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신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가 믿는 신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신처럼 세계를 초월해 있는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이 세계 자체이다. 신은 세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 안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영혼과 신체 사이에 대한 기성의 관점에 도전한다. 영혼이 신체와 구분되어 있다면 영혼은 신체를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신은 영혼으로도 신체로도 자기 스스로를 표현한다. 따라서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병행하면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선과 악의 문제도 설명된다. 영혼이 신체와 구분되어 있다면 절대적인 선과 악의 관념을 영혼이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두 부분이 동전의 앞뒤처럼 연결되어 있다면 선과 악의 문제를 영혼의 문제로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선과 악은 육체와 관련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육체는 자신을 보존해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하고, 자기 보존을 막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과 악은 절대적인 관념이 아니라, 상황과 관점에 따라서 달리 규정된다.
고전본문
선과 악에 관하여 말하자면, 어떤 것들이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각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사물들 사이에서 비교을 하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생각들에 불과하다. 사실, 같은 사물이 선하거나 동시에 나쁠 수 있다. 가령,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못하다. 하지만, 귀머거리에게 음악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실이 그렇지만, 그렇다고 선과 악의 개념을 보존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서 인간에 대한 관념을 우리가 갖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말한 그런 개념으로 말이다. 따라서 선하다는 말은 우리가 제시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수단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다. 반면, 악이란 우리가 그 전형적 본성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이 전형에 얼마나 가까워지느냐에 따라서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스피노자 『 에티카』 제4부 중에서
토론하기
(1) 스피노자가 말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개념과 다른 점을 말해 보자.
(2) 자신의 선악에 대한 관점이 다른 친구와 달랐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3) 만일 절대적인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스피노자도 인정하듯이 선과 악의 개념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정립하면 좋을까?
해설읽기
일상에서 우리가 선하다, 악하다 하는 말은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이 사람은 참 선한 사람이고,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지가 떠오른다. 선한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고, 악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선과 악은 절대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도 악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우리에게 낯설지만 일리가 있어 보이는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선과 악은 상대적이다. 보기에 따라서 같은 행동도 나쁘거나 선할 수 있다. 그가 든 예처럼 음악이 어떤 사람에게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스피노자의 선과 악의 개념은 절대적인 선과 악을 제시하는 종교적 입장과는 대비된다. 특히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선과 악의 관념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고, 신이 싫어하는 것은 악으로 간주된다. 가령, 기독교에서는 살인, 간음, 위증, 불효 같은 것은 악한 행동으로 간주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악에 대한 관점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가령, 이런 관점에서는 선과 악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준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기준에 부합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부합하지 못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부과된 선과 악이 특정한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서 부여되는 경우들도 있다. 교실에서 힘 있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순응하는 친구는 선한 친구고, 그렇지 않은 친구는 나쁜 친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학생에게 복종하지 않는 학생들은 부당하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가 살던 시대의 종교는 스피노자에게 분명 억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선과 악의 문제를 유익성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선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악이다. 그렇다고 스피노자가 인간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완전함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 자기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선이고, 방해하는 것은 악이다. 우리는 자기가 되고자 하는 바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규칙이나 규범이 인간을 통제하는 순간 예속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키워드
전후맥락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신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가 믿는 신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신처럼 세계를 초월해 있는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이 세계 자체이다. 신은 세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 안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영혼과 신체 사이에 대한 기성의 관점에 도전한다. 영혼이 신체와 구분되어 있다면 영혼은 신체를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신은 영혼으로도 신체로도 자기 스스로를 표현한다. 따라서 신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병행하면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선과 악의 문제도 설명된다. 영혼이 신체와 구분되어 있다면 절대적인 선과 악의 관념을 영혼이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두 부분이 동전의 앞뒤처럼 연결되어 있다면 선과 악의 문제를 영혼의 문제로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선과 악은 육체와 관련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육체는 자신을 보존해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하고, 자기 보존을 막는 것을 악이라고 한다. 따라서 선과 악은 절대적인 관념이 아니라, 상황과 관점에 따라서 달리 규정된다.
고전본문
선과 악에 관하여 말하자면, 어떤 것들이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각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사물들 사이에서 비교을 하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생각들에 불과하다. 사실, 같은 사물이 선하거나 동시에 나쁠 수 있다. 가령,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지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못하다. 하지만, 귀머거리에게 음악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실이 그렇지만, 그렇다고 선과 악의 개념을 보존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서 인간에 대한 관념을 우리가 갖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말한 그런 개념으로 말이다. 따라서 선하다는 말은 우리가 제시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수단을 우리가 안다는 것이다. 반면, 악이란 우리가 그 전형적 본성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이 전형에 얼마나 가까워지느냐에 따라서 더 완전하거나 덜 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스피노자 『 에티카』 제4부 중에서
토론하기
(1) 스피노자가 말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선과 악의 개념과 다른 점을 말해 보자.
(2) 자신의 선악에 대한 관점이 다른 친구와 달랐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3) 만일 절대적인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스피노자도 인정하듯이 선과 악의 개념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선과 악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정립하면 좋을까?
해설읽기
일상에서 우리가 선하다, 악하다 하는 말은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이 사람은 참 선한 사람이고,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지가 떠오른다. 선한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고, 악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선과 악은 절대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도 악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우리에게 낯설지만 일리가 있어 보이는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선과 악은 상대적이다. 보기에 따라서 같은 행동도 나쁘거나 선할 수 있다. 그가 든 예처럼 음악이 어떤 사람에게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스피노자의 선과 악의 개념은 절대적인 선과 악을 제시하는 종교적 입장과는 대비된다. 특히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선과 악의 관념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신이 원하는 것은 선이고, 신이 싫어하는 것은 악으로 간주된다. 가령, 기독교에서는 살인, 간음, 위증, 불효 같은 것은 악한 행동으로 간주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악에 대한 관점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가령, 이런 관점에서는 선과 악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준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기준에 부합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부합하지 못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부과된 선과 악이 특정한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서 부여되는 경우들도 있다. 교실에서 힘 있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순응하는 친구는 선한 친구고, 그렇지 않은 친구는 나쁜 친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학생에게 복종하지 않는 학생들은 부당하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스피노자는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가 살던 시대의 종교는 스피노자에게 분명 억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선과 악의 문제를 유익성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선이고, 그렇지 않는 것은 악이다. 그렇다고 스피노자가 인간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완전함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 자기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선이고, 방해하는 것은 악이다. 우리는 자기가 되고자 하는 바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규칙이나 규범이 인간을 통제하는 순간 예속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