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흄은 『종교의 자연사 』의 목적을 인간 본성과 관련한 종교의 기원 탐구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 본성의 일차적인 구성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인간이 후천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정신이란 열등한 상태에서 점점 성숙해 가는데, 다신론 사회에서 유일신을 믿는 사회로의 전환은 바로 이러한 발전 과정을 반영한다. 다신교의 신이든 유일신교의 신이든 모두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추론하여 합리적으로 그 존재를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삶에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인간은 신들을 상상해 내고 종교적 의식, 기도, 봉헌 등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생겨났다.
고전본문
우리는 마치 큰 극장과 같은 세계 속에 놓여 있다. 여기서는 모든 사건이 어떤 진정한 근원과 원인에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를 지속해서 위협하는 질병들을 예견할 만큼 지혜롭거나 그것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생과 사, 건강과 질병, 풍요와 결핍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고 있다. 종종 예측할 수 없고 늘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에 감추어진 채 원인을 알 수 없이 퍼져 있다. 이 알려지지 않은 원인들은 항상 우리에게 희망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 속에서 그 정서들이 지속해서 경고를 하며 유지된다. 이때 상상력이 동원되어 우리가 전적으로 예속된 그러한 힘들에 대한 관념들이 형성된다. 인간이 가장 개연성이 있거나 적어도 가장 지적인 철학에 따라서 자연을 해부한다면, 이 원인이 기껏해야 그들 자신의 신체들이나 외부 사물들의 미세한 일부의 특수한 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규칙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기계적 구조에 의해서 그들이 그렇게도 관심을 두는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철학은 무지한 대중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이다.(중략) 인류에게는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친숙히 경험하고 가까이 의식하고 있는 성질들을 모든 사물에 옮기는 보편적인 성향이 있다. 우리는 달에서 인간의 얼굴들을, 구름에서 군대들을 본다. 경험과 반성을 통해 교정되지 않는다면 자연적인 성향상 우리는 우리를 해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악의나 선의를 모든 사물에게 귀속시킨다. 따라서 시에서 의인법이 빈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거기에서 나무, 산, 시내는 인격을 부여받고, 자연 속의 무생물들은 감정과 정념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인 비유와 표현들은 믿음과 결부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상상력의 특정한 성향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상상력 덕에 사물들은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강의 신이나 하마드리아데스(그리스 신화의 나무의 요정-역자주)는 단순히 시적이거나 상상의 인물로서 간주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무지한 대중의 진지한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 각 숲과 들판은 그것을 보호하는 특별한 수호신이나 보이지 않는 힘이 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철학자들도 이러한 자연적인 유약함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될 수 없다. 그들도 종종 공허함, 동정심, 반감 그리고 인간 본성의 다른 감정들을 무생물에 부여한다.
이러한 불합리함은 우리의 눈을 들어 너무도 자주 인간적인 정념들과 결점들을 신성에 부여할 때 생기는데, 신을 질투하고 복수하고, 변덕스럽고 편파적인 그리고 모든 면에서 사악하고 어리석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힘과 권위를 가진 존재로 묘사할 때 그 불합리함이 더욱 커진다. 인간이 사건들의 원인에 대해서 그토록 완전히 무지한 상황에 놓여 있고, 미래의 운명에 대해 근심하기 때문에, 감정과 지성을 가진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의 사고를 따라다니는 ‘미지의 원인’들은 늘 같은 양상으로 그리고 모두 동일 종류에 속한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가 우리와 더 비슷해지기 위해 그들에게 사고와 이성 그리고 정념 그리고 때때로 심지어 사지와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데이비드 흄, 『종교의 자연사 』 제3장 중
토론하기
(1) 흄은 신 개념이 인간이 어떤 상황 속 처하게 될 때 생겨났다고 설명하는가?
(2) 인간의 상상력이 신을 만들어 내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3) 종교인이든 아니든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신의 도움을 기대한다. 인간의 이런 성향이 개인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흄이 적고 있는 대로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거대한 극장이다. 그런데 이 극장에서는 작가와 연출자와 달리 연기자들은 앞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이 연기자들은 전체 각본 없이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각본 전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다. 이 상황은 매우 불안감을 낳는다.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을 알면 그것을 그저 즐기면 될 것이고,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 불행을 피할 방법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은 이렇게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존립할 수 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에서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를 논리적 추론을 통하여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흄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올바른 추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험주의 철학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동물과 구분해 주는 탁월한 신적인 능력으로 생각해왔지만, 흄은 인간의 사고도 결국 경험에 근거한 후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관념이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 이성주의자들과 달리, 흄은 신에 대한 관념은 선천적이 아니라고 본다. 경험주의자답게 그는 인간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마음의 상태는 나약해지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관찰한다. 이 두려움과 인간의 상상력이 결부될 때 종교는 탄생한다.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상상해 낸다. 경험주의자이기 때문에 인간은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인간들은 사물들에게 인간의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사물을 신격화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동물들이나 무생물들을 마치 그것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감정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때도 있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찾아낼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가령, 천둥이 칠 때 하늘의 신이 노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제우스 신과 같은 강력한 신이 탄생한다. 이 신들은 인간적인 특성을 인간과 공유하지만 인간보다는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다. 이 강력한 존재들을 달램으로써 인간은 닥친 재앙을 해결하려고 한다. 흄에 따르면, 종교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다.
키워드
경험, 불안, 상상력, 신, 재앙, 종교
전후맥락
흄은 『종교의 자연사 』의 목적을 인간 본성과 관련한 종교의 기원 탐구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 본성의 일차적인 구성요소가 아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인간이 후천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정신이란 열등한 상태에서 점점 성숙해 가는데, 다신론 사회에서 유일신을 믿는 사회로의 전환은 바로 이러한 발전 과정을 반영한다. 다신교의 신이든 유일신교의 신이든 모두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고 추론하여 합리적으로 그 존재를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삶에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인간은 신들을 상상해 내고 종교적 의식, 기도, 봉헌 등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생겨났다.
고전본문
우리는 마치 큰 극장과 같은 세계 속에 놓여 있다. 여기서는 모든 사건이 어떤 진정한 근원과 원인에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우리를 지속해서 위협하는 질병들을 예견할 만큼 지혜롭거나 그것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생과 사, 건강과 질병, 풍요와 결핍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고 있다. 종종 예측할 수 없고 늘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일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비밀에 감추어진 채 원인을 알 수 없이 퍼져 있다. 이 알려지지 않은 원인들은 항상 우리에게 희망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 속에서 그 정서들이 지속해서 경고를 하며 유지된다. 이때 상상력이 동원되어 우리가 전적으로 예속된 그러한 힘들에 대한 관념들이 형성된다. 인간이 가장 개연성이 있거나 적어도 가장 지적인 철학에 따라서 자연을 해부한다면, 이 원인이 기껏해야 그들 자신의 신체들이나 외부 사물들의 미세한 일부의 특수한 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규칙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기계적 구조에 의해서 그들이 그렇게도 관심을 두는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철학은 무지한 대중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이다.(중략) 인류에게는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친숙히 경험하고 가까이 의식하고 있는 성질들을 모든 사물에 옮기는 보편적인 성향이 있다. 우리는 달에서 인간의 얼굴들을, 구름에서 군대들을 본다. 경험과 반성을 통해 교정되지 않는다면 자연적인 성향상 우리는 우리를 해치기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악의나 선의를 모든 사물에게 귀속시킨다. 따라서 시에서 의인법이 빈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거기에서 나무, 산, 시내는 인격을 부여받고, 자연 속의 무생물들은 감정과 정념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인 비유와 표현들은 믿음과 결부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상상력의 특정한 성향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상상력 덕에 사물들은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강의 신이나 하마드리아데스(그리스 신화의 나무의 요정-역자주)는 단순히 시적이거나 상상의 인물로서 간주되는 것이 아니고, 때때로 무지한 대중의 진지한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 각 숲과 들판은 그것을 보호하는 특별한 수호신이나 보이지 않는 힘이 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철학자들도 이러한 자연적인 유약함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될 수 없다. 그들도 종종 공허함, 동정심, 반감 그리고 인간 본성의 다른 감정들을 무생물에 부여한다.
이러한 불합리함은 우리의 눈을 들어 너무도 자주 인간적인 정념들과 결점들을 신성에 부여할 때 생기는데, 신을 질투하고 복수하고, 변덕스럽고 편파적인 그리고 모든 면에서 사악하고 어리석지만, 인간보다 우월한 힘과 권위를 가진 존재로 묘사할 때 그 불합리함이 더욱 커진다. 인간이 사건들의 원인에 대해서 그토록 완전히 무지한 상황에 놓여 있고, 미래의 운명에 대해 근심하기 때문에, 감정과 지성을 가진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의 사고를 따라다니는 ‘미지의 원인’들은 늘 같은 양상으로 그리고 모두 동일 종류에 속한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가 우리와 더 비슷해지기 위해 그들에게 사고와 이성 그리고 정념 그리고 때때로 심지어 사지와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데이비드 흄, 『종교의 자연사 』 제3장 중
토론하기
(1) 흄은 신 개념이 인간이 어떤 상황 속 처하게 될 때 생겨났다고 설명하는가?
(2) 인간의 상상력이 신을 만들어 내었다는 생각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 보자.
(3) 종교인이든 아니든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신의 도움을 기대한다. 인간의 이런 성향이 개인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흄이 적고 있는 대로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거대한 극장이다. 그런데 이 극장에서는 작가와 연출자와 달리 연기자들은 앞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이 연기자들은 전체 각본 없이 그때그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각본 전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앞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다. 이 상황은 매우 불안감을 낳는다.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을 알면 그것을 그저 즐기면 될 것이고,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 불행을 피할 방법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은 이렇게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에 존립할 수 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유한함에서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를 논리적 추론을 통하여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흄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올바른 추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험주의 철학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진리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사고 능력을 동물과 구분해 주는 탁월한 신적인 능력으로 생각해왔지만, 흄은 인간의 사고도 결국 경험에 근거한 후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은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관념이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 이성주의자들과 달리, 흄은 신에 대한 관념은 선천적이 아니라고 본다. 경험주의자답게 그는 인간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마음의 상태는 나약해지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관찰한다. 이 두려움과 인간의 상상력이 결부될 때 종교는 탄생한다.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상상해 낸다. 경험주의자이기 때문에 인간은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인간들은 사물들에게 인간의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사물을 신격화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동물들이나 무생물들을 마치 그것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감정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때도 있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찾아낼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가령, 천둥이 칠 때 하늘의 신이 노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제우스 신과 같은 강력한 신이 탄생한다. 이 신들은 인간적인 특성을 인간과 공유하지만 인간보다는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다. 이 강력한 존재들을 달램으로써 인간은 닥친 재앙을 해결하려고 한다. 흄에 따르면, 종교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다.
키워드
경험, 불안, 상상력, 신, 재앙,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