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퀴레네 출신의 기하학자인 테오도로스를 만나 아테네의 젊은이들 가운데 뛰어난 자질을 가진 젊은이를 추천해달라고 청한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테오도로스로부터 천문학과 대수학 그리고 기하학과 음악 등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누가 훌륭한 젊은이인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로스는 테아이테토스를 추천했고 곧이어 테아이테토스가 등장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를 상대로 지식 또는 앎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한다.
테아이테토스는 지식이 무엇인지 묻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예시적 정의를 제시한다. 테오도로스에게서 배우는 기하학이나 다른 과목들 그리고 제화술이나 다른 장인들의 기술 등이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정의는 정의하려는 대상을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것의 본질이지 그 대상의 종류나 긴 목록이 아니다. 대상의 예시를 아무리 제시한들 그 대상의 의미나 본질을 직접 드러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점토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서 '화덕 제작자의 점토도, 벽돌 제작공의 점토, 도공의 점토도 모두 점토'라고 답하는 것은 점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대상의 정의는 점토가 '물에 이긴 흙'이라는 설명처럼 단일하고 명료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를 격려하면서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묻는다.
고전본문
테아이테토스 | 하지만 정말이지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렇게 격려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뭔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제게는 뭔가를 아는 사람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타나는 바로는, 앎 혹은 지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
소크라테스 | 젊은이여, 훌륭하고도 고상한 대답일세. 자기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세. 자네의 말이 실한 것인지 아니면 무정란에 불과한지 말일세. 자네는 감각에 의한 인식이 앎이라고 말하는 겐가? |
테아이테토스 | 네. |
소크라테스 | 그런데 자네가 앎에 대해서 한 말은 사소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네. 프로타고라스 역시 그런 말을 했거든. 그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 동일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네.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척도는 인간이다. 존재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다.' 아마 자네도 읽어 봤겠지? |
테아이테토스 | 알고 있다마다요. 자주 읽었습니다. |
소크라테스 | 그러니까 어쨌거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네. 각각의 것은 내게는 내게 보이는 대로 그런 것들이고, 다시 너에게는 너에게 보이는 대로 그런 것들이라고 말이야. 자네도 그리고 나도 저마다의 인간이라는 게지. |
테아이테토스 | 그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151d-152a.
토론하기
(1) 지식에 대한 테아이테토스의 수정된 정의는 무엇이며, 그것과 프로타고라스의 주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해보자.
(2)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을 이른바 '인간척도설'이라고 부른다. 인간척도설에 대한 각자의 인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3)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소피스트들이 상대적 진리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철학자들과 사상적 경쟁 관계를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척도설의 이면에 감춰진 함의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추론해보자.
해설읽기
앎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길과 그 교차점
경험론과 합리론은 ‘앎의 궁극적 원천은 무엇인가’, ‘인간은 참된 앎을 어떻게 발견하는가’에 대해 서양철학이 제시한 대표적 답변이다. 테아이테토스는 본문에서 앎이란 ‘감각적 인식aisthēsis’이라 주장하며, 경험론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을 취한다. 경험론은 개별 사례의 축적을 통해 앎이 형성된다고 본다. 그런데 경험은 감각에 의존한다. 예컨대, 곧은 빨대도 물에 넣으면 꺾여 보이듯 감각은 기만적이며 항상 참을 전달하지 않는다. 냄새나 풍미 역시 지식이냐는 의문이 바로 떠오르면서, 이 생각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합리론이 등장한다.
합리론은 이성적 추론만이 믿을 수 있는 앎을 준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전제로부터 ‘소크라테스도 죽는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그 예다. 이처럼 추론을 통한 결론은 필연적이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서양철학은 앎에 대해 상반된 두 답변을 내놓고 있는 듯하다. 이 둘은 동시에 작동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고대 희랍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전제를 우리는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것은 일상의 경험 속에서 축적된 사례들을 귀납한 결과다. 경험은 몸과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중 대표적인 감각은 시각이다. 그래서일까? ‘본다’는 뜻의 희랍어 동사 '호라오horaō'는 '안다'는 뜻도 함께 지닌다. 고대 희랍인들은 앎과 감각을 긴밀히 연결지었다. 앎과 추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역적 논변을 구성하고, 논증의 형식을 체계화한 이들 역시 고대 희랍인이었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과 상대주의적 진리관 ━ 본문에서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의 말을 듣고, 프로타고라스가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말하며 그의 인간척도설을 인용하고 해설을 덧붙인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척도설의 의미는 "각각의 것이 내게는 내게 보이는 대로, 너에게는 너에게 보이는 대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인용된 명제의 의미와 다소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말과 희랍어의 구조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리말은 존재사 ‘있다’와 계사 ‘이다’를 구분하지만, 희랍어는 영어처럼 estí 동사가 문맥에 따라 두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명제를 좀 더 명확하게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
모든 것들의 척도(기준)는 인간이다 |
…인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이라는 척도이고, |
('A는 B이다'라는 명제에서 A가 B에 해당한다는 긍정적 판단의 기준은 각 개인이라는 의미) |
…가 아닌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가 아니라는 척도다. |
('A는 B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A가 B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판단의 기준은 각 개인이라는 의미) |
인간척도설은 어떤 것이 각자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참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각자의 감각적 인식은 각자에게 진실이며, 이는 흔히 소피스트와 함께 언급되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반영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참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양한 의견들만이 존재한다. 이 세계에서는 통념이나 지배적 견해만이 달라질 뿐, 참된 진리는 실체가 아니라 허상에 가깝다. 따라서 그들은 철학을 통해 고정불변의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각자의 의견이 진리처럼 보이도록 만들고 대중 앞에서 설득하는 연설과 언변의 기술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 대화편의 저자인 플라톤은 그러한 생각을 분명히 거부한다.
이성적 사고의 기초
소피스트들과 달리 철학자들은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며, 자신과 상대방이 참이라고 인정하는 전제를 바탕으로 타당한 추론을 통해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앎을 추구하고자 했다. 플라톤의 시대는 논리학 체계가 아직 정립되기 전이었지만, 상식에 부합하고 이성적 사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이성적 사고는 다음 세 가지 기본 원리에 기반한다.
동일률 Law of identity | 모순율 Law of contradiction | 배중률 Law of excluded middle |
A=A | ~(A∧~A) | A∨~A |
A는 A이다 |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A이거나 A가 아니다 |
이 세 원리는 이성적·논리적·합리적 사고의 자명한 기초이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A’에는 참과 거짓을 지닐 수 있는 문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단어를 대입해보자. 이 경우에도 어떤 단어를 넣든 항상 참인 명제가 만들어진다. 1은 1과 동일(=)하고 관악산도 관악산과 동일(=)하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모순율에 해당하게 된다. 어떤 것이 관악산이면서 동시에(∧) 관악산이 아니라는 말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배중률에 의하면 관악산은 관악산(A)이거나 관악산이 아니거나(~A) 둘 중 하나일 것이며 동물원(A)이거나 동물원이 아닐 것(~A)이다. 위 세 원리들은 이른바 공리의 사례들이다. 공리는 어떤 체계 안에서 스스로 증명될 필요 없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근본 명제다. 만약 누군가가 이를 부정한다면, 그는 그 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 예컨대, ‘두 점이 주어지면 하나의 직선을 그을 수 있다’는 기하학의 공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기하학을 배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동일률·모순율·배중률을 부정한다면, 그는 이성적 사고 자체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인간 척도설의 위험성
오늘날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척도설에 힘입어 인간 중심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철학의 주제로 인간을 끌어올린 것이 그만의 공로는 아니지만, 현대에 이르러 소피스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프로타고라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해석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플라톤은 그의 사상을 그토록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일까?
백조 한 마리가 호수 위에 떠 있다. 이를 보고 A는 “저 새는 흰색이다”, B는 “저 새는 검은색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둘 중 한 사람은 틀렸다고 여긴다. 동일률에 따르면 하나의 대상이 동시에 흰색이면서 흰색이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척도설의 관점에서라면, 두 사람 모두 참을 말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각각의 판단은 그 사람의 감각적 인식에 따라 형성된 것이므로, 참인지 아닌지를 따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인간척도설을 비판한 것은 이런 우스운 사례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 사고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문제였다. 기하학의 공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기하학에 참여할 수 없듯, 동일률·모순율과 같은 이성의 공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철학적 사유에 참여할 수 없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이 수용된다면, 이성에 기초한 논의와 지식의 축적, 학문과 철학의 전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에서 플라톤은 그 사상에 단호히 맞섰다.
키워드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 인간척도설, 상대주의적 진리관, 진리 상대주의, 플라톤, 소크라테스
전후맥락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퀴레네 출신의 기하학자인 테오도로스를 만나 아테네의 젊은이들 가운데 뛰어난 자질을 가진 젊은이를 추천해달라고 청한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테오도로스로부터 천문학과 대수학 그리고 기하학과 음악 등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누가 훌륭한 젊은이인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로스는 테아이테토스를 추천했고 곧이어 테아이테토스가 등장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를 상대로 지식 또는 앎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한다.
테아이테토스는 지식이 무엇인지 묻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해 예시적 정의를 제시한다. 테오도로스에게서 배우는 기하학이나 다른 과목들 그리고 제화술이나 다른 장인들의 기술 등이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정의에 만족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정의는 정의하려는 대상을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그것의 본질이지 그 대상의 종류나 긴 목록이 아니다. 대상의 예시를 아무리 제시한들 그 대상의 의미나 본질을 직접 드러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점토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서 '화덕 제작자의 점토도, 벽돌 제작공의 점토, 도공의 점토도 모두 점토'라고 답하는 것은 점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대상의 정의는 점토가 '물에 이긴 흙'이라는 설명처럼 단일하고 명료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제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를 격려하면서 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 번 묻는다.
고전본문
테아이테토스 | 하지만 정말이지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렇게 격려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뭔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제게는 뭔가를 아는 사람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타나는 바로는, 앎 혹은 지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
소크라테스 | 젊은이여, 훌륭하고도 고상한 대답일세. 자기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이렇게 말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세. 자네의 말이 실한 것인지 아니면 무정란에 불과한지 말일세. 자네는 감각에 의한 인식이 앎이라고 말하는 겐가? |
테아이테토스 | 네. |
소크라테스 | 그런데 자네가 앎에 대해서 한 말은 사소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네. 프로타고라스 역시 그런 말을 했거든. 그는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 동일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네.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척도는 인간이다. 존재하는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다.' 아마 자네도 읽어 봤겠지? |
테아이테토스 | 알고 있다마다요. 자주 읽었습니다. |
소크라테스 | 그러니까 어쨌거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네. 각각의 것은 내게는 내게 보이는 대로 그런 것들이고, 다시 너에게는 너에게 보이는 대로 그런 것들이라고 말이야. 자네도 그리고 나도 저마다의 인간이라는 게지. |
테아이테토스 | 그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151d-152a.
토론하기
(1) 지식에 대한 테아이테토스의 수정된 정의는 무엇이며, 그것과 프로타고라스의 주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해보자.
(2)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을 이른바 '인간척도설'이라고 부른다. 인간척도설에 대한 각자의 인상이나 느낌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3)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많은 소피스트들이 상대적 진리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서 철학자들과 사상적 경쟁 관계를 형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척도설의 이면에 감춰진 함의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추론해보자.
해설읽기
앎을 향해 나아가는 두 가지 길과 그 교차점
경험론과 합리론은 ‘앎의 궁극적 원천은 무엇인가’, ‘인간은 참된 앎을 어떻게 발견하는가’에 대해 서양철학이 제시한 대표적 답변이다. 테아이테토스는 본문에서 앎이란 ‘감각적 인식aisthēsis’이라 주장하며, 경험론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을 취한다. 경험론은 개별 사례의 축적을 통해 앎이 형성된다고 본다. 그런데 경험은 감각에 의존한다. 예컨대, 곧은 빨대도 물에 넣으면 꺾여 보이듯 감각은 기만적이며 항상 참을 전달하지 않는다. 냄새나 풍미 역시 지식이냐는 의문이 바로 떠오르면서, 이 생각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합리론이 등장한다.
합리론은 이성적 추론만이 믿을 수 있는 앎을 준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전제로부터 ‘소크라테스도 죽는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그 예다. 이처럼 추론을 통한 결론은 필연적이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서양철학은 앎에 대해 상반된 두 답변을 내놓고 있는 듯하다. 이 둘은 동시에 작동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고대 희랍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전제를 우리는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것은 일상의 경험 속에서 축적된 사례들을 귀납한 결과다. 경험은 몸과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중 대표적인 감각은 시각이다. 그래서일까? ‘본다’는 뜻의 희랍어 동사 '호라오horaō'는 '안다'는 뜻도 함께 지닌다. 고대 희랍인들은 앎과 감각을 긴밀히 연결지었다. 앎과 추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역적 논변을 구성하고, 논증의 형식을 체계화한 이들 역시 고대 희랍인이었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과 상대주의적 진리관 ━ 본문에서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의 말을 듣고, 프로타고라스가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말하며 그의 인간척도설을 인용하고 해설을 덧붙인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인간척도설의 의미는 "각각의 것이 내게는 내게 보이는 대로, 너에게는 너에게 보이는 대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인용된 명제의 의미와 다소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데, 이는 우리말과 희랍어의 구조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리말은 존재사 ‘있다’와 계사 ‘이다’를 구분하지만, 희랍어는 영어처럼 estí 동사가 문맥에 따라 두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명제를 좀 더 명확하게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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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척도(기준)는 인간이다 |
…인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이라는 척도이고, |
('A는 B이다'라는 명제에서 A가 B에 해당한다는 긍정적 판단의 기준은 각 개인이라는 의미) |
…가 아닌 것들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가 아니라는 척도다. |
('A는 B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A가 B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판단의 기준은 각 개인이라는 의미) |
인간척도설은 어떤 것이 각자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참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각자의 감각적 인식은 각자에게 진실이며, 이는 흔히 소피스트와 함께 언급되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반영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절대적으로 참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양한 의견들만이 존재한다. 이 세계에서는 통념이나 지배적 견해만이 달라질 뿐, 참된 진리는 실체가 아니라 허상에 가깝다. 따라서 그들은 철학을 통해 고정불변의 진리를 탐구하기보다, 각자의 의견이 진리처럼 보이도록 만들고 대중 앞에서 설득하는 연설과 언변의 기술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 대화편의 저자인 플라톤은 그러한 생각을 분명히 거부한다.
이성적 사고의 기초
소피스트들과 달리 철학자들은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며, 자신과 상대방이 참이라고 인정하는 전제를 바탕으로 타당한 추론을 통해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앎을 추구하고자 했다. 플라톤의 시대는 논리학 체계가 아직 정립되기 전이었지만, 상식에 부합하고 이성적 사고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이성적 사고는 다음 세 가지 기본 원리에 기반한다.
동일률 Law of identity | 모순율 Law of contradiction | 배중률 Law of excluded middle |
A=A | ~(A∧~A) | A∨~A |
A는 A이다 |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A이거나 A가 아니다 |
이 세 원리는 이성적·논리적·합리적 사고의 자명한 기초이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A’에는 참과 거짓을 지닐 수 있는 문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단어를 대입해보자. 이 경우에도 어떤 단어를 넣든 항상 참인 명제가 만들어진다. 1은 1과 동일(=)하고 관악산도 관악산과 동일(=)하다.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모순율에 해당하게 된다. 어떤 것이 관악산이면서 동시에(∧) 관악산이 아니라는 말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배중률에 의하면 관악산은 관악산(A)이거나 관악산이 아니거나(~A) 둘 중 하나일 것이며 동물원(A)이거나 동물원이 아닐 것(~A)이다. 위 세 원리들은 이른바 공리의 사례들이다. 공리는 어떤 체계 안에서 스스로 증명될 필요 없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근본 명제다. 만약 누군가가 이를 부정한다면, 그는 그 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 예컨대, ‘두 점이 주어지면 하나의 직선을 그을 수 있다’는 기하학의 공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기하학을 배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동일률·모순율·배중률을 부정한다면, 그는 이성적 사고 자체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인간 척도설의 위험성
오늘날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척도설에 힘입어 인간 중심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철학의 주제로 인간을 끌어올린 것이 그만의 공로는 아니지만, 현대에 이르러 소피스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프로타고라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해석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플라톤은 그의 사상을 그토록 격렬하게 반대했던 것일까?
백조 한 마리가 호수 위에 떠 있다. 이를 보고 A는 “저 새는 흰색이다”, B는 “저 새는 검은색이다”라고 말한다고 하자. 정상적인 판단이라면 둘 중 한 사람은 틀렸다고 여긴다. 동일률에 따르면 하나의 대상이 동시에 흰색이면서 흰색이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척도설의 관점에서라면, 두 사람 모두 참을 말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각각의 판단은 그 사람의 감각적 인식에 따라 형성된 것이므로, 참인지 아닌지를 따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인간척도설을 비판한 것은 이런 우스운 사례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 사고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문제였다. 기하학의 공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기하학에 참여할 수 없듯, 동일률·모순율과 같은 이성의 공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철학적 사유에 참여할 수 없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이 수용된다면, 이성에 기초한 논의와 지식의 축적, 학문과 철학의 전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바로 이 점에서 플라톤은 그 사상에 단호히 맞섰다.
키워드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 인간척도설, 상대주의적 진리관, 진리 상대주의, 플라톤, 소크라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