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니체는 도덕의 기원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론이 역사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니체는 도덕을 철저하게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 이해하고, 그 역사적 뿌리를 탐구한다. 문헌학적 연구를 통하여 저자는 ‘좋음’이 도덕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고, 그저 강한 자들이 자신의 우월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음을 밝힌다. 그리스도교의 등장과 함께 니체가 강자들의 입장에서 좋음과 나쁨을 규정하는 ‘귀족의 도덕’이 약자들의 나약함과 비굴함을 겸손과 희생으로 포장하는 ‘노예의 도덕’으로의 가치 전환이 일어난다. 아래 본문은 이 전환을 양과 맹금 사이의 관계를 이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고전본문
어린 양들이 큰 맹금에 대해서 원한을 갖는다는 사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작은 양들을 낚아챈다는 것을 놓고 큰 맹금들을 비난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리고 양들이 서로 ‘이 맹금들은 악하다. 맹금과 가장 닮지 않는 자, 가장 그 반대편에 있는 자, 곧 양이 선하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상(理想)을 세우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맹금은 이에 대해 다소 조소하는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말이다. 맹금들은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선량한 양들에 대해서 전혀 원한이 없다. 사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부드러운 양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강함더러 자신을 강함으로서 자신을 표현하지 말라고 하고, 압도하고, 짖누르고, 주인이 되고, 적과 저항 그리고 승리를 갈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약함더러 자기를 강함으로서 표현하라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침해당한 자들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교활하게 자신을 변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악한 이들과는 다르게 살자. 선한 존재가 되자! 선한 사람은 능욕하지 않고, 누구도 해하지 않고, 공격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복수를 신에게 맡기고, 우리처럼 숨어 있는 듯 지내고, 온갖 악을 피하고 인내심 있고, 겸손하고, 올바른 우리과 같이 삶에서 바라는 바가 거의 없는 자이다.’ 냉정하고 공평한 입장에서 들을 때 이 말은 ‘우리 약자들은 단지 약할 뿐이다. 우리가 힘이 부족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선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암울한 상황, 곤충들도 가지고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영리함(큰 위험이 닥쳤을 때, 죽은 척하는 정도의 영리함)은 자신의 무력함을 위장하는 자기기만이다. 이는 마치 약자의 약함이 그 자체로 의지적인 성취이자, 원해서 선택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출전] 니체, 『도덕의 계보』, 제1논문
토론하기
(1) 양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어떤 식으로 전도시키고 있는가?
(2)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기 싫어서 강자를 비난했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3) 매우 양극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니체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인간은 평등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타인보다 강하고 탁월해지를 원했다. 자연스럽게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다시 말해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강자는 자신의 위치와 능력에 대해서 ‘좋다’라고 규정했고, 약자에 대해서는 ‘나쁘다’라고 규정한다. 강한고 유력한 것을 좋다고 여기고, 약하고 무력한 것을 나쁘다고 여기는 것에 평범한 인간 본성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서 강한 것을 반드시 좋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강한 것 보다는 약하고 겸손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강한 것을 교만하고 악한 이의 특징으로, 약하고 타인을 향해서 동정심을 갖고 배려하는 태도 선이 된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강한 것을 좋은 것으로 약한 것을 나쁜 것으로 여겼으나, 예수가 등장하여 겸손과 약함에 가치를 부여하면서부터 고대 세계의 가치가 뒤바뀌게 되었다.
겸손을 미덕이라고 생각한 예수와 달리, 니체는 겸손이나 약함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약자들이 강자에 대해서 가지는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생각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간에, 인간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강자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시기심, 질투, 원한의 감정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강한 자를 이길 능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물리적으로 강자에 대항할 수는 없어도, 정신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공격을 한다는 말은 물리적 힘에서는 약자인 내가 밀리지만, 가치의 측면에서는 내가 우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양은 맹금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양들은 서로에게 맹금을 악한 존재로, 자신을 선한 존재로 규정한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듯이 맹금은 그저 허기를 채우려 했을 뿐 악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강하고 약한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인데, 약자는 그것을 선과 악이라는 구도로서 파악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온유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조용하고, 공격적이지 않다고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않고 자신을 이런 가치로 치장한다. 니체가 싫어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립적인 인간으로 서지 못하고, 타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려는 태도이다. 니체의 도덕의 기원에 대한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평소 가질 수 있는 잘못된 태도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
키워드
선과 악, 좋음과 나쁨, 강자와 약자, 미덕, 겸손
전후맥락
니체는 도덕의 기원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론이 역사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니체는 도덕을 철저하게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 이해하고, 그 역사적 뿌리를 탐구한다. 문헌학적 연구를 통하여 저자는 ‘좋음’이 도덕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고, 그저 강한 자들이 자신의 우월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음을 밝힌다. 그리스도교의 등장과 함께 니체가 강자들의 입장에서 좋음과 나쁨을 규정하는 ‘귀족의 도덕’이 약자들의 나약함과 비굴함을 겸손과 희생으로 포장하는 ‘노예의 도덕’으로의 가치 전환이 일어난다. 아래 본문은 이 전환을 양과 맹금 사이의 관계를 이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고전본문
어린 양들이 큰 맹금에 대해서 원한을 갖는다는 사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작은 양들을 낚아챈다는 것을 놓고 큰 맹금들을 비난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리고 양들이 서로 ‘이 맹금들은 악하다. 맹금과 가장 닮지 않는 자, 가장 그 반대편에 있는 자, 곧 양이 선하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이상(理想)을 세우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맹금은 이에 대해 다소 조소하는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말이다. 맹금들은 아마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선량한 양들에 대해서 전혀 원한이 없다. 사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부드러운 양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강함더러 자신을 강함으로서 자신을 표현하지 말라고 하고, 압도하고, 짖누르고, 주인이 되고, 적과 저항 그리고 승리를 갈망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약함더러 자기를 강함으로서 표현하라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다.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침해당한 자들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해서 교활하게 자신을 변호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악한 이들과는 다르게 살자. 선한 존재가 되자! 선한 사람은 능욕하지 않고, 누구도 해하지 않고, 공격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복수를 신에게 맡기고, 우리처럼 숨어 있는 듯 지내고, 온갖 악을 피하고 인내심 있고, 겸손하고, 올바른 우리과 같이 삶에서 바라는 바가 거의 없는 자이다.’ 냉정하고 공평한 입장에서 들을 때 이 말은 ‘우리 약자들은 단지 약할 뿐이다. 우리가 힘이 부족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선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암울한 상황, 곤충들도 가지고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영리함(큰 위험이 닥쳤을 때, 죽은 척하는 정도의 영리함)은 자신의 무력함을 위장하는 자기기만이다. 이는 마치 약자의 약함이 그 자체로 의지적인 성취이자, 원해서 선택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출전] 니체, 『도덕의 계보』, 제1논문
토론하기
(1) 양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어떤 식으로 전도시키고 있는가?
(2)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기 싫어서 강자를 비난했던 경험이 있으면 말해 보자.
(3) 매우 양극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니체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말해 보자.
해설읽기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인간은 평등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타인보다 강하고 탁월해지를 원했다. 자연스럽게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다시 말해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강자는 자신의 위치와 능력에 대해서 ‘좋다’라고 규정했고, 약자에 대해서는 ‘나쁘다’라고 규정한다. 강한고 유력한 것을 좋다고 여기고, 약하고 무력한 것을 나쁘다고 여기는 것에 평범한 인간 본성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서 강한 것을 반드시 좋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강한 것 보다는 약하고 겸손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들에게 강한 것을 교만하고 악한 이의 특징으로, 약하고 타인을 향해서 동정심을 갖고 배려하는 태도 선이 된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강한 것을 좋은 것으로 약한 것을 나쁜 것으로 여겼으나, 예수가 등장하여 겸손과 약함에 가치를 부여하면서부터 고대 세계의 가치가 뒤바뀌게 되었다.
겸손을 미덕이라고 생각한 예수와 달리, 니체는 겸손이나 약함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약자들이 강자에 대해서 가지는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니체의 생각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간에, 인간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강자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일반적으로 시기심, 질투, 원한의 감정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강한 자를 이길 능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물리적으로 강자에 대항할 수는 없어도, 정신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 공격을 한다는 말은 물리적 힘에서는 약자인 내가 밀리지만, 가치의 측면에서는 내가 우월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양은 맹금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양들은 서로에게 맹금을 악한 존재로, 자신을 선한 존재로 규정한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듯이 맹금은 그저 허기를 채우려 했을 뿐 악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강하고 약한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인데, 약자는 그것을 선과 악이라는 구도로서 파악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온유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조용하고, 공격적이지 않다고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않고 자신을 이런 가치로 치장한다. 니체가 싫어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립적인 인간으로 서지 못하고, 타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려는 태도이다. 니체의 도덕의 기원에 대한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평소 가질 수 있는 잘못된 태도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
키워드
선과 악, 좋음과 나쁨, 강자와 약자, 미덕,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