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는 1, 2 권으로 나누어진다. 1권에서는 미국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한 외적인 조건을 다루고 있다. 북아메리카의 지리적 장점, 지방자치 제도, 사법제도, 연방 헌법, 정당, 언론 자유, 결사의 자유와 같은 요소들을 민주주의 성공 요건으로 지적하고 있다. 2권에서는 미국 민주주의가 지식인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 민주주의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 민주주의가 풍습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아래 본문은 신앙심이 미국인들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대목으로, 종교심은 인간이 물질적인 대상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하고, 종교인들이 종교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민주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전본문]
어느 나라에서든 물질주의는 인간의 정신에 해로운 질병이다. 하지만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물질주의는 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 있는 국민들에게 널리 습관화된 마음의 악덕과 결합하기 쉽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물질적 즐거움들에 대한 욕망을 선호한다. 욕망이 지나칠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믿게 된다. 역으로 물질주의는 결국 무분별한 열정으로 사람들을 쾌락에 빠뜨린다. 바로 이것이 민주국가들이 빠져들게 되는 치명적인 악순환이다. 그 국가들이 그 위험을 알아차리고 멈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부분 종교는 사람들에게 영혼 불멸을 가르치는 널리 퍼져 있는 단순하며 실제적인 수단들에 불과하다. 영혼 불멸이야말로 민주국가 국민이 그들의 신앙에서 끄집어내는 가장 큰 이점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국민보다 민주국가의 국민에게 신앙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가 민주주의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뿌리내릴 때, 그 종교를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수 세기 귀족 시대의 가장 고귀한 유산으로서 그것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새로운 종교적 신념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서 오래된 종교적 견해들을 뿌리 뽑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신앙에서 다른 신앙으로 옮겨가면서 영혼은 신념의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고, 물질적 쾌락에 대한 애착은 영혼 속에서 다시 살아나 영혼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영혼 윤회 사상은 물질주의만큼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둘 중에서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이 돼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혼이 없다고 믿는 것보다는 더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고 판단할 것이다. 잠시 물질과 결합하여 있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한 원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위대성을 위해 매우 필수적이어서, 결국 그 믿음은 보상과 처벌에 관한 생각과 결합하지 않을 때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 인간 안에 감금된 신적인 원리가 신에게 흡수되거나 다른 피조물에 들어가게 된다는 생각만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결과들을 낳는다. (..) 소크라테스와 그의 학파가 사후에 인간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일관된 견해들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확실한 유일한 믿음은 영혼은 육체와 전혀 공유하는 것이 없고, 영혼은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플라톤 철학에 숭고한 추동력을 불어넣어 고유한 독특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국민의 눈에 종교의 위상을 드높이고 종교가 표방하는 정신성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부류에 더 이상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은 법률이 금하고 있는 바이다. 종교인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여하게 될 때 일으키는 거의 피하기 어려운 위험들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다. 확신컨대, 나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기독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나오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부 당국이 사람들로 영적인 관심을 끌게 하거나 영적인 견해들을 제공하는 종교를 붙잡도록 하는 수단이 있을까? 영혼 불멸의 교리가 마땅히 존중받게 하려면 정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부 당국자들이 그 교리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정부 당국이 큰 공적인 일에서 종교적 도덕을 양심적으로 따름으로서 시민들이 소소한 일들에서 그 도덕을 인식하고 사랑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알렉시스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중
토론하기
(1) 본문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물질주의가 왜 친화력이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는지 말해 보자.
(2) 종교가 인간의 도덕적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이 발명해 낸 최선의 정치 형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인류에게 남긴 프랑스 혁명(1789) 이후의 프랑스 사회는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낳을 수 있는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자율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조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프랑스 사회를 혼란과 광기에 빠져들게 했다. 로베스피에르(1758-1794)의 공포정치 그리고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군부 독재는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서 일어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토크빌은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감옥 제도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공무를 중단하고 미국을 여행한 토크빌은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평등의 관념에 놀라게 된다. 더 이상한 것은 프랑스에서는 평등의 관념이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크빌은 미국과 프랑스의 차이점을 종교에서 찾는다. 그는 민주주의 이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연조건, 제도 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 습속이 중요하고, 사회적 습속의 뿌리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미국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이주한 청교도들의 습속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주요한 기둥이었다. 본문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와 물질주의는 친화적이라고 적고 있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상태에 있는 개인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서 개인은 자율적인 도덕적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전근대 사회와 달리 민주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위계적인 사회 질서가 없으므로, 민주주의는 물질주의에 사로잡히기 쉽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 문화에서 민주 시민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종교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종교를 말살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토크빌이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특정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종교는 일반적으로 영혼 불멸을 가르치며, 정신적인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영혼 윤회를 믿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토크빌이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가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통제했던 유럽의 어두운 기독교 사회를 재건하고자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토크빌이 말하는 대로 성직자들은 자신의 영역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성직자가 종교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독교적 이념이 현실 세계에 실현될 수 있게 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개개인의 삶 속에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토크빌은 정교분리의 원칙, 정치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분리시키되 종교적 가치와 도덕을 세속 사회에서 실현하게 하는 방식으로 종교가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사회에 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앞뒤 맥락]
미국의 민주주의는 1, 2 권으로 나누어진다. 1권에서는 미국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한 외적인 조건을 다루고 있다. 북아메리카의 지리적 장점, 지방자치 제도, 사법제도, 연방 헌법, 정당, 언론 자유, 결사의 자유와 같은 요소들을 민주주의 성공 요건으로 지적하고 있다. 2권에서는 미국 민주주의가 지식인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 민주주의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 민주주의가 풍습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아래 본문은 신앙심이 미국인들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대목으로, 종교심은 인간이 물질적인 대상보다는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하고, 종교인들이 종교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민주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전본문]
어느 나라에서든 물질주의는 인간의 정신에 해로운 질병이다. 하지만 특히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물질주의는 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 있는 국민들에게 널리 습관화된 마음의 악덕과 결합하기 쉽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물질적 즐거움들에 대한 욕망을 선호한다. 욕망이 지나칠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물질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믿게 된다. 역으로 물질주의는 결국 무분별한 열정으로 사람들을 쾌락에 빠뜨린다. 바로 이것이 민주국가들이 빠져들게 되는 치명적인 악순환이다. 그 국가들이 그 위험을 알아차리고 멈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부분 종교는 사람들에게 영혼 불멸을 가르치는 널리 퍼져 있는 단순하며 실제적인 수단들에 불과하다. 영혼 불멸이야말로 민주국가 국민이 그들의 신앙에서 끄집어내는 가장 큰 이점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국민보다 민주국가의 국민에게 신앙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가 민주주의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뿌리내릴 때, 그 종교를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수 세기 귀족 시대의 가장 고귀한 유산으로서 그것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새로운 종교적 신념으로 대체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서 오래된 종교적 견해들을 뿌리 뽑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신앙에서 다른 신앙으로 옮겨가면서 영혼은 신념의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고, 물질적 쾌락에 대한 애착은 영혼 속에서 다시 살아나 영혼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영혼 윤회 사상은 물질주의만큼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둘 중에서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이 돼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혼이 없다고 믿는 것보다는 더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고 판단할 것이다. 잠시 물질과 결합하여 있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한 원리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위대성을 위해 매우 필수적이어서, 결국 그 믿음은 보상과 처벌에 관한 생각과 결합하지 않을 때도, 그리고 죽음 이후에 인간 안에 감금된 신적인 원리가 신에게 흡수되거나 다른 피조물에 들어가게 된다는 생각만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결과들을 낳는다. (..) 소크라테스와 그의 학파가 사후에 인간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일관된 견해들을 갖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확실한 유일한 믿음은 영혼은 육체와 전혀 공유하는 것이 없고, 영혼은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플라톤 철학에 숭고한 추동력을 불어넣어 고유한 독특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중략)
나는 국민의 눈에 종교의 위상을 드높이고 종교가 표방하는 정신성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부류에 더 이상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은 법률이 금하고 있는 바이다. 종교인들이 공적인 사안에 관여하게 될 때 일으키는 거의 피하기 어려운 위험들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있다. 확신컨대, 나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기독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교회에서 나오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부 당국이 사람들로 영적인 관심을 끌게 하거나 영적인 견해들을 제공하는 종교를 붙잡도록 하는 수단이 있을까? 영혼 불멸의 교리가 마땅히 존중받게 하려면 정부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부 당국자들이 그 교리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정부 당국이 큰 공적인 일에서 종교적 도덕을 양심적으로 따름으로서 시민들이 소소한 일들에서 그 도덕을 인식하고 사랑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알렉시스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중
토론하기
(1) 본문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물질주의가 왜 친화력이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는지 말해 보자.
(2) 종교가 인간의 도덕적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3)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해설읽기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이 발명해 낸 최선의 정치 형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인류에게 남긴 프랑스 혁명(1789) 이후의 프랑스 사회는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낳을 수 있는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자율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조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프랑스 사회를 혼란과 광기에 빠져들게 했다. 로베스피에르(1758-1794)의 공포정치 그리고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군부 독재는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서 일어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토크빌은 이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감옥 제도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공무를 중단하고 미국을 여행한 토크빌은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평등의 관념에 놀라게 된다. 더 이상한 것은 프랑스에서는 평등의 관념이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초래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크빌은 미국과 프랑스의 차이점을 종교에서 찾는다. 그는 민주주의 이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연조건, 제도 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 습속이 중요하고, 사회적 습속의 뿌리에는 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미국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이주한 청교도들의 습속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주요한 기둥이었다. 본문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와 물질주의는 친화적이라고 적고 있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상태에 있는 개인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서 개인은 자율적인 도덕적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전근대 사회와 달리 민주 사회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위계적인 사회 질서가 없으므로, 민주주의는 물질주의에 사로잡히기 쉽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 문화에서 민주 시민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가 종교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종교를 말살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토크빌이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특정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종교는 일반적으로 영혼 불멸을 가르치며, 정신적인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영혼 윤회를 믿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토크빌이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가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통제했던 유럽의 어두운 기독교 사회를 재건하고자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토크빌이 말하는 대로 성직자들은 자신의 영역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성직자가 종교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독교적 이념이 현실 세계에 실현될 수 있게 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개개인의 삶 속에서도 종교의 영향력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토크빌은 정교분리의 원칙, 정치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분리시키되 종교적 가치와 도덕을 세속 사회에서 실현하게 하는 방식으로 종교가 제자리에 머물면서도 사회에 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