시(詩)가 사회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만약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적어도, 시가 다만 운율이 있고 수사학적으로 꾸며진 논증이 아니라, 진정으로 시이고 예술이라면 말이다. 정치적 싸움에서는 시를 짓는 능력보다 웅변적 재능이, 상상보다 정치적 지식이, 예술적 취향보다 세속적인 상상력이 더 유용하다. 시인은 티르테우스나 루제 드 라일처럼 전투의 노래를 쓸 수 있지만, 시인들이 계속해서 끝도 없이 새로운 마르세예즈와 카르마뇰을 작곡한다면, 열혈 혁명가들조차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충분합니다!” 예술 모두에게 사회 운동에 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직물 산업 전체가 붉은 깃발을 위한 천만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神祕)이다. 이 점에서 예술은 “삶에 대해 이질적”일 수 없다. 우리의 삶 전체가 우리의 정신적 경험들의 연속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화학이 물질의 구성 요소를 연구하듯이, 예술은 삶의 구성 요소를 연구한다. 자연에서 순수한 형태의 산소, 인, 크롬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요소들은 더 완전하고 더 정확하게 조사하기 위해 다양한 화합물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된다. 현대 예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인간의 열정들을 창조적인 작업장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대 예술의 창작물들이 삶과 거리가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얻어졌기 때문에 라듐이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근시안적이다.
물론 당일의 사건들이 동시대적인 것이지만, 사랑과 죽음, 삶의 목적, 선악 등의 문제들도 오르페우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 동시대적인 것이다. 각 시대는 당대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제공하며, 모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이러한 질문은 영원히 중요하고 영원히 새로운 것으로 다시금 제기된다. 혁명의 시대라고 선악의 수수께끼가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무시해야 하는가? 사랑이 유행에서 벗어나고 죽음이 낡아빠진 것이 될 수 있는가? (…)
사회 형태가 자유로울수록, 예술은 오직 자신의 사명에만 전념할 수 있다. 사회적 삶이 억압적인 곳에서, 예술 작품들은 종종 사회사상 전파의 우회로로 혹은 사회 집단의 투쟁에서 비밀스러운 무기로 사용된다. 말과 글이 자유로운 곳에서는 이러한 필요가 없다. 정치적 설교를 위해서는 집회 연설, 의회 토론, 신문 기사 등 더 효과적인 수단이 있다. 언론의 자유는 예술이 사회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봉사하지 않게 해준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예술은 아마도 마침내 자유로울 수 있다.
-발레리 브류소프, 「동시대의 생각들」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시와 예술에게 직접적으로 사회 운동에 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브류소프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2)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예술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 즉 인간의 열정들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브류소프의 생각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예술의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비로소 예술은 인간 삶의 요소, 즉 인간의 열정들을 연구한다는 자신의 사명에 전념할 수 있고 억압적 사회에서 종종 예술은 사회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전달하는 무기로 사용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억압이 과도한 사회에서 예술이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설읽기
상징주의 시인이자 미학의 대표자 브류소프는 시(문학)와 사회 간의 관계에 관해 당대에 제기된 첨예한 쟁점들을 들어 예술에 대한 과도한 이념성의 요구를 논박하고 있다. 상징주의와 사회적 비평 간의 논쟁의 핵심은 예술의 본질 혹은 고유성이 무엇인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예술과 삶은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등의 몇 가지 쟁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브류소프가 제시하는 논점은 크게 3가지로, 예술은 그 자체로서 사회의 이념적 요구를 수행하지 않으며, 그것은 예술이 인간의 지적 활동 중의 하나로서 고유한 사명을 가진 독립적인 영역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예술은 사회적이고 이념적인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때 예술 고유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독립성에 대해 브류소프가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예술이 인간의 지적 활동의 하나로서 고유의 대상을 가진다는 점이다. 브류소프는 예술을 일종의 과학으로 본다. 예술은 인간 정신을 연구한다. 삶이란 인간이 외부 세계와 관계 맺으며 가지게 되는 정신적 경험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삶을 연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예술의 고유한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예술은 삶을 연구하는 과학인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연구 대상으로서의 삶은 현실 그대로의 삶과 같을 수 없다. 화학 실험실에서 원소들이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는 형태 그대로 연구되지 않듯이, 예술은 연구 대상으로서의 삶의 구성 요소인 정신적 경험들, 즉 인간의 열정들을 순수한 형태로 가져와 연구한다. 그러므로 예술에서 보여지는 삶은 실제 삶이나 당면한 동시대 사건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예술은 동시대 사회와 직접적으로 관계하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다루는 순수한 형태의 인간의 열정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술이 동시대 사회문제와 직접 관계 맺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는 것이 브류소프의 생각이다.
키워드
국가적 의무, 사회, 사회 문제, 삶, 시, 억압, 언론의 자유, 예술, 예술의 사명, 인간, 정신, 인간의 열정
전후맥락
러시아 상징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에서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신예술 사조로서 등장했다. 상징주의는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사실주의 예술관을 거절하고 예술의 본질을 미(美)에서 찾았고 사실주의 예술의 과도한 이념성과 강한 사회적 개입(앙가주망)의 요구를 비판하였다. 이에 당시 사실주의 예술관과 입장을 같이하며 예술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회비평적 문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상징주의의 예술관이 현실 및 사회로부터 유리된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브류소프는 시인, 즉 예술가에게 직접적으로 사회적 요구를 부과하는 일은 직업상의 의무에 이념적 요구를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시인이 시로써 사회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면, 의사는 범죄자를 치료하면 안되며, 기술자는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물건만 생산해야 한다. 기술자, 의사 등에게는 직접적인 사회적 의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시가 현실 삶과 유리되어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시인 역시 자신만의 고유한 업(業)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시(詩)는 사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이처럼 예술과 사회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관해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예술이 고유한 영역과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를 연구하는 고유한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고유한 사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한다. 예술이 자신의 사명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고전본문
시(詩)가 사회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만약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적어도, 시가 다만 운율이 있고 수사학적으로 꾸며진 논증이 아니라, 진정으로 시이고 예술이라면 말이다. 정치적 싸움에서는 시를 짓는 능력보다 웅변적 재능이, 상상보다 정치적 지식이, 예술적 취향보다 세속적인 상상력이 더 유용하다. 시인은 티르테우스나 루제 드 라일처럼 전투의 노래를 쓸 수 있지만, 시인들이 계속해서 끝도 없이 새로운 마르세예즈와 카르마뇰을 작곡한다면, 열혈 혁명가들조차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충분합니다!” 예술 모두에게 사회 운동에 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직물 산업 전체가 붉은 깃발을 위한 천만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神祕)이다. 이 점에서 예술은 “삶에 대해 이질적”일 수 없다. 우리의 삶 전체가 우리의 정신적 경험들의 연속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화학이 물질의 구성 요소를 연구하듯이, 예술은 삶의 구성 요소를 연구한다. 자연에서 순수한 형태의 산소, 인, 크롬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요소들은 더 완전하고 더 정확하게 조사하기 위해 다양한 화합물로부터 인위적으로 분리된다. 현대 예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인간의 열정들을 창조적인 작업장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대 예술의 창작물들이 삶과 거리가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실험실에서 얻어졌기 때문에 라듐이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근시안적이다.
물론 당일의 사건들이 동시대적인 것이지만, 사랑과 죽음, 삶의 목적, 선악 등의 문제들도 오르페우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 동시대적인 것이다. 각 시대는 당대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제공하며, 모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이러한 질문은 영원히 중요하고 영원히 새로운 것으로 다시금 제기된다. 혁명의 시대라고 선악의 수수께끼가 시대에 맞지 않는 것으로 무시해야 하는가? 사랑이 유행에서 벗어나고 죽음이 낡아빠진 것이 될 수 있는가? (…)
사회 형태가 자유로울수록, 예술은 오직 자신의 사명에만 전념할 수 있다. 사회적 삶이 억압적인 곳에서, 예술 작품들은 종종 사회사상 전파의 우회로로 혹은 사회 집단의 투쟁에서 비밀스러운 무기로 사용된다. 말과 글이 자유로운 곳에서는 이러한 필요가 없다. 정치적 설교를 위해서는 집회 연설, 의회 토론, 신문 기사 등 더 효과적인 수단이 있다. 언론의 자유는 예술이 사회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봉사하지 않게 해준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예술은 아마도 마침내 자유로울 수 있다.
-발레리 브류소프, 「동시대의 생각들」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시와 예술에게 직접적으로 사회 운동에 봉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브류소프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어떤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2)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예술이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그것은 인간 정신의 신비, 즉 인간의 열정들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브류소프의 생각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의견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예술의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 이 글에서 브류소프는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비로소 예술은 인간 삶의 요소, 즉 인간의 열정들을 연구한다는 자신의 사명에 전념할 수 있고 억압적 사회에서 종종 예술은 사회사상이나 정치적 이념을 전달하는 무기로 사용된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모순이나 정치적 억압이 과도한 사회에서 예술이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해설읽기
상징주의 시인이자 미학의 대표자 브류소프는 시(문학)와 사회 간의 관계에 관해 당대에 제기된 첨예한 쟁점들을 들어 예술에 대한 과도한 이념성의 요구를 논박하고 있다. 상징주의와 사회적 비평 간의 논쟁의 핵심은 예술의 본질 혹은 고유성이 무엇인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예술과 삶은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등의 몇 가지 쟁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브류소프가 제시하는 논점은 크게 3가지로, 예술은 그 자체로서 사회의 이념적 요구를 수행하지 않으며, 그것은 예술이 인간의 지적 활동 중의 하나로서 고유한 사명을 가진 독립적인 영역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예술은 사회적이고 이념적인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때 예술 고유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의 독립성에 대해 브류소프가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예술이 인간의 지적 활동의 하나로서 고유의 대상을 가진다는 점이다. 브류소프는 예술을 일종의 과학으로 본다. 예술은 인간 정신을 연구한다. 삶이란 인간이 외부 세계와 관계 맺으며 가지게 되는 정신적 경험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삶을 연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예술의 고유한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예술은 삶을 연구하는 과학인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연구 대상으로서의 삶은 현실 그대로의 삶과 같을 수 없다. 화학 실험실에서 원소들이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는 형태 그대로 연구되지 않듯이, 예술은 연구 대상으로서의 삶의 구성 요소인 정신적 경험들, 즉 인간의 열정들을 순수한 형태로 가져와 연구한다. 그러므로 예술에서 보여지는 삶은 실제 삶이나 당면한 동시대 사건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예술은 동시대 사회와 직접적으로 관계하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다루는 순수한 형태의 인간의 열정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가진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술이 동시대 사회문제와 직접 관계 맺기를 요구한다면 이는 예술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된다는 것이 브류소프의 생각이다.
키워드
국가적 의무, 사회, 사회 문제, 삶, 시, 억압, 언론의 자유, 예술, 예술의 사명, 인간, 정신, 인간의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