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곳이자,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이중적인 뜻을 가진 단어 ‘유토피아’는 인류가 꿈꾸는 공간이지만,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성취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열망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작품들을 통해 표현되어 오고 있다. 그럼,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이상에 대한 열망은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열망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도덕적, 과학적 발전을 성취하기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 열망은 인류의 진보에 추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셀묶음에서는 인류가 꿈꾼 다양한 이상향에 대한 모습을 여러 고전을 통해서 살펴볼 것이다.
노자에게 도(道)는 인간이 언어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원리이다. 이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하는데, 여기서 자연은 신의 피조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면서 자기를 보존하는 유기적인 질서이다. 노자는 바로 자연의 질서에 따라서 사는 삶이 도에 부합하는 삶이고, 이러한 삶은 유가적 인륜 질서에 얽매인 삶에 반대된다. 따라서 노자는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인위적 삶보다는 무위(無爲)의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삶이 아래 본문에서 묘사하는 규모가 작고 사람이 적은 공동체에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고전본문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가 적게 하십시오.
열배 백배 생산하는 기계가 쓰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백성들로 하여금 목숨을 중히 여겨 멀리 이동하지 않게 하십시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타고 갈 곳이 없고,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드러낼 일이 없습니다.
백성들로 끈을 묶어 다시 의사소통을 하게게 하고,
소박한 음식을 달게 먹게 하고,
거친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고,
누추한 집을 편한 곳으로 여기게 하며,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십시오.
이웃하는 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 가깝습니다.
백성들이 늙고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습니다.
-노자 『도덕경』 제80장
토론하기
(1) 위 본문은 노자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위 이상 사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2) 위 본문은 노자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위 이상 사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노자의 ‘소국과민’의 이상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비교해 보자(참조 셀 -사유재산은 유토피아의 적)
(3) 노자가 그리는 이상 사회에 비추어 오늘 우리 사회를 비판해 보자.
해설읽기
일반적으로 노자의 도가 사상의 핵심을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표현한다. 이 말은 인위적으로 그리고 가식적으로 살지 않고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라서 사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총 81장으로 이루어진 노자 『도덕경』에서 위 본문은 제80장에 등장한다. 무위나 자연이라는 개념은 『도덕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 두 개념이 합쳐진 무위자연은 아무런 욕구나 의지 없이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일종의 거대한 생명체인데, 생명체들이 욕구가 없다면 더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위자연의 상태는 자연 스스로가 정해놓은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서구 사상에서 말하는 신의 피조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이 자연은 신의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보존하면서 스스로 변화, 생성하는 실재재이다. 자연은 스스로 보존하는 원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도(道)라고 한다. 노자는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도를 따르지 않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본성을 파괴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자야 한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 억지로 밥을 먹지 않는 것도 도를 거스르는 일이다.
공자에서 출발한 유가에서 말하는 도란 인의예지와 같은 유가적 덕목을 통해 구체화된다. 도가 실현되기 위해서 공자는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반면, 노자는 공자가 제시한 도에 저항하는데, 그 이유는 노자의 도는 인간적인 도덕원리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공자와 달리 노자는 이 도를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노자 입장에서 인의예지와 같은 유가의 핵심 덕목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러움을 빼앗고 조작된 인간을 형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본문에서 노자가 그리고 있는 소국과민의 이상은 바로 노자의 무위, 자연, 도 개념에 비추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사람이 적을 때는 서열도 계급도 신분도 필요 없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해도 만족하며 살 수 있고, 필요할 때에는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계급을 나누고 각 계급에 따른 역할과 행동 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큰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이 커져서 높은 신분, 재물, 권력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노자가 살던 춘추 시대는 이미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들이 등장했고, 당연히 큰 조직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통치자가 생겨났다. 많은 농산물을 얻기 위해서 통치자가 생산성을 높이는 기계를 사용하게 하면 생산량이 늘어나겠지만, 그 결과물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창고에 쌓인다. 그렇게 되면 통치자의 탐욕이 더 커져서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더 부유해지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되고, 결국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움직여 다녀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배와 수레가 이동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갑옷과 무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에는 바로 전쟁에 반대하는 노자의 평화주의적 태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문용어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 전문용어들은 공동체가 비대해지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법률용어, 경제용어들을 생각해 보라.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노끈을 묶어서 서로 단순하게 소통할 때를 그리워한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좋은 집들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기보다도 서로 비교 의식을 갖게 하여 소박한 음식, 옷, 집에서 살 때보다 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노자는 지나치게 큰 땅에서 많은 사람이 사는 것보다는 작은 공간에서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사는 것이 인간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라들이 서로 바라볼 정도의 거리에 있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나라들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평생 다른 나라와 교류가 없다는 것은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상업적인 교류가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자급자족하는 작은 규모의 농업 공동체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의 탐욕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노자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키워드
도, 무위, 소국과민, 자연, 인의예지, 인륜
전후맥락
노자에게 도(道)는 인간이 언어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주 만물의 궁극적인 원리이다. 이 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하는데, 여기서 자연은 신의 피조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면서 자기를 보존하는 유기적인 질서이다. 노자는 바로 자연의 질서에 따라서 사는 삶이 도에 부합하는 삶이고, 이러한 삶은 유가적 인륜 질서에 얽매인 삶에 반대된다. 따라서 노자는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인위적 삶보다는 무위(無爲)의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삶이 아래 본문에서 묘사하는 규모가 작고 사람이 적은 공동체에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고전본문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가 적게 하십시오.
열배 백배 생산하는 기계가 쓰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백성들로 하여금 목숨을 중히 여겨 멀리 이동하지 않게 하십시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타고 갈 곳이 없고,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드러낼 일이 없습니다.
백성들로 끈을 묶어 다시 의사소통을 하게게 하고,
소박한 음식을 달게 먹게 하고,
거친 옷을 아름답게 여기게 하고,
누추한 집을 편한 곳으로 여기게 하며,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십시오.
이웃하는 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 가깝습니다.
백성들이 늙고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습니다.
-노자 『도덕경』 제80장
토론하기
(1) 위 본문은 노자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위 이상 사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2) 위 본문은 노자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위 이상 사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노자의 ‘소국과민’의 이상과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비교해 보자(참조 셀 -사유재산은 유토피아의 적)
(3) 노자가 그리는 이상 사회에 비추어 오늘 우리 사회를 비판해 보자.
해설읽기
일반적으로 노자의 도가 사상의 핵심을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표현한다. 이 말은 인위적으로 그리고 가식적으로 살지 않고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라서 사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총 81장으로 이루어진 노자 『도덕경』에서 위 본문은 제80장에 등장한다. 무위나 자연이라는 개념은 『도덕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 두 개념이 합쳐진 무위자연은 아무런 욕구나 의지 없이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일종의 거대한 생명체인데, 생명체들이 욕구가 없다면 더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위자연의 상태는 자연 스스로가 정해놓은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서구 사상에서 말하는 신의 피조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이 자연은 신의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보존하면서 스스로 변화, 생성하는 실재재이다. 자연은 스스로 보존하는 원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도(道)라고 한다. 노자는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도를 따르지 않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본성을 파괴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낮에 일하고 밤에 잠을 자야 한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배가 고픈데 억지로 밥을 먹지 않는 것도 도를 거스르는 일이다.
공자에서 출발한 유가에서 말하는 도란 인의예지와 같은 유가적 덕목을 통해 구체화된다. 도가 실현되기 위해서 공자는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반면, 노자는 공자가 제시한 도에 저항하는데, 그 이유는 노자의 도는 인간적인 도덕원리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공자와 달리 노자는 이 도를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노자 입장에서 인의예지와 같은 유가의 핵심 덕목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러움을 빼앗고 조작된 인간을 형성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본문에서 노자가 그리고 있는 소국과민의 이상은 바로 노자의 무위, 자연, 도 개념에 비추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사람이 적을 때는 서열도 계급도 신분도 필요 없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해도 만족하며 살 수 있고, 필요할 때에는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계급을 나누고 각 계급에 따른 역할과 행동 방식을 규정하게 된다. 큰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이 커져서 높은 신분, 재물, 권력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노자가 살던 춘추 시대는 이미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들이 등장했고, 당연히 큰 조직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강력한 통치자가 생겨났다. 많은 농산물을 얻기 위해서 통치자가 생산성을 높이는 기계를 사용하게 하면 생산량이 늘어나겠지만, 그 결과물이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창고에 쌓인다. 그렇게 되면 통치자의 탐욕이 더 커져서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더 부유해지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되고, 결국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움직여 다녀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배와 수레가 이동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갑옷과 무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에는 바로 전쟁에 반대하는 노자의 평화주의적 태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문용어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 전문용어들은 공동체가 비대해지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법률용어, 경제용어들을 생각해 보라. 노자는 오히려 사람들이 노끈을 묶어서 서로 단순하게 소통할 때를 그리워한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좋은 집들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기보다도 서로 비교 의식을 갖게 하여 소박한 음식, 옷, 집에서 살 때보다 더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노자는 지나치게 큰 땅에서 많은 사람이 사는 것보다는 작은 공간에서 비교적 적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사는 것이 인간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나라들이 서로 바라볼 정도의 거리에 있고, 닭과 개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나라들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평생 다른 나라와 교류가 없다는 것은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상업적인 교류가 있는 사회가 아니라, 자급자족하는 작은 규모의 농업 공동체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상업 활동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의 탐욕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노자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