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흄은 인간의 이성은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성의 기능은 기껏해야 행동을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로 제한된다. 흄이 이렇게 이성의 능력을 폄하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철저한 경험주의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아직 경험하지 않는 것을 마치 미리 경험한 것처럼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성향이 있다. 이성주의자들은 해가 오늘 떴기 때문에 내일도 뜬다고 주장하겠지만, 흄의 사고 방식에서는 내일 정말 해가 뜰 것인지는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이다. 흄의 입장에서 이성주의자들은 그저 개연적 지식을 과학적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덕의 문제에서도 이성주의자들은 자연법칙과 같은 보편적 도덕 원리가 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흄은 도덕 규범도 인간의 경험,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의 감정적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전본문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들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자연 질서에 어긋나는 범죄는 배은망덕한 범죄이다. 특히 자식이 부모에게 저지르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가장 나쁜데, 그중에서 부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는 더욱더 극악한 행위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에서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가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이 행동의 죄책이나 도덕적 추함이 논증적 추론을 통해 발견되는지, 아니면 내적인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지, 어떤 행동을 반성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어떤 감성에 의해서인지 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쟁의 대상이 된다. 만일 우리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아닌 다른 사물들 사이의 관계들에서 죄책이나 불법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도덕적 판단이 이성에 근거한다는 견해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성 또는 학문은 관념들을 비교하고 그 관념들 사이의 관계들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일 동일한 논리적 관계에 있지만 성격이 다른 경우가 있다면, 진리가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참나무나 느릅나무와 같은 생명이 없는 대상을 선택해 보자. 이 나무는 자기 씨를 떨어뜨려 자기 아래에서 묘목을 키운다. 그리고 묘목이 점점 자라 마침내 어미 나무보다 더 높이 솟아 어미 나무를 죽인다고 가정해 보자. 존속살인이나 배은망덕한 범죄에서 볼 수 있는 관계가 이 경우에도 형식적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어미 나무는 묘목의 원인이 아닌가? 그리고 자식이 그 부모를 살해할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묘목은 어미 나무를 죽인 원인이 되지 않는가? (..) 자식이 부모를 죽일지 결정하는 것은 의지나 선택에 의한 것이고, 묘목이 어미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질과 운동의 법칙에 의해서다. 두 경우 같은 관계이지만 원인은 다르다. 두 경우 모두 부도덕함의 관념이 수반되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부도덕성의 관념은 관념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중
토론하기
(1) 흄은 이성적, 학문적 지식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2) 흄이 도덕성을 이성에서 찾으려는 관점을 어떤 식으로 반박하고 있는지, 흄이 사용한 사례를 가지고 말해보자.
(3) 도덕의 기초를 이성이 아닌 경험에 둘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악하다고 판단하고 그를 몹시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근거로 이 사람을 비난하는 걸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성이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양 문명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정의했고, 이 점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시켜주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해했다. 여기서 이성은 추리, 계산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위 본문에서 흄은 도덕성이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흄의 주장에는 인간이 경험하지 않은 지식은 진정한 앎이라고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흄의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도덕 법칙이란 살인 행위가 나쁘다는 경험이 쌓여 인간 사회에서 생겨난 규칙 정도이다. 흄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성은 정념-교만, 분노, 사랑, 미움 등-의 노예’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생각하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느끼게 된다. 흄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느낌을 고통과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두 정서에 반응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악이라고 하고, 쾌락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쾌락만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면,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갈등이 있음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흄은 그 이유를 인간이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타인도 좋아하고,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타인도 피한다는 사실을 공감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사회가 도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살인의 경우 우리는 심한 불쾌감과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이런 정서가 모든 사람에게 공유될 때,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흄의 경험주의적 설명 방식이다.
본문에서 흄은 도덕의 기초를 이성에서 찾으려는 입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성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는 자들은 수학처럼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흄은 이성은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흄의 관심은 관념상의 관계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들이 직접 경험하는 사실의 세계이다. 이성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흄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동일한 관념상의 관계를 가진 한 사례를 제시한다. 흄에 따르면, 참나무나 느릅나무가 자신의 어미 나무를 죽이고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나, 자식이 부모를 상해하거나 죽이는 행동은 논리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행동을 자연에서 관찰하는 것에 유추해서 판단할 사람은 없다. 결국 흄에게는 이성적 논증을 통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도덕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흄은 도덕성의 기초를 나쁜 행동에 대한 인간들 사이의 정서적 반응에서 찾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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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맥락
흄은 인간의 이성은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성의 기능은 기껏해야 행동을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정도로 제한된다. 흄이 이렇게 이성의 능력을 폄하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모든 지식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철저한 경험주의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이성주의자들은 인간이 아직 경험하지 않는 것을 마치 미리 경험한 것처럼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성향이 있다. 이성주의자들은 해가 오늘 떴기 때문에 내일도 뜬다고 주장하겠지만, 흄의 사고 방식에서는 내일 정말 해가 뜰 것인지는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이다. 흄의 입장에서 이성주의자들은 그저 개연적 지식을 과학적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덕의 문제에서도 이성주의자들은 자연법칙과 같은 보편적 도덕 원리가 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흄은 도덕 규범도 인간의 경험, 더 정확히 말해 인간의 감정적 경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전본문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들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자연 질서에 어긋나는 범죄는 배은망덕한 범죄이다. 특히 자식이 부모에게 저지르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가장 나쁜데, 그중에서 부모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는 더욱더 극악한 행위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에서부터 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가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이 행동의 죄책이나 도덕적 추함이 논증적 추론을 통해 발견되는지, 아니면 내적인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지, 어떤 행동을 반성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어떤 감성에 의해서인지 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쟁의 대상이 된다. 만일 우리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아닌 다른 사물들 사이의 관계들에서 죄책이나 불법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도덕적 판단이 이성에 근거한다는 견해가 잘못되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성 또는 학문은 관념들을 비교하고 그 관념들 사이의 관계들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일 동일한 논리적 관계에 있지만 성격이 다른 경우가 있다면, 진리가 이성에 의해서만 발견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참나무나 느릅나무와 같은 생명이 없는 대상을 선택해 보자. 이 나무는 자기 씨를 떨어뜨려 자기 아래에서 묘목을 키운다. 그리고 묘목이 점점 자라 마침내 어미 나무보다 더 높이 솟아 어미 나무를 죽인다고 가정해 보자. 존속살인이나 배은망덕한 범죄에서 볼 수 있는 관계가 이 경우에도 형식적으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어미 나무는 묘목의 원인이 아닌가? 그리고 자식이 그 부모를 살해할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묘목은 어미 나무를 죽인 원인이 되지 않는가? (..) 자식이 부모를 죽일지 결정하는 것은 의지나 선택에 의한 것이고, 묘목이 어미 나무를 죽이는 것은 물질과 운동의 법칙에 의해서다. 두 경우 같은 관계이지만 원인은 다르다. 두 경우 모두 부도덕함의 관념이 수반되고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부도덕성의 관념은 관념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제3권 중
토론하기
(1) 흄은 이성적, 학문적 지식의 특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2) 흄이 도덕성을 이성에서 찾으려는 관점을 어떤 식으로 반박하고 있는지, 흄이 사용한 사례를 가지고 말해보자.
(3) 도덕의 기초를 이성이 아닌 경험에 둘 때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악하다고 판단하고 그를 몹시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근거로 이 사람을 비난하는 걸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성이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해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양 문명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정의했고, 이 점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시켜주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이해했다. 여기서 이성은 추리, 계산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위 본문에서 흄은 도덕성이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흄의 주장에는 인간이 경험하지 않은 지식은 진정한 앎이라고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흄의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도덕 법칙이란 살인 행위가 나쁘다는 경험이 쌓여 인간 사회에서 생겨난 규칙 정도이다. 흄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성은 정념-교만, 분노, 사랑, 미움 등-의 노예’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생각하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느끼게 된다. 흄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느낌을 고통과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두 정서에 반응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악이라고 하고, 쾌락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쾌락만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면,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갈등이 있음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흄은 그 이유를 인간이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타인도 좋아하고,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타인도 피한다는 사실을 공감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사회가 도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살인의 경우 우리는 심한 불쾌감과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이런 정서가 모든 사람에게 공유될 때,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흄의 경험주의적 설명 방식이다.
본문에서 흄은 도덕의 기초를 이성에서 찾으려는 입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성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는 자들은 수학처럼 보편타당한 도덕법칙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흄은 이성은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흄의 관심은 관념상의 관계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들이 직접 경험하는 사실의 세계이다. 이성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흄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동일한 관념상의 관계를 가진 한 사례를 제시한다. 흄에 따르면, 참나무나 느릅나무가 자신의 어미 나무를 죽이고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나, 자식이 부모를 상해하거나 죽이는 행동은 논리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행동을 자연에서 관찰하는 것에 유추해서 판단할 사람은 없다. 결국 흄에게는 이성적 논증을 통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도덕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흄은 도덕성의 기초를 나쁜 행동에 대한 인간들 사이의 정서적 반응에서 찾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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