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맥락]
이 셀은 세계의 본질은 불변하는 일자라고 본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다룬다. 뒤이어 소개될 헤라클레이토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던 철학자로, 두 사람의 대조는 존재에 대한 철학의 두 극단적 입장을 보여준다. 이 셀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핵심 사상을 요약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을 고전 본문으로 삼고,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논리를 살펴본다.
[고전본문]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 사람으로, 피레스의 아들이며, 제논의 스승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법률가였으나 나중에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철학은 시 형식으로 구성된 책 한 권에 담겼으며, 그 제목은 『자연에 관하여』이다. 이 저작은 머리말, 진리의 길에 대한 논변, 의견의 길에 대한 설명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여신으로부터 두 길을 배웠노라. 첫째는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는 길이며, 이는 설득의 길이다. 둘째는 ‘비존재는 있고, 존재는 없다’는 길인데, 이 길은 전적으로 탐구할 수 없으며,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는 오직 존재만이 사유되고 말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그는 존재는 생성되지 않으며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존재가 생성되려면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비존재란 사유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는 언제나 그러했으며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존재는 전체이며, 하나이고, 지속되며, 불변하며, 충만한 것이다.
그는 이성이야말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본다. 감각은 우리를 속이며, 다수의 존재들, 운동, 변화, 생성을 말하지만, 이는 단지 의견(doxa)일 뿐 진리가 아니다. 여신은 그에게 말한다. “너는 진리의 길과 의견의 길을 모두 배웠으니, 이제 그 차이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는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때조차도,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형성된 허상이라고 본다. 예컨대,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남성과 여성 같은 구분들은 감각에 의존한 허위의 구분들이다. 실제로는 오직 존재만이 있고, 그것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그의 문장은 장엄하고, 운율을 갖춘 시 형식이며, 철학을 시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는 피타고라스나 크세노파네스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전해지며, 제자 제논을 통해 엘레아 학파의 전통을 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IX.21–24 summ. ex cerpt.
토론하기
(1) 파르메니데스는 왜 감각의 탐구를 거부하고 이성과 추론에 기반한 철학을 펼쳤을까? 그의 철학은 이전 자연철학자들과 어떻게 달랐는가?
(2) 파르메니데스는 존재가 단일하고 불변한다고 보았다. 그는 왜 다수성과 변화를 부정하며, 존재의 분할 가능성 자체를 거부했는가?
(3)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변화는 분명해 보이는데, 파르메니데스는 왜 변화 자체가 환상이라고 주장했을까? 그는 생성과 소멸에 대해 어떤 논리를 펼쳤는가?
해설읽기
감각에서 이성으로
기존의 철학자들은 하나의 아르케로부터 다양한 사물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세계가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해서 우주는 하나에서 여럿이 생겨나고 다시 여럿이 하나가 되는 과정의 반복적인 순환이고 그 속에서 변화는 아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프로세스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연 세계를 오직 감각 경험에 의지해서 탐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가 볼 때, 이것은 탐구의 대상도 방법도 모두 확실한 앎을 가져오기 힘든 것이었다. 확실한 앎의 대상은 언제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하지, 감각 사물들처럼 있었다가도 사라지고 없었다가도 생겨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진리는 감각이나 직관이 아니라 지성적 사고에 의해서만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각과 상식이 아니라 이성과 추론에 입각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와 변화에 관한 아주 대담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
존재는 하나다 : 분할 불가능성 논증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는 존재는 영원·불변하며 단일한 어떤 것이다. 아니, 사람 한 명, 개미 한 마리까지 모두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나? 파르메니데스 눈에는 세상 전체가 무슨 반죽 덩어리처럼 보였던 걸까? 하긴 그는 애초에 세상을 눈으로 보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이성과 추론으로만 따르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존재가 여럿일 수 없다는 신박한 주장을 그는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르메니데스는 생각했다. 존재가 분할된다면 그것은 존재에 의해서 분할되거나 비존재에 의해서 분할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비존재로 무엇을 분할하는 것이 가능한가? 비존재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0으로는 나누기를 할 수 없듯이, 비존재로는 그 무엇도 분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비존재가 아니라 존재에 의해서는 분할이 가능할까. 파르메니데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나누려고 애쓰는 것을 두고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칼로 물을 베어 봤자 갈라놓은 물과 물은 계속 물로 연속되기 때문에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존재를 존재로 분할하면 어떻게 되나? 존재가 존재에 의해 여전히 연속되고 만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존재는 무엇으로도 분할될 수 없고,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논박
그렇다면 변화는 어떠한가? 우리의 일상에서 변화를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물을 데우면 온도가 변하고 한 걸음만 내디디면 장소가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변한다. 이렇게 자명한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그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존재가 어떻게 영원·불변할 수 있냐고? 그것은 존재가 생성과 소멸을 겪지 않기 때문이야. 만약 존재가 한시적이어서 운동이나 변화가 진짜이고 현실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생겨나는 것, 다시 말해서 생성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생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어떤 존재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비존재로부터 생성되거나 존재로부터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비존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되는 것은 불가능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이 생길 수 있겠나? 반대로 존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되는 경우라면, 이게 무슨 생성이란 말인가! 이 경우는 그저 기존부터 그저 있었던 것이지 생성되는 것이 아니야! 결국 존재의 생성은 비존재로부터든 존재로부터든 불가능해. 소멸도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서 불가능하고 말이지.' 이처럼 존재는 생겨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를 통해서 존재가 처음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변화 없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키워드
파르메니데스, 일자, 존재,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앞뒤 맥락]
이 셀은 세계의 본질은 불변하는 일자라고 본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다룬다. 뒤이어 소개될 헤라클레이토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던 철학자로, 두 사람의 대조는 존재에 대한 철학의 두 극단적 입장을 보여준다. 이 셀에서는 파르메니데스의 핵심 사상을 요약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을 고전 본문으로 삼고, ‘존재’와 ‘사유’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논리를 살펴본다.
[고전본문]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 사람으로, 피레스의 아들이며, 제논의 스승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법률가였으나 나중에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철학은 시 형식으로 구성된 책 한 권에 담겼으며, 그 제목은 『자연에 관하여』이다. 이 저작은 머리말, 진리의 길에 대한 논변, 의견의 길에 대한 설명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여신으로부터 두 길을 배웠노라. 첫째는 ‘존재는 있고, 비존재는 없다’는 길이며, 이는 설득의 길이다. 둘째는 ‘비존재는 있고, 존재는 없다’는 길인데, 이 길은 전적으로 탐구할 수 없으며,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는 오직 존재만이 사유되고 말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그는 존재는 생성되지 않으며 소멸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존재가 생성되려면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비존재란 사유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는 언제나 그러했으며 언제나 그러할 것이다. 존재는 전체이며, 하나이고, 지속되며, 불변하며, 충만한 것이다.
그는 이성이야말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본다. 감각은 우리를 속이며, 다수의 존재들, 운동, 변화, 생성을 말하지만, 이는 단지 의견(doxa)일 뿐 진리가 아니다. 여신은 그에게 말한다. “너는 진리의 길과 의견의 길을 모두 배웠으니, 이제 그 차이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는 세계의 현상을 설명할 때조차도,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형성된 허상이라고 본다. 예컨대,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남성과 여성 같은 구분들은 감각에 의존한 허위의 구분들이다. 실제로는 오직 존재만이 있고, 그것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그의 문장은 장엄하고, 운율을 갖춘 시 형식이며, 철학을 시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는 피타고라스나 크세노파네스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전해지며, 제자 제논을 통해 엘레아 학파의 전통을 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IX.21–24 summ. ex cerpt.
토론하기
(1) 파르메니데스는 왜 감각의 탐구를 거부하고 이성과 추론에 기반한 철학을 펼쳤을까? 그의 철학은 이전 자연철학자들과 어떻게 달랐는가?
(2) 파르메니데스는 존재가 단일하고 불변한다고 보았다. 그는 왜 다수성과 변화를 부정하며, 존재의 분할 가능성 자체를 거부했는가?
(3)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변화는 분명해 보이는데, 파르메니데스는 왜 변화 자체가 환상이라고 주장했을까? 그는 생성과 소멸에 대해 어떤 논리를 펼쳤는가?
해설읽기
감각에서 이성으로
기존의 철학자들은 하나의 아르케로부터 다양한 사물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세계가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해서 우주는 하나에서 여럿이 생겨나고 다시 여럿이 하나가 되는 과정의 반복적인 순환이고 그 속에서 변화는 아주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프로세스였다. 그런데 그들은 자연 세계를 오직 감각 경험에 의지해서 탐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가 볼 때, 이것은 탐구의 대상도 방법도 모두 확실한 앎을 가져오기 힘든 것이었다. 확실한 앎의 대상은 언제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하지, 감각 사물들처럼 있었다가도 사라지고 없었다가도 생겨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진리는 감각이나 직관이 아니라 지성적 사고에 의해서만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는 문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각과 상식이 아니라 이성과 추론에 입각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와 변화에 관한 아주 대담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
존재는 하나다 : 분할 불가능성 논증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는 존재는 영원·불변하며 단일한 어떤 것이다. 아니, 사람 한 명, 개미 한 마리까지 모두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나? 파르메니데스 눈에는 세상 전체가 무슨 반죽 덩어리처럼 보였던 걸까? 하긴 그는 애초에 세상을 눈으로 보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이성과 추론으로만 따르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존재가 여럿일 수 없다는 신박한 주장을 그는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파르메니데스는 생각했다. 존재가 분할된다면 그것은 존재에 의해서 분할되거나 비존재에 의해서 분할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런데 비존재로 무엇을 분할하는 것이 가능한가? 비존재는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0으로는 나누기를 할 수 없듯이, 비존재로는 그 무엇도 분할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비존재가 아니라 존재에 의해서는 분할이 가능할까. 파르메니데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을 나누려고 애쓰는 것을 두고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칼로 물을 베어 봤자 갈라놓은 물과 물은 계속 물로 연속되기 때문에 떼어 놓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존재를 존재로 분할하면 어떻게 되나? 존재가 존재에 의해 여전히 연속되고 만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존재는 무엇으로도 분할될 수 없고,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논박
그렇다면 변화는 어떠한가? 우리의 일상에서 변화를 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물을 데우면 온도가 변하고 한 걸음만 내디디면 장소가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계절이 변한다. 이렇게 자명한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그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존재가 어떻게 영원·불변할 수 있냐고? 그것은 존재가 생성과 소멸을 겪지 않기 때문이야. 만약 존재가 한시적이어서 운동이나 변화가 진짜이고 현실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생겨나는 것, 다시 말해서 생성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생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어떤 존재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비존재로부터 생성되거나 존재로부터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비존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되는 것은 불가능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이 생길 수 있겠나? 반대로 존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되는 경우라면, 이게 무슨 생성이란 말인가! 이 경우는 그저 기존부터 그저 있었던 것이지 생성되는 것이 아니야! 결국 존재의 생성은 비존재로부터든 존재로부터든 불가능해. 소멸도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서 불가능하고 말이지.' 이처럼 존재는 생겨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를 통해서 존재가 처음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변화 없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키워드
파르메니데스, 일자, 존재,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