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신기천험』 첫 장의 뒷부분에서는 뇌의 조직이 치밀하고 연할 뿐만 아니라 두텁고 무겁기 때문에 오감을 통해 얻은 외부 정보를 수용하여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뇌가 정신 활동의 중추이기 때문에 기존의 ‘영혼’이니 ‘신명’이니 하는 설을 무리하게 끌어와서 정신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뇌의 무게와 용량, 뇌의 해부학적 구조, 뇌의 부위별 명칭과 그 기능, 뇌와 연결된 척추의 구조 및 그 기능과 작용 등을 해부도와 함께 상세히 논한다.
고전본문
뇌는 머리 속에 있는데, 그 조직이 치밀하고 연하다. 소리와 색, 냄새, 맛, 여러 감촉의 신기(神氣)와 쉽게 감통하여 흔적을 남기고 전후 사정을 기억하고 해석하며, 사물을 추론하고 실측하는 일은 전부 뇌가 하는 것으로, 뼈와 살, 피, 장기가 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뇌가 어찌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여 기질을 기르고 지식을 파악하겠는가. 뼈와 살, 피, 장기가 전부 신경[筋]과 혈관을 따라 연결되어 위아래로 두루 통하며 저마다 맡은 일을 실행하고, 모두 모여서 뇌의 기질을 기르고 뇌의 지식을 통하게 한다.
(…) 뇌기근(腦氣筋)은 흰색 물질로 되어 있고 뇌의 명령[氣勢]을 전달한다. 그것은 줄이나 선, 실처럼 가닥가닥 나누어져 온몸 내부 기관을 온통 휘감으며, 다섯 가지 감각 기관과 온몸, 살갗과 살, 근육과 뼈, 장부 등 안팎으로 모든 곳에 닿아 있다. 눈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볼 수 없고 귀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코에 뇌기근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혀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맛을 느끼지 못한다. 손가락도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매끄럽거나 거친 것을 느낄 수 없다. 소리와 색, 냄새, 맛 및 여러 감촉은 한두 차례에서 서너 차례에 걸쳐서 뇌에 점차 깊이 전달되고 뇌 속에 점차 깊이 스며든다. 처음에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와 두번째로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를 비교하고, 다시 뇌에 전달된 청각 정보를 가지고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를 검증하면 추론과 실측이 생겨날 것이다. (…)
[출전] 『신기천험』의 「뇌는 온몸을 주관한다」
사람의 형체는 뇌기근과 골수, 혈맥과 기관이 기틀을 이루고 몸을 이루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운동할 수 있으니, 고금의 모든 일을 추론하고 실측하여 인간의 도를 전부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구태여 뇌가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만 믿어서 심이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을 버릴 필요가 있겠는가. 또 구태여 심이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에 매몰되어서, 뇌기근이 전신의 모든 구멍과 모든 감촉에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는 즉시 감응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
[출전] 『신기천험』의 「총론」
토론하기
(1) 뇌가 정신과 신체를 주관한다는 뇌 중심설이 심이 정신과 신체를 주관한다는 심 중심설의 동아시아 세계에 전파되었을 때, 동아시아 지식인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2) 최한기가 뇌를 정신 활동과 신체 작용의 중추라고 말하면서도, 심의 정신 활동 역시 임의로 부정할 수 없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3) 모든 감정과 사고 활동이 전부 뇌의 작용임을 밝힌 오늘날에는 뇌 중심설이 이론적으로 완전히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해설읽기
뇌는 조직이 치밀하고 연하다. 때문에 오감을 통해 외부 정보를 쉽게 수용하고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취합하고 해석하여 추론하고 실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장기 가운데 이러한 정신 작용은 뇌만이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작용이 뇌의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경과 혈관이 신체 곳곳에 닿아있어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뇌의 명령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오감이 외부에서 받은 정보나 신체 내부 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뇌가 수용하고 또 신체에 명령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하고 또 뇌의 명령을 신체 하부 기관에 전달하는 매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매개가 바로 뇌기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용어는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뇌신경 혹은 신경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줄이나 실처럼 가는 형태로 뇌로부터 신체 곳곳에 뻗어있으면서 신체 내부 조직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정보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뇌기근의 역할이 ‘정보와 명령의 전달’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으면 감각 기관이나 신체 내부 기관이 내외부 정보에 노출되더라도 뇌에 전달할 수 없고, 뇌 역시 각 기관에 반응을 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뇌기근이 없으면 눈앞에 어떤 물체를 포착하더라도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할 수 없어, 그 대상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오더라도 뇌기근이 없으면 그 소리를 뇌에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뇌기근이 있을 때 비로소 뇌는 정보를 전달받고 취합하여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면서 추론하고 실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최한기는 뇌 중심설을 주장하는 서양 근대 의학 지식을 수용하여 뇌가 몸의 주재자임을 명시하였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뇌 중심설을 인정하면서도 심의 전통적인 위상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가 뇌 중심설과 심 중심설을 자신의 이론 체계 안에 병치하면서도 이론적 모순이나 충돌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설이 양립할 수 있는 이유를 추론하는 시도는 논의의 주제로 남겨둔다.
키워드
뇌 중심설, 뇌기근, 서양 근대의학, 신경, 실측, 심, 심 중심설, 정신, 추론
전후맥락
『신기천험』 첫 장의 뒷부분에서는 뇌의 조직이 치밀하고 연할 뿐만 아니라 두텁고 무겁기 때문에 오감을 통해 얻은 외부 정보를 수용하여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뇌가 정신 활동의 중추이기 때문에 기존의 ‘영혼’이니 ‘신명’이니 하는 설을 무리하게 끌어와서 정신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본격적으로 뇌의 무게와 용량, 뇌의 해부학적 구조, 뇌의 부위별 명칭과 그 기능, 뇌와 연결된 척추의 구조 및 그 기능과 작용 등을 해부도와 함께 상세히 논한다.
고전본문
뇌는 머리 속에 있는데, 그 조직이 치밀하고 연하다. 소리와 색, 냄새, 맛, 여러 감촉의 신기(神氣)와 쉽게 감통하여 흔적을 남기고 전후 사정을 기억하고 해석하며, 사물을 추론하고 실측하는 일은 전부 뇌가 하는 것으로, 뼈와 살, 피, 장기가 비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뇌가 어찌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여 기질을 기르고 지식을 파악하겠는가. 뼈와 살, 피, 장기가 전부 신경[筋]과 혈관을 따라 연결되어 위아래로 두루 통하며 저마다 맡은 일을 실행하고, 모두 모여서 뇌의 기질을 기르고 뇌의 지식을 통하게 한다.
(…) 뇌기근(腦氣筋)은 흰색 물질로 되어 있고 뇌의 명령[氣勢]을 전달한다. 그것은 줄이나 선, 실처럼 가닥가닥 나누어져 온몸 내부 기관을 온통 휘감으며, 다섯 가지 감각 기관과 온몸, 살갗과 살, 근육과 뼈, 장부 등 안팎으로 모든 곳에 닿아 있다. 눈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볼 수 없고 귀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코에 뇌기근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고, 혀에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맛을 느끼지 못한다. 손가락도 뇌기근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매끄럽거나 거친 것을 느낄 수 없다. 소리와 색, 냄새, 맛 및 여러 감촉은 한두 차례에서 서너 차례에 걸쳐서 뇌에 점차 깊이 전달되고 뇌 속에 점차 깊이 스며든다. 처음에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와 두번째로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를 비교하고, 다시 뇌에 전달된 청각 정보를 가지고 뇌에 전달된 시각 정보를 검증하면 추론과 실측이 생겨날 것이다. (…)
[출전] 『신기천험』의 「뇌는 온몸을 주관한다」
사람의 형체는 뇌기근과 골수, 혈맥과 기관이 기틀을 이루고 몸을 이루어서 스스로 생각하고 운동할 수 있으니, 고금의 모든 일을 추론하고 실측하여 인간의 도를 전부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구태여 뇌가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만 믿어서 심이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을 버릴 필요가 있겠는가. 또 구태여 심이 정신을 주재한다는 주장에 매몰되어서, 뇌기근이 전신의 모든 구멍과 모든 감촉에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는 즉시 감응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
[출전] 『신기천험』의 「총론」
토론하기
(1) 뇌가 정신과 신체를 주관한다는 뇌 중심설이 심이 정신과 신체를 주관한다는 심 중심설의 동아시아 세계에 전파되었을 때, 동아시아 지식인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2) 최한기가 뇌를 정신 활동과 신체 작용의 중추라고 말하면서도, 심의 정신 활동 역시 임의로 부정할 수 없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3) 모든 감정과 사고 활동이 전부 뇌의 작용임을 밝힌 오늘날에는 뇌 중심설이 이론적으로 완전히 승리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해설읽기
뇌는 조직이 치밀하고 연하다. 때문에 오감을 통해 외부 정보를 쉽게 수용하고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취합하고 해석하여 추론하고 실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장기 가운데 이러한 정신 작용은 뇌만이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작용이 뇌의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경과 혈관이 신체 곳곳에 닿아있어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뇌의 명령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오감이 외부에서 받은 정보나 신체 내부 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뇌가 수용하고 또 신체에 명령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하고 또 뇌의 명령을 신체 하부 기관에 전달하는 매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매개가 바로 뇌기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용어는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뇌신경 혹은 신경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줄이나 실처럼 가는 형태로 뇌로부터 신체 곳곳에 뻗어있으면서 신체 내부 조직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정보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뇌기근의 역할이 ‘정보와 명령의 전달’이기 때문에, 이것이 없으면 감각 기관이나 신체 내부 기관이 내외부 정보에 노출되더라도 뇌에 전달할 수 없고, 뇌 역시 각 기관에 반응을 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뇌기근이 없으면 눈앞에 어떤 물체를 포착하더라도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할 수 없어, 그 대상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오더라도 뇌기근이 없으면 그 소리를 뇌에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뇌기근이 있을 때 비로소 뇌는 정보를 전달받고 취합하여 정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면서 추론하고 실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최한기는 뇌 중심설을 주장하는 서양 근대 의학 지식을 수용하여 뇌가 몸의 주재자임을 명시하였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뇌 중심설을 인정하면서도 심의 전통적인 위상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가 뇌 중심설과 심 중심설을 자신의 이론 체계 안에 병치하면서도 이론적 모순이나 충돌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설이 양립할 수 있는 이유를 추론하는 시도는 논의의 주제로 남겨둔다.
키워드
뇌 중심설, 뇌기근, 서양 근대의학, 신경, 실측, 심, 심 중심설, 정신, 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