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돌아가신 목사님의 100세 생신 기념 만찬을 위해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귀한 식재료들을 구해 온다. 속속 도착하는 진귀한 재료들을 보고 마르티네와 필리페는 점차 불안에 휩싸인다. 특히 살아있는 거대한 바다거북을 본 마르니테는 어쩌면 바베트가 만찬에 독이 든 음식을 차려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지경이 되어 밤잠까지 설친다. 다음날 마르티네는 만찬에 초대받은 이웃 신도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한다. 이웃 신도들은 만찬 식탁에 어떤 음식이 나오든, 개구리 요리든 달팽이 요리든 그에 대해 한마디로 하기 않기로 약속한다. “어쨌든 혀란 작은 기관이지만 멋진 일들을 자랑하는 것이지요. 누구도 혀를 길들이지는 못해요. 제멋대로 구는 악당이자 치명적인 독이 가득한 것이 혀이지요. 우리 선생님을 기리는 날에 우리의 혀에서 모든 맛을 씻어내고 모든 쾌감과 불쾌감 없애 정화합시다. 오로지 찬양과 감사를 올리도록요.” 이렇게들 서로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멀리서 초대받은 손님들은 썰매를 타고 종소리를 울리며 하나씩 도착했다. 마침 아주머니 댁을 방문 중이던 로벤스 로벤히엘름 장군도 손님으로 왔다. 젊은날 마르티네를 사랑했던 잘생긴 장교였다. 그는 결혼했고 승승장구해 장군이 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만찬 손님 중 가장 성공한 인물로 대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마침내 식탁이 차려지고 풀코스의 프랑스 요리가 차례로 식탁에 오른다. 장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작은 마을에서 살았고, 금욕적인 교단의 교리에 따라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들은 대부분 맥주와 빵을 넣은 수프와 말린 대구요리를 주식으로 먹었고 바베트가 만든 프랑스 요리처럼 사치스런 음식은 맛본 적이 없었다.
고전본문
모두 자리에 앉자, 가장 나이 많은 신도가 목사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했다.
우리가 먹은 음식으로 몸을 지탱하고
우리 몸으로 영혼을 지탱하며
우리 영혼으로 말과 행동에서
주께 모든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음식’이라는 말에 신도들은 모은 손에 고개를 더 깊숙이 숙이며 그 주제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다시 한번 새겼다.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기를! 신도들은 신의 은총이 포도주 잔에 가득 넘치던 가나의 혼인잔치에 모인 하객들처럼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
바베트의 조수 노릇을 하는 소년이 사람들 앞에 놓인 작은 잔 하나하나에 포도주를 채웠다. 손님들은 서로의 다짐을 확인하듯 엄숙하게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포도주를 미심쩍은 듯 바라보다가 한 모금을 마시고는 깜짝 놀라 잔을 코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다시 잔을 들어올려 포도주를 살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거 참 놀랍군!’ 장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몬티야도 아닌가! 그것도 내가 마셔본 것 중 최상품 아몬티야도야.’ 잠시 후 장군은 자기 입맛이 잘못됐나 싶어 작은 수저로 수프를 떠먹어보았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한 술 더 떠먹어보고서야 수저를 내려놓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 그는 혼잣말을 했다. “이건 틀림없는 거북 수프야. 맛도 기가 막힌걸!” 장군은 뭔가에 사로잡힌 듯한 기분으로 잔을 비웠다.
베를레보그 사람들은 식사할 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왠지 사람들의 혀가 풀린 듯했다. 한 나이 든 형제는 자기가 목사님를 처음 만난 때에 관해 얘기했다. 또다른 형제는 육십 년 전 자신을 개종하게 만든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얘기했다. 마르티네가 음식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 털어놓았던 늙은 여인은, 신도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짐을 나누곤 했던 지난 시절을 이야기했다.
[…]
베를레보그 사람들은 잘 차린 음식을 먹을 때면 분위기가 진지했다. 그런데 오늘 밤은 달랐다. 먹고 마실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했던 약속을 일부러 상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음식에 대해 잊는 것뿐만 아니라 먹고 마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뭔가에 홀린 듯 식사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썰매마차를 타고 오면서 추억했던 파리에서의 만찬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더할 나위 없이 정성스럽고 맛있던 어떤 요리의 이름을 함께 식사했던 갈리페 대령에게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령은 ‘카유 앙 사르코파주’라고 알려주었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 요리는 그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개발한 것으로, 그 주방장은 파리 전체를 통틀어 당대 최고의 천재 요리사로 이름난 사람이라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요리사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여인은 카페 앙글레의 저녁을 일종의 사랑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네. 육체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희열 사이의 경계를 느낄 수 없는 고귀하고 낭만적인 사랑이지! 나는 이전에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결투한 적이 있네만, 이보게, 파리의 어떤 여자에게도 이보다 기꺼이 내 피를 바칠 순 없을 걸세!” 갈리페 대령은 당시 그렇게 말했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자기 왼쪽에 앉은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요리는 카유 앙 사르코파주입니다!”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장군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그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
그후에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손님들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는 것 외에는.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틔었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한때 서로를 욕했던 두 늙은 여인은 앙숙 같은 사이가 되기 훨씬 이전, 둘이 함께 견진성사를 준비하며 손을 맞잡고 끝도 없이 노래 부르며 베를레보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한 늙은 형제는 사내 아이들이 치고받듯이 옆의 형제의 옆구리를 툭 치며 소리쳤다. “니놈이 나랑 목재 거래할 때, 그때 날 속였지!” 이 소리를 들은 형제는 거의 고꾸라질 정도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랬다, 이 친구야. 내가 그랬어.” 할보르센 선장과 오페고르덴 부인은 어느새 방 한구석에 다정하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비밀스러운 사랑에서 도망치느라 못다나눈 긴 입맞춤을 했다.
목사의 오랜 신도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이날 저녁을 떠올릴 때, 그들이 그토록 고귀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 자신들이 지닌 가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신도들은 단지 로벤히엘름 장군이 말한 무한한 은총이 그들에게 허락되었다고 생각했고, 항상 소망하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 땅의 헛된 환상이 연기처럼 녹아 사라지고 만물이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신도들은 이렇게 저녁 시간 내내 축복을 누렸다.
토론하기
(1) 로벤히엘름 장군은 과거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 카페 앙글레의 천재 요리사가 음식을 ‘사랑’의 경지까지 승화시켰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그 여자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육체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희열 사이의 경계를 느낄 수 없는 고귀하고 낭만적인 사랑,” 즉 음식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비추어 바베트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 위 글에서 사람들은 바베트가 만든 만찬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밥을 먹고 친목을 다진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역할하는 것일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3) 요즘 우리 주변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 TV 방송과 광고에서, 인터넷 매체에서 맛집을 소개하고 먹방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을 찾고 먹어보고 싶어진다. 이와 관련해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식사전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베를레보그 사람들에게 ‘음식’은 몸을 지탱하고 나아가 영혼을 지탱해 주는 것이다.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그들은 목사님의 생일 만찬에 특별한 음식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이 바베트가 만든 그 특별한 음식을 즐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이상한 음식이 나오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참고 먹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과 그녀가 준비한 술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맛으로 그들의 ‘혀’를 놀라게 했고 나아가 그들의 혀가 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 음식과 술에 마음마저 가벼워진 사람들은 가슴깊이 간직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화려한 세상을 경험해 본 로벤히엘름 장군은 만찬의 음식이 과거 파리의 고급 식당 카페 앙글레에서 맛보았던 음식과 같은 요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카페 앙글레의 천재 요리사가 여자였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그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바베트의 과거를 짐작하게 된다. 파리 최고의 요리사였던 바베트는 1870년대 있었던 “파리코뮨”에 합류했다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노르웨이의 외딴 마을로 피신했던 것이다. 마르티네와 필리페 자매와 함께 지낸 12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천재적 요리실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금욕적이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이 마을에서 섬세한 고급 프랑스 요리를 찾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요리를 만들 재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복권당첨을 통해 1만 프랑이라는 거금이 생기자 바베트는 망설임없이 그 돈으로 자신을 돌보아준 은인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하기로 한다. 바베트가 만들어낸 음식은 “몸을 지탱하고” 나아가 “영혼을 지탱하며” 나아가 정신을 고양시키는 생명의 양식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인용한 본문에서 이 만찬을 성경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빗댄다. 또한 만찬에 참여한 사람은 12명으로 12제자가 참여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평생 육체의 욕구를 죄악시하며 금욕적 생활을 영위해 온 마르티나 자매를 비롯한 베를레보그 사람들에게 거북 수프에 최고급 포도주까지 등장하는 프랑스 요리는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좋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두고 음식을 대하자 그들은 혀가 경험하는 예술적인 맛을 통해 육체를 넘어 정신과 영혼까지 고양되는 경험을 한다. 물론 이자크 디네센 특유의 동화 풍의 단순화된 문체로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고양된 분위기는 마침내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는 표현에서 절정에 이른다.
「바베트의 만찬」은 프랑스 요리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을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왕가와 귀족들이 몰락하자 궁정과 귀족집안의 요리사들이 식당을 열었고, 특별한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고급 요리들을 누구나 돈만 내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다양한 해산물과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육류, 그리고 유제품을 재료로 다채롭고 고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프랑스 요리들이 탄생했고, 프랑스 요리의 품격은 기타 유럽 여러나라에서 지금까지 고급요리로 인식되고 있다. 「바베트의 만찬」의 배경이 되는 북구의 노르웨이 외딴 마을은 척박한 환경과 더불어 금욕적인 종교 공동체의 생활습관으로 프랑스요리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파리 최고의 요리사였던 바베트를 통해 그들이 그동안 금기시 해온 가장 사치스러운 프랑스 요리를 접하고 바베트의 특별한 재능을 통해 창조된 맛있는 요리를 맛보고 천상의 행복과 같은 고양된 경험을 하게된다는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사회에서 음식이 갖는 가치와 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키워드
바베트의 만찬, 사랑, 요리, 이자크 디네센
전후맥락
돌아가신 목사님의 100세 생신 기념 만찬을 위해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귀한 식재료들을 구해 온다. 속속 도착하는 진귀한 재료들을 보고 마르티네와 필리페는 점차 불안에 휩싸인다. 특히 살아있는 거대한 바다거북을 본 마르니테는 어쩌면 바베트가 만찬에 독이 든 음식을 차려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지경이 되어 밤잠까지 설친다. 다음날 마르티네는 만찬에 초대받은 이웃 신도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한다. 이웃 신도들은 만찬 식탁에 어떤 음식이 나오든, 개구리 요리든 달팽이 요리든 그에 대해 한마디로 하기 않기로 약속한다. “어쨌든 혀란 작은 기관이지만 멋진 일들을 자랑하는 것이지요. 누구도 혀를 길들이지는 못해요. 제멋대로 구는 악당이자 치명적인 독이 가득한 것이 혀이지요. 우리 선생님을 기리는 날에 우리의 혀에서 모든 맛을 씻어내고 모든 쾌감과 불쾌감 없애 정화합시다. 오로지 찬양과 감사를 올리도록요.” 이렇게들 서로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침부터 하얀 눈이 펑펑 쏟아졌다. 멀리서 초대받은 손님들은 썰매를 타고 종소리를 울리며 하나씩 도착했다. 마침 아주머니 댁을 방문 중이던 로벤스 로벤히엘름 장군도 손님으로 왔다. 젊은날 마르티네를 사랑했던 잘생긴 장교였다. 그는 결혼했고 승승장구해 장군이 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만찬 손님 중 가장 성공한 인물로 대도시의 화려한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마침내 식탁이 차려지고 풀코스의 프랑스 요리가 차례로 식탁에 오른다. 장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을 작은 마을에서 살았고, 금욕적인 교단의 교리에 따라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들은 대부분 맥주와 빵을 넣은 수프와 말린 대구요리를 주식으로 먹었고 바베트가 만든 프랑스 요리처럼 사치스런 음식은 맛본 적이 없었다.
고전본문
모두 자리에 앉자, 가장 나이 많은 신도가 목사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했다.
우리가 먹은 음식으로 몸을 지탱하고
우리 몸으로 영혼을 지탱하며
우리 영혼으로 말과 행동에서
주께 모든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음식’이라는 말에 신도들은 모은 손에 고개를 더 깊숙이 숙이며 그 주제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다시 한번 새겼다.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기를! 신도들은 신의 은총이 포도주 잔에 가득 넘치던 가나의 혼인잔치에 모인 하객들처럼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
바베트의 조수 노릇을 하는 소년이 사람들 앞에 놓인 작은 잔 하나하나에 포도주를 채웠다. 손님들은 서로의 다짐을 확인하듯 엄숙하게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포도주를 미심쩍은 듯 바라보다가 한 모금을 마시고는 깜짝 놀라 잔을 코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다시 잔을 들어올려 포도주를 살폈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거 참 놀랍군!’ 장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몬티야도 아닌가! 그것도 내가 마셔본 것 중 최상품 아몬티야도야.’ 잠시 후 장군은 자기 입맛이 잘못됐나 싶어 작은 수저로 수프를 떠먹어보았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한 술 더 떠먹어보고서야 수저를 내려놓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로군!” 그는 혼잣말을 했다. “이건 틀림없는 거북 수프야. 맛도 기가 막힌걸!” 장군은 뭔가에 사로잡힌 듯한 기분으로 잔을 비웠다.
베를레보그 사람들은 식사할 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왠지 사람들의 혀가 풀린 듯했다. 한 나이 든 형제는 자기가 목사님를 처음 만난 때에 관해 얘기했다. 또다른 형제는 육십 년 전 자신을 개종하게 만든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얘기했다. 마르티네가 음식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 털어놓았던 늙은 여인은, 신도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짐을 나누곤 했던 지난 시절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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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레보그 사람들은 잘 차린 음식을 먹을 때면 분위기가 진지했다. 그런데 오늘 밤은 달랐다. 먹고 마실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들이 했던 약속을 일부러 상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음식에 대해 잊는 것뿐만 아니라 먹고 마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뭔가에 홀린 듯 식사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썰매마차를 타고 오면서 추억했던 파리에서의 만찬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더할 나위 없이 정성스럽고 맛있던 어떤 요리의 이름을 함께 식사했던 갈리페 대령에게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령은 ‘카유 앙 사르코파주’라고 알려주었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 요리는 그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개발한 것으로, 그 주방장은 파리 전체를 통틀어 당대 최고의 천재 요리사로 이름난 사람이라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요리사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여인은 카페 앙글레의 저녁을 일종의 사랑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네. 육체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희열 사이의 경계를 느낄 수 없는 고귀하고 낭만적인 사랑이지! 나는 이전에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결투한 적이 있네만, 이보게, 파리의 어떤 여자에게도 이보다 기꺼이 내 피를 바칠 순 없을 걸세!” 갈리페 대령은 당시 그렇게 말했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자기 왼쪽에 앉은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요리는 카유 앙 사르코파주입니다!”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장군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물론이지요. 그게 아니면 뭐겠습니까?”
[…]
그후에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손님들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는 것 외에는.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틔었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 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한때 서로를 욕했던 두 늙은 여인은 앙숙 같은 사이가 되기 훨씬 이전, 둘이 함께 견진성사를 준비하며 손을 맞잡고 끝도 없이 노래 부르며 베를레보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한 늙은 형제는 사내 아이들이 치고받듯이 옆의 형제의 옆구리를 툭 치며 소리쳤다. “니놈이 나랑 목재 거래할 때, 그때 날 속였지!” 이 소리를 들은 형제는 거의 고꾸라질 정도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랬다, 이 친구야. 내가 그랬어.” 할보르센 선장과 오페고르덴 부인은 어느새 방 한구석에 다정하게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비밀스러운 사랑에서 도망치느라 못다나눈 긴 입맞춤을 했다.
목사의 오랜 신도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이날 저녁을 떠올릴 때, 그들이 그토록 고귀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 자신들이 지닌 가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신도들은 단지 로벤히엘름 장군이 말한 무한한 은총이 그들에게 허락되었다고 생각했고, 항상 소망하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 땅의 헛된 환상이 연기처럼 녹아 사라지고 만물이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신도들은 이렇게 저녁 시간 내내 축복을 누렸다.
토론하기
(1) 로벤히엘름 장군은 과거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 카페 앙글레의 천재 요리사가 음식을 ‘사랑’의 경지까지 승화시켰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그 여자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육체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희열 사이의 경계를 느낄 수 없는 고귀하고 낭만적인 사랑,” 즉 음식을 통해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비추어 바베트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2) 위 글에서 사람들은 바베트가 만든 만찬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밥을 먹고 친목을 다진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역할하는 것일까?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3) 요즘 우리 주변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 TV 방송과 광고에서, 인터넷 매체에서 맛집을 소개하고 먹방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을 찾고 먹어보고 싶어진다. 이와 관련해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해설읽기
식사전 기도에서 드러나듯이, 베를레보그 사람들에게 ‘음식’은 몸을 지탱하고 나아가 영혼을 지탱해 주는 것이다.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그들은 목사님의 생일 만찬에 특별한 음식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이 바베트가 만든 그 특별한 음식을 즐길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이상한 음식이 나오더라도 관대한 마음으로 참고 먹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과 그녀가 준비한 술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맛으로 그들의 ‘혀’를 놀라게 했고 나아가 그들의 혀가 풀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 음식과 술에 마음마저 가벼워진 사람들은 가슴깊이 간직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화려한 세상을 경험해 본 로벤히엘름 장군은 만찬의 음식이 과거 파리의 고급 식당 카페 앙글레에서 맛보았던 음식과 같은 요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카페 앙글레의 천재 요리사가 여자였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그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바베트의 과거를 짐작하게 된다. 파리 최고의 요리사였던 바베트는 1870년대 있었던 “파리코뮨”에 합류했다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노르웨이의 외딴 마을로 피신했던 것이다. 마르티네와 필리페 자매와 함께 지낸 12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천재적 요리실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금욕적이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이 마을에서 섬세한 고급 프랑스 요리를 찾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요리를 만들 재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복권당첨을 통해 1만 프랑이라는 거금이 생기자 바베트는 망설임없이 그 돈으로 자신을 돌보아준 은인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하기로 한다. 바베트가 만들어낸 음식은 “몸을 지탱하고” 나아가 “영혼을 지탱하며” 나아가 정신을 고양시키는 생명의 양식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인용한 본문에서 이 만찬을 성경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빗댄다. 또한 만찬에 참여한 사람은 12명으로 12제자가 참여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평생 육체의 욕구를 죄악시하며 금욕적 생활을 영위해 온 마르티나 자매를 비롯한 베를레보그 사람들에게 거북 수프에 최고급 포도주까지 등장하는 프랑스 요리는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좋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두고 음식을 대하자 그들은 혀가 경험하는 예술적인 맛을 통해 육체를 넘어 정신과 영혼까지 고양되는 경험을 한다. 물론 이자크 디네센 특유의 동화 풍의 단순화된 문체로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즐기면서 고양된 분위기는 마침내 “마치 수많은 작은 후광들이 하나로 합쳐져 거룩한 광채를 내기라도 한 듯 천상의 빛이 집 안을 가득 메웠다”는 표현에서 절정에 이른다.
「바베트의 만찬」은 프랑스 요리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을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왕가와 귀족들이 몰락하자 궁정과 귀족집안의 요리사들이 식당을 열었고, 특별한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었던 고급 요리들을 누구나 돈만 내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다양한 해산물과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육류, 그리고 유제품을 재료로 다채롭고 고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프랑스 요리들이 탄생했고, 프랑스 요리의 품격은 기타 유럽 여러나라에서 지금까지 고급요리로 인식되고 있다. 「바베트의 만찬」의 배경이 되는 북구의 노르웨이 외딴 마을은 척박한 환경과 더불어 금욕적인 종교 공동체의 생활습관으로 프랑스요리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파리 최고의 요리사였던 바베트를 통해 그들이 그동안 금기시 해온 가장 사치스러운 프랑스 요리를 접하고 바베트의 특별한 재능을 통해 창조된 맛있는 요리를 맛보고 천상의 행복과 같은 고양된 경험을 하게된다는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사회에서 음식이 갖는 가치와 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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