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기 제(齊)나라 왕족 출신으로 이름은 전문이다. 서자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을 드러내 ‘맹상군’이란 칭호를 받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그는 식객들을 후하게 예우하기로 유명하였는데 그렇게 모여든 식객의 수가 3천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제나라 왕이 그에 대한 비방을 듣고 맹상군을 파면하자 수많은 식객이 모두 떠났다. 이때 식객 중 한 사람인 풍환이 꾀를 내어 맹상군의 복위(復位)를 도왔다. 아래는 맹상군이 복위한 뒤 풍환과 나눈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비방하는 말을 듣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서 쫓아내자, 그의 식객*들이 모두 떠나갔다. 후에 왕이 다시 맹상군을 불러 복귀시키자 풍환이 그를 맞이했다. 도성에 도착하기 전, 맹상군이 크게 탄식하여 말했다.
“제가 평소 식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우함에 감히 실수가 없도록 하였으니, 그렇게 모인 식객이 총 3천 여명이었던 것은 선생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식객들은 하루아침에 제가 쫓겨나는 것을 보고는 모두 저를 등지고 떠나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선생 덕분에 복위하였으나, 떠나간 그들이 무슨 면목으로 저를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다시 저를 보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
풍환이 고삐를 맨 뒤 내려와 그에게 절하였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 그를 맞이하고는 말했다.
“선생께서 식객들을 위해 대신 사죄하시는 겁니까?”
풍환이 말했다.
“객들을 위해 사죄하는 것이 아니라 군께서 하신 말실수 때문입니다. 무릇 만물에는 반드시 귀결되는 바가 있고 사태에는 본래 그렇게 되는 바가 있습니다. 군께서는 이를 아십니까?”
맹상군이 말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풍환이 말했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되니 이것이 만물이 반드시 귀결되는 바입니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을 때는 주변에 인재가 많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을 때는 친구가 적으니, 이것이 사태가 본래 그렇게 되는 바입니다. 군께서는 아침에 사람들이 시장으로 향하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아침이 밝으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다투어 시장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떠나가는 이들이 팔을 흔들며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하여서가 아니라 그곳에 찾는 물건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군께서 지위를 잃으시자 식객들이 모두 떠나간 것을 가지고 그들을 원망하며 앞으로 그들과 교우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군께서는 식객들을 옛날처럼 잘 대우하여 주십시오.”
맹상군이 풍환에게 두 번 절하고는 말했다.
“선생의 말을 감사히 따르겠소. 선생의 말을 들었는데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식객: 또는 식객이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권세가에게 의탁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사기』「맹상군열전 」중에서
토론하기
(1) 풍환은 맹상군의 식객들이 떠나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2) 맹상군과 식객의 관계에 대한 맹상군 그리고 풍환의 견해 차이를 설명해보자.
(3) 풍환은 맹상군의 식객들이 떠난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풍환은 어째서 맹상군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풍환의 결정에 대해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중국 전국시기 각 제후국 간의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인재 양성과 등용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일명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불리는 유력 권세가들이 경쟁적으로 인재를 모았으니, 맹상군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권세가들에게 모여 의탁한 인재들은 식객, 또는 빈객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평소에는 특별한 일 없이 있다가 필요에 따라 계책을 세우거나 무력을 동원하는 등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권세가를 도왔다. 예컨대 맹상군이 진(秦)나라에서 곤경을 당했을 때 닭 울음소리와 개 흉내를 낼 줄 아는 식객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이로부터 하찮은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계명구도(鷄鳴狗盜) 고사가 유래했다.
이처럼 식객을 두는 것은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인재를 모은다는 장점과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에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식객을 모은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우선 식객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기 위해 충분한 재력이 필요하다. 식객 입장에서 충분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권세가 개인의 평판도 중요하다. 그가 평소 식객들을 소홀히 대우하거나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면 인재들이 그에게 의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객을 많이 모았다는 것은 그의 재력과 평판에 대한 한가지 방증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3천 명의 식객을 모은 맹상군의 명성이 당시에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해 봄 직하다.
그러나 그의 높은 명성은 오히려 제나라 왕의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왕은 맹상군에 대한 비방을 듣자 그를 배척하게 되었다. 맹상군이 직위와 봉지에서 쫓겨나자, 곁에 있던 식객들도 모두 떠나갔다. 다행히 풍환이라는 식객이 남아 맹상군을 위해 꾀를 내어 그가 복위할 수 있도록 도왔으나, 이미 맹상군은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돕지 않고 떠나버린 식객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왜냐하면 그는 식객과의 관계를 사적인 우호 관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식객들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면 식객들은 그 보답으로서 맹상군에게 호의와 친절을 되돌려주는 것, 이것이 맹상군이 생각한 식객과의 관계이다. 이러한 맹상군의 입장에서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떠난 것은 우호 관계에 대한 배신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 식객들에 대한 원망, 관계에 대한 회의를 담아 “만약 다시 저를 보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같은 관계를 바라보는 풍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침과 저녁 시장의 상황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아침에 사람이 북적이고 저녁에는 한산한 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아침에 그들이 찾는 물건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찾는 물건’은 식객이 권세가를 찾아오는 이유로서 그들의 권세 및 재력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곧 식객이 권세가를 찾아가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재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기 때문이며, 그가 충분히 부유하지 않거나 혹은 대가를 지불하는 데 인색하다면 그에게 의탁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식객이 권세가를 사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과는 무관하니, 마치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해서 아침 시장이 북적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풍환은 맹상군과 식객이 호의를 바탕으로 한 사적인 우호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맺어진 계약 관계로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권세를 잃고 식객에게 제공할 바가 없어진 맹상군을 식객들이 떠나게 된 것은 매우 당연하며, 맹상군이 이를 배신이라 여기며 원망할 필요도 없게 된다.
「맹상군열전」의 일화는 중국 전국시기에 있었던 권세가와 식객 간의 특수한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제시한다. 하나는 호의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우호 관계로부터 연장된 것으로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철저히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맺어진 계약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관계는 그것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키워드
『사기』, 맹상군, 풍환, 식객, 관계
전후맥락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기 제(齊)나라 왕족 출신으로 이름은 전문이다. 서자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을 드러내 ‘맹상군’이란 칭호를 받고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그는 식객들을 후하게 예우하기로 유명하였는데 그렇게 모여든 식객의 수가 3천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제나라 왕이 그에 대한 비방을 듣고 맹상군을 파면하자 수많은 식객이 모두 떠났다. 이때 식객 중 한 사람인 풍환이 꾀를 내어 맹상군의 복위(復位)를 도왔다. 아래는 맹상군이 복위한 뒤 풍환과 나눈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비방하는 말을 듣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서 쫓아내자, 그의 식객*들이 모두 떠나갔다. 후에 왕이 다시 맹상군을 불러 복귀시키자 풍환이 그를 맞이했다. 도성에 도착하기 전, 맹상군이 크게 탄식하여 말했다.
“제가 평소 식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우함에 감히 실수가 없도록 하였으니, 그렇게 모인 식객이 총 3천 여명이었던 것은 선생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식객들은 하루아침에 제가 쫓겨나는 것을 보고는 모두 저를 등지고 떠나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선생 덕분에 복위하였으나, 떠나간 그들이 무슨 면목으로 저를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다시 저를 보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
풍환이 고삐를 맨 뒤 내려와 그에게 절하였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 그를 맞이하고는 말했다.
“선생께서 식객들을 위해 대신 사죄하시는 겁니까?”
풍환이 말했다.
“객들을 위해 사죄하는 것이 아니라 군께서 하신 말실수 때문입니다. 무릇 만물에는 반드시 귀결되는 바가 있고 사태에는 본래 그렇게 되는 바가 있습니다. 군께서는 이를 아십니까?”
맹상군이 말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풍환이 말했다.
“살아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되니 이것이 만물이 반드시 귀결되는 바입니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을 때는 주변에 인재가 많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을 때는 친구가 적으니, 이것이 사태가 본래 그렇게 되는 바입니다. 군께서는 아침에 사람들이 시장으로 향하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아침이 밝으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다투어 시장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지만, 해가 진 뒤에는 시장을 떠나가는 이들이 팔을 흔들며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하여서가 아니라 그곳에 찾는 물건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군께서 지위를 잃으시자 식객들이 모두 떠나간 것을 가지고 그들을 원망하며 앞으로 그들과 교우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군께서는 식객들을 옛날처럼 잘 대우하여 주십시오.”
맹상군이 풍환에게 두 번 절하고는 말했다.
“선생의 말을 감사히 따르겠소. 선생의 말을 들었는데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식객: 또는 식객이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재주를 가지고 권세가에게 의탁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사기』「맹상군열전 」중에서
토론하기
(1) 풍환은 맹상군의 식객들이 떠나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2) 맹상군과 식객의 관계에 대한 맹상군 그리고 풍환의 견해 차이를 설명해보자.
(3) 풍환은 맹상군의 식객들이 떠난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풍환은 어째서 맹상군 곁을 떠나지 않았을까? 풍환의 결정에 대해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중국 전국시기 각 제후국 간의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인재 양성과 등용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일명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라고 불리는 유력 권세가들이 경쟁적으로 인재를 모았으니, 맹상군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권세가들에게 모여 의탁한 인재들은 식객, 또는 빈객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평소에는 특별한 일 없이 있다가 필요에 따라 계책을 세우거나 무력을 동원하는 등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권세가를 도왔다. 예컨대 맹상군이 진(秦)나라에서 곤경을 당했을 때 닭 울음소리와 개 흉내를 낼 줄 아는 식객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고, 이로부터 하찮은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계명구도(鷄鳴狗盜) 고사가 유래했다.
이처럼 식객을 두는 것은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인재를 모은다는 장점과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에 인재가 유출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식객을 모은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우선 식객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기 위해 충분한 재력이 필요하다. 식객 입장에서 충분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권세가 개인의 평판도 중요하다. 그가 평소 식객들을 소홀히 대우하거나 의롭지 못하다고 여겨지면 인재들이 그에게 의탁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객을 많이 모았다는 것은 그의 재력과 평판에 대한 한가지 방증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3천 명의 식객을 모은 맹상군의 명성이 당시에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해 봄 직하다.
그러나 그의 높은 명성은 오히려 제나라 왕의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왕은 맹상군에 대한 비방을 듣자 그를 배척하게 되었다. 맹상군이 직위와 봉지에서 쫓겨나자, 곁에 있던 식객들도 모두 떠나갔다. 다행히 풍환이라는 식객이 남아 맹상군을 위해 꾀를 내어 그가 복위할 수 있도록 도왔으나, 이미 맹상군은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돕지 않고 떠나버린 식객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왜냐하면 그는 식객과의 관계를 사적인 우호 관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식객들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풀면 식객들은 그 보답으로서 맹상군에게 호의와 친절을 되돌려주는 것, 이것이 맹상군이 생각한 식객과의 관계이다. 이러한 맹상군의 입장에서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떠난 것은 우호 관계에 대한 배신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야기 초반에 식객들에 대한 원망, 관계에 대한 회의를 담아 “만약 다시 저를 보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보일 것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같은 관계를 바라보는 풍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침과 저녁 시장의 상황을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아침에 사람이 북적이고 저녁에는 한산한 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아침에 그들이 찾는 물건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찾는 물건’은 식객이 권세가를 찾아오는 이유로서 그들의 권세 및 재력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곧 식객이 권세가를 찾아가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재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부유하기 때문이며, 그가 충분히 부유하지 않거나 혹은 대가를 지불하는 데 인색하다면 그에게 의탁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식객이 권세가를 사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과는 무관하니, 마치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해서 아침 시장이 북적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풍환은 맹상군과 식객이 호의를 바탕으로 한 사적인 우호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맺어진 계약 관계로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권세를 잃고 식객에게 제공할 바가 없어진 맹상군을 식객들이 떠나게 된 것은 매우 당연하며, 맹상군이 이를 배신이라 여기며 원망할 필요도 없게 된다.
「맹상군열전」의 일화는 중국 전국시기에 있었던 권세가와 식객 간의 특수한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제시한다. 하나는 호의를 기반으로 한 사적인 우호 관계로부터 연장된 것으로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철저히 각자의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맺어진 계약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관계는 그것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이 이야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키워드
『사기』, 맹상군, 풍환, 식객,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