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가]는 춘추좌전의 문공(文公) 18년(기원전 609년) 조에 기록된 여러 기사 중 하나이다. 이 기사에서는 제나라 의공과 그의 신하 병촉, 염직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와 병촉, 염직의 복수 서사를 기술하였다. [가]는 해당 기사의 전문이다. [나]는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 조에 기록된 여러 기사 중 하나이다. 이 기사에서는 초나라 강왕과 그의 신하 기질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와 복수를 포기한 기질의 이야기를 기술하였다. [나]는 해당 기사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가] 제나라의 의공은 공자*였던 시절에 병촉의 부친과 땅 문제로 소송을 하였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제후가 되자 병촉의 부친 시신을 파내어서 다리를 끊어내고 병촉을 자신의 수레를 몰게 하여 노복처럼 대했다. 또한 의공은 신하인 염직의 아내를 빼앗고는 염직을 하대하여 자신의 거우**로 삼았다. 이해 여름 5월, 의공이 신지라는 못에서 노닐고 있었다. 이때 병촉과 염직 두 사람이 못에서 함께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병촉이 채찍으로 염직을 때렸다. 그러자 염직이 크게 노했다. 이에 병촉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인을 빼앗길 때는 노하지도 못했으니 널 한 번 때린 것이 무슨 문제인가?” 염직이 대꾸했다. “자기 아버지의 다리를 끊어내도 탓하지 못했던 자는 또 어떻고?” 이에 두 사람은 의공을 죽이자고 모의한 후 그를 죽인 후 대나무 숲속에다 버렸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술을 다 비우고는 도망쳤다. 이에 제나라 대부***들이 공자 원을 제후로 옹립하였다.
* 공자 : 군주인 제후의 아들을 가리킴.
** 거우 : 관직명.
*** 대부 : 국정에 참여하는 고위 관리.
[나] 초나라 강왕은 영윤* 자남을 총애하였는데 자남의 봉록을 높여주지 않았음에도 그가 지닌 말이 마흔 마리나 되었다. 다른 신하들이 이를 걱정하니 강왕은 자남의 부패를 다스리고자 했다. 그런데 자남의 아들 기질이 자신과 가까운 어사**인 까닭에 이를 행치 못하고 기질을 볼 때마다 매번 꼬박꼬박 울었다. 이에 기질이 여쭈었다. “임금께서는 저를 보시면서 세 차례나 우셨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누구의 죄 때문에 그러하십니까?” 강왕이 답했다. “영윤의 부족함은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나라의 대부들이 그를 다스리라고 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대는 내 곁에 남아 있겠는가?” 기질이 답하여 아뢨다. “아버지가 처형당했는데 아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군주가 어찌 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군주의 명을 발설하는 것은 중형에 해당하오니 제가 이 일을 발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강왕은 영윤 자남을 처벌한 다음 시신을 사방에서 두루 볼 수 있게 하였다. 자남의 가신이 기질에게 말했다. “강왕에게 자남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간청하십시오.” 그러자 기질이 말했다. “군신 간에는 정해진 예법이 있소. 여러 대신들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오.” 사흘이 지난 후 기질을 시신 거두기를 청했고 강왕이 허락하였다. 자남을 장사지내자 그 가신이 여쭸다. “떠나실 것입니까?” 기질이 말했다. “나는 강왕과 함께 나의 아버지를 죽인 셈인데 떠나서 앞으로 어디로 가서 산단 말인가?” 가신이 말했다. “그러면 강왕의 신하로서 그를 계속 섬기실 것인가요?” 기질이 말했다. “아버지를 버리고 그 원수를 섬기는 것을 나는 차마 하지 못하겠다.” 그러고는 마침내 자결했다.
* 영윤 : 재상에 해당하는 초나라의 관직명.
** 어사 : 관직명.
[원문]
[가] 齊懿公之爲公子也, 與邴歜之父爭田, 弗勝. 及卽位, 乃掘而刖之, 而使歜僕. 納閻職之妻, 而使職驂乘. 夏五月, 公游于申池. 二人浴于池. 歜以扑抶職. 職怒. 歜曰, “人奪女妻而不怒, 一抶女, 庸何傷.” 職曰, “與刖其父而弗能病者何如.” 乃謀弑懿公, 納諸竹中. 歸, 舍爵而行. 齊人立公子元.
[나] 楚觀起有寵於令尹子南, 未益祿而有馬數十乘. 楚人患之, 王將討焉. 子南之子棄疾爲王御士, 王每見之, 必泣. 棄疾曰, “君三泣臣矣, 敢問誰之罪也.” 王曰, “令尹之不能, 爾所知也. 國將討焉, 爾其居乎.” 對曰, “父戮子居, 君焉用之. 洩命重刑, 臣亦不爲.” 王遂殺子南於朝, 轘觀起於四竟. 子南之臣謂棄疾, “請徙子尸於朝.” 曰, “君臣有禮, 唯二三子.” 三日, 棄疾請尸, 王許之. 旣葬, 其徒曰, “行乎.” 曰, “吾與殺吾父, 行將焉入.” 曰, “然則臣王乎.” 曰, “棄父事讎, 吾弗忍也.” 遂縊而死.
토론하기
(1) [가]에서 병촉과 염직은 자신들의 군주임에도 의공에게 복수를 했다. 반면에 [나]에서 기질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강왕에 대한 복수를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2) 병촉과 염직의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기질의 복수 포기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각각에 대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정당화된다면 그 이유를, 정당화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헤아려보자.
(3) [가], [나]를 토대로 복수의 속성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아무리 인류의 도덕 수준과 문명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복수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지난 선거에서의 패배를 설욕한다든지 하며 선거 행위를 복수에 비유한다. 정치뿐 아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실적을 비교할 때도, 스포츠에서 행하는 공정한 경쟁에서 승패를 언급할 때도 곧잘 복수 운운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성적 경쟁을 벌이며 복수심을 품기도 한다. 이는 복수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현상임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제법 높은 시청률과 흥행률을 보인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복수를 제재로 삼은 것들이라는 점도 이를 잘 말해준다.
사실 복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현상이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회이다. 그런데 사회는 늘 도덕적이고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도덕과 법, 제도 등이 있어 가능한 사회가 선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지만, 권력을 쥐거나 돈이 많거나 또는 신체적 완력이 센 이들에 의해 도덕, 법, 제도 등이 어지럽혀지고 훼손되는 일도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보니 억울하게 손해를 보거나 몸과 마음을 다쳐 원한을 품는 이들이 속출한다. 복수는 바로 이러한 원한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2,600여 년 전의 복수 이야기를 2,500여 년 전의 복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고전 본문 [가]와 [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복수는 언제 어디서나 또 어떤 사회이든 항상 존재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복수가 이렇듯 인간사회에서 늘 있게 마련이라면 복수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가]에서 제나라의 의공이라는 군주는 태자 시절에 병촉이란 이의 부친과 땅 문제로 소송을 벌였다가 패했다. 오늘날에만 소송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2,600여 년 전에도 소송이 있었다. 또한 소송 대상에는 제한이 없어서 군주를 상대로도 소송을 걸 수가 있었다. 덕분에 병촉의 부친은 군주의 아들과 대등하게 소송을 벌여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태자가 깨끗이 승복하지 못하고 이에 대하여 앙심을 품었던 데서 비롯됐다. 그는 제후, 그러니까 군주가 되자 병촉의 부친 시신을 파내어서 다리를 끊어냄으로써 소송에서 진 데 대한 복수를 자행했고, 그러고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아무 관련도 없는 병촉을 자신의 수레를 몰게 하여 하인처럼 대했다. 병촉은 엄연히 귀족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의공의 악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하인 염직의 아내를 보고는 그 미모에 반해 강제로 자기 아내로 삼았고 염직을 자신의 호위무사 격인 거우로 삼았다. 병촉이나 염직으로서는 아무리 자신의 군주라고 해도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촉과 염직은 신지라는 연못으로 놀러 간 의공을 수행하였다. 마침 둘이 틈이 생겨 못에서 목욕을 하다가 서로가 서로의 아픈 곳을 찔러 대면서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두 사람의 공통의 원수인 의공을 죽이자는 데 뜻을 모으고는 의공을 죽이고는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이 복수 이야기를 통해 복수의 속성을 적어도 두 가지를 짚어낼 수 있다. 하나는 복수의 대상은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군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촉과 염직이 군주를 대상으로 원한을 갚은 행위가 결코 예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기질은 부친이 재상임에도 부정부패했고 그 죄 값으로 군주에 의해 정당하게 처형당했음에도 기질은 부친을 처형한 군주에 대해 ‘원수’라고 표현한다. 군주의 부친 처형이 공적으로 정당했음에도 아들이 군주를 복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렇듯 복수심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복수는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복수를 행하는 과정에서 복수자는 추가적으로 대가를 더 치르게 된다. 병촉과 염직이 도망갔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복수를 하지 않았다면 굳이 자기 삶의 기반을 내팽개치고 아무런 기반도 없는 낯선 타국으로 도망가 숨어 살아야 하는 고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를 감행하였고 그 대가로 다른 나라로 도망가 살아야 하게 되었다.
한편 추가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복수의 속성은 반드시 복수를 실행에 옮겼을 때만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서 기질은 법을 정당하게 행사한 군주를 자기 아버지를 처형했다는 이유만으로 원수로 여긴다. 당시에는 법에 의해 정당하게 행해진 처형이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래야만 아버지에 대한 효를 다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질도 죄를 저지른 아버지임에도, 군주가 정당하게 법을 행사하여 처형했음에도 군주를 원수로 삼았던 것이다. 다만 기질은 신하로서 군주에게 복수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원수인 군주를 예전처럼 섬길 수도 없는 일인 만큼 떠날 수밖에 없었음이다. 그런데 기질은 이 길도 포기한다. 부친의 원수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다는 수치를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결을 선택한다.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군왕을 원수로 여긴 한에는, 다시 말해 복수심을 품고 있는 한에는 추가적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키워드
도망, 복수 복수 속성, 자결, 춘추시대, 춘추좌전
[앞뒤 맥락]
[가]는 춘추좌전의 문공(文公) 18년(기원전 609년) 조에 기록된 여러 기사 중 하나이다. 이 기사에서는 제나라 의공과 그의 신하 병촉, 염직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와 병촉, 염직의 복수 서사를 기술하였다. [가]는 해당 기사의 전문이다. [나]는 양공(襄公) 22년(기원전 551년) 조에 기록된 여러 기사 중 하나이다. 이 기사에서는 초나라 강왕과 그의 신하 기질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와 복수를 포기한 기질의 이야기를 기술하였다. [나]는 해당 기사의 전문이다.
[고전본문]
[가] 제나라의 의공은 공자*였던 시절에 병촉의 부친과 땅 문제로 소송을 하였지만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제후가 되자 병촉의 부친 시신을 파내어서 다리를 끊어내고 병촉을 자신의 수레를 몰게 하여 노복처럼 대했다. 또한 의공은 신하인 염직의 아내를 빼앗고는 염직을 하대하여 자신의 거우**로 삼았다. 이해 여름 5월, 의공이 신지라는 못에서 노닐고 있었다. 이때 병촉과 염직 두 사람이 못에서 함께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병촉이 채찍으로 염직을 때렸다. 그러자 염직이 크게 노했다. 이에 병촉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인을 빼앗길 때는 노하지도 못했으니 널 한 번 때린 것이 무슨 문제인가?” 염직이 대꾸했다. “자기 아버지의 다리를 끊어내도 탓하지 못했던 자는 또 어떻고?” 이에 두 사람은 의공을 죽이자고 모의한 후 그를 죽인 후 대나무 숲속에다 버렸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술을 다 비우고는 도망쳤다. 이에 제나라 대부***들이 공자 원을 제후로 옹립하였다.
* 공자 : 군주인 제후의 아들을 가리킴.
** 거우 : 관직명.
*** 대부 : 국정에 참여하는 고위 관리.
[나] 초나라 강왕은 영윤* 자남을 총애하였는데 자남의 봉록을 높여주지 않았음에도 그가 지닌 말이 마흔 마리나 되었다. 다른 신하들이 이를 걱정하니 강왕은 자남의 부패를 다스리고자 했다. 그런데 자남의 아들 기질이 자신과 가까운 어사**인 까닭에 이를 행치 못하고 기질을 볼 때마다 매번 꼬박꼬박 울었다. 이에 기질이 여쭈었다. “임금께서는 저를 보시면서 세 차례나 우셨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누구의 죄 때문에 그러하십니까?” 강왕이 답했다. “영윤의 부족함은 그대도 알고 있으리라. 나라의 대부들이 그를 다스리라고 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대는 내 곁에 남아 있겠는가?” 기질이 답하여 아뢨다. “아버지가 처형당했는데 아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군주가 어찌 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군주의 명을 발설하는 것은 중형에 해당하오니 제가 이 일을 발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강왕은 영윤 자남을 처벌한 다음 시신을 사방에서 두루 볼 수 있게 하였다. 자남의 가신이 기질에게 말했다. “강왕에게 자남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간청하십시오.” 그러자 기질이 말했다. “군신 간에는 정해진 예법이 있소. 여러 대신들에게 달려 있을 따름이오.” 사흘이 지난 후 기질을 시신 거두기를 청했고 강왕이 허락하였다. 자남을 장사지내자 그 가신이 여쭸다. “떠나실 것입니까?” 기질이 말했다. “나는 강왕과 함께 나의 아버지를 죽인 셈인데 떠나서 앞으로 어디로 가서 산단 말인가?” 가신이 말했다. “그러면 강왕의 신하로서 그를 계속 섬기실 것인가요?” 기질이 말했다. “아버지를 버리고 그 원수를 섬기는 것을 나는 차마 하지 못하겠다.” 그러고는 마침내 자결했다.
* 영윤 : 재상에 해당하는 초나라의 관직명.
** 어사 : 관직명.
[원문]
[가] 齊懿公之爲公子也, 與邴歜之父爭田, 弗勝. 及卽位, 乃掘而刖之, 而使歜僕. 納閻職之妻, 而使職驂乘. 夏五月, 公游于申池. 二人浴于池. 歜以扑抶職. 職怒. 歜曰, “人奪女妻而不怒, 一抶女, 庸何傷.” 職曰, “與刖其父而弗能病者何如.” 乃謀弑懿公, 納諸竹中. 歸, 舍爵而行. 齊人立公子元.
[나] 楚觀起有寵於令尹子南, 未益祿而有馬數十乘. 楚人患之, 王將討焉. 子南之子棄疾爲王御士, 王每見之, 必泣. 棄疾曰, “君三泣臣矣, 敢問誰之罪也.” 王曰, “令尹之不能, 爾所知也. 國將討焉, 爾其居乎.” 對曰, “父戮子居, 君焉用之. 洩命重刑, 臣亦不爲.” 王遂殺子南於朝, 轘觀起於四竟. 子南之臣謂棄疾, “請徙子尸於朝.” 曰, “君臣有禮, 唯二三子.” 三日, 棄疾請尸, 王許之. 旣葬, 其徒曰, “行乎.” 曰, “吾與殺吾父, 行將焉入.” 曰, “然則臣王乎.” 曰, “棄父事讎, 吾弗忍也.” 遂縊而死.
토론하기
(1) [가]에서 병촉과 염직은 자신들의 군주임에도 의공에게 복수를 했다. 반면에 [나]에서 기질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강왕에 대한 복수를 포기했다. 왜 그랬을까?
(2) 병촉과 염직의 복수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기질의 복수 포기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각각에 대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정당화된다면 그 이유를, 정당화될 수 없다면 그 이유를 헤아려보자.
(3) [가], [나]를 토대로 복수의 속성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해설읽기
아무리 인류의 도덕 수준과 문명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복수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지난 선거에서의 패배를 설욕한다든지 하며 선거 행위를 복수에 비유한다. 정치뿐 아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실적을 비교할 때도, 스포츠에서 행하는 공정한 경쟁에서 승패를 언급할 때도 곧잘 복수 운운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성적 경쟁을 벌이며 복수심을 품기도 한다. 이는 복수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현상임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제법 높은 시청률과 흥행률을 보인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복수를 제재로 삼은 것들이라는 점도 이를 잘 말해준다.
사실 복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현상이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사회이다. 그런데 사회는 늘 도덕적이고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도덕과 법, 제도 등이 있어 가능한 사회가 선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지만, 권력을 쥐거나 돈이 많거나 또는 신체적 완력이 센 이들에 의해 도덕, 법, 제도 등이 어지럽혀지고 훼손되는 일도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보니 억울하게 손해를 보거나 몸과 마음을 다쳐 원한을 품는 이들이 속출한다. 복수는 바로 이러한 원한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2,600여 년 전의 복수 이야기를 2,500여 년 전의 복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고전 본문 [가]와 [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복수는 언제 어디서나 또 어떤 사회이든 항상 존재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복수가 이렇듯 인간사회에서 늘 있게 마련이라면 복수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가]에서 제나라의 의공이라는 군주는 태자 시절에 병촉이란 이의 부친과 땅 문제로 소송을 벌였다가 패했다. 오늘날에만 소송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2,600여 년 전에도 소송이 있었다. 또한 소송 대상에는 제한이 없어서 군주를 상대로도 소송을 걸 수가 있었다. 덕분에 병촉의 부친은 군주의 아들과 대등하게 소송을 벌여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태자가 깨끗이 승복하지 못하고 이에 대하여 앙심을 품었던 데서 비롯됐다. 그는 제후, 그러니까 군주가 되자 병촉의 부친 시신을 파내어서 다리를 끊어냄으로써 소송에서 진 데 대한 복수를 자행했고, 그러고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아무 관련도 없는 병촉을 자신의 수레를 몰게 하여 하인처럼 대했다. 병촉은 엄연히 귀족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의공의 악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하인 염직의 아내를 보고는 그 미모에 반해 강제로 자기 아내로 삼았고 염직을 자신의 호위무사 격인 거우로 삼았다. 병촉이나 염직으로서는 아무리 자신의 군주라고 해도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촉과 염직은 신지라는 연못으로 놀러 간 의공을 수행하였다. 마침 둘이 틈이 생겨 못에서 목욕을 하다가 서로가 서로의 아픈 곳을 찔러 대면서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두 사람의 공통의 원수인 의공을 죽이자는 데 뜻을 모으고는 의공을 죽이고는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이 복수 이야기를 통해 복수의 속성을 적어도 두 가지를 짚어낼 수 있다. 하나는 복수의 대상은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군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병촉과 염직이 군주를 대상으로 원한을 갚은 행위가 결코 예외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의 기질은 부친이 재상임에도 부정부패했고 그 죄 값으로 군주에 의해 정당하게 처형당했음에도 기질은 부친을 처형한 군주에 대해 ‘원수’라고 표현한다. 군주의 부친 처형이 공적으로 정당했음에도 아들이 군주를 복수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렇듯 복수심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복수는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복수를 행하는 과정에서 복수자는 추가적으로 대가를 더 치르게 된다. 병촉과 염직이 도망갔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복수를 하지 않았다면 굳이 자기 삶의 기반을 내팽개치고 아무런 기반도 없는 낯선 타국으로 도망가 숨어 살아야 하는 고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들은 복수를 감행하였고 그 대가로 다른 나라로 도망가 살아야 하게 되었다.
한편 추가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복수의 속성은 반드시 복수를 실행에 옮겼을 때만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서 기질은 법을 정당하게 행사한 군주를 자기 아버지를 처형했다는 이유만으로 원수로 여긴다. 당시에는 법에 의해 정당하게 행해진 처형이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래야만 아버지에 대한 효를 다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질도 죄를 저지른 아버지임에도, 군주가 정당하게 법을 행사하여 처형했음에도 군주를 원수로 삼았던 것이다. 다만 기질은 신하로서 군주에게 복수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원수인 군주를 예전처럼 섬길 수도 없는 일인 만큼 떠날 수밖에 없었음이다. 그런데 기질은 이 길도 포기한다. 부친의 원수에게 복수를 하지 않았다는 수치를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결을 선택한다.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군왕을 원수로 여긴 한에는, 다시 말해 복수심을 품고 있는 한에는 추가적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키워드
도망, 복수 복수 속성, 자결, 춘추시대, 춘추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