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뒤르켐은 공포와 불안, 인간의 연약성과 의존성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는 이론에 반대한다. 그가 연구한 토템신앙에서 신은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친근한 존재라는 사실이 반대의 근거이다. 이 신앙에서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신들에게 헌신하고 이 신앙을 통해서 사회의 영혼이 개인의 의식에 내면화된다. 뒤르켐은 또한 자연 숭배와 정령 숭배 이론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는 감각적 경험 이상의 초월적 차원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만들 수 없다.’ 이런 이론에서는 꿈 속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데, 이 경우 오랜 기간이 지나고 오류가 밝혀졌음에도 종교가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에 뒤르켐은 종교가 사회적 결속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고전본문
사실 우리는 신자들이 자신들이 구속되어 있고 그 자체로 최선의 것을 받는다고 여기는 도덕적 힘의 존재를 믿을 때 기만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힘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자신을 넘어서 내면으로부터 그들을 놀라게 하는 강도 높은 넘쳐나는 생명을 느낀다. 그러한 환희는 실재적이고 진정 개인 바깥에서 그리고 개인보다 우월한 힘들이 낳은 결과이다. 물론, 동물이나 식물 형태를 가진 힘이 생명력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그러나 그의 오류는 정신 속에 있는 이러한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이나 상상력이 포장한 외적인 모습을 문자 그대로 취하는 것에 있지, 그 힘의 실재성이라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형식들 이면에, 조잡하건 세련되건 간에,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실재가 존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종교는 가장 전투적인 합리주의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의미와 합리성을 획득한다. 종교의 주요한 목적은 인간에게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는 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종교의 본질적 과제였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오류의 체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교는 무엇보다도 관념의 체계인데, 그것에 의해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일원으로 속해 있는 사회와 가지는 모호하지만 친밀한 관계들을 상상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종교의 최고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이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설명되어야 할 관계들의 본질을 번역해 준다. 우리 바깥에 우리보다 더 위대하고 우리와 소통하는 존재가 있다는 영원한 진리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예배 행위는 마비된 힘, 동작 없는 제스 이상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신자와 그들의 신-사회에 대한 비유적 표상에 불과한 신-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명백한 목적에 봉사하는 바로 그 행동에 의해서, 그들은 개인과 그 개인이 일원으로 있는 사회 사이에 유대를 동시에 강화한다. 우리는 심지어 어떻게 종교가 포함하고 있는 근본적인 진리가 그것에 반드시 수반되는 부차적인 오류들을 상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들이 초래하는 불쾌한 경악스러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종교를 버리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종교가 인간에게 제시해 준 처방들이 효과가 없음이 밝혀졌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종교에 근본적인 것을 타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전] 에밀 뒤르켐, 『종교적 생활의 원초적 형태』 2권 7장
토론하기
(1) 뒤르켐은 종교을 일차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2) 뒤르켐은 종교에서 믿는 신이 사실은 사회 자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자.
(3) 뒤르켐는 종교의 본질을 기능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뒤르켐은 막스 베버와 더불어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 중의 하나이다. 뒤르켐의 학문적 관심사 중 하나는 근대화 이후 개인은 원자화되어 분열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뒤르켐은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원시 부족의 종교적 삶을 관찰하였다. 뒤르켐 당시 유럽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시 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뒤르켐은 종교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여러 설명 중에서 뒤르켐은 두려움과 공포, 불안과 같은 심리적 동기 때문에 종교가 탄생했다는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 심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상을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결국 종교란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뒤르켐에게 종교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실이다. 다만 뒤르켐은 실재적인 종교적 힘이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인격적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뒤르켐에게 이 신은 사회 자체이다. 뒤르켐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원시 부족의 토템 신앙 연구 때문이다. 토템은 부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원주민은 이 상징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지만, 사실은 이 상징은 부족을 대표하기 때문에 같은 상징을 숭배하여 신과의 연대하는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의 일원임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이러한 종교적 삶은 근대 사회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본다.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를 통해 그 구성원의 결속을 도모하는 것은 오늘날에게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뒤르켐이 말하듯이 종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세상을 이해하는 표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상징을 통해서 사회를 결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상징은 단순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들을 넘어서는 힘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가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종교가 수행하는 사회 결속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를 설명한다.
키워드
기능, 상징, 종교, 표상, 토템
전후맥락
뒤르켐은 공포와 불안, 인간의 연약성과 의존성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는 이론에 반대한다. 그가 연구한 토템신앙에서 신은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친근한 존재라는 사실이 반대의 근거이다. 이 신앙에서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신들에게 헌신하고 이 신앙을 통해서 사회의 영혼이 개인의 의식에 내면화된다. 뒤르켐은 또한 자연 숭배와 정령 숭배 이론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는 감각적 경험 이상의 초월적 차원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만들 수 없다.’ 이런 이론에서는 꿈 속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데, 이 경우 오랜 기간이 지나고 오류가 밝혀졌음에도 종교가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에 뒤르켐은 종교가 사회적 결속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고전본문
사실 우리는 신자들이 자신들이 구속되어 있고 그 자체로 최선의 것을 받는다고 여기는 도덕적 힘의 존재를 믿을 때 기만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힘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자신을 넘어서 내면으로부터 그들을 놀라게 하는 강도 높은 넘쳐나는 생명을 느낀다. 그러한 환희는 실재적이고 진정 개인 바깥에서 그리고 개인보다 우월한 힘들이 낳은 결과이다. 물론, 동물이나 식물 형태를 가진 힘이 생명력의 증가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은 오류이다. 그러나 그의 오류는 정신 속에 있는 이러한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이나 상상력이 포장한 외적인 모습을 문자 그대로 취하는 것에 있지, 그 힘의 실재성이라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형식들 이면에, 조잡하건 세련되건 간에,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실재가 존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종교는 가장 전투적인 합리주의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의미와 합리성을 획득한다. 종교의 주요한 목적은 인간에게 자연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는 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종교의 본질적 과제였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오류의 체계 이상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교는 무엇보다도 관념의 체계인데, 그것에 의해서 개인들은 자신들이 일원으로 속해 있는 사회와 가지는 모호하지만 친밀한 관계들을 상상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종교의 최고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이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충분히 설명되어야 할 관계들의 본질을 번역해 준다. 우리 바깥에 우리보다 더 위대하고 우리와 소통하는 존재가 있다는 영원한 진리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예배 행위는 마비된 힘, 동작 없는 제스 이상의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신자와 그들의 신-사회에 대한 비유적 표상에 불과한 신-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명백한 목적에 봉사하는 바로 그 행동에 의해서, 그들은 개인과 그 개인이 일원으로 있는 사회 사이에 유대를 동시에 강화한다. 우리는 심지어 어떻게 종교가 포함하고 있는 근본적인 진리가 그것에 반드시 수반되는 부차적인 오류들을 상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들이 초래하는 불쾌한 경악스러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종교를 버리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종교가 인간에게 제시해 준 처방들이 효과가 없음이 밝혀졌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종교에 근본적인 것을 타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전] 에밀 뒤르켐, 『종교적 생활의 원초적 형태』 2권 7장
토론하기
(1) 뒤르켐은 종교을 일차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2) 뒤르켐은 종교에서 믿는 신이 사실은 사회 자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자.
(3) 뒤르켐는 종교의 본질을 기능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뒤르켐은 막스 베버와 더불어 근대 사회학의 창시자 중의 하나이다. 뒤르켐의 학문적 관심사 중 하나는 근대화 이후 개인은 원자화되어 분열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뒤르켐은 종교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원시 부족의 종교적 삶을 관찰하였다. 뒤르켐 당시 유럽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시 부족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뒤르켐은 종교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했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여러 설명 중에서 뒤르켐은 두려움과 공포, 불안과 같은 심리적 동기 때문에 종교가 탄생했다는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 심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상을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결국 종교란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뒤르켐에게 종교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실이다. 다만 뒤르켐은 실재적인 종교적 힘이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인격적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뒤르켐에게 이 신은 사회 자체이다. 뒤르켐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원시 부족의 토템 신앙 연구 때문이다. 토템은 부족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원주민은 이 상징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지만, 사실은 이 상징은 부족을 대표하기 때문에 같은 상징을 숭배하여 신과의 연대하는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의 일원임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이러한 종교적 삶은 근대 사회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본다.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를 통해 그 구성원의 결속을 도모하는 것은 오늘날에게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뒤르켐이 말하듯이 종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세상을 이해하는 표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상징을 통해서 사회를 결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상징은 단순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들을 넘어서는 힘을 가리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교가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종교가 수행하는 사회 결속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를 설명한다.
키워드
기능, 상징, 종교, 표상, 토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