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월(越)나라 왕 구천은 오(吳)나라와 전쟁하여 회계산에서 크게 패배하고 포위당했다. 이때 월나라 신하 범려와 문종이 꾀를 내어, 오나라로 하여금 구천을 사면해 주도록 하였다. 구천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나 그는 이날을 ‘회계에서의 치욕’이라 하며 언제나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꿈꿨다. 신하 범려와 문종도 항상 왕을 보필하며 그가 오나라에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구천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오나라를 정벌하고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범려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가게 된다. 다음 고전 본문은 범려가 월나라를 떠나게 된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① 범려는 월왕 구천을 힘써 섬기며 20여 년간 계책을 의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켜 지난 회계에서의 치욕을 갚았다. 또 북쪽으로 출병해 회화강을 건너 제나라와 진나라에 이르러 중원을 호령하고 종주국인 주나라 왕실을 드높였다. 이로써 월나라 왕 구천은 패자(霸者)1가 되고 범려는 대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범려는 자신의 거대해진 명성으로는 오랫동안 월나라에 있기 어려우며, 또 월나라 왕 구천은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평화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구천에게 사퇴하는 편지를 썼다.
“제가 듣기로 군주가 걱정하면 신하는 고생하고,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에 왕께서 회계에서 치욕을 당하셨음에도 제가 죽지 않았던 것은 오나라에 치욕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치욕을 다 갚았으니 신은 회계 때 받지 않았던 벌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자 구천이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소. 이를 받지 않는다면 그대를 벌하겠소.”
범려가 대답했다.
“군주는 명령을 집행하고, 신하는 뜻을 실천합니다.”
그러고는 가벼운 보물들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서 다시는 월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구천은 월나라의 영토가 된 회계산을 범려의 봉토2로 삼았다.
② 그 후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서, 제나라에서 월나라에 남아있는 문종에게 편지를 보냈다.
“날던 새가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둬지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집니다. 월나라 왕은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와 같이 뾰족하여,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문종은 편지를 읽고서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문종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헐뜯자 월나라 왕이 이내 문종에게 검을 내려 자결할 것을 명령하며 말했다.
“그대는 과인에게 오나라를 정벌하는 일곱 가지 계책을 가르쳐 주었고, 과인은 그중 세 가지 계책을 사용하여 오나라를 이겼소. 아직 네 가지 계책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선왕(先王)3을 섬겨 계책들을 시험해 보시오.”
결국 문종이 자결했다.
*원문의 순서는 ②-①이나, 시간 순에 따라 ①-②로 배치하였음.
1) 패자(霸者): 고대 중국국에서 천자의 나라인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주나라 왕실을 대신하여 국제 질서를 주도한 제후국 혹은 그 제후왕을 말함.
2) 봉토: 왕이 신하에게 보상으로 주는 영지.
3) 선왕(先王): 이미 죽은 월나라 선대의 왕들.
-『사기』「월왕구천세가」중에서
토론하기
(1) 범려가 월왕 구천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본문 중에서 찾아 말해보자.
(2) 범려와 달리 문종은 왜 월나라를 일찍 떠나지 않았을까?
(3) 월왕 구천은 검을 내리며 문종에게 자결하도록 하였다. 그가 왜 이런 결정을 하였을지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이웃해 있는 월나라와 오나라는 악연이 깊었다. 오나라 왕 부차의 아버지는 일찍이 월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사망했다. 이 때문에 부차는 불편한 잠자리에 들고 쓸개를 맛보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니, 이로부터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나왔다. 마침내 부차가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월나라 왕 구천은 이 소문을 듣고 먼저 오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범려가 이를 말리고자 하였으나 구천이 듣지 않았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와 전쟁하여 회계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범려와 문종의 계책으로 다행히 구천은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구천은 이후 범려와 문종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대를 키우면서 오나라에 설욕할 기회를 노렸다.
그 후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왕 부차를 포위하였다. 부차는 과거 구천이 그랬던 것처럼 항복하며 강화를 청하였다. 이에 구천이 망설이자 범려가 후환을 남기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구천은 범려의 조언에 따라 강화 요청을 거절했고 결국 부차는 자결하게 된다. 이로써 오나라는 멸망하고 월나라가 패자(霸者)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구천이 패자가 되는 이야기 뒤편에는 언제나 왕을 물심양면으로 보필한 신하 범려와 문종이 있었다. 이들은 구천이 패배했을 때에도 곁을 지키며, 월나라의 국력을 키워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왔다. 말하자면 이들은 월나라의 MVP이다. 이처럼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큰 공을 세운다면 왕들은 그 공을 인정해 후한 상을 내리곤 했다. 예컨대 구천이 회계산 주변을 범려의 봉토로 준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구천은 범려가 떠났음에도 그가 언제든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 땅을 범려의 것으로 해두었다. 이처럼 월나라의 MVP인 범려와 문종이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적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입장에서 이제 고생 끝에 낙이 온 셈이다.
그런데 범려는 모든 일이 끝나자 구천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라 말하며, 그가 하사하는 상도 받지 않고 월나라를 떠나간다. 그리고 제나라로 떠난 뒤 여전히 월나라에 남아있는 문종에게 편지를 써서 떠나라고 조언한다. 그는 문종을 쓰임이 다한 활과 사냥개에 비유하며 구천이 필요 없어진 그를 버릴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니,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사자성어가 이로부터 유래했다. 결국 구천은 이미 죽은 선대 왕들과 함께 계책을 시험해 보라는 말로써 문종에게 자결하도록 명령하고, 이로써 문종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이야기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월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오나라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때, 구천은 두 신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그가 모든 목적을 이루었을 때 왕은 두 신하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므로 신뢰와 협력으로 이어진 왕과 신하의 관계가 붕괴하게 된 것이다. 이를 미리 눈치채지 못한 문종은 결국 죽임을 당하였고, 반면 먼저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여생을 풍요롭게 살았다. 범려와 문종의 상반된 삶은,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 『사기』「월왕구천세가」 중에서
키워드
『사기』, 범려, 문종, 월왕 구천, 와신상담, 토사구팽, 관계
전후맥락
월(越)나라 왕 구천은 오(吳)나라와 전쟁하여 회계산에서 크게 패배하고 포위당했다. 이때 월나라 신하 범려와 문종이 꾀를 내어, 오나라로 하여금 구천을 사면해 주도록 하였다. 구천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나 그는 이날을 ‘회계에서의 치욕’이라 하며 언제나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꿈꿨다. 신하 범려와 문종도 항상 왕을 보필하며 그가 오나라에 복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구천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오나라를 정벌하고 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범려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월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가게 된다. 다음 고전 본문은 범려가 월나라를 떠나게 된 이야기이다.
고전본문
① 범려는 월왕 구천을 힘써 섬기며 20여 년간 계책을 의논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월나라는 오나라를 멸망시켜 지난 회계에서의 치욕을 갚았다. 또 북쪽으로 출병해 회화강을 건너 제나라와 진나라에 이르러 중원을 호령하고 종주국인 주나라 왕실을 드높였다. 이로써 월나라 왕 구천은 패자(霸者)1가 되고 범려는 대장군이 되었다. 그런데 범려는 자신의 거대해진 명성으로는 오랫동안 월나라에 있기 어려우며, 또 월나라 왕 구천은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평화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구천에게 사퇴하는 편지를 썼다.
“제가 듣기로 군주가 걱정하면 신하는 고생하고,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에 왕께서 회계에서 치욕을 당하셨음에도 제가 죽지 않았던 것은 오나라에 치욕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치욕을 다 갚았으니 신은 회계 때 받지 않았던 벌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자 구천이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소. 이를 받지 않는다면 그대를 벌하겠소.”
범려가 대답했다.
“군주는 명령을 집행하고, 신하는 뜻을 실천합니다.”
그러고는 가벼운 보물들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서 다시는 월나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구천은 월나라의 영토가 된 회계산을 범려의 봉토2로 삼았다.
② 그 후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서, 제나라에서 월나라에 남아있는 문종에게 편지를 보냈다.
“날던 새가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둬지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집니다. 월나라 왕은 목이 길고 입은 새 부리와 같이 뾰족하여, 어려움을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문종은 편지를 읽고서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문종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헐뜯자 월나라 왕이 이내 문종에게 검을 내려 자결할 것을 명령하며 말했다.
“그대는 과인에게 오나라를 정벌하는 일곱 가지 계책을 가르쳐 주었고, 과인은 그중 세 가지 계책을 사용하여 오나라를 이겼소. 아직 네 가지 계책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선왕(先王)3을 섬겨 계책들을 시험해 보시오.”
결국 문종이 자결했다.
*원문의 순서는 ②-①이나, 시간 순에 따라 ①-②로 배치하였음.
1) 패자(霸者): 고대 중국국에서 천자의 나라인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주나라 왕실을 대신하여 국제 질서를 주도한 제후국 혹은 그 제후왕을 말함.
2) 봉토: 왕이 신하에게 보상으로 주는 영지.
3) 선왕(先王): 이미 죽은 월나라 선대의 왕들.
-『사기』「월왕구천세가」중에서
토론하기
(1) 범려가 월왕 구천을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본문 중에서 찾아 말해보자.
(2) 범려와 달리 문종은 왜 월나라를 일찍 떠나지 않았을까?
(3) 월왕 구천은 검을 내리며 문종에게 자결하도록 하였다. 그가 왜 이런 결정을 하였을지 본문의 내용을 토대로 추측해보자.
해설읽기
이웃해 있는 월나라와 오나라는 악연이 깊었다. 오나라 왕 부차의 아버지는 일찍이 월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사망했다. 이 때문에 부차는 불편한 잠자리에 들고 쓸개를 맛보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자 노력하니, 이로부터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말이 나왔다. 마침내 부차가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월나라 왕 구천은 이 소문을 듣고 먼저 오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범려가 이를 말리고자 하였으나 구천이 듣지 않았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와 전쟁하여 회계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범려와 문종의 계책으로 다행히 구천은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구천은 이후 범려와 문종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대를 키우면서 오나라에 설욕할 기회를 노렸다.
그 후 월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왕 부차를 포위하였다. 부차는 과거 구천이 그랬던 것처럼 항복하며 강화를 청하였다. 이에 구천이 망설이자 범려가 후환을 남기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구천은 범려의 조언에 따라 강화 요청을 거절했고 결국 부차는 자결하게 된다. 이로써 오나라는 멸망하고 월나라가 패자(霸者)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구천이 패자가 되는 이야기 뒤편에는 언제나 왕을 물심양면으로 보필한 신하 범려와 문종이 있었다. 이들은 구천이 패배했을 때에도 곁을 지키며, 월나라의 국력을 키워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왔다. 말하자면 이들은 월나라의 MVP이다. 이처럼 옛날 중국에서 신하가 큰 공을 세운다면 왕들은 그 공을 인정해 후한 상을 내리곤 했다. 예컨대 구천이 회계산 주변을 범려의 봉토로 준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구천은 범려가 떠났음에도 그가 언제든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 땅을 범려의 것으로 해두었다. 이처럼 월나라의 MVP인 범려와 문종이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적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입장에서 이제 고생 끝에 낙이 온 셈이다.
그런데 범려는 모든 일이 끝나자 구천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라 말하며, 그가 하사하는 상도 받지 않고 월나라를 떠나간다. 그리고 제나라로 떠난 뒤 여전히 월나라에 남아있는 문종에게 편지를 써서 떠나라고 조언한다. 그는 문종을 쓰임이 다한 활과 사냥개에 비유하며 구천이 필요 없어진 그를 버릴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니,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사자성어가 이로부터 유래했다. 결국 구천은 이미 죽은 선대 왕들과 함께 계책을 시험해 보라는 말로써 문종에게 자결하도록 명령하고, 이로써 문종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 이야기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월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오나라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때, 구천은 두 신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갔다. 그러나 그가 모든 목적을 이루었을 때 왕은 두 신하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므로 신뢰와 협력으로 이어진 왕과 신하의 관계가 붕괴하게 된 것이다. 이를 미리 눈치채지 못한 문종은 결국 죽임을 당하였고, 반면 먼저 월나라를 떠난 범려는 여생을 풍요롭게 살았다. 범려와 문종의 상반된 삶은,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 『사기』「월왕구천세가」 중에서
키워드
『사기』, 범려, 문종, 월왕 구천, 와신상담, 토사구팽,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