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베스트팔렌의 툰터테트론크 남작의 성에서 살고 있던 캉디드는 비록 출신이 고귀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사랑하는 퀴네공드 공주 그리고 그의 스승인 팡글로스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게 성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퀴네공드 공주와 연애 행각이 남작에게 발각되어 성에서 쫓겨나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가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는 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라는 팡글로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팡글로스도 병에 걸려 성을 나왔는데 우연히 캉디드를 만나서 리스본으로 가게 된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 폭풍우를 만나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야코프가 익사하게 된다. 리스본에 도착하자 큰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고 현장의 참혹함을 보고서도 팡글로스는 세상에 대해서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고전본문
정신이 돌아오자 그들은 리스본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에게는 돈이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에 폭풍우를 벗어나면 그 돈으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도시에 발을 내디딜 때 갑자기 발 아래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바다는 항구에서 들끓어 오르며 솟아올랐고 정박해 있던 배들은 부서졌다. 화염과 재들이 회오리가 되어 거리와 광장을 덮친다. 집들은 무너져내렸고, 지붕들이 뒤집어져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건물 바닥이 훼손되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30만 명이 폐허 아래 깔렸다. 선원은 휘파람을 불며 욕을 해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 건질 것이 있을 거야.” “이 현상의 충족 이유는 무엇일까?” 팡글로스가 말했다. “세상의 종말의 날이이야!”라고 캉디드가 외쳤다. 선원은 잽싸게 폐허 더미 속으로 달려가 돈을 찾으려고 겁 없이 시체를 뒤지고, 돈을 찾게 되면 그것을 취한다. 그는 술에 취하고, 술에서 깨어나면 무너진 집 위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쾌락을 산다. 그녀도 기꺼이 몸을 팔려한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선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친구여, 이런 행동을 좋지 않아, 당신에게는 보편 이성이 결여되어 있네, 지금을 그런 짓을 할 때가 아니네.” 선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기랄, 나는 뱃놈이고 바타비아 출신이야. 나는 일본 여행을 네 번 했는데, 네 번 십자가를 밟고 지나갔어. 당신은 당신의 보편 이성으로 사람을 잘 찾아냈소!”
캉디드는 떨어진 돌에 몇 번 맞아 길가에서 잔해에 뒤덮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팡글로스에게 말했다. “아아! 선생님 포도주와 기름을 조금 가져다 주세요.” “이런 지진은 새로운 것이 아니야, 지난 해 아메리카 리마에서도 같은 진동이 있었지.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였어. 리마에서 리스본까지 땅 아래에 하나의 유황대가 있는 것이 분명해.”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발 기름과 포도주를 가져다 주십시오.”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나.” 철학자가 대답했다. “나는 문제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네.” 캉디드는 정신을 잃는다. 팡글로스는 옆에 있는 샘에서 물을 조금 가져다 주었다.
다음 날 그들은 잔해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약간의 식량을 찾아낸 뒤에 원기를 조금 되찾았다. 이어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죽음을 모면한 주민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몇 사람들이 그런 재난 속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저녁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식사 분위기는 침통했다. 손님들은 눈물로 빵을 적셨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이 모든 일은 다르게 일어날 수 없었음을 확신시키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최선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리스본에 화산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 곁에 있던 이단 재판소 비밀요원인 까무잡잡한 작은 남자가 정중하게 말할 기회를 얻어 물었다. “선생님은 원죄를 믿지 않으시는 게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최선이라면, 타락과 형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팡글로스가 더더욱 공손하게 대답한다. “선생님 부족하지만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타락 그리고 저주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자유의지를 믿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용서하고 들어 주십시오.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필연성과 더불어서 행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웠던 것은 그것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정해진 의지란…” 팡글로스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비밀요원은 하인에게 포르토인지 오포르토인지 하는 포도주을 따르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하기
(1) 팡글로스는 리스본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어떤 논리로 위로하고 있습니까?
(2) 자신이 겪은 불행을 낙관적으로 해석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 봅시다.
(3)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 신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하거나, 그 참사를 통해서 어떤 긍정적 메시지를 억지로 끌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볼테르의 입장에서 비판해 봅시다.
해설읽기
만일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에는 범죄, 질병, 재난과 같은 악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늘 살아간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떤 철학자, 종교가들은 세상이 악한 세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은 표면적으로 경험하는 악과 고통 이면에 선한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사고 방식이 신정론(神正論)이라는 이론을 낳았다. 신정론란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신적 정의와 조화시키려는 이론을 말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은 가능한 세계 속에서 최선의 세계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신은 가능한 여러 세계를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선의 세계인데 세상에 왜 악이 가득한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가 악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좋은 세계라고 답변할 것이다. 선한 신을 믿는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낙관주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팡글로스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신봉자였고, 캉디드도 그의 생각을 스승에게서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당면한 현실은 그들의 철학과 모순되었다. 캉디드는 낙원과도 같았던 성에서 쫓겨났고, 불가리아 군대에 납치당하듯이 끌려갔다가 탈영으로 오인되어 극심한 체벌을 받았다.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로 도피했지만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자 욕설을 듣고 오줌이 가득한 요강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때 야코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친절하게 캉디드를 대해주었다. 이에 캉디드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스승의 가르침처럼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귀결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리스본에 도착하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고 이 현상의 충족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는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을 염두에 둔 질문인데, 충족이유율이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철학적 원리이다. 이 원리를 따른다면 신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악과 고통을 허용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팡글로스는 재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하고 있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었다. 엄청난 화를 겪었음에도 그것은 최선의 결과를 낳기 때문에 눈앞에 일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종교 재판소의 비밀요원은 팡글로스에게 그가 원죄와 자유의지를 믿지 않느냐고 묻는다. 기성 종교의 관념을 신봉하는 요원은 이 세상의 고통은 인간이 신에게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서 신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인간의 원죄나 자유의지도 신이 정해 놓은 필연적인 질서와 섭리 속에 있다고 말한다. 팡글로스는 악을 통해서도 신은 선한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인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볼테르는 팡글로스와 그의 생각을 추종하는 캉디드의 낙관주의가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악과 모순됨을 작품 전체를 통해서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볼테르는 악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신의 섭리로 이해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풍자한다.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현실적인 악과 싸울 필요가 있음을 작품 전체를 통해서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서 캉디드는 스승의 낙관주의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세계 속에서 신적 섭리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서 세상의 악을 극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근대의 진보적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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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팔렌의 툰터테트론크 남작의 성에서 살고 있던 캉디드는 비록 출신이 고귀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사랑하는 퀴네공드 공주 그리고 그의 스승인 팡글로스와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게 성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중 퀴네공드 공주와 연애 행각이 남작에게 발각되어 성에서 쫓겨나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가 고통스러운 삶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는 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라는 팡글로스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팡글로스도 병에 걸려 성을 나왔는데 우연히 캉디드를 만나서 리스본으로 가게 된다. 도시에 도착하기 전 폭풍우를 만나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야코프가 익사하게 된다. 리스본에 도착하자 큰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고 현장의 참혹함을 보고서도 팡글로스는 세상에 대해서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고전본문
정신이 돌아오자 그들은 리스본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에게는 돈이 조금 남아 있었기 때문에 폭풍우를 벗어나면 그 돈으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에게 호의를 베푼 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도시에 발을 내디딜 때 갑자기 발 아래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바다는 항구에서 들끓어 오르며 솟아올랐고 정박해 있던 배들은 부서졌다. 화염과 재들이 회오리가 되어 거리와 광장을 덮친다. 집들은 무너져내렸고, 지붕들이 뒤집어져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건물 바닥이 훼손되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30만 명이 폐허 아래 깔렸다. 선원은 휘파람을 불며 욕을 해대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서 건질 것이 있을 거야.” “이 현상의 충족 이유는 무엇일까?” 팡글로스가 말했다. “세상의 종말의 날이이야!”라고 캉디드가 외쳤다. 선원은 잽싸게 폐허 더미 속으로 달려가 돈을 찾으려고 겁 없이 시체를 뒤지고, 돈을 찾게 되면 그것을 취한다. 그는 술에 취하고, 술에서 깨어나면 무너진 집 위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서 쾌락을 산다. 그녀도 기꺼이 몸을 팔려한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선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친구여, 이런 행동을 좋지 않아, 당신에게는 보편 이성이 결여되어 있네, 지금을 그런 짓을 할 때가 아니네.” 선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기랄, 나는 뱃놈이고 바타비아 출신이야. 나는 일본 여행을 네 번 했는데, 네 번 십자가를 밟고 지나갔어. 당신은 당신의 보편 이성으로 사람을 잘 찾아냈소!”
캉디드는 떨어진 돌에 몇 번 맞아 길가에서 잔해에 뒤덮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팡글로스에게 말했다. “아아! 선생님 포도주와 기름을 조금 가져다 주세요.” “이런 지진은 새로운 것이 아니야, 지난 해 아메리카 리마에서도 같은 진동이 있었지.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였어. 리마에서 리스본까지 땅 아래에 하나의 유황대가 있는 것이 분명해.” “분명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발 기름과 포도주를 가져다 주십시오.”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나.” 철학자가 대답했다. “나는 문제가 증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네.” 캉디드는 정신을 잃는다. 팡글로스는 옆에 있는 샘에서 물을 조금 가져다 주었다.
다음 날 그들은 잔해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약간의 식량을 찾아낸 뒤에 원기를 조금 되찾았다. 이어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죽음을 모면한 주민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몇 사람들이 그런 재난 속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저녁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식사 분위기는 침통했다. 손님들은 눈물로 빵을 적셨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이 모든 일은 다르게 일어날 수 없었음을 확신시키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최선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리스본에 화산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 곁에 있던 이단 재판소 비밀요원인 까무잡잡한 작은 남자가 정중하게 말할 기회를 얻어 물었다. “선생님은 원죄를 믿지 않으시는 게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최선이라면, 타락과 형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팡글로스가 더더욱 공손하게 대답한다. “선생님 부족하지만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타락 그리고 저주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자유의지를 믿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용서하고 들어 주십시오.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필연성과 더불어서 행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웠던 것은 그것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정해진 의지란…” 팡글로스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비밀요원은 하인에게 포르토인지 오포르토인지 하는 포도주을 따르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토론하기
(1) 팡글로스는 리스본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어떤 논리로 위로하고 있습니까?
(2) 자신이 겪은 불행을 낙관적으로 해석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 봅시다.
(3)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 신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하거나, 그 참사를 통해서 어떤 긍정적 메시지를 억지로 끌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볼테르의 입장에서 비판해 봅시다.
해설읽기
만일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에는 범죄, 질병, 재난과 같은 악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늘 살아간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떤 철학자, 종교가들은 세상이 악한 세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은 표면적으로 경험하는 악과 고통 이면에 선한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사고 방식이 신정론(神正論)이라는 이론을 낳았다. 신정론란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를 신적 정의와 조화시키려는 이론을 말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이 세상은 가능한 세계 속에서 최선의 세계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신은 가능한 여러 세계를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선의 세계인데 세상에 왜 악이 가득한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가 악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좋은 세계라고 답변할 것이다. 선한 신을 믿는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낙관주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팡글로스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신봉자였고, 캉디드도 그의 생각을 스승에게서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당면한 현실은 그들의 철학과 모순되었다. 캉디드는 낙원과도 같았던 성에서 쫓겨났고, 불가리아 군대에 납치당하듯이 끌려갔다가 탈영으로 오인되어 극심한 체벌을 받았다.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로 도피했지만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자 욕설을 듣고 오줌이 가득한 요강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때 야코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친절하게 캉디드를 대해주었다. 이에 캉디드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스승의 가르침처럼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귀결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한다.
리스본에 도착하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고 이 현상의 충족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는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을 염두에 둔 질문인데, 충족이유율이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철학적 원리이다. 이 원리를 따른다면 신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악과 고통을 허용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팡글로스는 재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하고 있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었다. 엄청난 화를 겪었음에도 그것은 최선의 결과를 낳기 때문에 눈앞에 일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종교 재판소의 비밀요원은 팡글로스에게 그가 원죄와 자유의지를 믿지 않느냐고 묻는다. 기성 종교의 관념을 신봉하는 요원은 이 세상의 고통은 인간이 신에게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서 신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팡글로스는 인간의 원죄나 자유의지도 신이 정해 놓은 필연적인 질서와 섭리 속에 있다고 말한다. 팡글로스는 악을 통해서도 신은 선한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인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볼테르는 팡글로스와 그의 생각을 추종하는 캉디드의 낙관주의가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악과 모순됨을 작품 전체를 통해서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볼테르는 악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신의 섭리로 이해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풍자한다.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 현실적인 악과 싸울 필요가 있음을 작품 전체를 통해서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서 캉디드는 스승의 낙관주의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세계 속에서 신적 섭리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서 세상의 악을 극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근대의 진보적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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