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글머리에서 이익은 신체의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장기인 간과 심장, 뇌를 소개하고, 이어서 이들이 만들어낸 신체의 피와 열, 기와 같은 필수 생존 요소를 통해 신체가 운용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인간은 피가 신체 각지에 흘러야 성장할 수 있고 열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기 즉 에너지가 있어야 신체의 운동이 가능하다. 이들 피와 열, 기는 각각 간과 심장, 뇌에서 만들어진다. 글 중반에는 음식 섭취를 통해 세 주요 장기가 세 가지 생존 요소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말미에 뇌로부터 전신에 퍼지는 ‘동각의 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다.
고전본문
간이 체내를 통하여 절반쯤 소화된 식량을 흡수하는데, 이것은 점차 신체 내부의 힘에 의해 전부 피로 변한다. 그리고 피의 정미한 부분은 거듭 변화하여 혈로(血路)가 되니, 이것이 이른바 ‘체성(體性)의 기’이다. 이 기는 가장 미세해서 온갖 혈관에 흐르는데. 신체 내부의 모든 구멍을 열어 피가 전신에 흐르도록 추동할 수 있다. 또한 간에서 생산된 피 중 10퍼센트는 동맥을 거쳐 심장에 들어가는데, 먼저 우심실로 들어간 다음 좌심실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피는 점차 정미해져 그중 절반이 혈로로 변하니, 이것이 이른바 ‘생양(生養)의 기’이다. 이 기는 심장의 따뜻한 피가 모세혈관을 통해 전신에 흐르도록 추동하여 몸의 열을 보존할 수 있다. 또 이 혈로 중 10~20퍼센트가 동맥을 거쳐 뇌 안으로 올라간다. 그것은 다시 한층 세밀하게 변해서 ‘동각(動覺)의 기’가 되니, 이 기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과 팔, 다리, 머리, 몸통 등 온몸이 움직이고 감각하며 신체 부위마다 그 기능을 실행하게 만든다.
(…) 살펴보건대 서양 의학의 주장은 중국의학과 견주어 더욱 상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없애서는 안 된다. 하지만 체계와 용어가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다. (…) 머리의 가장 중요한 부위는 골수에 있는데 이를 뇌라고 한다. 힘줄은 모두 뇌에 연결되어 모이고 혈맥을 따라 모두 퍼져 있으니, 뇌가 한 몸의 중심 기관임을 알 수 있다. 힘줄의 힘이 몸의 온갖 부위를 운용할 수 있으니, 동각의 기 중 동기가 뇌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각(覺)’이라는 한 글자를 덧붙인 것은 유학의 설과 다르다. 그러나 살은 힘줄로 움직이고 힘줄은 살에 연결되어 있다. 외부 사물이 살에 닿으면 곧바로 살이 움찔하는 것은, 힘줄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는가. 힘줄은 자각하지 못한다. 뇌가 있기 때문에 물체가 닿으면 생각하지 않고 즉각 움찔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뇌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물체가 닿을 때 그렇게 움찔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심이다. 그렇다면 감각은 뇌에 있고 정신은 심에 있는 것이니 서양의학의 이론 역시 합당하다.(…)
[출전] 『성호사설유선』의 「서국의」
토론하기
(1) 동아시아의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들의 낯선 개념과 이론에 당혹감과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개념과 이론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그들의 세계관과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2) 조선에 전래된 서양의 정교한 해부학과 생리학 중에서 이익은 생리학에 주목하고 그 중 뇌의 기능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3) 우리의 통념과 다른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다루기 위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할지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입의 저작 운동으로 곤죽이 된 음식물은 신체 내부의 에너지에 의해 전부 피로 만들어지고, 피의 일부는 미세하게 변하여 이슬과 같은 혈로로 바뀌는데, 이것을 ‘체성의 기’라고 부른다. ‘체성의 기’는 일종의 에너지로서, 피가 온몸에 흐르도록 추동한다. 그리고 간에서 생성된 피 중 10%는 동맥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피 중 절반은 우심실에서 좌심실로 흐르는 중에 정미한 혈로로 변한다. 이것은 ‘생양의 기’로 명명되며, 심장에서 생성된 열을 피가 전신에 퍼진 모세 혈관까지 나르게 하여 체온을 보존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생양의 기 중 10~20%는 대동맥을 통해 뇌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은 뇌에서 더 미세하게 정제되어 ‘동각의 기’로 바뀐다. ‘동각의 기’는 온몸에 구석구석 퍼져 있는 신경 근육을 움직여 신체의 모든 운동과 감각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전신의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지배한다. 이익은 『주제군징』에서 ‘동각의 기’가 전 신체의 감각과 운동을 관장하는 내용까지 인용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익은 서양 의학의 체계나 용어가 전통 의학과 매우 달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하였다. 그의 해석 중 주목할 지점은 그가 뇌의 기능과 역할을 전통 지식에 기반하여 보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은 뇌에 정신 능력과 감각 및 운동 능력이 있기에 뇌가 신체를 지배한다는 서양의 뇌 중심 이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뇌의 정신 능력은 거부하고 감각과 운동 능력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는 ‘동각의 기’를 ‘동기’와 ‘각기’로 구분하고 전자를 운동 에너지로, 후자를 감각 혹은 반사작용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뇌에서 생산된 동기와 각기가 힘줄(*현대적 관점에서 신경)을 통로로 전신에 퍼지며 육신의 운동과 감각·반사작용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뇌를 육신의 중심 기관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심의 주재자적 위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뇌의 역할을 육신의 움직임 및 의식과 상관없는 신체의 생리 작용과 반사작용, 감각 작용 일체를 주관하는 데 한정하고, 이러한 작용을 알고 기억하며 추론하고 판단하며 성찰하는 등의 일체의 정신 능력은 여전히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익은 뇌에서 생성된 ‘동각의 기’가 신체의 운동과 감각·반사작용을 담당하고 심장에 깃든 마음이 정신을 담당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서양 의학의 뇌 중심 이론 역시 합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심과 뇌를 각각 ‘정신 기능의 주재’와 ‘물리적 기능의 주재’로 인정하고 한 몸의 주재를 이중으로 설정한 그의 주장은, 마음만을 한 몸의 통합적 주재로 본 성리학 전통을 벗어난 예외적이고 독특한 이론이었다.
키워드
간, 갈레노스 생리설, 뇌, 동각의 기, 새양의 기, 서국의, 서양의학, 심장, 주제군징, 체성의 기, 혈로
전후맥락
글머리에서 이익은 신체의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장기인 간과 심장, 뇌를 소개하고, 이어서 이들이 만들어낸 신체의 피와 열, 기와 같은 필수 생존 요소를 통해 신체가 운용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인간은 피가 신체 각지에 흘러야 성장할 수 있고 열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기 즉 에너지가 있어야 신체의 운동이 가능하다. 이들 피와 열, 기는 각각 간과 심장, 뇌에서 만들어진다. 글 중반에는 음식 섭취를 통해 세 주요 장기가 세 가지 생존 요소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말미에 뇌로부터 전신에 퍼지는 ‘동각의 기’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다.
고전본문
간이 체내를 통하여 절반쯤 소화된 식량을 흡수하는데, 이것은 점차 신체 내부의 힘에 의해 전부 피로 변한다. 그리고 피의 정미한 부분은 거듭 변화하여 혈로(血路)가 되니, 이것이 이른바 ‘체성(體性)의 기’이다. 이 기는 가장 미세해서 온갖 혈관에 흐르는데. 신체 내부의 모든 구멍을 열어 피가 전신에 흐르도록 추동할 수 있다. 또한 간에서 생산된 피 중 10퍼센트는 동맥을 거쳐 심장에 들어가는데, 먼저 우심실로 들어간 다음 좌심실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피는 점차 정미해져 그중 절반이 혈로로 변하니, 이것이 이른바 ‘생양(生養)의 기’이다. 이 기는 심장의 따뜻한 피가 모세혈관을 통해 전신에 흐르도록 추동하여 몸의 열을 보존할 수 있다. 또 이 혈로 중 10~20퍼센트가 동맥을 거쳐 뇌 안으로 올라간다. 그것은 다시 한층 세밀하게 변해서 ‘동각(動覺)의 기’가 되니, 이 기는 다섯 가지 감각 기관과 팔, 다리, 머리, 몸통 등 온몸이 움직이고 감각하며 신체 부위마다 그 기능을 실행하게 만든다.
(…) 살펴보건대 서양 의학의 주장은 중국의학과 견주어 더욱 상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없애서는 안 된다. 하지만 체계와 용어가 너무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다. (…) 머리의 가장 중요한 부위는 골수에 있는데 이를 뇌라고 한다. 힘줄은 모두 뇌에 연결되어 모이고 혈맥을 따라 모두 퍼져 있으니, 뇌가 한 몸의 중심 기관임을 알 수 있다. 힘줄의 힘이 몸의 온갖 부위를 운용할 수 있으니, 동각의 기 중 동기가 뇌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각(覺)’이라는 한 글자를 덧붙인 것은 유학의 설과 다르다. 그러나 살은 힘줄로 움직이고 힘줄은 살에 연결되어 있다. 외부 사물이 살에 닿으면 곧바로 살이 움찔하는 것은, 힘줄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는가. 힘줄은 자각하지 못한다. 뇌가 있기 때문에 물체가 닿으면 생각하지 않고 즉각 움찔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뇌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물체가 닿을 때 그렇게 움찔하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심이다. 그렇다면 감각은 뇌에 있고 정신은 심에 있는 것이니 서양의학의 이론 역시 합당하다.(…)
[출전] 『성호사설유선』의 「서국의」
토론하기
(1) 동아시아의 고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들의 낯선 개념과 이론에 당혹감과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개념과 이론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그들의 세계관과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자.
(2) 조선에 전래된 서양의 정교한 해부학과 생리학 중에서 이익은 생리학에 주목하고 그 중 뇌의 기능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3) 우리의 통념과 다른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다루기 위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할지 논의해보자.
해설읽기
입의 저작 운동으로 곤죽이 된 음식물은 신체 내부의 에너지에 의해 전부 피로 만들어지고, 피의 일부는 미세하게 변하여 이슬과 같은 혈로로 바뀌는데, 이것을 ‘체성의 기’라고 부른다. ‘체성의 기’는 일종의 에너지로서, 피가 온몸에 흐르도록 추동한다. 그리고 간에서 생성된 피 중 10%는 동맥을 통해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피 중 절반은 우심실에서 좌심실로 흐르는 중에 정미한 혈로로 변한다. 이것은 ‘생양의 기’로 명명되며, 심장에서 생성된 열을 피가 전신에 퍼진 모세 혈관까지 나르게 하여 체온을 보존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생양의 기 중 10~20%는 대동맥을 통해 뇌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것은 뇌에서 더 미세하게 정제되어 ‘동각의 기’로 바뀐다. ‘동각의 기’는 온몸에 구석구석 퍼져 있는 신경 근육을 움직여 신체의 모든 운동과 감각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전신의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을 지배한다. 이익은 『주제군징』에서 ‘동각의 기’가 전 신체의 감각과 운동을 관장하는 내용까지 인용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익은 서양 의학의 체계나 용어가 전통 의학과 매우 달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평가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하였다. 그의 해석 중 주목할 지점은 그가 뇌의 기능과 역할을 전통 지식에 기반하여 보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은 뇌에 정신 능력과 감각 및 운동 능력이 있기에 뇌가 신체를 지배한다는 서양의 뇌 중심 이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뇌의 정신 능력은 거부하고 감각과 운동 능력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는 ‘동각의 기’를 ‘동기’와 ‘각기’로 구분하고 전자를 운동 에너지로, 후자를 감각 혹은 반사작용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뇌에서 생산된 동기와 각기가 힘줄(*현대적 관점에서 신경)을 통로로 전신에 퍼지며 육신의 운동과 감각·반사작용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뇌를 육신의 중심 기관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심의 주재자적 위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뇌의 역할을 육신의 움직임 및 의식과 상관없는 신체의 생리 작용과 반사작용, 감각 작용 일체를 주관하는 데 한정하고, 이러한 작용을 알고 기억하며 추론하고 판단하며 성찰하는 등의 일체의 정신 능력은 여전히 마음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익은 뇌에서 생성된 ‘동각의 기’가 신체의 운동과 감각·반사작용을 담당하고 심장에 깃든 마음이 정신을 담당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서양 의학의 뇌 중심 이론 역시 합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심과 뇌를 각각 ‘정신 기능의 주재’와 ‘물리적 기능의 주재’로 인정하고 한 몸의 주재를 이중으로 설정한 그의 주장은, 마음만을 한 몸의 통합적 주재로 본 성리학 전통을 벗어난 예외적이고 독특한 이론이었다.
키워드
간, 갈레노스 생리설, 뇌, 동각의 기, 새양의 기, 서국의, 서양의학, 심장, 주제군징, 체성의 기, 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