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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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은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장편소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읽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도스토옙스키가 관심을 가졌던 여러 인본주의적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아낸 이 소설은 한 청년의 살인사건을 통해 범죄와 심리, 사회비판, 사상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당대 러시아의 현실을 조망함으로써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 되었다.

『죄와 벌』은 1865년 집필되기 시작하여 1866년 1월부터 <러시아통보>에 연재되었다가 1867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실제 범죄 사건으로부터 착상을 얻었다는 점에서 발표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는데, 그것은 1865년 1월 모스크바에서 이십대의 한 청년이 두 명의 중년 여성을 도끼로 살해하고 돈과 귀중품을 훔친 일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사건으로부터 급격히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던 1800년대 중반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의 뒷골목에 사는 빈곤하고 무력한 사람들의 군상(群像)을 그려낼 소재를 발견한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사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는 탐욕스럽고 냉정한 고리대금업자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다. 하지만 그의 살인은 빈곤과 물질욕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념과 사상에 의한 것이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분노와 빈곤하고 학대받는 하층민들에 대한 연민은 재능있고 야심찬 대학생 라스콜니코프로 하여금 이상적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류에 해악이 되는, 이[虱]와 같은 인간들을 제거할 수 있는 논리를 구성하도록 만든다. 라스콜니코프는 이러한 생각을 논문 <범죄론>에서 기술한바 있고,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논문을 주목하고 그가 살인을 저지른 범인(犯人)임을 간파한다.

라스콜니코프의 논문과 이를 둘러싼 라주미힌, 포르피리, 라스콜니코프 등의 젊은 지식인들의 논쟁에서는 당대 러시아의 젊은 세대가 신봉했던 여러 사회사상들, 낭만적인 나폴레옹주의(영웅주의), 공상적 사회주의, 유물론, 공리주의, 합리주의, 니체의 초인 사상 등의 영향이 드러난다. 당시 사상적 혼돈과 젊은 지식인의 고뇌,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사회 비판 및 개혁 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라스콜니코프를 비롯한 이들의 논쟁이 특히 시사점을 주는 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회 사상이 당시 현실을 사는 젊은이의 구체적인 생각과 행위를 통해 어떻게 이해되고 실현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라스콜니코프와 그의 가족사에 개입하는 여러 인물들, 스비드리가일로프, 루딘, 레비드니코프, 소냐를 비롯한 마르멜라도프 가족 등의 인물들은 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침투한 당시 사회사회의 여러 유형의 인물을 또한 예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학생. 상인, 경찰, 판사, 하급 관리, 가정교사, 노동자, 상인, 창녀, 알콜중독자 등 직업도 신분도 다양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결국은 당시 라스콜니코프나 마르멜라도프 가족이 사는 도시 뒷골목의 공간을 중심으로 공전한다. 이곳에 사는 이들은 도스토옙스키가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에서부터 계속 주인공으로 삼았던, 빈곤하고 학대받는 이들, 비평가 벨린스키의 정의에 따르면, ‘작은 인간’들이다. 자의식적 고뇌와 사상에 의해 범죄자가 되는 라스콜니코프는 러시아 인텔리겐치아 속의 ‘작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죄와 벌󰡕은 제목이 가리키듯이 무엇보다 한 인간의 죄와 그에게 주어진 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하나의 행위가 어떻게 발생하여 완성되는지, 그 이후에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영혼 속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라, 그에게 일어난 사건, 즉 “죄와 벌”이 된다.

그렇다면 라스콜니코프의 죄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러시아어로 ‘죄’를 의미하는 ‘페레스투플레니예’(переступление)라는 단어에 암시되어 있다. 이 단어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넘어섬”이다. 즉 죄란 “어떤 선(線)을 넘어섬”이다. 그리고 그 어떤 선이란 바로 라스콜니코프가 넘어서려 했던 양심과 도덕적 의무, 상도(常道)인 것이다. 그는 상도를 넘어설 수 있는 권리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합리화했다. 그러나 물질주의적 척도에서 자본주의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공리주의의 논리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범죄론>에 대한 논쟁에서 라스콜니코프의 친구 라주미힌은 바로 이처럼 “양심에 비추어서 유혈을 허용한다”는 라스콜니코프의 논리가 독창적이지만 그것은 광신(狂信)이며 정신적 미혹(迷惑)이라 염려한다.

라스콜니코프는 무의식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정신적 중압감과 고립감으로 시달리다가 벌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수하고 재판에서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사실대로 낱낱이 고백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지만, 실상 그는 끝내 진정으로 ‘선을 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한다. 빈곤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이[虱]와 같은 노파를 없애는 것, 수많은 생명을 위해 하등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한 생명을 해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 범죄의 권리를 인정받는 초인이 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자신이 담담히 선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 강변한다.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죄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이성과 논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죄책감을 의식하는 것은 이성이나 논리는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한 어린 매춘부 소냐의 사랑과 공감을 통해서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스토옙스키는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법대생 라스콜니코프를 어리고 무지한 매춘부인 소냐 앞에 무릎을 꿇게 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두 번째의 논쟁, 그러나 논리와 논리, 이성과 이성이 대결했던, <범죄론>에 관한 첫 번째 논쟁과 달리 진정한 논쟁은 바로 라스콜니코프와 소냐 사이에서 벌어진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의 고통을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그와 함께 십자가를 걸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이 논쟁에서는 소냐가 라스콜니코프에게, 즉 이기주의적인 합리적 이성에 대해 이타주의적이고 희생적인 공감이 승리를 거둔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타주의적 공감을 ‘함께 고통받음’이라 정의했다. ‘함께 고통받음’은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윤리적 태도로 생각했던 것으로, 기실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소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것이다.

유형을 떠난 라스콜니코프는 벌을 받은 것이지만, 여전히 이성과 논리로 사고하는 그는 자신의 죄를 분명히 인정하지 못한다. 다만 그는 소냐의 공감과 희생적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막연히 예감한다. 이처럼 라스콜니코프의 유형생활을 그린 에필로그는 『죄와 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니코프가 반성하는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갱생(更生)한다. 그는 성경을 집어들며 자신이 죄를 고백할 때 소냐가 읽어주었던 나사로의 부활에 관한 구절을 떠올린다. 소냐의 ‘함께 고통받음’을 통해 자신의 갱생을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말은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그것은 이성과 합리주의를 넘어선 종교적 감정만이 도덕적 각성을 일깨울 수 있으며 그러한 도덕적 각성에서 생겨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인류애의 근본이라는 그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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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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