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래 고전 본문은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흄의 입장을 기술하는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우선, 흄은 자아라는 관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철학자들의 견해에 문제를 제기한다. 흄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관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관념의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흄은 이를 인상이라고 부른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내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수많은 감각적인 인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다. 아래 본문에서 흄은 이런 사고 실험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아가 실제로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흄에 따르면 인간의 상상력은 유사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상상력은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유사한 것들이 계속 연결되고 있다. 그 때문에 마음을 마치 변하지 않는 하나의 통일체로 여기는 것이다.
고전본문
내가 나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갈 때, 나는 열이나 냉기, 빛이나 어두움, 사랑이나 미움, 고통과 쾌락과 같은 이런저런 특정한 지각(知覺)과 늘 만나게 된다. 지각 없이는 잠시도 나는 결코 나 자신을 포착할 수 없고, 지각 외에는 어떤 것도 관찰할 수 없다. 언제든 내가 깊이 잠들 때처럼 지각들이 없어질 때,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을 의식할 수 없고, 진정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지각들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데, 나의 몸이 분해된 이후에는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볼 수도, 사랑하지도, 미워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고, 나를 완전한 비존재로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이 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진지하고 공평한 생각을 한 후에 그 자신에 대해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나처럼 옳을 수 있다는 것뿐이고, 이 특정한 사안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아마도 그는 그 자신이라고 부르는 단순하고 지속적인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그러한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어떤 형이상학자들을 제쳐놓고 나는 나머지 인류에 대해서 그들이 다양한 지각들의 묶음 또는 집합일뿐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 지각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이어져 있으며 항구적인 흐름과 운동 속에 있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지각들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의 시각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다. 그리고 다른 감각들과 기관들은 이 변화에 기여한다. 아마 한순간도 변하지 않고 동일하게 남아 있는 영혼의 어떤 단일한 힘은 없다. 우리의 마음은 일종의 극장이다. 여기에서 여러 지각들이 연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가고, 다시 지나가고,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다양한 자세와 상황 속에서 뒤섞인다. 사실 정신은 한순간도 단순하거나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정신을 단순하고, 동일하다고 여기는 모종의 자연적 성향이 있다. 극장에 비유하는 것이 우리를 잘못 이끌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마음을 구성하는 것으로 오직 연속되는 지각일 뿐이다.
– 데이비드 흄,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권 4부 중
토론하기
(1) 위에서 흄은 인간의 마음을 극장에 비유했는데, 이 비유가 뜻하는 바를 말해보자.
(2) 흄은 마치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입장에 대해 반박해 보자.
(3) 우리는 내면을 관찰하면서 나 자신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해설읽기
흄은 서양 지성사에서 극단적인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영국의 문필가이다. 경험주의란 인간의 앎의 자료를 기본적으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가령, 인간의 본성을 신이나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이라고 여기는 입장은 이성주의적 입장이다. 반면, 인간의 본성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획득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경험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경험주의에도 이성주의적 요소가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앎을 이루는 주된 기초를 경험에 두는지, 아니면 이성에 두는지에 따라 편의상 둘을 구분하는 것뿐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자아를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말하거나, 그것을 세계의 합리적 질서의 일부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이때 자아는 인간의 경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면, 경험주의에서는 우리의 자아에 대한 관념이 경험에 근거해 있다고 본다. 흄은 이런 경험주의적 입장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 이 말은 인간의 마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주인인 내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해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흄은 이러한 일반적인 자아에 대한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흄은 마치 해부학자가 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해부한다. 흄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랑, 미움, 고통, 쾌락 등을 지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보통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각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우리는 미움이 사랑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기도 하고, 고통이 쾌락으로 쾌락이 고통으로 변하는 경험을 한다. 마음이 이러한 지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과연 고정되어 있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흄은 인간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이러한 감정들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감정의 소멸과 더불어서 사라진다. 흄은 인간의 자아란, ‘다양한 지각들의 묶음 또는 집합’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말은 지각들을 통일시키는 독립된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각들의 모음 자체가 인간의 자아라는 말이다. 또한 흄은 인간의 마음을 극장에 비유한다. 극장의 빈 무대는 인간의 마음과 같다. 그리고 여러 연기자들, 소품들, 상황들이 모아져 한 편의 연극이 상연된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데, 마치 인간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연극들이 마음 속에서 상연되고 있다. 마음속에서는 일관된 스토리들이 연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자아라는 연출자는 없다. 오직 인간의 마음 밖에서 들어온 배우, 소품, 스토리들이 엮어져 마음속에서 한 편의 연극을 상연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관념, 상상력, 인상, 자아
전후맥락
아래 고전 본문은 인격의 동일성에 대한 흄의 입장을 기술하는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우선, 흄은 자아라는 관념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철학자들의 견해에 문제를 제기한다. 흄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관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그 관념의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흄은 이를 인상이라고 부른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내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수많은 감각적인 인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자아를 발견할 수는 없다. 아래 본문에서 흄은 이런 사고 실험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아가 실제로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흄에 따르면 인간의 상상력은 유사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상상력은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유사한 것들이 계속 연결되고 있다. 그 때문에 마음을 마치 변하지 않는 하나의 통일체로 여기는 것이다.
고전본문
내가 나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갈 때, 나는 열이나 냉기, 빛이나 어두움, 사랑이나 미움, 고통과 쾌락과 같은 이런저런 특정한 지각(知覺)과 늘 만나게 된다. 지각 없이는 잠시도 나는 결코 나 자신을 포착할 수 없고, 지각 외에는 어떤 것도 관찰할 수 없다. 언제든 내가 깊이 잠들 때처럼 지각들이 없어질 때,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을 의식할 수 없고, 진정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지각들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데, 나의 몸이 분해된 이후에는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볼 수도, 사랑하지도, 미워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완전히 없어지게 될 것이고, 나를 완전한 비존재로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이 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진지하고 공평한 생각을 한 후에 그 자신에 대해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나처럼 옳을 수 있다는 것뿐이고, 이 특정한 사안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아마도 그는 그 자신이라고 부르는 단순하고 지속적인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 그러한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어떤 형이상학자들을 제쳐놓고 나는 나머지 인류에 대해서 그들이 다양한 지각들의 묶음 또는 집합일뿐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 지각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이어져 있으며 항구적인 흐름과 운동 속에 있다. 우리의 눈은 우리의 지각들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의 시각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다. 그리고 다른 감각들과 기관들은 이 변화에 기여한다. 아마 한순간도 변하지 않고 동일하게 남아 있는 영혼의 어떤 단일한 힘은 없다. 우리의 마음은 일종의 극장이다. 여기에서 여러 지각들이 연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가고, 다시 지나가고,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다양한 자세와 상황 속에서 뒤섞인다. 사실 정신은 한순간도 단순하거나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정신을 단순하고, 동일하다고 여기는 모종의 자연적 성향이 있다. 극장에 비유하는 것이 우리를 잘못 이끌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마음을 구성하는 것으로 오직 연속되는 지각일 뿐이다.
– 데이비드 흄, 『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권 4부 중
토론하기
(1) 위에서 흄은 인간의 마음을 극장에 비유했는데, 이 비유가 뜻하는 바를 말해보자.
(2) 흄은 마치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입장에 대해 반박해 보자.
(3) 우리는 내면을 관찰하면서 나 자신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해설읽기
흄은 서양 지성사에서 극단적인 경험주의를 대표하는 영국의 문필가이다. 경험주의란 인간의 앎의 자료를 기본적으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가령, 인간의 본성을 신이나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이라고 여기는 입장은 이성주의적 입장이다. 반면, 인간의 본성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획득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경험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경험주의에도 이성주의적 요소가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앎을 이루는 주된 기초를 경험에 두는지, 아니면 이성에 두는지에 따라 편의상 둘을 구분하는 것뿐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자아를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말하거나, 그것을 세계의 합리적 질서의 일부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이때 자아는 인간의 경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면, 경험주의에서는 우리의 자아에 대한 관념이 경험에 근거해 있다고 본다. 흄은 이런 경험주의적 입장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 이 말은 인간의 마음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주인인 내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해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흄은 이러한 일반적인 자아에 대한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흄은 마치 해부학자가 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해부한다. 흄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랑, 미움, 고통, 쾌락 등을 지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지각이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보통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각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우리는 미움이 사랑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기도 하고, 고통이 쾌락으로 쾌락이 고통으로 변하는 경험을 한다. 마음이 이러한 지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과연 고정되어 있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흄은 인간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이러한 감정들도 함께 사라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감정의 소멸과 더불어서 사라진다. 흄은 인간의 자아란, ‘다양한 지각들의 묶음 또는 집합’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말은 지각들을 통일시키는 독립된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각들의 모음 자체가 인간의 자아라는 말이다. 또한 흄은 인간의 마음을 극장에 비유한다. 극장의 빈 무대는 인간의 마음과 같다. 그리고 여러 연기자들, 소품들, 상황들이 모아져 한 편의 연극이 상연된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데, 마치 인간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연극들이 마음 속에서 상연되고 있다. 마음속에서는 일관된 스토리들이 연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자아라는 연출자는 없다. 오직 인간의 마음 밖에서 들어온 배우, 소품, 스토리들이 엮어져 마음속에서 한 편의 연극을 상연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관념, 상상력, 인상,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