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dikaiosýnē'의 개념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이 덕목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통상적으로 정의가 ‘법을 지키는 것’이나 ‘공정한 것’과 동일시된다는 통념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정의가 모든 덕의 총합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 정의는 타자에 대한 행위, 즉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는 점에서 ‘전체적 덕hē kath' holēn aretē’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불의는 단지 일부의 악덕이 아니라, 모든 덕을 결여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 ‘특수한 정의’로 이행하기 전, 정의 개념에 대한 가장 포괄적 정의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고전본문
정의가 어떤 의미로는 덕 전체와 동일하다고, 또 어떤 의미로는 그것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 두 가지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올바른 말이긴 하다.
먼저, 정의가 전체적 덕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탁월함의 완전한 실현이다. 그리고 이 정의는 타인에 대한 관계 속에서 그러하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 단지 덕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서도 덕을 구현하는 자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의 정의는 전체적 덕이 타자에 대하여 발휘될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에 대하여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는 다른 모든 덕의 사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절제도, 용기도, 관대함도, 온갖 덕이 모두 법이 명령하는 바와 같다면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
이런 정의를 위반하는 자는 불의한 자이며, 그 불의는 덕 전체의 결여를 뜻한다. 왜냐하면 그가 타자에 대해 불법을 행했다는 것은 모든 덕을 갖추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전체적 덕목이며, 그것이 타자에 대한 행위로 드러날 때 특히 그렇게 불린다. 이 점에서, 전체적 정의는 말 그대로 모든 덕의 완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 1129a25–1130a15.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정의를 "모든 덕의 완성"이라고 말하는가? 그 근거는 본문 어디에 제시되어 있는가?
(2) ‘정의로운 사람’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넘어 어떤 존재인가? 일상 속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3) 공동체 안에서 ‘타자를 고려하는 정의’는 어떤 제도나 실천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까? 그 실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해설읽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의 서두에서 정의를 일반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때 일반적 정의란 도덕적 탁월성 전체를 가리키며, 모든 덕이 타인을 대상으로 발현될 때 ‘정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고 본다. 정의는 단순한 부분덕이 아니라 전체적 덕목의 외적 표현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천될 때만 성립한다. 이는 정의가 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덕을 실현하는 방식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전제를 드러낸다. 따라서 일반적 정의는 다른 모든 덕을 내포하면서도, 그 자체로 고립된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실천 형식이다. 이 정의는 사회적 조화를 가능케 하며, 개인의 도덕적 완성은 타자에 대한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완결된다고 보는 윤리적 구조를 구성한다.
공동제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정의의 실천
‘정의로운 사람’이란 단순히 정직하거나 성실한 사람을 넘어, 타자를 향한 배려와 관계의 질서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존재이며, 덕은 홀로 있을 때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실현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이때 정의로운 사람은 사회적 질서와 규범을 자신의 내면적 덕성에 따라 실천하는 사람이며, 타인의 권리와 몫을 자연스럽게 고려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그런 인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예컨대 갈등 상황에서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재하는 사람, 또는 법 이상의 공감과 책임을 보여주는 시민은 이런 이상에 가까운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정의를 단지 외적인 규칙의 준수가 아닌 내면화된 도덕성의 실천으로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을 반영한다.
정의의 구현 조건 : 제도와 인격의 동행
타자를 고려하는 정의는 단순한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실천적 조건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법, 판결, 분배 규칙, 절차적 정당성은 모두 타인에 대한 정의를 제도화하는 장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법에 따라 타자에게 행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를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가 무시되거나 권력에 의해 왜곡될 경우, 공동체 내부의 불신, 소외, 권리 박탈이 발생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는 단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며, 그 실현을 위해선 공동체 구성원들의 덕성뿐 아니라 공정한 제도 설계와 감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도와 인격 사이의 긴장을 모호하게 넘기지 않고, ‘정의로운 시민’과 ‘정의로운 제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키워드
공동체, 타자성, 덕, 법, 정의
전후맥락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dikaiosýnē'의 개념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이 덕목이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통상적으로 정의가 ‘법을 지키는 것’이나 ‘공정한 것’과 동일시된다는 통념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정의가 모든 덕의 총합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 정의는 타자에 대한 행위, 즉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실현된다는 점에서 ‘전체적 덕hē kath' holēn aretē’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불의는 단지 일부의 악덕이 아니라, 모든 덕을 결여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 ‘특수한 정의’로 이행하기 전, 정의 개념에 대한 가장 포괄적 정의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고전본문
정의가 어떤 의미로는 덕 전체와 동일하다고, 또 어떤 의미로는 그것의 일부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 두 가지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올바른 말이긴 하다.
먼저, 정의가 전체적 덕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것은 탁월함의 완전한 실현이다. 그리고 이 정의는 타인에 대한 관계 속에서 그러하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 단지 덕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서도 덕을 구현하는 자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의 정의는 전체적 덕이 타자에 대하여 발휘될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에 대하여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의는 다른 모든 덕의 사용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절제도, 용기도, 관대함도, 온갖 덕이 모두 법이 명령하는 바와 같다면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
이런 정의를 위반하는 자는 불의한 자이며, 그 불의는 덕 전체의 결여를 뜻한다. 왜냐하면 그가 타자에 대해 불법을 행했다는 것은 모든 덕을 갖추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전체적 덕목이며, 그것이 타자에 대한 행위로 드러날 때 특히 그렇게 불린다. 이 점에서, 전체적 정의는 말 그대로 모든 덕의 완성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 1129a25–1130a15.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정의를 "모든 덕의 완성"이라고 말하는가? 그 근거는 본문 어디에 제시되어 있는가?
(2) ‘정의로운 사람’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넘어 어떤 존재인가? 일상 속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3) 공동체 안에서 ‘타자를 고려하는 정의’는 어떤 제도나 실천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까? 그 실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해설읽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의 서두에서 정의를 일반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때 일반적 정의란 도덕적 탁월성 전체를 가리키며, 모든 덕이 타인을 대상으로 발현될 때 ‘정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고 본다. 정의는 단순한 부분덕이 아니라 전체적 덕목의 외적 표현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천될 때만 성립한다. 이는 정의가 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덕을 실현하는 방식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전제를 드러낸다. 따라서 일반적 정의는 다른 모든 덕을 내포하면서도, 그 자체로 고립된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실천 형식이다. 이 정의는 사회적 조화를 가능케 하며, 개인의 도덕적 완성은 타자에 대한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완결된다고 보는 윤리적 구조를 구성한다.
공동제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정의의 실천
‘정의로운 사람’이란 단순히 정직하거나 성실한 사람을 넘어, 타자를 향한 배려와 관계의 질서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존재이며, 덕은 홀로 있을 때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실현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이때 정의로운 사람은 사회적 질서와 규범을 자신의 내면적 덕성에 따라 실천하는 사람이며, 타인의 권리와 몫을 자연스럽게 고려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그런 인물을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예컨대 갈등 상황에서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재하는 사람, 또는 법 이상의 공감과 책임을 보여주는 시민은 이런 이상에 가까운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정의를 단지 외적인 규칙의 준수가 아닌 내면화된 도덕성의 실천으로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을 반영한다.
정의의 구현 조건 : 제도와 인격의 동행
타자를 고려하는 정의는 단순한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적, 실천적 조건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법, 판결, 분배 규칙, 절차적 정당성은 모두 타인에 대한 정의를 제도화하는 장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법에 따라 타자에게 행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를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가 무시되거나 권력에 의해 왜곡될 경우, 공동체 내부의 불신, 소외, 권리 박탈이 발생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의는 단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며, 그 실현을 위해선 공동체 구성원들의 덕성뿐 아니라 공정한 제도 설계와 감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도와 인격 사이의 긴장을 모호하게 넘기지 않고, ‘정의로운 시민’과 ‘정의로운 제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키워드
공동체, 타자성, 덕, 법,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