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논의하면서 그것이 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혹은 때로는 법과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살핀다. 그는 모든 합법적인 것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정의는 때때로 법을 넘어서거나 법을 수정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정의를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인 정의, 즉 모든 인간 사회에 공통된 불변의 정의이며, 다른 하나는 관습적인 정의로, 각 공동체가 합의한 법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다. 이 구분은 정의의 본질이 단지 법률의 조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도덕적 직관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장은 특히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를 묻는 정치철학적 문제로 연결된다.
고전본문
"...정의로운 것은 법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법적인 것이 곧 정의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법은 어떤 경우에는 자연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관습이나 합의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정의는 어디서나 동일한 힘을 가지며, 존재하는 법 중에서도 그것이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불을 댄 것이 위로 향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자체로 그러한 것이다. 반면 관습적인 정의는 사람들이 합의함으로써 생긴다. 이것은 다른 공동체에서는 달리 설정될 수 있으며, 바뀔 수도 있다. 예컨대 노예의 소유가 정당하다는 법은 어떤 공동체에서는 타당하지만, 어떤 공동체에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정의로운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관습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정의를 관습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적 정의는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은 논증이 아니라 직관과 경험을 통해 파악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 1134a–1134b.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자연적 정의’와 ‘관습적 정의’로 나눈다. 이 두 정의의 차이는 무엇이며, 왜 구별이 중요한가?
(2) 자신이 보기에 ‘법은 어겼지만 정의로운’ 행동에는 어떤 예가 있을까? 그 경험이나 사례에서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
(3) 공동체는 언제, 어떤 조건 아래에서 ‘합법성을 넘는 정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내릴 수 있는가?
해설읽기
법의 상대성과 정의의 보편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7장에서 정의와 법의 관계를 논의한다. 그는 정의로운 것이 법적인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모든 법적인 것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정의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 정의physei dikaion, 다른 하나는 관습적 정의nomō dikaion이다. 자연적 정의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는 불변의 원칙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논증보다는 직관과 경험을 통해 인식된다. 반면 관습적 정의는 각 공동체가 구성한 합의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변화 가능성을 전제한다. 예컨대 같은 행위가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불법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정의가 관습과 합의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구분을 통해 법의 상대성과 윤리의 보편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철학적으로 정식화한다. 정의는 법의 내용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며, 법은 정의에 봉사해야 한다는 원리가 여기서 도출된다.
정의로운 불복종
‘합법적이지 않으나 정의로운 것’이라는 표현은 법을 넘어서 정의를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드러낸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경험 속에서 그러한 사례를 발견한다. 인종차별, 노예제, 여성의 권리 박탈 등이 모두 합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부정의’로 평가된다. 또 어떤 이들은 법을 어기면서도 더 높은 도덕적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정의로운 자로 기억된다. 예를 들어, 불법이었음에도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한 구조대원,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법을 거부한 저항운동가 등이 있다. 이런 사례는 법이 항상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상황에서 정의가 ‘자연적 기준’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법을 따를지 말지를 판단할 때, 그것이 단지 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롭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이는 ‘법에 대한 복종’과 ‘정의에 대한 책임’ 사이의 균형을 다시 묻는 윤리적 요청이다.
누가 정의를 판단하는가
공동체는 보통 법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지만, 그 법이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질 때 시민들은 저항하거나 예외를 요구한다. 이때 문제는 단지 어느 행위가 정의로운지를 넘어서, 누가 그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정의가 존재한다고 보지만, 그것은 논증을 통해 입증되지 않고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인식된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법이 절대적으로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윤리적 감수성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합법성을 넘는 정의’를 받아들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공통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직관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론장과 논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주체가 제도 안에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단지 법의 조항이 아니라, 그 조항이 기초해야 할 더 깊은 윤리적 기준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정의를 단지 순응이 아닌 ‘판단의 책임’으로 제시한다.
키워드
자연적 정의, 관습적 정의, 합법성, 정당성
전후맥락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논의하면서 그것이 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혹은 때로는 법과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살핀다. 그는 모든 합법적인 것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며, 정의는 때때로 법을 넘어서거나 법을 수정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정의를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인 정의, 즉 모든 인간 사회에 공통된 불변의 정의이며, 다른 하나는 관습적인 정의로, 각 공동체가 합의한 법이나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다. 이 구분은 정의의 본질이 단지 법률의 조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도덕적 직관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장은 특히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를 묻는 정치철학적 문제로 연결된다.
고전본문
"...정의로운 것은 법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법적인 것이 곧 정의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법은 어떤 경우에는 자연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관습이나 합의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정의는 어디서나 동일한 힘을 가지며, 존재하는 법 중에서도 그것이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불을 댄 것이 위로 향하는 것처럼, 그것은 그 자체로 그러한 것이다. 반면 관습적인 정의는 사람들이 합의함으로써 생긴다. 이것은 다른 공동체에서는 달리 설정될 수 있으며, 바뀔 수도 있다. 예컨대 노예의 소유가 정당하다는 법은 어떤 공동체에서는 타당하지만, 어떤 공동체에서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정의로운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관습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정의를 관습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적 정의는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은 논증이 아니라 직관과 경험을 통해 파악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 1134a–1134b.
토론하기
(1)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자연적 정의’와 ‘관습적 정의’로 나눈다. 이 두 정의의 차이는 무엇이며, 왜 구별이 중요한가?
(2) 자신이 보기에 ‘법은 어겼지만 정의로운’ 행동에는 어떤 예가 있을까? 그 경험이나 사례에서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가?
(3) 공동체는 언제, 어떤 조건 아래에서 ‘합법성을 넘는 정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러한 판단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내릴 수 있는가?
해설읽기
법의 상대성과 정의의 보편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7장에서 정의와 법의 관계를 논의한다. 그는 정의로운 것이 법적인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모든 법적인 것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정의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자연적 정의physei dikaion, 다른 하나는 관습적 정의nomō dikaion이다. 자연적 정의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변하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는 불변의 원칙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며, 논증보다는 직관과 경험을 통해 인식된다. 반면 관습적 정의는 각 공동체가 구성한 합의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변화 가능성을 전제한다. 예컨대 같은 행위가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불법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정의가 관습과 합의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구분을 통해 법의 상대성과 윤리의 보편성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철학적으로 정식화한다. 정의는 법의 내용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며, 법은 정의에 봉사해야 한다는 원리가 여기서 도출된다.
정의로운 불복종
‘합법적이지 않으나 정의로운 것’이라는 표현은 법을 넘어서 정의를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드러낸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경험 속에서 그러한 사례를 발견한다. 인종차별, 노예제, 여성의 권리 박탈 등이 모두 합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부정의’로 평가된다. 또 어떤 이들은 법을 어기면서도 더 높은 도덕적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정의로운 자로 기억된다. 예를 들어, 불법이었음에도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신호를 무시한 구조대원,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법을 거부한 저항운동가 등이 있다. 이런 사례는 법이 항상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상황에서 정의가 ‘자연적 기준’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법을 따를지 말지를 판단할 때, 그것이 단지 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롭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이는 ‘법에 대한 복종’과 ‘정의에 대한 책임’ 사이의 균형을 다시 묻는 윤리적 요청이다.
누가 정의를 판단하는가
공동체는 보통 법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지만, 그 법이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질 때 시민들은 저항하거나 예외를 요구한다. 이때 문제는 단지 어느 행위가 정의로운지를 넘어서, 누가 그 정의를 판단할 수 있는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적 정의가 존재한다고 보지만, 그것은 논증을 통해 입증되지 않고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인식된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법이 절대적으로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윤리적 감수성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합법성을 넘는 정의’를 받아들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공통의 경험과 직관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직관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론장과 논의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그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주체가 제도 안에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단지 법의 조항이 아니라, 그 조항이 기초해야 할 더 깊은 윤리적 기준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정의를 단지 순응이 아닌 ‘판단의 책임’으로 제시한다.
키워드
자연적 정의, 관습적 정의, 합법성, 정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