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바사니오는 벨몬트에 사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상속녀 포셔와 결혼하기를 희망한다. 포셔에게 구혼하기 위해서 벨몬트까지 갈 배를 마련해고 구혼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등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절친인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전 재산은 무역선에 투자된 상태라 배가 돌아오기까지 현금이 없는 상황이다. 안토니오는 유대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려한다. 평소 안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만일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이 못하면 돈 대신 안토니오의 심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살 1파운드를 달라고 요구한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조건이지만 상품을 싣고 무역에 나선 배가 그 전에 들어 올 것을 확신하는 안토니오는 기꺼이 계약을 맺는다. 안토니오 덕분에 돈을 마련한 바사니오는 멋진 배를 구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많은 선물을 싣고 벨몬트로 떠난다.
포셔의 아버지는 죽기 전 홀로 남겨질 딸의 신랑감을 찾을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금, 은, 납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상자 중 하나에 딸의 초상화를 담아 놓고, 구혼자들로 하여금 고르게 하는 것이다. 포셔의 초상화가 든 상자를 고른 구혼자가 포셔와 결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먼나라의 왕자와 귀족들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포셔와 결혼하기 위해 찾아오지만 상자를 선택하는 시험에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바사니오는 운좋게 그 시험에 통과해 포셔와 결혼한다.
바사니오가 벨몬트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동안 베니스의 안토니오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울 듣는다. 안토니오의 배가 난파해 샤일록에게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새신부 포셔는 시녀와 함께 법관으로 변장을 하고 베니스로 가서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법정에 나타난다. 계약서를 들이대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샤일록에게 포셔는 관용을 베풀 것을 종용하지만 샤일록은 듣지 않는다. 샤일록의 외동딸 제시카가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의 돈과 보석을 훔쳐 로렌조와 함께 바사니오의 배를 타고 벨몬트로 도망쳤고, 이 사실을 알게된 샤일록은 더욱 기독교인들을 증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안토니오와 그를 도우려는 포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샤일록을 중심으로 이 작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고전본문
[3막 1장]
[…]
살라리노: 설마 그가 약속을 못 지킨다고 그의 살점을 떼어가지는 않겠지.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샤일록: 물고기 밥으로 쓰지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내 복수심은 채워줄 것이오. 그는 내게 모욕을 주었고, 오십만 듀카트나 되는 내 벌이를 막았고, 내 손해에 기뻐하며 웃었고, 내 돈벌이를 조롱했으며, 내 민족을 경멸하고, 내 계약을 망치고, 내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나에 대한 적대감을 들끓게 했소. 왜 그랬겠소?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오. 유대인이 눈이 없소? 유대인에게는 손과 장기와 육신과 감각과 애정과 격정이 없소?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기에 상처를 입고, 똑같이 병에 걸리고, 같은 방식으로 치료받고, 똑같이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춥지 않은가?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우리도 피가 나지 않소? 간지럼을 태우면 우리도 웃지 않소? 독약을 먹이면 우리는 죽지 않나요?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면, 우리는 복수하지 않나요? 우리가 다른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다면, 이 점에서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을 행한다면, 그 겸손하다는 기독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복수를 하지요.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해친다면, 참는데 이골이 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의 본보기를 따라 어찌하겠소? 당연히, 복수해야지요! 당신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대로 나도 행할 것이며, 힘들지만 당신들의 가르침을 능가할 것이오.
[…]
[3막 3장]
[…]
안토니오: 샤일록, 내 말 좀 들어보게.
샤일록: 계약서대로 하겠고, 계약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계약대로 하겠다고 나는 맹세를 했소.
당신은 나를 이유도 없이 개라고 불렀소.
그러나 이제 내가 개가 되었으니, 이빨을 조심하시오.
공작이 법을 집행하도록 허락할 것이오
[…]
[4막 1장] 베니스 법정
[…]
바사니오: 왜 그렇게 칼을 열심히 가는가?
샤일록: 저기 있는 저 파산자로부터 위약금을 떼어내기 위해서라네.
그리쉬아노: 이 가혹한 유대인아, 너의 구두창이 아니라 너의
영혼에다 칼을 갈아라, 어떤 쇠붙이도, 아니 심지어
망나니의 도끼도 너의 날카로운 악의에 비하면
절반도 날카롭지 않을테니. 대체 어떤 간청도 너의 심장에 닿을 수 없단 말이냐?
샤일록: 그럼, 무슨 재주를 부려도 다 안통하지.
그리쉬아노: 오, 이 천벌받을 개야.
네 목숨을 살려두다니 법이 틀려먹은거야!
너는 내 신앙마저 흔들리게 만들어
동물의 영혼이 사람의 몸뚱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피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하게 만드는구나. 너의 똥개 같은 영혼은
사람들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 늑대의 것이었겠지.
교수대에서도 타락한 그놈의 영혼이 빠져나와
네놈의 불결한 네 어미 배속에 잉태되어 있을 때
네놈 몸 속으로 들어간거야. 그래서 네놈이 원하는 것들이
늑대같고, 피에 굶주리고,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것이다.
[…]
포셔: 그러니 살점을 떼어낼 준비를 하시오.
피를 흘리지 말고, 더도 덕도 말고 정확하게
1파운드의 살만 잘라내시오. 정확하게 1 파운드,
그 이상이나, 그 이하를 떼어내면, 그 무게가 가볍건
무겁건, 아니 1그램의 이십 분의 일일지라도,
아니 저울추가 머리카락 하나의 무게라도 기울면,
당신은 죽임을 당하고 당신의 재산은 몰수될 줄 아시오.
그리쉬아노: 제 2의 다니엘이 등장하셨네. 다니엘말이다. 이 유대인 놈아!
자, 이 이교도 놈아, 넌 이제 된통 걸렸다.
포셔: 유대인은 왜 머뭇거리는가? 어서 당신의 위약금을 가져가시오.
[…]
공작: 기독교인의 정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가 간청하기 전에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대 재산의 절반은 안토니오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국가가 필요한 곳에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착하게 굴면 벌금형으로 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포셔: 국가의 몫은 그리하셔도 되겠지만 안토니오의 몫은 안됩니다.
샤일록: 됐소. 내 목슴과 재산을 다 가져가시오. 사면도 필요없소.
내 집 기둥을 빼가면 집을 통째로 가져가는 셈이요.
내가 살아갈 수단을 앗아가 버리면 당신들은 내 목숨을 앗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요.
포셔: 안토니오, 당신은 저 사람에게 무슨 자비를 베풀어 주려는 겁니까?
안토니오: 공작 각하와 법정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다면
그의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말고 벌금형만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제가 위탁하고 있지요.
저 사람이 죽게 되면 얼마 전에 그의 딸을 데려간 그자에게
그 재산을 양도하는데 저자가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호의의 대가로
그가 즉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을 때 전 재산을
그의 사위 로렌조와 딸에게 양도한다는 양도증서를
이곳 법정에서 쓰는 것입니다.
토론하기
(1) 샤일록은 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겠다고 고집하는가?
(2) 포셔는 샤일록에게 계약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절대로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고 명령한다. 만일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이다. 포셔의 판결이 과연 ‘공정한’ 판결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3)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살려주는 대가로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않는 대신 기독교로 개종하고 죽을 때 모든 재산을 기독교인 사위와 딸에게 양도하는 증서를 쓰라고 강요한다. 포셔는 이것이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해 봅시다.
해설읽기
『베니스의 상인』은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유대인 악질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악의적인 계약을 맺고 기어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하려다 현명한 법관 포셔의 지혜로운 판결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는 권선징악적 희극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인권과 인종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성숙해지면서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시도되었다. 특히 마이클 래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에서 배우 알 파치노가 샤일록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기독교 사회에서 소외와 차별에 시달리는 유대인의 분노와 비극을 절절하게 연기했다. 어떤 비평가는 심지어 이 영화의 제목을 “샤일록”으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베니스의 상인』이 갖는 역동성은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샤일록은 작품 속에서 주로 ‘악마’로 지칭되고, 간간이 ‘들개’, ‘늑대’, ‘으르렁대다’ 등의 짐승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언어로 언급된다. 게다가 그가 하는 일은 고리대금업으로, 이 같은 악마의 이미지와 짐승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기독교인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한 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잡은 것도 이러한 인상을 더욱 부각시킨다.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박해받고 떠도는 생활을 이어온 유대인들에게 베니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무역도시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왕성해 유대인들이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었다. 모든 삶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돈이야 말로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샤일록과 같은 고리대금업자들을 악마로 취급하며,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곤 했다. 샤일록 입장에서는 생계수단인 영업을 방해받고 욕까지 먹은 셈이었다. 게다가 샤일록의 외동딸 제시카는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사랑에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달아나 버렸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끝까지 고집했던 것은 탐욕에 가득 찬 고리 대금업자로써의 모습만이 아니라 딸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기독교인에 대한 뿌리깊은 적개심 등 복잡한 상징이 담겨져 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샤일록의 반감은 단순한 증오를 넘어서 복수심으로 발전된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딸을 꼬여내 재산을 훔치게 하고 같이 도망친 자가 기독교인 로렌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한다. 그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자신을 그동안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안토니오 개인 및 기독교 베니스인 전체에 대한 복수심이 담겨있는 것이다.
결국 이 극은 비인간적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 대해 기독교적인 가치가 승리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 극이 기독교를 관용과 친절, 용서와 동의어로 정의한다면 유대인은 그 반대의 속성들로 규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대립 구도를 넘어서 샤일록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포셔는 샤일록에게 계약서 적혀 있는 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절대로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고 명령한다. 만일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이다. 베니스의 법을 엄격히 지키면서 안토니오를 구해낼 묘수를 찾은 것인다. 하지만 법에 대한 해석이 법정신과 상식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포셔의 판결은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살 또는 고기는 그 안에 피를 포함하고 있다. 살과 피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 애초에 살 1 파운드를 걸었을 때는, 안토니오나 샤일록 둘 다 살과 피를 구분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법정 싸움에서 흔히 등장하는 변호사들의 무리한 법리 해석을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미리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안토니오가 샤일록의 개종과 전재산을 딸과 사위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는데 포셔는 그것을 자비라고 불렀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것은 자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가 믿는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일은 폭력이 아닐까?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샤일록에게 돈은 단지 탐욕의 대상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인생의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그에게 돈은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과 더불어 독립과 자존감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 돈과 하나뿐인 딸까지 훔쳐간 기독교인 로렌조에게 재산을 모두 양도하라는 것 또한 지독한 강요와 협박이 아니었을까?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은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겠지만,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악당으로 설정된 유대인 샤일록은 조금 시선을 바꾸어 작품을 들여다 보면, 원래의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다만 샤일록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본다면,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일 것이다.
키워드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유대인, 인종차별, 정의, 희극
.
전후맥락
바사니오는 벨몬트에 사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상속녀 포셔와 결혼하기를 희망한다. 포셔에게 구혼하기 위해서 벨몬트까지 갈 배를 마련해고 구혼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등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절친인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안토니오의 전 재산은 무역선에 투자된 상태라 배가 돌아오기까지 현금이 없는 상황이다. 안토니오는 유대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려한다. 평소 안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만일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이 못하면 돈 대신 안토니오의 심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살 1파운드를 달라고 요구한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조건이지만 상품을 싣고 무역에 나선 배가 그 전에 들어 올 것을 확신하는 안토니오는 기꺼이 계약을 맺는다. 안토니오 덕분에 돈을 마련한 바사니오는 멋진 배를 구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많은 선물을 싣고 벨몬트로 떠난다.
포셔의 아버지는 죽기 전 홀로 남겨질 딸의 신랑감을 찾을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금, 은, 납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상자 중 하나에 딸의 초상화를 담아 놓고, 구혼자들로 하여금 고르게 하는 것이다. 포셔의 초상화가 든 상자를 고른 구혼자가 포셔와 결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먼나라의 왕자와 귀족들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포셔와 결혼하기 위해 찾아오지만 상자를 선택하는 시험에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바사니오는 운좋게 그 시험에 통과해 포셔와 결혼한다.
바사니오가 벨몬트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동안 베니스의 안토니오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울 듣는다. 안토니오의 배가 난파해 샤일록에게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새신부 포셔는 시녀와 함께 법관으로 변장을 하고 베니스로 가서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법정에 나타난다. 계약서를 들이대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샤일록에게 포셔는 관용을 베풀 것을 종용하지만 샤일록은 듣지 않는다. 샤일록의 외동딸 제시카가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의 돈과 보석을 훔쳐 로렌조와 함께 바사니오의 배를 타고 벨몬트로 도망쳤고, 이 사실을 알게된 샤일록은 더욱 기독교인들을 증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 안토니오와 그를 도우려는 포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샤일록을 중심으로 이 작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고전본문
[3막 1장]
[…]
살라리노: 설마 그가 약속을 못 지킨다고 그의 살점을 떼어가지는 않겠지.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샤일록: 물고기 밥으로 쓰지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내 복수심은 채워줄 것이오. 그는 내게 모욕을 주었고, 오십만 듀카트나 되는 내 벌이를 막았고, 내 손해에 기뻐하며 웃었고, 내 돈벌이를 조롱했으며, 내 민족을 경멸하고, 내 계약을 망치고, 내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나에 대한 적대감을 들끓게 했소. 왜 그랬겠소?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오. 유대인이 눈이 없소? 유대인에게는 손과 장기와 육신과 감각과 애정과 격정이 없소? 기독교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무기에 상처를 입고, 똑같이 병에 걸리고, 같은 방식으로 치료받고, 똑같이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춥지 않은가?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우리도 피가 나지 않소? 간지럼을 태우면 우리도 웃지 않소? 독약을 먹이면 우리는 죽지 않나요? 그리고 당신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면, 우리는 복수하지 않나요? 우리가 다른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다면, 이 점에서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을 행한다면, 그 겸손하다는 기독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복수를 하지요.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해친다면, 참는데 이골이 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의 본보기를 따라 어찌하겠소? 당연히, 복수해야지요! 당신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대로 나도 행할 것이며, 힘들지만 당신들의 가르침을 능가할 것이오.
[…]
[3막 3장]
[…]
안토니오: 샤일록, 내 말 좀 들어보게.
샤일록: 계약서대로 하겠고, 계약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계약대로 하겠다고 나는 맹세를 했소.
당신은 나를 이유도 없이 개라고 불렀소.
그러나 이제 내가 개가 되었으니, 이빨을 조심하시오.
공작이 법을 집행하도록 허락할 것이오
[…]
[4막 1장] 베니스 법정
[…]
바사니오: 왜 그렇게 칼을 열심히 가는가?
샤일록: 저기 있는 저 파산자로부터 위약금을 떼어내기 위해서라네.
그리쉬아노: 이 가혹한 유대인아, 너의 구두창이 아니라 너의
영혼에다 칼을 갈아라, 어떤 쇠붙이도, 아니 심지어
망나니의 도끼도 너의 날카로운 악의에 비하면
절반도 날카롭지 않을테니. 대체 어떤 간청도 너의 심장에 닿을 수 없단 말이냐?
샤일록: 그럼, 무슨 재주를 부려도 다 안통하지.
그리쉬아노: 오, 이 천벌받을 개야.
네 목숨을 살려두다니 법이 틀려먹은거야!
너는 내 신앙마저 흔들리게 만들어
동물의 영혼이 사람의 몸뚱이 속으로 들어간다는
피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하게 만드는구나. 너의 똥개 같은 영혼은
사람들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 늑대의 것이었겠지.
교수대에서도 타락한 그놈의 영혼이 빠져나와
네놈의 불결한 네 어미 배속에 잉태되어 있을 때
네놈 몸 속으로 들어간거야. 그래서 네놈이 원하는 것들이
늑대같고, 피에 굶주리고,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것이다.
[…]
포셔: 그러니 살점을 떼어낼 준비를 하시오.
피를 흘리지 말고, 더도 덕도 말고 정확하게
1파운드의 살만 잘라내시오. 정확하게 1 파운드,
그 이상이나, 그 이하를 떼어내면, 그 무게가 가볍건
무겁건, 아니 1그램의 이십 분의 일일지라도,
아니 저울추가 머리카락 하나의 무게라도 기울면,
당신은 죽임을 당하고 당신의 재산은 몰수될 줄 아시오.
그리쉬아노: 제 2의 다니엘이 등장하셨네. 다니엘말이다. 이 유대인 놈아!
자, 이 이교도 놈아, 넌 이제 된통 걸렸다.
포셔: 유대인은 왜 머뭇거리는가? 어서 당신의 위약금을 가져가시오.
[…]
공작: 기독교인의 정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가 간청하기 전에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대 재산의 절반은 안토니오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국가가 필요한 곳에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착하게 굴면 벌금형으로 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포셔: 국가의 몫은 그리하셔도 되겠지만 안토니오의 몫은 안됩니다.
샤일록: 됐소. 내 목슴과 재산을 다 가져가시오. 사면도 필요없소.
내 집 기둥을 빼가면 집을 통째로 가져가는 셈이요.
내가 살아갈 수단을 앗아가 버리면 당신들은 내 목숨을 앗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요.
포셔: 안토니오, 당신은 저 사람에게 무슨 자비를 베풀어 주려는 겁니까?
안토니오: 공작 각하와 법정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좋다면
그의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말고 벌금형만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제가 위탁하고 있지요.
저 사람이 죽게 되면 얼마 전에 그의 딸을 데려간 그자에게
그 재산을 양도하는데 저자가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한 호의의 대가로
그가 즉시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죽을 때 전 재산을
그의 사위 로렌조와 딸에게 양도한다는 양도증서를
이곳 법정에서 쓰는 것입니다.
토론하기
(1) 샤일록은 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겠다고 고집하는가?
(2) 포셔는 샤일록에게 계약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절대로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고 명령한다. 만일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이다. 포셔의 판결이 과연 ‘공정한’ 판결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3)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살려주는 대가로 재산의 절반을 몰수하지 않는 대신 기독교로 개종하고 죽을 때 모든 재산을 기독교인 사위와 딸에게 양도하는 증서를 쓰라고 강요한다. 포셔는 이것이 안토니오가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해 봅시다.
해설읽기
『베니스의 상인』은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유대인 악질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악의적인 계약을 맺고 기어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하려다 현명한 법관 포셔의 지혜로운 판결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는 권선징악적 희극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인권과 인종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성숙해지면서 유대인 샤일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시도되었다. 특히 마이클 래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에서 배우 알 파치노가 샤일록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기독교 사회에서 소외와 차별에 시달리는 유대인의 분노와 비극을 절절하게 연기했다. 어떤 비평가는 심지어 이 영화의 제목을 “샤일록”으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베니스의 상인』이 갖는 역동성은 샤일록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샤일록은 작품 속에서 주로 ‘악마’로 지칭되고, 간간이 ‘들개’, ‘늑대’, ‘으르렁대다’ 등의 짐승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언어로 언급된다. 게다가 그가 하는 일은 고리대금업으로, 이 같은 악마의 이미지와 짐승의 이미지가 결합하여 기독교인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한 파운드의 살을 담보로 잡은 것도 이러한 인상을 더욱 부각시킨다.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박해받고 떠도는 생활을 이어온 유대인들에게 베니스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무역도시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이 왕성해 유대인들이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었다. 모든 삶의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돈이야 말로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샤일록과 같은 고리대금업자들을 악마로 취급하며,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곤 했다. 샤일록 입장에서는 생계수단인 영업을 방해받고 욕까지 먹은 셈이었다. 게다가 샤일록의 외동딸 제시카는 바사니오의 친구 로렌조와 사랑에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달아나 버렸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끝까지 고집했던 것은 탐욕에 가득 찬 고리 대금업자로써의 모습만이 아니라 딸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기독교인에 대한 뿌리깊은 적개심 등 복잡한 상징이 담겨져 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샤일록의 반감은 단순한 증오를 넘어서 복수심으로 발전된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딸을 꼬여내 재산을 훔치게 하고 같이 도망친 자가 기독교인 로렌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는 극에 달한다. 그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자신을 그동안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은 안토니오 개인 및 기독교 베니스인 전체에 대한 복수심이 담겨있는 것이다.
결국 이 극은 비인간적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 대해 기독교적인 가치가 승리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 극이 기독교를 관용과 친절, 용서와 동의어로 정의한다면 유대인은 그 반대의 속성들로 규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대립 구도를 넘어서 샤일록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포셔는 샤일록에게 계약서 적혀 있는 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절대로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고 명령한다. 만일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재산을 몰수하고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이다. 베니스의 법을 엄격히 지키면서 안토니오를 구해낼 묘수를 찾은 것인다. 하지만 법에 대한 해석이 법정신과 상식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포셔의 판결은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살 또는 고기는 그 안에 피를 포함하고 있다. 살과 피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 애초에 살 1 파운드를 걸었을 때는, 안토니오나 샤일록 둘 다 살과 피를 구분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법정 싸움에서 흔히 등장하는 변호사들의 무리한 법리 해석을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미리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안토니오가 샤일록의 개종과 전재산을 딸과 사위에게 양도하는 것으로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고 제안하는데 포셔는 그것을 자비라고 불렀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것은 자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가 믿는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일은 폭력이 아닐까?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종교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샤일록에게 돈은 단지 탐욕의 대상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인생의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그에게 돈은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과 더불어 독립과 자존감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 돈과 하나뿐인 딸까지 훔쳐간 기독교인 로렌조에게 재산을 모두 양도하라는 것 또한 지독한 강요와 협박이 아니었을까?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은 베니스의 상인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겠지만, 이야기 전개상 필요한 악당으로 설정된 유대인 샤일록은 조금 시선을 바꾸어 작품을 들여다 보면, 원래의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다만 샤일록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본다면,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일 것이다.
키워드
베니스의 상인, 셰익스피어, 유대인, 인종차별, 정의, 희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