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그만두고소설을 쓰겠다고 해 부모와 갈등을 빚는다. 말기암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집에 온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가사일을 도맡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들은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상을 차린다. 그는 음식을 만들며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어머니 곁에 딱붙어 서서, 어머니가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에 재던 과정을 지켜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음식은 맛있었지만, 이민 가정 바깥의 미국생활에서 한국음식은 이방인의 것이었다. 학교에 도시락으로 김밥을 가져갔다가 냄새나는 이상한 음식이라고 놀림받았던 일은 상처로 남았다. 미국사회에서 미국인으로 자라고 어른이 된 작가에게 시간이 지나도 영어조차 서툰 어머니가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이제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직접 어머니가 만들었던 음식을 만들고 있다.
고전본문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어머니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나는 매일매일 그러는 것이 즐거웠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나를 쫓아냈다. 주방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반쯤은 자랑스럽게, 또 반쯤은 자조적인 어조로 말씀하시면서, 어머니가 하는 그런 일들은 나를 약하게 만들 뿐일 거라고 덧붙이셨다. “친구들하고 나가 놀아라,” 어머니는 한국말로 딱 잘라 말했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게 더 낫겠다.” 어머니는 내가 두 가지를 모두 이미 다 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녁이 돼가면서 어머니의 조그맣고 잘 정돈된 주방 말고는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조리용 주발과 냄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주방에서부터 온 집안에 울려퍼졌다.
나는 조용히 주방에 들어가서 턱을 어머니 엉덩이 춤에 올려놓은 채 옆에 서있곤 했다. 어머니의 굽힌 팔 사이로, 나는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았다. 갈비를 재기 위해서, 어머니는 정육점에서 손질이 된 갈비를 갸름한 손으로 집어 들었는데, 단단한 뼈는 비행기 날개의 일부처럼 생겼고 연골과 살코기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어머니는 칼끝으로 뼈를 발라냈는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고 반투명한 힘줄 조직으로 살짝 붙어있게 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찬찬히 살코기를 펼쳐냈는데, 자르고 펼치는 동작을 되풀이하면 마침내 고기가 도마 위에 번들거리면서 양념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머니는 그 고기에 비스듬히 칼집을 내고, 그 다음에는 두 손가락으로 설탕을 집어 비벼서 칼집에 하얀 설탕 결정을 부드럽게 뿌렸다. 설탕은 갈비살을 부드럽게 해주고 감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어머니는 그 과정을 갈비 한 대마다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는 야트막한 커다란 주발에 담아 한 쪽에 놓았다. 어머니는 마늘 대여섯 조각과 생강 한 뿌리를 다지고, 파 서너 뿌리를 송송 썰어서 고기에 골고루 흩뿌렸다. 두 손을 닦고서는 참기름 병을 꺼내고 잠시 쉬었다가 주발 위에서 두 바퀴를 돌리면서 검은 참기름을 쳤다. 간장병을 몇 번 기울여 뿌린 후에 어머니는 두 손을 집어넣어 고기를 주물렀는데, 뼈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왜 뼈가 붙어있는 게 중요한지를 물어보았다.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해,” 어머니는 말했다. “깊은 맛이 배어나오거든.” 어머니는 새끼손가락만 빼고 두 손에 묻은 양념을 닦았다. 어머니는 새끼손가락을 가끔씩 혀로 핥아보곤 했는데, 훌륭한 요리는 한번에 맛이 나오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우러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어머니가 하던 것과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늘 다진 것과 홍고추 채 썬 것과 새우 등을 준비하고, 그것들을 도마 위에 조그만 무더기로 쌓으면서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어떠한 요리법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각각의 요리가 목록이나 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마에서 퍼져나오는 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서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식사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특히 잔인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은 1990년의 송년의 밤이었다. 여동생은 갈비나 닭고기나 항상 그렇듯이 넘치게 차리는 한국 음식 대신에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고 조금씩 드실 수 있는, 손으로 집어먹어도 되는 음식을 몇가지 장만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날 유리로 된 거실 커피 탁자에 상을 차렸다.
나는 훈제 연어 카나페 한 접시를 준비했고, 두부를 조금 부쳤으며, 내 생각에 어머니가 즐길 수 있을 만한 다른 요리도 몇 가지 장만했다. 여동생은 접시를 놓으면서 조언을 했고, 조금 으스대며 요리를 하나하나 부모님께로 날랐다. 나는 맨 나중에 샴페인 한 병을 아이스 버킷에 담아 내왔다. 어머니는 소파 쪽으로 옮겨와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서는 낮은 커피 탁자를 살펴보셨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구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배가 고파지는데.”
이 말씀은 우리 모두를, 특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언제 시장기를 느끼거나 내가 요리한 무언가를 드셨는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연어 토스트 한 조각을 집어 들고 귀퉁이를 조금 베어 물었다. 잠시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리시다가 혀끝으로 밀어내자, 그 토스트 조각이 도로 접시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억지로 삼켰다, 마치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참으려는 것처럼. 그리고는 우리가 눈치 챘는지 보려고 올려다보았다.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부부침과 치즈 조금과, 그 다음에는 과일 한 조각을 먹으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 맛있는 걸.” 하지만 내가 이미 보람이 없다고 느끼면서 접시를 갑자기 내려놓는 바람에, 접시가 두꺼운 유리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날 뻔했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흐르다가 아버지가 내게, 맥없이 온화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날이 길었던 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마음이 놓였던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자정 무렵에 나는 샴페인 여러 잔을 따르고, 어머니께도 한 잔 드렸는데, 어머니는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어머니는 쾌활하고 들뜬 기분이 되었고, 나는 어머니가 침대까지 걸어가는 것을 부축했는데, 어머니는 그 침대에 누워 겨우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다.
토론하기
(1) 작가는 어머니가 했던 방식대로 요리를 하려고 애쓴다. 작가에게 어머니의 요리가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2) 갈비를 다듬는 과정에서 살코기가 뼈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머니는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깊은 맛이 배어 나온다고 설명한다. 왜 작가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지 생각해 보자.
(3)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 또는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과 관련해서 어떤 소중한 기억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 가정.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어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전통과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집에서는 한국음식을 해먹고,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로 아들을 집에서 떨어진 명문고등학교에 보낸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로 간 아들은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돈 안되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이 아버지는 못마땅하다. 농구선수였던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이민와서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아들은 부모와 달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서구적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간다. 어려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곁에 붙어있길 좋아하던 아들은 어머니와 점점 멀어진다.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어머니를 위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아들은 어린시절 어머니가 갈비를 다듬고 재던 모습을 기억한다. 특히 살코기가 뼈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갈비살을 얇게 저며내던 것을. 그리고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던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한다. 갈비의 살코기와 뼈는, 어쩌면 아들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떨어져 지내게 되고, 점점 멀어졌지만, 자신의 삶의 근원은 어머니에게 닿아 있고, 이 관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에 “깊은 맛”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에게 갈비의 뼈는 단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가족이며, 나아가 한국적 전통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가지의 언어, 두 가지의 문화를 동시에 살아내야 하는 이민가정 출신의 작가에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마치 갈비살에 깊은 맛을 주는 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가족, 갈비, 기억, 어머니, 음식, 이창래, 죽음
전후맥락
명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그만두고소설을 쓰겠다고 해 부모와 갈등을 빚는다. 말기암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집에 온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돌보며 가사일을 도맡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들은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상을 차린다. 그는 음식을 만들며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어머니 곁에 딱붙어 서서, 어머니가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에 재던 과정을 지켜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음식은 맛있었지만, 이민 가정 바깥의 미국생활에서 한국음식은 이방인의 것이었다. 학교에 도시락으로 김밥을 가져갔다가 냄새나는 이상한 음식이라고 놀림받았던 일은 상처로 남았다. 미국사회에서 미국인으로 자라고 어른이 된 작가에게 시간이 지나도 영어조차 서툰 어머니가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작가는 이제 어머니와 가족들을 위해 직접 어머니가 만들었던 음식을 만들고 있다.
고전본문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어머니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나는 매일매일 그러는 것이 즐거웠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나를 쫓아냈다. 주방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반쯤은 자랑스럽게, 또 반쯤은 자조적인 어조로 말씀하시면서, 어머니가 하는 그런 일들은 나를 약하게 만들 뿐일 거라고 덧붙이셨다. “친구들하고 나가 놀아라,” 어머니는 한국말로 딱 잘라 말했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는 게 더 낫겠다.” 어머니는 내가 두 가지를 모두 이미 다 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녁이 돼가면서 어머니의 조그맣고 잘 정돈된 주방 말고는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조리용 주발과 냄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주방에서부터 온 집안에 울려퍼졌다.
나는 조용히 주방에 들어가서 턱을 어머니 엉덩이 춤에 올려놓은 채 옆에 서있곤 했다. 어머니의 굽힌 팔 사이로, 나는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았다. 갈비를 재기 위해서, 어머니는 정육점에서 손질이 된 갈비를 갸름한 손으로 집어 들었는데, 단단한 뼈는 비행기 날개의 일부처럼 생겼고 연골과 살코기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어머니는 칼끝으로 뼈를 발라냈는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고 반투명한 힘줄 조직으로 살짝 붙어있게 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찬찬히 살코기를 펼쳐냈는데, 자르고 펼치는 동작을 되풀이하면 마침내 고기가 도마 위에 번들거리면서 양념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머니는 그 고기에 비스듬히 칼집을 내고, 그 다음에는 두 손가락으로 설탕을 집어 비벼서 칼집에 하얀 설탕 결정을 부드럽게 뿌렸다. 설탕은 갈비살을 부드럽게 해주고 감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어머니는 그 과정을 갈비 한 대마다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는 야트막한 커다란 주발에 담아 한 쪽에 놓았다. 어머니는 마늘 대여섯 조각과 생강 한 뿌리를 다지고, 파 서너 뿌리를 송송 썰어서 고기에 골고루 흩뿌렸다. 두 손을 닦고서는 참기름 병을 꺼내고 잠시 쉬었다가 주발 위에서 두 바퀴를 돌리면서 검은 참기름을 쳤다. 간장병을 몇 번 기울여 뿌린 후에 어머니는 두 손을 집어넣어 고기를 주물렀는데, 뼈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왜 뼈가 붙어있는 게 중요한지를 물어보았다.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해,” 어머니는 말했다. “깊은 맛이 배어나오거든.” 어머니는 새끼손가락만 빼고 두 손에 묻은 양념을 닦았다. 어머니는 새끼손가락을 가끔씩 혀로 핥아보곤 했는데, 훌륭한 요리는 한번에 맛이 나오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우러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어머니가 하던 것과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늘 다진 것과 홍고추 채 썬 것과 새우 등을 준비하고, 그것들을 도마 위에 조그만 무더기로 쌓으면서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어떠한 요리법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각각의 요리가 목록이나 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마에서 퍼져나오는 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서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식사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특히 잔인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은 1990년의 송년의 밤이었다. 여동생은 갈비나 닭고기나 항상 그렇듯이 넘치게 차리는 한국 음식 대신에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고 조금씩 드실 수 있는, 손으로 집어먹어도 되는 음식을 몇가지 장만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날 유리로 된 거실 커피 탁자에 상을 차렸다.
나는 훈제 연어 카나페 한 접시를 준비했고, 두부를 조금 부쳤으며, 내 생각에 어머니가 즐길 수 있을 만한 다른 요리도 몇 가지 장만했다. 여동생은 접시를 놓으면서 조언을 했고, 조금 으스대며 요리를 하나하나 부모님께로 날랐다. 나는 맨 나중에 샴페인 한 병을 아이스 버킷에 담아 내왔다. 어머니는 소파 쪽으로 옮겨와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서는 낮은 커피 탁자를 살펴보셨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구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배가 고파지는데.”
이 말씀은 우리 모두를, 특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언제 시장기를 느끼거나 내가 요리한 무언가를 드셨는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연어 토스트 한 조각을 집어 들고 귀퉁이를 조금 베어 물었다. 잠시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리시다가 혀끝으로 밀어내자, 그 토스트 조각이 도로 접시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억지로 삼켰다, 마치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참으려는 것처럼. 그리고는 우리가 눈치 챘는지 보려고 올려다보았다.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부부침과 치즈 조금과, 그 다음에는 과일 한 조각을 먹으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아, 맛있는 걸.” 하지만 내가 이미 보람이 없다고 느끼면서 접시를 갑자기 내려놓는 바람에, 접시가 두꺼운 유리에 부딪혀서 산산조각 날 뻔했다. 잠시 거북한 침묵이 흐르다가 아버지가 내게, 맥없이 온화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날이 길었던 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마음이 놓였던 것뿐이라고 대답했다.
자정 무렵에 나는 샴페인 여러 잔을 따르고, 어머니께도 한 잔 드렸는데, 어머니는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어머니는 쾌활하고 들뜬 기분이 되었고, 나는 어머니가 침대까지 걸어가는 것을 부축했는데, 어머니는 그 침대에 누워 겨우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다.
토론하기
(1) 작가는 어머니가 했던 방식대로 요리를 하려고 애쓴다. 작가에게 어머니의 요리가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2) 갈비를 다듬는 과정에서 살코기가 뼈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머니는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깊은 맛이 배어 나온다고 설명한다. 왜 작가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지 생각해 보자.
(3)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 또는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과 관련해서 어떤 소중한 기억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 가정.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어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전통과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집에서는 한국음식을 해먹고,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로 아들을 집에서 떨어진 명문고등학교에 보낸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로 간 아들은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돈 안되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아들이 아버지는 못마땅하다. 농구선수였던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이민와서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아들은 부모와 달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서구적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간다. 어려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곁에 붙어있길 좋아하던 아들은 어머니와 점점 멀어진다. 말기암으로 고통받는 어머니를 위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아들은 어린시절 어머니가 갈비를 다듬고 재던 모습을 기억한다. 특히 살코기가 뼈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갈비살을 얇게 저며내던 것을. 그리고 “고기에 뼈가 붙어있어야”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던 어머니의 말씀을 기억한다. 갈비의 살코기와 뼈는, 어쩌면 아들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떨어져 지내게 되고, 점점 멀어졌지만, 자신의 삶의 근원은 어머니에게 닿아 있고, 이 관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에 “깊은 맛”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작가에게 갈비의 뼈는 단지 어머니 뿐만 아니라, 가족이며, 나아가 한국적 전통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가지의 언어, 두 가지의 문화를 동시에 살아내야 하는 이민가정 출신의 작가에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마치 갈비살에 깊은 맛을 주는 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가족, 갈비, 기억, 어머니, 음식, 이창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