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일리아스』제9권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후 전장을 떠나고, 그리스 진영이 점점 밀려 패색이 짙어지는 위기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이에 아가멤논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고, 오뒷세우스, 포이닉스, 아이아스를 사절로 보내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려 한다. 오뒷세우스가 논리적 설득으로 접근한 데 반해, 포이닉스는 개인적인 추억과 연민, 감정적 회상에 기대어 설득을 시도한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어릴 때부터 키운 양부로서 과거의 교육적 관계를 떠올리게 하며, 부모처럼 아킬레우스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해 감정의 동일시를 유도하고, 메레우스의 아들 미노이토스의 사례를 들며 감정과 도덕적 교훈을 교차시킨다. 이 장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파토스 중심의 수사학이 고대 서사시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고전본문
“...아들 같아 내가 너를 키웠다, 아킬레우스여. 나에게 너는 나의 피붙이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다. 네가 어머니 테티스의 무릎을 떠나 내게 맡겨졌을 때, 나는 너의 말버릇과 손짓을 가르쳤고, 함께 먹고 마시고 울었다. 네가 아버지 펠레우스에게서 물려받은 천성은 거칠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따뜻함과 용기를 보았다. 그러니 이제 이 노인의 말을 외면하지 말아다오.
나는 너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아가멤논이 내게 이 일을 맡기지 않았더라도, 나는 너를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년 시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분노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친구들이다.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명예는 침묵 속에 있는 자가 아니라, 싸움 속에서 세워지는 법이다. 나는 젊은 시절, 나 자신도 어리석게 분노를 품고 아버지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분노는 마음을 불태우고, 끝내는 자신을 해친다.
그러니 이제 이 연설을 통해 나의 눈물과 함께 내 마음도 받아다오. 브리세이스는 그저 한 여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단 하나의 전사이며, 우리 희망의 근원이다.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트로이 앞에서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아가멤논이 어떤 실수를 했든, 공동체는 지금 너를 필요로 한다. 그가 보상하겠다고 했다. 황금과 청동, 전리품과 도시들, 그 모든 것은 네게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 어떤 조건보다, 네가 다시 전장에 나서고자 하는 마음을 더 간절히 바란다. 나의 말이 차갑지 않기를, 나의 눈물이 헛되지 않기를. 전쟁터에서 싸우는 이들이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9권 434–605.
(요약 및 의역을 포함함)
토론하기
(1) 포이닉스는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감정을 자극하고자 하는가? 그의 연설에서 파토스를 유도하는 핵심 장치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2) 당신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누군가의 감정적 호소에 설득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때 어떤 감정이 중심이 되었고, 결과는 어땠는지 이야기해보자.
(3) 가족, 친구, 학급, 학교 또는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서 감정적 설득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 혹은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킨 사례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러한 설득이 효과를 거두었거나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함께 분석해보자.
해설읽기
포이닉스의 연설은 고대 서사시 속에서 감정을 활용한 설득,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 제2권에서 논한 파토스pathos 중심 수사학이 문학적으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오뒷세우스처럼 체계적인 논증을 시도하지도 않고, 아이아스처럼 신뢰 기반의 인격적 설득에도 기대지 않는다. 대신 포이닉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아킬레우스를 ‘아들’이라 부르고, 그의 성장기와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의 공동 감정과 기억을 재소환한다. 이 감정의 소환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설득의 핵심 전략이다.
포이닉스는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분노로 인해 공동체를 떠났던 일을 이야기하며, 감정이 무절제하게 흘러갔을 때 어떤 파국이 따르는지를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상기하게 만든다. 이러한 회상은 단순히 교훈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기 서사를 통한 정서적 동일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포이닉스는 ‘설득’이라는 행위를 교훈이 아니라 ‘공감’으로 접근한다. 이는 파토스가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자 내부의 감정 구조를 모방하거나 반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매우 정교한 수사학적 전략이다.
또한 그는 아킬레우스를 전장의 전사로서만 호명하지 않는다. ‘아들’이라는 호칭, 그리고 ‘네가 울던 밤에 젖을 데우던 기억’이라는 진술은 설득의 전장을 감정의 기억으로 전환한다. 여기에서 아킬레우스는 군사적 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감정적 관계망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존재가 된다. 포이닉스는 이 관계망을 통하여 ‘지금 복귀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돌아와 달라’는 간청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처럼 감정 중심 설득의 본질은 압박이 아니라 설득자가 먼저 감정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대화 윤리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포이닉스는 아가멤논의 보상 제안보다 아킬레우스와 동료 전사들 사이의 감정적 연대,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기억’에 더 강하게 호소한다. 이는 설득의 목적이 단순한 복귀 요청이 아니라, 분열된 공동체의 윤리적 재통합임을 암시한다. 고대의 파토스는 단순히 슬픔이나 연민을 자극하는 기능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통해 판단과 의지, 공동체적 책임을 형성하는 수단이었다. 포이닉스는 이러한 구조를 회상과 눈물, 도덕적 경험의 공유를 통해 재현해낸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의 눈물이나 표정, 말 사이의 침묵에서 더 깊은 설득을 느끼곤 한다. 포이닉스의 연설은 그러한 감정의 수사학이 고대에서도 고도로 구조화된 전략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수사학이 논리와 윤리만이 아니라 감정의 정제된 기술임을 문학적으로 증명하는 장면이다.
키워드
호메로스, 아킬레우스, 포이닉스, 파토스, 일리아스, 설득
전후맥락
『일리아스』제9권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후 전장을 떠나고, 그리스 진영이 점점 밀려 패색이 짙어지는 위기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이에 아가멤논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막대한 보상을 약속하고, 오뒷세우스, 포이닉스, 아이아스를 사절로 보내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려 한다. 오뒷세우스가 논리적 설득으로 접근한 데 반해, 포이닉스는 개인적인 추억과 연민, 감정적 회상에 기대어 설득을 시도한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어릴 때부터 키운 양부로서 과거의 교육적 관계를 떠올리게 하며, 부모처럼 아킬레우스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접근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해 감정의 동일시를 유도하고, 메레우스의 아들 미노이토스의 사례를 들며 감정과 도덕적 교훈을 교차시킨다. 이 장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파토스 중심의 수사학이 고대 서사시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고전본문
“...아들 같아 내가 너를 키웠다, 아킬레우스여. 나에게 너는 나의 피붙이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다. 네가 어머니 테티스의 무릎을 떠나 내게 맡겨졌을 때, 나는 너의 말버릇과 손짓을 가르쳤고, 함께 먹고 마시고 울었다. 네가 아버지 펠레우스에게서 물려받은 천성은 거칠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따뜻함과 용기를 보았다. 그러니 이제 이 노인의 말을 외면하지 말아다오.
나는 너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아가멤논이 내게 이 일을 맡기지 않았더라도, 나는 너를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년 시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리하여 지금도 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분노 속에 갇혀 있다. 그러나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친구들이다.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명예는 침묵 속에 있는 자가 아니라, 싸움 속에서 세워지는 법이다. 나는 젊은 시절, 나 자신도 어리석게 분노를 품고 아버지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분노는 마음을 불태우고, 끝내는 자신을 해친다.
그러니 이제 이 연설을 통해 나의 눈물과 함께 내 마음도 받아다오. 브리세이스는 그저 한 여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단 하나의 전사이며, 우리 희망의 근원이다.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트로이 앞에서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아가멤논이 어떤 실수를 했든, 공동체는 지금 너를 필요로 한다. 그가 보상하겠다고 했다. 황금과 청동, 전리품과 도시들, 그 모든 것은 네게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그 어떤 조건보다, 네가 다시 전장에 나서고자 하는 마음을 더 간절히 바란다. 나의 말이 차갑지 않기를, 나의 눈물이 헛되지 않기를. 전쟁터에서 싸우는 이들이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9권 434–605.
(요약 및 의역을 포함함)
토론하기
(1) 포이닉스는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어떤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떤 감정을 자극하고자 하는가? 그의 연설에서 파토스를 유도하는 핵심 장치들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2) 당신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누군가의 감정적 호소에 설득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때 어떤 감정이 중심이 되었고, 결과는 어땠는지 이야기해보자.
(3) 가족, 친구, 학급, 학교 또는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서 감정적 설득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 혹은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킨 사례는 무엇이 있었는가? 그러한 설득이 효과를 거두었거나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함께 분석해보자.
해설읽기
포이닉스의 연설은 고대 서사시 속에서 감정을 활용한 설득,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 제2권에서 논한 파토스pathos 중심 수사학이 문학적으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오뒷세우스처럼 체계적인 논증을 시도하지도 않고, 아이아스처럼 신뢰 기반의 인격적 설득에도 기대지 않는다. 대신 포이닉스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아킬레우스를 ‘아들’이라 부르고, 그의 성장기와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과거의 공동 감정과 기억을 재소환한다. 이 감정의 소환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설득의 핵심 전략이다.
포이닉스는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분노로 인해 공동체를 떠났던 일을 이야기하며, 감정이 무절제하게 흘러갔을 때 어떤 파국이 따르는지를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상기하게 만든다. 이러한 회상은 단순히 교훈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기 서사를 통한 정서적 동일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포이닉스는 ‘설득’이라는 행위를 교훈이 아니라 ‘공감’으로 접근한다. 이는 파토스가 단지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청자 내부의 감정 구조를 모방하거나 반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매우 정교한 수사학적 전략이다.
또한 그는 아킬레우스를 전장의 전사로서만 호명하지 않는다. ‘아들’이라는 호칭, 그리고 ‘네가 울던 밤에 젖을 데우던 기억’이라는 진술은 설득의 전장을 감정의 기억으로 전환한다. 여기에서 아킬레우스는 군사적 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감정적 관계망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존재가 된다. 포이닉스는 이 관계망을 통하여 ‘지금 복귀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돌아와 달라’는 간청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처럼 감정 중심 설득의 본질은 압박이 아니라 설득자가 먼저 감정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대화 윤리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포이닉스는 아가멤논의 보상 제안보다 아킬레우스와 동료 전사들 사이의 감정적 연대,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기억’에 더 강하게 호소한다. 이는 설득의 목적이 단순한 복귀 요청이 아니라, 분열된 공동체의 윤리적 재통합임을 암시한다. 고대의 파토스는 단순히 슬픔이나 연민을 자극하는 기능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통해 판단과 의지, 공동체적 책임을 형성하는 수단이었다. 포이닉스는 이러한 구조를 회상과 눈물, 도덕적 경험의 공유를 통해 재현해낸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의 눈물이나 표정, 말 사이의 침묵에서 더 깊은 설득을 느끼곤 한다. 포이닉스의 연설은 그러한 감정의 수사학이 고대에서도 고도로 구조화된 전략으로 작동했음을 보여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수사학이 논리와 윤리만이 아니라 감정의 정제된 기술임을 문학적으로 증명하는 장면이다.
키워드
호메로스, 아킬레우스, 포이닉스, 파토스, 일리아스, 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