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인간의 삶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진정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셀 묶음에서는 고전이 제시하는 진정한 행복의 길을 다양하게 살펴볼 것이다. 이 고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행복의 길에는 돈과 권력과 명예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올더스 헉슬 리가 상상한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에 따라서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사회적 정체성, 안정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인공부화를 통해서 조작을 통해서 인간이 탄생하는 이 세계에서 버나드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직원의 실수로 화학적 조작이 잘못되어 동료 인간들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획일화,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레니나에게 그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고전본문
“저는 평온하게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버나드는 말했다.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그 끔찍한 소음 때문에 바다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라디오 음악 소리는 아름다워요. 그리고 저는 바다를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바다를 보고 싶어요.” 그는 고집스러웠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으면서 주저하며 말한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마치 내가 나 이상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훨씬 더 나 자신이 된 느낌입니다. 어떤 다른 것의 일부가 아니라 말이죠. 사회 안에서 하나의 세포로서가 아니라... 바다가 당신을 똑같이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레니나?”
하지만 레니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끔찍해요, 끔찍해요”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그리고 사회의 일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결국은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심지어 엡실론 계급들 조차도 말입니다.”
“그래요, 알아요.” 버나드는 조소하듯이 말했다. “심지어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하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레니나는 그의 불경스러움에 충격을 받았다. “버나드!” 그녀는 놀라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항의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다른 어조로 버나드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그는 생각에 잠겨 반복해서 말했다. “아니에요, 진정 문제는 왜 내가 그럴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내가 조건 반사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버나드, 당신은 가장 끔찍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나요, 레니나?”
“나는 당신이 뭘 말하려 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롭습니다.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유롭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는 웃었다. “맞아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죠.” 우리는 다섯 살 때 어린이들에게 그것을 교육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행복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레니나? 당신 자신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말이죠.“
[출전]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토론하기
(1) 버나드와 레니나의 사이의 대화에서 두 사람 사이의 행복에 대한 이해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 보자.
(2) 버나드처럼 속해 있는 여러 사회 속에서 획일성 때문에 정체성의 문제를 겪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3) 멋진 신세계와 같은 사회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어떤 사회상이 인간의 행복에 더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러 생각들을 나누어보자.
해설읽기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을 통해서 도달한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좋은 곳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문헌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유토피아 문학은 다양한 성격의 유토피아 상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개인보다는 집단 전체의 존속과 행복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다. 가령, 플라톤의 <국가>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개인은 사회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자유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인간을 타고난 등급으로 나누고 자신의 타고난 본성에 따라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플라톤이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인간이란 육체적 본능에 이끌려 살기 쉬운데, 이 본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성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이상 사회는 바로 이성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이다. 멋진 신세계와 플라톤의 이상 국가 사이에는 엄청난 역사적 간격이 있지만 상당히 유사한 점들이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인간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계급화되어 있고, 각 계급에 속한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계급 사이에 우열이 있는 것도 플라톤과 유사하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사회 지도층에서는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공유재산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가족 개념이 사라지고, ‘만인은 만인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는 플라톤의 철학자의 통치 이상을 과학기술로 대체된 사회이다. 이성이 그 능력을 최고로 발현한 과학 기술은 철학자의 이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넘어서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의 행복도 과학 기술로 제공하려고 한다. 바로 약물을 통해서 행복감을 얻게 하는 것이다.
버나드는 멋진 신세계의 주변인이다. 그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주눅이 들어 살고 있었다. 이때 모든 남성에게 인기가 있었던 레니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는다. 버나드를 행복하게 한 것은 기계적인 사회 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독립적 존재가 된다는 느낌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생각을 레니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니나는 멋진 신세계의 현 상태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버나드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삶이 그에게는 행복한 삶이다.
키워드
디스토피아, 안정, 정체성, 자유
전후맥락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올더스 헉슬 리가 상상한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에 따라서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사회적 정체성, 안정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인공부화를 통해서 조작을 통해서 인간이 탄생하는 이 세계에서 버나드는 주변인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직원의 실수로 화학적 조작이 잘못되어 동료 인간들에 비해서 신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는 획일화,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레니나에게 그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고전본문
“저는 평온하게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버나드는 말했다.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그 끔찍한 소음 때문에 바다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라디오 음악 소리는 아름다워요. 그리고 저는 바다를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바다를 보고 싶어요.” 그는 고집스러웠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으면서 주저하며 말한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마치 내가 나 이상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훨씬 더 나 자신이 된 느낌입니다. 어떤 다른 것의 일부가 아니라 말이죠. 사회 안에서 하나의 세포로서가 아니라... 바다가 당신을 똑같이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레니나?”
하지만 레니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끔찍해요, 끔찍해요”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그리고 사회의 일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요?” 결국은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 없이는 살 수 없어요. 심지어 엡실론 계급들 조차도 말입니다.”
“그래요, 알아요.” 버나드는 조소하듯이 말했다. “심지어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하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레니나는 그의 불경스러움에 충격을 받았다. “버나드!” 그녀는 놀라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항의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다른 어조로 버나드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그는 생각에 잠겨 반복해서 말했다. “아니에요, 진정 문제는 왜 내가 그럴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내가 조건 반사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버나드, 당신은 가장 끔찍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나요, 레니나?”
“나는 당신이 뭘 말하려 하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롭습니다.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유롭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는 웃었다. “맞아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죠.” 우리는 다섯 살 때 어린이들에게 그것을 교육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행복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레니나? 당신 자신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말이죠.“
[출전]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토론하기
(1) 버나드와 레니나의 사이의 대화에서 두 사람 사이의 행복에 대한 이해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 보자.
(2) 버나드처럼 속해 있는 여러 사회 속에서 획일성 때문에 정체성의 문제를 겪은 경험이 있다면 말해 보자.
(3) 멋진 신세계와 같은 사회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다면, 어떤 사회상이 인간의 행복에 더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러 생각들을 나누어보자.
해설읽기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을 통해서 도달한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좋은 곳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문헌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유토피아 문학은 다양한 성격의 유토피아 상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개인보다는 집단 전체의 존속과 행복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다. 가령, 플라톤의 <국가>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개인은 사회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자유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인간을 타고난 등급으로 나누고 자신의 타고난 본성에 따라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플라톤이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인간이란 육체적 본능에 이끌려 살기 쉬운데, 이 본성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성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이상 사회는 바로 이성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이다. 멋진 신세계와 플라톤의 이상 국가 사이에는 엄청난 역사적 간격이 있지만 상당히 유사한 점들이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도 인간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계급화되어 있고, 각 계급에 속한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계급 사이에 우열이 있는 것도 플라톤과 유사하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사회 지도층에서는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공유재산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가족 개념이 사라지고, ‘만인은 만인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는 플라톤의 철학자의 통치 이상을 과학기술로 대체된 사회이다. 이성이 그 능력을 최고로 발현한 과학 기술은 철학자의 이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넘어서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의 행복도 과학 기술로 제공하려고 한다. 바로 약물을 통해서 행복감을 얻게 하는 것이다.
버나드는 멋진 신세계의 주변인이다. 그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주눅이 들어 살고 있었다. 이때 모든 남성에게 인기가 있었던 레니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속 마음을 털어놓는다. 버나드를 행복하게 한 것은 기계적인 사회 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독립적 존재가 된다는 느낌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생각을 레니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레니나는 멋진 신세계의 현 상태에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버나드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삶이 그에게는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