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푸시킨 서거 83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러시아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푸시킨을 기념하며 그의 시를 통해 시인과 예술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블로크는 우선 사회에서 시인의 일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블로크에 따르면 시인은 조화의 아들이다. 세계는 혼돈과 질서, 즉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끊임없는 교체로서 삶의 순환을 이루어낸다. 혼돈은 조화에 의해 형식과 형상을 부여받음으로써 질서가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코스모스로 정립된 세계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하여 카오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다시 조화가 그것을 코스모스로 다듬어낸다. 이러한 영원한 순환이 세상의 삶이고 생명이다.
조화의 아들인 시인은 첫째, 세계의 소리를 영겁의 자연인 카오스로부터 해방시키고, 둘째, 이 소리들을 조화 속으로 이끌어 여기에 형태를 부여하며, 셋째, 소리의 형태화, 즉 이미지를 통해 외부 세계로 가져온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시인의 일은 결국 혼돈인 자연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문화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인간 내면 깊숙이, 문명적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서 숨 쉬는 원초적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 시인은 불가피하게 대중과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인의 고독은 원초적 자연과의 교접을 위해 요구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시인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그의 시는 세속적으로 유용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 무지한 대중은 시인에게 사회와 정치에 관한 직접적 참여를 강요한다. 그러나 시인이 자연으로부터 문화를 이끌어내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블로크는 니콜라이 2세의 반동정치로 인해 정치적 압박을 겪은 푸시킨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의 자유란 어떤 자유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고전본문
오늘 우리는 가장 위대한 러시아 시인의 기억을 되새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기회에 시인의 사명에 관하여 말하고 푸시킨의 생각으로 제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
“(…)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말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 봉사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라, 권력을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 양심도, 생각도, 목도 구부리지 말라./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며,/ 자연의 신성한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리고 예술과 영감의 피조물 앞에서,/ 감동의 환희에 말없이 가라앉는 것,/ 여기에 행복이 있다! 여기에 권리가 있다!”
이것이 임종의 말입니다. 젊은 시절 푸시킨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과 은밀한 자유가/ 마음속에 단순한 찬가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자유, 이러한 의지란 이후 페트가 “가인(歌人)의 광기 어린 자유의지여!”라고 더 큰 목소리로 반복했던 말입니다. 이것은 절대 개인적인 자유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자유입니다. (…) 위의 모든 것은 푸시킨의 시에서 조화의 해방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
한편 푸시킨의 삶은 저물어가며 점점 더 그의 길을 가로막는 장벽들로 가득 차 갔습니다. 푸시킨은 힘을 잃었고, 그와 함께 그의 시대, 지난 세기 러시아에서 유일한 문화적 시대의 문화가 힘을 잃었습니다. 운명의 4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푸시킨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들에게 포자와 같은 인물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실러는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시킨을 죽인 것은 단테스의 총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숨 쉴 공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푸시킨과 함께 그가 이룩한 문화도 죽었습니다.
“때가 왔어, 친구여, 때가 왔다네! 마음은 안식을 구하네.”
이것이 푸시킨의 마지막 탄식이며, 또한 푸시킨 시대의 문화의 한숨입니다.
“세상에는 행복이 없지만, 안식과 자유가 있다네.”
안식과 자유, 이것은 조화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시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식과 자유 역시 빼앗아 갑니다. 외적 안식이 아니라 창조적 안식을. 유치한 의지나 제멋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창조적 자유, 비밀스러운 자유를. 그러면 시인은 숨 쉴 것이 없기 때문에 죽습니다. 삶이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요.
시인이 마음의 조화를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예의 바른 관리들은 군중이라는 이명(異名)을 영원히 뗄 수 없습니다. (…) 시를 어떤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조종하여 시의 비밀스러운 자유를 침해하고 시가 신비로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이들 관리들은 더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니 부디 경계하시기를.
우리는 죽지만 예술은 남습니다. 예술의 최종적 목표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알려질 수도 없습니다. 예술은 하나의 몸이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시인의 사명에 관하여」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블로크는 작가 푸시킨의 경우를 들어 시인의 창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자유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의 이해를 이야기해 보라.
2) 여기서 블로크는 시인에게 예술 외적인 일을 이유로 압력을 가하는 이들을 군중이라고 부르며 비판하고 있다. 시인 혹은 예술가에 대한 정치적 억압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근거를 또한 제시해보라.
해설읽기
시인의 자유는 개인적인 자유나 정치적 자유와는 다른 의미의 자유이다. 그것은 보다 넓은 의미의 자유로 내밀한 정신적 자유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시인의 자유에 관한 푸시킨의 시를 인용하면서 이와 같은 자유가 결국 조화의 아들인 시인의 사명과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인용된 푸시킨의 시는 시인이란 권력이나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살며 오직 예술적 영감에만 봉사하는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다.
푸시킨은 이처럼 시인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 노래했지만, 그의 시대는 18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에서 지식인들이 호소한 자유와 헌정의 이념을 억압한 니콜라이 2세의 반동정치가 점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고 1840년대에 들어서는 푸시킨에 대한 차르 정부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억압은 푸시킨의 삶에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고, 이 때문에 푸시킨은 점점 정신적으로 죽어가게 된다.
여기서 블로크는 결투로 인한 푸시킨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결국 근본적으로 시인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푸시킨의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이 된 결투는 사실 정치적 음모에 의해 그에게 강요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식과 자유의지이다. 시인에게 공기처럼 필요한 안식과 자유의지를 빼앗긴 푸시킨은 죽었고 그의 죽음은 또한 문화의 죽음을 초래한다.
블로크는 앞서 민중과 군중을 구별한 바 있다. 민중이란 시인에게 영감을 주며 절대적 존재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이며 시인은 민중에 대해 사회적 의무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무지하고 속된 이들의 집단인 군중은 시인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하며 직접적인 사회참여를 요구한다. 이처럼 예술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이들은 군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예술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키워드
군중, 문화의 죽음, 비밀스러운 자유, 시인, 양심, 창조적 안식, 창조적 자유, 푸시킨
전후맥락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푸시킨 서거 83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러시아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푸시킨을 기념하며 그의 시를 통해 시인과 예술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블로크는 우선 사회에서 시인의 일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블로크에 따르면 시인은 조화의 아들이다. 세계는 혼돈과 질서, 즉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끊임없는 교체로서 삶의 순환을 이루어낸다. 혼돈은 조화에 의해 형식과 형상을 부여받음으로써 질서가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코스모스로 정립된 세계는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위하여 카오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다시 조화가 그것을 코스모스로 다듬어낸다. 이러한 영원한 순환이 세상의 삶이고 생명이다.
조화의 아들인 시인은 첫째, 세계의 소리를 영겁의 자연인 카오스로부터 해방시키고, 둘째, 이 소리들을 조화 속으로 이끌어 여기에 형태를 부여하며, 셋째, 소리의 형태화, 즉 이미지를 통해 외부 세계로 가져온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시인의 일은 결국 혼돈인 자연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문화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인간 내면 깊숙이, 문명적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서 숨 쉬는 원초적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 시인은 불가피하게 대중과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인의 고독은 원초적 자연과의 교접을 위해 요구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 시인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그의 시는 세속적으로 유용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 무지한 대중은 시인에게 사회와 정치에 관한 직접적 참여를 강요한다. 그러나 시인이 자연으로부터 문화를 이끌어내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블로크는 니콜라이 2세의 반동정치로 인해 정치적 압박을 겪은 푸시킨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예술가의 자유란 어떤 자유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고전본문
오늘 우리는 가장 위대한 러시아 시인의 기억을 되새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기회에 시인의 사명에 관하여 말하고 푸시킨의 생각으로 제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
“(…)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말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 봉사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라, 권력을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 양심도, 생각도, 목도 구부리지 말라./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며,/ 자연의 신성한 아름다움에 놀라고,/ 그리고 예술과 영감의 피조물 앞에서,/ 감동의 환희에 말없이 가라앉는 것,/ 여기에 행복이 있다! 여기에 권리가 있다!”
이것이 임종의 말입니다. 젊은 시절 푸시킨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과 은밀한 자유가/ 마음속에 단순한 찬가를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밀스러운 자유, 이러한 의지란 이후 페트가 “가인(歌人)의 광기 어린 자유의지여!”라고 더 큰 목소리로 반복했던 말입니다. 이것은 절대 개인적인 자유가 아니라 훨씬 더 큰 자유입니다. (…) 위의 모든 것은 푸시킨의 시에서 조화의 해방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
한편 푸시킨의 삶은 저물어가며 점점 더 그의 길을 가로막는 장벽들로 가득 차 갔습니다. 푸시킨은 힘을 잃었고, 그와 함께 그의 시대, 지난 세기 러시아에서 유일한 문화적 시대의 문화가 힘을 잃었습니다. 운명의 4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
푸시킨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들에게 포자와 같은 인물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실러는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시킨을 죽인 것은 단테스의 총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숨 쉴 공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푸시킨과 함께 그가 이룩한 문화도 죽었습니다.
“때가 왔어, 친구여, 때가 왔다네! 마음은 안식을 구하네.”
이것이 푸시킨의 마지막 탄식이며, 또한 푸시킨 시대의 문화의 한숨입니다.
“세상에는 행복이 없지만, 안식과 자유가 있다네.”
안식과 자유, 이것은 조화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시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식과 자유 역시 빼앗아 갑니다. 외적 안식이 아니라 창조적 안식을. 유치한 의지나 제멋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창조적 자유, 비밀스러운 자유를. 그러면 시인은 숨 쉴 것이 없기 때문에 죽습니다. 삶이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요.
시인이 마음의 조화를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예의 바른 관리들은 군중이라는 이명(異名)을 영원히 뗄 수 없습니다. (…) 시를 어떤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조종하여 시의 비밀스러운 자유를 침해하고 시가 신비로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이들 관리들은 더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니 부디 경계하시기를.
우리는 죽지만 예술은 남습니다. 예술의 최종적 목표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알려질 수도 없습니다. 예술은 하나의 몸이며 분리할 수 없습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 「시인의 사명에 관하여」 중에서
토론하기
(1) 이 글에서 블로크는 작가 푸시킨의 경우를 들어 시인의 창작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자유란 어떤 것인지 여러분의 이해를 이야기해 보라.
2) 여기서 블로크는 시인에게 예술 외적인 일을 이유로 압력을 가하는 이들을 군중이라고 부르며 비판하고 있다. 시인 혹은 예술가에 대한 정치적 억압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근거를 또한 제시해보라.
해설읽기
시인의 자유는 개인적인 자유나 정치적 자유와는 다른 의미의 자유이다. 그것은 보다 넓은 의미의 자유로 내밀한 정신적 자유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시인의 자유에 관한 푸시킨의 시를 인용하면서 이와 같은 자유가 결국 조화의 아들인 시인의 사명과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인용된 푸시킨의 시는 시인이란 권력이나 명예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살며 오직 예술적 영감에만 봉사하는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다.
푸시킨은 이처럼 시인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 노래했지만, 그의 시대는 18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에서 지식인들이 호소한 자유와 헌정의 이념을 억압한 니콜라이 2세의 반동정치가 점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고 1840년대에 들어서는 푸시킨에 대한 차르 정부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사회적 억압은 푸시킨의 삶에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고, 이 때문에 푸시킨은 점점 정신적으로 죽어가게 된다.
여기서 블로크는 결투로 인한 푸시킨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결국 근본적으로 시인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푸시킨의 때 이른 죽음의 원인이 된 결투는 사실 정치적 음모에 의해 그에게 강요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식과 자유의지이다. 시인에게 공기처럼 필요한 안식과 자유의지를 빼앗긴 푸시킨은 죽었고 그의 죽음은 또한 문화의 죽음을 초래한다.
블로크는 앞서 민중과 군중을 구별한 바 있다. 민중이란 시인에게 영감을 주며 절대적 존재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이며 시인은 민중에 대해 사회적 의무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무지하고 속된 이들의 집단인 군중은 시인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하며 직접적인 사회참여를 요구한다. 이처럼 예술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이들은 군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예술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키워드
군중, 문화의 죽음, 비밀스러운 자유, 시인, 양심, 창조적 안식, 창조적 자유, 푸시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