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흄은 인간의 본질을 이성에서 찾는 합리주의 전통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은 결코 이성에 따라서 살지 않으며, 감정이나 정념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성은 인간의 정념에 봉사하는 정도에서만 기능한다고 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흄은 인간을 정념 그 자체로 이해한다. 이성이라는 말하는 것도 사실은 정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고전본문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낳을 수 없고 의지를 일으킬 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직능은 의지를 막을 힘이 없거나 정념 또는 감정과 더불어서 특정 선호를 놓고 다툴 능력이 없다고 추론한다. 이성은 우리의 정념의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의 충동을 통해서만 의지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충동이 홀로 작동했다면, 의지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정념의 충동을 억제하거나 지체시킬 수 없다. 오직 반대되는 충동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일 이 반대되는 충동이 항상 이성에서 일어난다면, 이성은 의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영향을 틀림없이 미쳤을 것이고, 어떤 의지의 활동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성이 그렇게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성은 이러한 영향력을 가지거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멈출 수 있는 어떤 원리를 견디어내는 것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념에 맞서는 원리가 이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다만 부적절한 의미로서만 그렇게 불린다. 우리는 정념과 이성의 다툼에 대해서 말할 때 엄밀하게 그리고 철학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성은 여러 정념들의 노예이고 오직 그래야만 하고,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직능을 가진 것으로 가장할 수 없다. 이 생각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을 몇 가지 다른 고찰들을 통해서 확증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정념은 근원적 존재이다. 달리 말해서, 존재의 변형된 형태이고 어떤 다른 존재의 복제물 또는 변형된 형태로 여기게 하는 어떤 표상적 성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내가 화가 날 때 나는 실제로 정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나는 다른 어떤 대상을 더이상 가리키지 않는다. 목마를 때나,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정념이 진리와 이성에 반대되거나 모순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모순은 대상의 모사물인 관념들과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들과의 불일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출전]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토론하기
(1) 이성이 정념의 노예라는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
(2) 흄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정념이나 감정 그 자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그 이유를 말해보자.
(3) 이성과 감정(또는 정념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흄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보다는 감성적 존재로 이해한다. 흄의 견해를 비판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성과 감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자.
해설읽기
흄은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경험주의 철학자이다. 경험주의 철학자의 핵심적 주장은 인간의 경험을 진리의 기초로 삼는 것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대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정(또는 정념)을 이성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화된 감정을 갖춘 사람은 더욱 인간미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이런 사람은 흔하지 않다. 대게 사람들은 분노하고, 시기하고, 욕구를 참지 못한다. 이런 인간의 나쁜 감정들은 자신의 인간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피해를 준다. 바로 이성주의자들은 이런 이유에서 인간의 생각이 나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배가 고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빵을 훔치려는 충동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성은 그런 행동을 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성주의자들 생각에 대해서 경험주의자 흄은 다음과 같이 맞선다.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동의 기준, 즉 어떤 도덕적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덕적 규칙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 속에 이미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흄은 이러한 도덕적 규칙은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지 신이나 하늘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흄이 보이기에는 이성은 인간이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험주의자로서 흄은 우리가 경험하는 자나 타인들은 모두 깊은 생각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충동, 감정, 정념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관찰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의 감정, 정념 때문에 쉽게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들통이 났을 때 우리가 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바로 합리화와 변명이다. 변명을 할 때 우리는 사고 능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완화시키려 한다. 이 간단한 예만 보아도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정념에 봉사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흄의 이런 생각에 대해서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더 성숙한다면 그런 변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튼 흄은 이성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성적 인간보다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들을 자신의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흄에 따르면 이성은 정념을 이길만큼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정념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정념에 맞설 수 있는 다른 정념뿐이다. 가령,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자.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우리가 쉽게 미움의 감정을 이길 수 없다. 오히려 미움의 대상을 생각하면 할 수록 미움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대상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 미움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흄에게 이성은 정념의 종일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서 정념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기능에 불과하다.
키워드
감성, 경험, 경험주의, 이성, 이성주의, 정념
전후맥락
흄은 인간의 본질을 이성에서 찾는 합리주의 전통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은 결코 이성에 따라서 살지 않으며, 감정이나 정념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성은 인간의 정념에 봉사하는 정도에서만 기능한다고 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흄은 인간을 정념 그 자체로 이해한다. 이성이라는 말하는 것도 사실은 정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고전본문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낳을 수 없고 의지를 일으킬 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직능은 의지를 막을 힘이 없거나 정념 또는 감정과 더불어서 특정 선호를 놓고 다툴 능력이 없다고 추론한다. 이성은 우리의 정념의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의 충동을 통해서만 의지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충동이 홀로 작동했다면, 의지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정념의 충동을 억제하거나 지체시킬 수 없다. 오직 반대되는 충동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일 이 반대되는 충동이 항상 이성에서 일어난다면, 이성은 의지에 대해서 근본적인 영향을 틀림없이 미쳤을 것이고, 어떤 의지의 활동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성이 그렇게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성은 이러한 영향력을 가지거나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멈출 수 있는 어떤 원리를 견디어내는 것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념에 맞서는 원리가 이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다만 부적절한 의미로서만 그렇게 불린다. 우리는 정념과 이성의 다툼에 대해서 말할 때 엄밀하게 그리고 철학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성은 여러 정념들의 노예이고 오직 그래야만 하고,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직능을 가진 것으로 가장할 수 없다. 이 생각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주장을 몇 가지 다른 고찰들을 통해서 확증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정념은 근원적 존재이다. 달리 말해서, 존재의 변형된 형태이고 어떤 다른 존재의 복제물 또는 변형된 형태로 여기게 하는 어떤 표상적 성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내가 화가 날 때 나는 실제로 정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나는 다른 어떤 대상을 더이상 가리키지 않는다. 목마를 때나,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정념이 진리와 이성에 반대되거나 모순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모순은 대상의 모사물인 관념들과 그것이 나타내는 대상들과의 불일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출전]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토론하기
(1) 이성이 정념의 노예라는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보자.
(2) 흄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정념이나 감정 그 자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반대한다면 그 이유를 말해보자.
(3) 이성과 감정(또는 정념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흄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보다는 감성적 존재로 이해한다. 흄의 견해를 비판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성과 감정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자.
해설읽기
흄은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경험주의 철학자이다. 경험주의 철학자의 핵심적 주장은 인간의 경험을 진리의 기초로 삼는 것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대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해한다.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정(또는 정념)을 이성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화된 감정을 갖춘 사람은 더욱 인간미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이런 사람은 흔하지 않다. 대게 사람들은 분노하고, 시기하고, 욕구를 참지 못한다. 이런 인간의 나쁜 감정들은 자신의 인간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피해를 준다. 바로 이성주의자들은 이런 이유에서 인간의 생각이 나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배가 고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빵을 훔치려는 충동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성은 그런 행동을 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성주의자들 생각에 대해서 경험주의자 흄은 다음과 같이 맞선다.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동의 기준, 즉 어떤 도덕적 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덕적 규칙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 속에 이미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흄은 이러한 도덕적 규칙은 살아가면서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지 신이나 하늘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흄이 보이기에는 이성은 인간이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험주의자로서 흄은 우리가 경험하는 자나 타인들은 모두 깊은 생각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충동, 감정, 정념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관찰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의 감정, 정념 때문에 쉽게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들통이 났을 때 우리가 보이는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바로 합리화와 변명이다. 변명을 할 때 우리는 사고 능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완화시키려 한다. 이 간단한 예만 보아도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정념에 봉사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흄의 이런 생각에 대해서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더 성숙한다면 그런 변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무튼 흄은 이성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성적 인간보다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는 사람들을 자신의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흄에 따르면 이성은 정념을 이길만큼 그렇게 강력하지 않다. 정념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정념에 맞설 수 있는 다른 정념뿐이다. 가령,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하자.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우리가 쉽게 미움의 감정을 이길 수 없다. 오히려 미움의 대상을 생각하면 할 수록 미움의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대상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 미움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흄에게 이성은 정념의 종일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해서 정념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기능에 불과하다.
키워드
감성, 경험, 경험주의, 이성, 이성주의, 정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