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래 본문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해서 논한다. 그는 행복을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더 구체적으로 행복은 그 자체로 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이다. 그런 활동에는 미덕에 따르는 활동이 있다. 정의로운 활동은 그 자체로 행할 만한 활동이지, 다른 것의 수단이 되는 활동이 아니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미덕에 따라서 살도록 해야 한다. 아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 중에서 지적 미덕에 따르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한다.
고전본문
만일 행복이 덕에 일치하는 활동이라면, 그 덕은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미덕이어야 한다는 것이 마땅하다. 그 자체로 신적이거나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신적인 것인 인간의 지성은 인간을 자연적으로 다스리며 인도한다. 그리고 지성의 활동은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이 된다. 이 활동은 바로 관조적 활동이다. 이 활동은 최고의 것인데,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일 뿐만 아니라, 이성의 대상들은 알 수 있는 대상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가장 지속적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지속적으로 진리를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이 그것에 수반되는 즐거움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적 지혜에 대한 활동은 덕이 있는 활동들 중에서 가장 즐거운 활동이라고 인정된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들의 순수성과 지속성 때문에 놀라운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철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보다 더욱 즐겁게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족함은 관조적 활동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의로운 사람이나 어떤 다른 덕성을 소유한 자뿐만 아니라 철학자도 필요한 것이 있다. 정의로운 사람은 그가 상대할 그리고 그와 의로운 행동에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심지어 혼자 진리를 관조할 수 있다고 해도,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동료들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족적이다. 그리고 이 활동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관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거기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출전]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7장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관조적 삶은 어떤 삶을 말하는가?
(2) 관조적 삶이 최선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대해서 비판해 보자.
(3) 지적 활동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인간의 활동을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 정의나 인권을 위해서 정계나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활동보다 학문하는 삶을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우리가 악기를 연주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서 연주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연주를 한다. 어떤 행위를 하면서 행위 바깥에 목적이 있다면, 그 행위의 만족은 외부에 달려 있는 것이된다.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만족을 준다면, 다른 외부적 조건 때문에 만족감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만족을 주는 것은 인간의 경우 덕성에 따른 활동이다. 덕성이란 어떤 것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칼의 덕성은 사물을 잘 자를 때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덕성은 도덕적 능력, 지적 능력이 발현될 때 높아진다. 덕성을 가장 잘 발현하는 상태가 바로 행복한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성의 능력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능력이다. 따라서 이성의 능력이 최고조에 이를 때 인간은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성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활동은 바로 철학적 지혜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철학적 지혜를 아주 고원한 지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 맞추었을 때 느끼는 기쁨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철학적 지혜를 소유한 것이다. 이런 지혜의 특징은 지속적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재미 있는 활동은 그 활동이 끝나면 만족감이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지적인 활동의 만족감은 상당히 오래 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다른 활동에 비해서 지적인 활동은 자족적이다. 이 말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지적인 활동도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는 그 기쁨이 더 커진다. 하지만 혼자 지적 활동을 해서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키워드
관조, 이성, 자족성, 지혜, 행복
전후맥락
아래 본문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해서 논한다. 그는 행복을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더 구체적으로 행복은 그 자체로 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이다. 그런 활동에는 미덕에 따르는 활동이 있다. 정의로운 활동은 그 자체로 행할 만한 활동이지, 다른 것의 수단이 되는 활동이 아니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미덕에 따라서 살도록 해야 한다. 아래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 중에서 지적 미덕에 따르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한다.
고전본문
만일 행복이 덕에 일치하는 활동이라면, 그 덕은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미덕이어야 한다는 것이 마땅하다. 그 자체로 신적이거나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신적인 것인 인간의 지성은 인간을 자연적으로 다스리며 인도한다. 그리고 지성의 활동은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이 된다. 이 활동은 바로 관조적 활동이다. 이 활동은 최고의 것인데, 왜냐하면 이성은 우리 안에 있는 것 중에서 최고의 것일 뿐만 아니라, 이성의 대상들은 알 수 있는 대상들 중에서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가장 지속적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지속적으로 진리를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이 그것에 수반되는 즐거움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적 지혜에 대한 활동은 덕이 있는 활동들 중에서 가장 즐거운 활동이라고 인정된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들의 순수성과 지속성 때문에 놀라운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철학적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보다 더욱 즐겁게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족함은 관조적 활동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의로운 사람이나 어떤 다른 덕성을 소유한 자뿐만 아니라 철학자도 필요한 것이 있다. 정의로운 사람은 그가 상대할 그리고 그와 의로운 행동에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심지어 혼자 진리를 관조할 수 있다고 해도,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동료들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족적이다. 그리고 이 활동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관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거기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출전]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7장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관조적 삶은 어떤 삶을 말하는가?
(2) 관조적 삶이 최선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대해서 비판해 보자.
(3) 지적 활동을 통해서 만족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인간의 활동을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 정의나 인권을 위해서 정계나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활동보다 학문하는 삶을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 자체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우리가 악기를 연주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서 연주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연주를 한다. 어떤 행위를 하면서 행위 바깥에 목적이 있다면, 그 행위의 만족은 외부에 달려 있는 것이된다.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만족을 준다면, 다른 외부적 조건 때문에 만족감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만족을 주는 것은 인간의 경우 덕성에 따른 활동이다. 덕성이란 어떤 것이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칼의 덕성은 사물을 잘 자를 때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덕성은 도덕적 능력, 지적 능력이 발현될 때 높아진다. 덕성을 가장 잘 발현하는 상태가 바로 행복한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성의 능력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능력이다. 따라서 이성의 능력이 최고조에 이를 때 인간은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이성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활동은 바로 철학적 지혜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철학적 지혜를 아주 고원한 지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 맞추었을 때 느끼는 기쁨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철학적 지혜를 소유한 것이다. 이런 지혜의 특징은 지속적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하는 많은 재미 있는 활동은 그 활동이 끝나면 만족감이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지적인 활동의 만족감은 상당히 오래 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다른 활동에 비해서 지적인 활동은 자족적이다. 이 말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지적인 활동도 함께 하는 동료가 있다는 그 기쁨이 더 커진다. 하지만 혼자 지적 활동을 해서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키워드
관조, 이성, 자족성, 지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