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이성주의자 데카르트는 말년에 인간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념론』이라는 책을 썼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과 신체가 엄격하게 분리된다고 생각한 이원론자였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이러한 분리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영혼과 신체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카르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영혼과 신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합되어 있다면 신체에서 일어나는 정념과 영혼 사이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념에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나쁜 정념들이 있다. 영혼이 이 나쁜 정념들을 의지를 활용해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고전본문
영혼의 약함 또는 강함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약한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 영혼의 힘이나 약함을 알수 있는 것은 바로 내면의 전투의 성공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의지가 가장 쉽게 정념들을 정복하고 정념을 수반하는 신체의 운동을 멈추게 하는 자들은 틀림 없이 가장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그들의 의지를 싸우게 하지 않고, 다른 정념에 맞서기 위하여 어떤 정념들이 그에게 제공해 주는 무기만으로 싸우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입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 자신의 무기라고 명명한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과 관련한 굳세고 결연한 판단력이다. 이것들에 따라서 영혼은 자신의 삶의 행동을 이끌기를 결단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약한 영혼들은 그 의지가 전혀 단호하지 못해서 어떤 판단을 따르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당장 일어나는 정념들에 계속해서 이끌린다. 그 정념들은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서, 영혼을 돌아가면서 끌어 당겨, 영혼 스스로와 싸우도록 이용하여 영혼이 가장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 가령, 두려움은 극단적인 악으로서 죽음을 표상할 때 도피를 통해서만 회피될 수 있게 한다. 만일 야망이 죽음보다 더 나쁜 악으로서 이 도피가 주는 불명예를 나타낸다면, 이 두 정념들은 다르게 의지를 동요시킨다. 의지는 어떤 때는 이 정념에, 어떤 때에는 다른 정념에 의해 움직이고, 자기 자신 안에서 계속해서 서로 대립하게 되어 영혼을 노예로 만들어 불행하게 한다.
[출전] 데카르트, 『정념론』
토론하기
(1) 데카르트는 영혼의 강함과 약함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2) 데카르트는 왜 영혼이 인간의 정념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3) 정념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정념(또는 감정)은 삶에서 인간성을 윤택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 관계는 메마르고 형식적이 될 것이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감정들도 있다. 분노, 미움, 시기와 같은 감정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파괴하는 나쁜 감정들이다. 윗글에서 데카르트가 문제 삼고 있는 정념들은 바로 이런 나쁜 종류의 정념들이다. 데카르트가 정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가 인간의 신체와 영혼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찰 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에 비유한다. 이러한 관점은 데카르트 이전에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체관과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영혼은 신체의 근본적인 핵이다. 이 경우 신체는 순수한 의미에서 물질이라기보다는 물질과 영혼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복합체이다. 데카르트는 신체를 순수한 물질로 보면 인간을 근대 자연과학이 연구하는 방식으로 연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신체를 기계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신체를 기계로 간주한다면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데카르트는 영혼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었다. 영혼이 신체에 영향을 미쳐서 신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영혼은 신체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은 물질이 아닌데 신체의 특정한 곳에 있다고 하면 문제가 된다.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송과선이라는 장치를 설정한다. 송과선이란 영혼과 신체를 연결해 주는 솔방울 모양의 기관이다. 이것을 통해서 영혼과 신체는 연결되지만 둘은 분리되어 있다고 데카르트는 설명한다. 다소 엉뚱한 해결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는 적어도 영혼과 신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정념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다. 나쁜 정념은 영혼이 아니라 신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영혼은 의지를 사용해서 신체에서 발생하는 나쁜 정념을 제어해야만 건전하고 미덕을 갖춘 삶을 살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이 제어에 실패한다면 영혼은 정념의 지배를 받아서 서로 모순되는 정념들의 영혼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 영혼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성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정념을 이성을 통해서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키워드
감정, 신체와 영혼, 이성, 정념
전후맥락
이성주의자 데카르트는 말년에 인간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념론』이라는 책을 썼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과 신체가 엄격하게 분리된다고 생각한 이원론자였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이러한 분리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영혼과 신체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카르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영혼과 신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합되어 있다면 신체에서 일어나는 정념과 영혼 사이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념에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나쁜 정념들이 있다. 영혼이 이 나쁜 정념들을 의지를 활용해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고전본문
영혼의 약함 또는 강함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약한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 영혼의 힘이나 약함을 알수 있는 것은 바로 내면의 전투의 성공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의지가 가장 쉽게 정념들을 정복하고 정념을 수반하는 신체의 운동을 멈추게 하는 자들은 틀림 없이 가장 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그들의 의지를 싸우게 하지 않고, 다른 정념에 맞서기 위하여 어떤 정념들이 그에게 제공해 주는 무기만으로 싸우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입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 자신의 무기라고 명명한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과 관련한 굳세고 결연한 판단력이다. 이것들에 따라서 영혼은 자신의 삶의 행동을 이끌기를 결단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약한 영혼들은 그 의지가 전혀 단호하지 못해서 어떤 판단을 따르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당장 일어나는 정념들에 계속해서 이끌린다. 그 정념들은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서, 영혼을 돌아가면서 끌어 당겨, 영혼 스스로와 싸우도록 이용하여 영혼이 가장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한다. 가령, 두려움은 극단적인 악으로서 죽음을 표상할 때 도피를 통해서만 회피될 수 있게 한다. 만일 야망이 죽음보다 더 나쁜 악으로서 이 도피가 주는 불명예를 나타낸다면, 이 두 정념들은 다르게 의지를 동요시킨다. 의지는 어떤 때는 이 정념에, 어떤 때에는 다른 정념에 의해 움직이고, 자기 자신 안에서 계속해서 서로 대립하게 되어 영혼을 노예로 만들어 불행하게 한다.
[출전] 데카르트, 『정념론』
토론하기
(1) 데카르트는 영혼의 강함과 약함을 어떻게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2) 데카르트는 왜 영혼이 인간의 정념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3) 정념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정념(또는 감정)은 삶에서 인간성을 윤택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 관계는 메마르고 형식적이 될 것이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감정들도 있다. 분노, 미움, 시기와 같은 감정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파괴하는 나쁜 감정들이다. 윗글에서 데카르트가 문제 삼고 있는 정념들은 바로 이런 나쁜 종류의 정념들이다. 데카르트가 정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가 인간의 신체와 영혼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찰 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에 비유한다. 이러한 관점은 데카르트 이전에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체관과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영혼은 신체의 근본적인 핵이다. 이 경우 신체는 순수한 의미에서 물질이라기보다는 물질과 영혼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복합체이다. 데카르트는 신체를 순수한 물질로 보면 인간을 근대 자연과학이 연구하는 방식으로 연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신체를 기계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신체를 기계로 간주한다면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데카르트는 영혼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었다. 영혼이 신체에 영향을 미쳐서 신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영혼은 신체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혼은 물질이 아닌데 신체의 특정한 곳에 있다고 하면 문제가 된다.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송과선이라는 장치를 설정한다. 송과선이란 영혼과 신체를 연결해 주는 솔방울 모양의 기관이다. 이것을 통해서 영혼과 신체는 연결되지만 둘은 분리되어 있다고 데카르트는 설명한다. 다소 엉뚱한 해결처럼 보이지만, 데카르트는 적어도 영혼과 신체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정념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다. 나쁜 정념은 영혼이 아니라 신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영혼은 의지를 사용해서 신체에서 발생하는 나쁜 정념을 제어해야만 건전하고 미덕을 갖춘 삶을 살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이 제어에 실패한다면 영혼은 정념의 지배를 받아서 서로 모순되는 정념들의 영혼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 영혼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이성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정념을 이성을 통해서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키워드
감정, 신체와 영혼, 이성, 정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