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작품의 저자 흄을 대변하는 필로는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설계 논증이라는 것을 반박하는데 주요 관심을 두고 있다. 설계 논증이란 잘 설계된 정교한 기계 장치와 그것을 만든 기술자가 사이의 관계를 정교한 세계와 그것을 만든 창조자의 관계로 확장해 추론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우주도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한다면, 그것을 만든 기술자, 즉 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사성에 근거한 추론인데, 필로는 유한한 기계와 그것의 제작자의 관계와 세계와 무한한 신 사이의 관계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해서 추론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한한 신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 본문은 필로의 논쟁 상대자인 클레안테스가 설계 논증을 통해 필로를 설득하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필로: 우리의 관념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더 나아가지 않네. 우리는 신의 속성들과 활동들을 전혀 경험하지 않네. 나는 내 논증을 마무리할 필요가 없네. 자네는 스스로 추론을 할 수 있네. 그리고 올바른 추론과 건전한 경험이 같은 결론에서 일치를 보이고 그 둘이 최고 존재의 놀랍도록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본성을 확증한다는 것은 내게는 즐거움이네. 자네도 그러길 바라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클레안테스는 필로의 경건한 말들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데미아에게 말한다.
클레안테스: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네. 세계를 둘러보게. 세계의 전체와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을 잘 관찰해 보게. 자네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걸세. 이 기계는 무한히 많은 더 작은 기계들로 나누어지지. 이것들은 다시 인간의 감각과 기능들이 찾아내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정도까지 계속 나누어지네. 이 모든 다양한 기계들 그리고 그것들의 가장 미세한 부분들은 정확하게 서로에게 잘 맞추어져 있다네. 그 정교함은 그것들을 관조했온 사람들 모두에게 경탄을 자아내네. 자연 전체적으로 수단이 목적에 알맞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만든 고안물들과 정확히 닮았다는 것이네. 물론, 자연이 인간의 설계, 생각, 지혜, 지성을 통해 만든 것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해도 말일세. 따라서 결과물들이 서로를 닮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가 유사하면 원인도 유사하다는 유비의 원리에 의해서, 자연의 저자는 인간의 정신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추론하게 되네. 물론 신이 만든 작품의 장대함에 따라서 훨씬 더 큰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일세. 이 후험적인 논증만으로, 우리는 신의 존재한다는 것과 인간의 정신과 신이 유사하다는 것을 동시에 증명하게 되네.
-데이비드 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제2장 중
*후험적인-경험에 의존되어 있는
토론하기
(1) 클레안테스는 세계를 기계에 비유했는데, 이 비유의 목적은 무엇인가?
(2) 세계를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세계를 기계에 비유하여 제작자로서의 신을 유추하는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윗글의 저자 데이비드 흄은 대표적인 경험론 철학자이다. 경험론이란 경험과 상관 없이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이성보다는 경험을 인간 지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본문에서 클레안테스는 흄의 논쟁 상대자로 등장한다. 본문에서 필로는 흄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필로가 ‘우리의 관념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더 나아가지 않네.’라고 말하는 것은 흄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의 존재 문제는 중세 그리고 근대 유럽에서 중요한 이슈였고, 흄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흄의 기본적 입장은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은 오감, 즉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흄은 신의 존재 여부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흄이 살던 시대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세와 근대 지성인들은 신의 존재를 인간의 이성에 근거해서 증명해내려고 노력했다. 흄 당시에 유행한 논증은 소위 ‘설계 논증’이라는 것인데, 세계를 설계한 자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윗글에서 클레안테스의 논증이 바로 전형적인 설계 논증이다. 설계 논증은 유비를 통한 논증에 의존해 있다. 이 논증은 유사성을 근거로 추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A라는 학생이 안경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잘한다면, B라는 학생이 안경을 쓰고 있다면 역시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방식의 논증이다. 정교한 기계를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기계를 만든 정교한 지성을 소유한 제작자를 생각하게 된다. 설계 논증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세계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기계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계의 각 부분들은 더 큰 부분들을과 전체를 위해서 기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외 없이 우리는 해가 떠서 지는 것을 보고, 별들은 정확한 궤도로 운행하는 것을 본다. 세계를 이루는 크고 작은 부분들은 더 큰 부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전체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음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한다면, 이 기계를 만든 최고의 존재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다.
키워드
설계, 세계, 제작자, 지
전후맥락
작품의 저자 흄을 대변하는 필로는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설계 논증이라는 것을 반박하는데 주요 관심을 두고 있다. 설계 논증이란 잘 설계된 정교한 기계 장치와 그것을 만든 기술자가 사이의 관계를 정교한 세계와 그것을 만든 창조자의 관계로 확장해 추론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우주도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한다면, 그것을 만든 기술자, 즉 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유사성에 근거한 추론인데, 필로는 유한한 기계와 그것의 제작자의 관계와 세계와 무한한 신 사이의 관계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해서 추론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한한 신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 본문은 필로의 논쟁 상대자인 클레안테스가 설계 논증을 통해 필로를 설득하는 내용이다.
고전본문
필로: 우리의 관념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더 나아가지 않네. 우리는 신의 속성들과 활동들을 전혀 경험하지 않네. 나는 내 논증을 마무리할 필요가 없네. 자네는 스스로 추론을 할 수 있네. 그리고 올바른 추론과 건전한 경험이 같은 결론에서 일치를 보이고 그 둘이 최고 존재의 놀랍도록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본성을 확증한다는 것은 내게는 즐거움이네. 자네도 그러길 바라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클레안테스는 필로의 경건한 말들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데미아에게 말한다.
클레안테스: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네. 세계를 둘러보게. 세계의 전체와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을 잘 관찰해 보게. 자네는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걸세. 이 기계는 무한히 많은 더 작은 기계들로 나누어지지. 이것들은 다시 인간의 감각과 기능들이 찾아내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정도까지 계속 나누어지네. 이 모든 다양한 기계들 그리고 그것들의 가장 미세한 부분들은 정확하게 서로에게 잘 맞추어져 있다네. 그 정교함은 그것들을 관조했온 사람들 모두에게 경탄을 자아내네. 자연 전체적으로 수단이 목적에 알맞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만든 고안물들과 정확히 닮았다는 것이네. 물론, 자연이 인간의 설계, 생각, 지혜, 지성을 통해 만든 것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해도 말일세. 따라서 결과물들이 서로를 닮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가 유사하면 원인도 유사하다는 유비의 원리에 의해서, 자연의 저자는 인간의 정신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추론하게 되네. 물론 신이 만든 작품의 장대함에 따라서 훨씬 더 큰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일세. 이 후험적인 논증만으로, 우리는 신의 존재한다는 것과 인간의 정신과 신이 유사하다는 것을 동시에 증명하게 되네.
-데이비드 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제2장 중
*후험적인-경험에 의존되어 있는
토론하기
(1) 클레안테스는 세계를 기계에 비유했는데, 이 비유의 목적은 무엇인가?
(2) 세계를 기계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 세계를 기계에 비유하여 제작자로서의 신을 유추하는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해설읽기
윗글의 저자 데이비드 흄은 대표적인 경험론 철학자이다. 경험론이란 경험과 상관 없이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이성보다는 경험을 인간 지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본문에서 클레안테스는 흄의 논쟁 상대자로 등장한다. 본문에서 필로는 흄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필로가 ‘우리의 관념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 더 나아가지 않네.’라고 말하는 것은 흄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의 존재 문제는 중세 그리고 근대 유럽에서 중요한 이슈였고, 흄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흄의 기본적 입장은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은 오감, 즉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흄은 신의 존재 여부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흄이 살던 시대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세와 근대 지성인들은 신의 존재를 인간의 이성에 근거해서 증명해내려고 노력했다. 흄 당시에 유행한 논증은 소위 ‘설계 논증’이라는 것인데, 세계를 설계한 자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윗글에서 클레안테스의 논증이 바로 전형적인 설계 논증이다. 설계 논증은 유비를 통한 논증에 의존해 있다. 이 논증은 유사성을 근거로 추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A라는 학생이 안경을 쓰고 있는데 공부를 잘한다면, B라는 학생이 안경을 쓰고 있다면 역시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방식의 논증이다. 정교한 기계를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 기계를 만든 정교한 지성을 소유한 제작자를 생각하게 된다. 설계 논증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세계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기계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기계의 각 부분들은 더 큰 부분들을과 전체를 위해서 기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외 없이 우리는 해가 떠서 지는 것을 보고, 별들은 정확한 궤도로 운행하는 것을 본다. 세계를 이루는 크고 작은 부분들은 더 큰 부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세계 전체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음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세계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라고 한다면, 이 기계를 만든 최고의 존재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다.
키워드
설계, 세계, 제작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