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칸트의 도덕 철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도덕적 원리의 근거를 찾는 데에 있다. 하늘에는 별이 있듯이 마음에는 양심이 있다는 칸트의 유명한 말처럼, 그에게 별처럼 빛나는 양심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인간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성이 부여하는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무감이 도덕적 삶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고전본문
이 세상, 아니 이 세상을 넘어서도 어떠한 조건 없이도 ‘선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오직 선의지뿐이다. 지성, 위트, 판단력과 같은 지적인 능력 그리고 용기, 결단력, 인내심은 분명 많은 점에서 좋은 것이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선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자연이 부여한 이러한 선물들을 사용해야 하는 의지가 선하지 않다면 그것들은 극히 나쁘고 해로운 자질이 될 수도 있다. 행운으로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권세, 재물, 명예, 심지어 건강 그리고 전반적인 안락함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만족감조차도 이것들은 자부심을 넘어 종종 우리를 거만하게 한다. 이것들이 우리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선의지가 바로 잡지 않는다면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고 선한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번성하는 것을 보면 공정하고 합리적인 관찰자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따라서 선한 의지가 없이는 행복해질 가치조차 없다. 이 의지에 도움이 되고 이 의지가 더 용이하게 작동하게 하는 여러 자질들조차도 그 자체로 무조건적인 가치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 그것들을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합당하지만, 그것들이 선의지와 함께한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을 절대적 또는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간주할 수 없다. 감정과 격정의 절제, 자제력, 냉철한 사고는 많은 면에서 선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대인들로부터 무조건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제한 없이,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선한 것들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선의지의 원리가 없다면 그것들은 극히 나쁜 성질이 될 수 있다. 가령, 악한의 침착함은 그가 이 자질이 없는 경우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위험하고 혐오스럽게 된다. 선의지를 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도 아니고, 어떤 의도된 목표를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유용성도 아니다. 오히려 선의지는 그것이 의지하는 방식에 따라서, 즉 의지 자체가 선할 때에 선하다. 그 자체로 고려할 때, 선의지는 특정한 선호, 아니면 모든 선호 전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그 자체로 존중되고 어떤 다른 목적과도 구별되어 선한 의지의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이 의지는 이미 자연의 건전한 지성에 이미 내재해 있고 가르쳐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계발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들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모든 것의 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의무’의 개념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 의무 개념은 특정한 주관적인 한계나 방해물들의 제약을 받아 감추어지거나 알아차릴 수 없게 되는 것보다는 반대로 그것들이 이 개념을 더욱 밝게 비추게 한다. 나는 여기서 이러 저러한 목적을 위해서 유용할지라도 이미 의무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행동은 넘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무로부터 나온 것인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결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무와는 진정 일치하는 행동이지만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어떤 경향성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경향성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의무에 따르는 행동이 의무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나오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의무에 부합하고 동시에 즉각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 구분을 한다는 것은 훨씬 어렵다. 예를 들자면, 가게 주인이 순진한 고객에게 비싸게 물건을 팔지 않는 것은 의무에 부합한다. 그리고 거래가 활발한 곳에서는 현명한 상인이라면 비싸게 팔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정가로 판매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린 아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된다. 이같이 사람들은 정직하게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상인이 의무 그리고 기본적인 정직의 원칙들로부터 이렇게 행동했다고 믿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 상인의 이익이 그런 정직함을 요구했다. 여기서 그의 고객들에게 사랑의 동기에서, 즉 가격 면에서 어떤 다른 이에게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 상인이 손님들에 대한 즉각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고 상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행동은 의무에서도 직접적인 경향성으로부터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다.
[출전] 임마누엘 칸트, 『윤리 형이상학 정초』, 제1절
토론하기
(1) 칸트는 왜 선의지를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2) 내가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가 때로는 다른 목적에 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자.
(3) 칸트는 인간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도덕적 규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칸트의 이런 입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있지 않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선과 악의 구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제시되었다. 과거 종교 사회에서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선이 그 반대가 악이라고 정의될 수 있었다. 종교적으로 선과 악의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인간의 경험적 반응을 통해서 선과 악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것은 선이고, 불쾌감을 주는 것을 악이라고 설명한다. 윗글의 저자 칸트는 바로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칸트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자연 세계의 법칙이 있듯이, 도덕적 세계에서 보편적인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철학자이다. 이 말은 도덕적 판단을 인간의 경험에서 찾아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험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쾌감과 불쾌의 감정은 상황, 사람, 시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어디에서 도덕의 원리를 찾았을까? 그것은 바로 자연이 부여한 이성에 도덕의 원리가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속에서 자랐지만, 앞서 말한 대로 선과 악의 기준을 신이 부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칸트는 그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올려놓는다. 따라서 칸트는 인간이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율적인 이성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칸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내 마음 속에는 도덕 법칙이 있다.” 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별처럼, 마음도 도덕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성은 인간이 도덕적 선을 행하게 할 수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바로 선의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본문을 시작하면서 칸트는 이 세상에서 심지어 이 세상을 바깥에서조차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바로 선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선의지에 따른 행동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칸트는 선과 악을 상대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의 자연적인 자질, 또 우연히 얻게된 능력도 선의지가 없으면 나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나쁜 생각을 품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라. 권력이나 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엇보다 선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칸트는 선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은 바로 의무에 따른 행동이라고 한다. 여기서 의무란 도덕적 법칙에 대한 존경심을 발한다. 가령, 거짓말하지 말하야 한다는 도덕 법칙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그는 선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칸트는 선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선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가 예를 든 대로 상인의 정직함이란 고객에게 신뢰를 얻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런 경루란 의무에 맞는 행동이지만 의무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선의지를 가지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칸트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그의 보편주의적 사고에서 나온다. 보편주의란 보편적인 원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인데, 만일 보편적 원리가 무너진다면 자연과 사회 모두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에서 생겨난 생각이다. 칸트의 선과 악의 구분이 절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워드
경향성, 도덕률, 선, 악, 선의지, 의무
전후맥락
칸트의 도덕 철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도덕적 원리의 근거를 찾는 데에 있다. 하늘에는 별이 있듯이 마음에는 양심이 있다는 칸트의 유명한 말처럼, 그에게 별처럼 빛나는 양심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인간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성이 부여하는 도덕법칙에 대한 존중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의무감이 도덕적 삶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고전본문
이 세상, 아니 이 세상을 넘어서도 어떠한 조건 없이도 ‘선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오직 선의지뿐이다. 지성, 위트, 판단력과 같은 지적인 능력 그리고 용기, 결단력, 인내심은 분명 많은 점에서 좋은 것이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선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자연이 부여한 이러한 선물들을 사용해야 하는 의지가 선하지 않다면 그것들은 극히 나쁘고 해로운 자질이 될 수도 있다. 행운으로 받은 것도 마찬가지다. 권세, 재물, 명예, 심지어 건강 그리고 전반적인 안락함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만족감조차도 이것들은 자부심을 넘어 종종 우리를 거만하게 한다. 이것들이 우리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선의지가 바로 잡지 않는다면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고 선한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끊임없이 번성하는 것을 보면 공정하고 합리적인 관찰자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따라서 선한 의지가 없이는 행복해질 가치조차 없다. 이 의지에 도움이 되고 이 의지가 더 용이하게 작동하게 하는 여러 자질들조차도 그 자체로 무조건적인 가치를 결코 갖고 있지 않다. 그것들을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합당하지만, 그것들이 선의지와 함께한다고 가정할 때에만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을 절대적 또는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간주할 수 없다. 감정과 격정의 절제, 자제력, 냉철한 사고는 많은 면에서 선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대인들로부터 무조건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제한 없이,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선한 것들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선의지의 원리가 없다면 그것들은 극히 나쁜 성질이 될 수 있다. 가령, 악한의 침착함은 그가 이 자질이 없는 경우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위험하고 혐오스럽게 된다. 선의지를 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도 아니고, 어떤 의도된 목표를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유용성도 아니다. 오히려 선의지는 그것이 의지하는 방식에 따라서, 즉 의지 자체가 선할 때에 선하다. 그 자체로 고려할 때, 선의지는 특정한 선호, 아니면 모든 선호 전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한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그 자체로 존중되고 어떤 다른 목적과도 구별되어 선한 의지의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이 의지는 이미 자연의 건전한 지성에 이미 내재해 있고 가르쳐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계발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들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모든 것의 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선 ‘의무’의 개념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 의무 개념은 특정한 주관적인 한계나 방해물들의 제약을 받아 감추어지거나 알아차릴 수 없게 되는 것보다는 반대로 그것들이 이 개념을 더욱 밝게 비추게 한다. 나는 여기서 이러 저러한 목적을 위해서 유용할지라도 이미 의무에 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행동은 넘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무로부터 나온 것인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결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의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무와는 진정 일치하는 행동이지만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어떤 경향성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경향성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의무에 따르는 행동이 의무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나오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이 의무에 부합하고 동시에 즉각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 구분을 한다는 것은 훨씬 어렵다. 예를 들자면, 가게 주인이 순진한 고객에게 비싸게 물건을 팔지 않는 것은 의무에 부합한다. 그리고 거래가 활발한 곳에서는 현명한 상인이라면 비싸게 팔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정가로 판매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린 아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된다. 이같이 사람들은 정직하게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상인이 의무 그리고 기본적인 정직의 원칙들로부터 이렇게 행동했다고 믿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 상인의 이익이 그런 정직함을 요구했다. 여기서 그의 고객들에게 사랑의 동기에서, 즉 가격 면에서 어떤 다른 이에게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해서, 상인이 손님들에 대한 즉각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고 상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 행동은 의무에서도 직접적인 경향성으로부터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다.
[출전] 임마누엘 칸트, 『윤리 형이상학 정초』, 제1절
토론하기
(1) 칸트는 왜 선의지를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2) 내가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가 때로는 다른 목적에 봉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자.
(3) 칸트는 인간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도덕적 규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칸트의 이런 입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있지 않을지 생각해 보자.
해설읽기
선과 악의 구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제시되었다. 과거 종교 사회에서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선이 그 반대가 악이라고 정의될 수 있었다. 종교적으로 선과 악의 문제를 설명하는 방식이 설득력을 잃어가자, 인간의 경험적 반응을 통해서 선과 악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것은 선이고, 불쾌감을 주는 것을 악이라고 설명한다. 윗글의 저자 칸트는 바로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 반대한다. 기본적으로 칸트는 보편적이고 일관된 자연 세계의 법칙이 있듯이, 도덕적 세계에서 보편적인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 철학자이다. 이 말은 도덕적 판단을 인간의 경험에서 찾아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험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쾌감과 불쾌의 감정은 상황, 사람, 시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어디에서 도덕의 원리를 찾았을까? 그것은 바로 자연이 부여한 이성에 도덕의 원리가 있다고 말한다. 칸트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속에서 자랐지만, 앞서 말한 대로 선과 악의 기준을 신이 부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칸트는 그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올려놓는다. 따라서 칸트는 인간이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율적인 이성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칸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내 마음 속에는 도덕 법칙이 있다.” 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별처럼, 마음도 도덕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성은 인간이 도덕적 선을 행하게 할 수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바로 선의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본문을 시작하면서 칸트는 이 세상에서 심지어 이 세상을 바깥에서조차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바로 선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선의지에 따른 행동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칸트는 선과 악을 상대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의 자연적인 자질, 또 우연히 얻게된 능력도 선의지가 없으면 나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가 나쁜 생각을 품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라. 권력이나 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엇보다 선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칸트는 선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은 바로 의무에 따른 행동이라고 한다. 여기서 의무란 도덕적 법칙에 대한 존경심을 발한다. 가령, 거짓말하지 말하야 한다는 도덕 법칙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그는 선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칸트는 선의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선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가 예를 든 대로 상인의 정직함이란 고객에게 신뢰를 얻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런 경루란 의무에 맞는 행동이지만 의무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선의지를 가지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칸트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은 그의 보편주의적 사고에서 나온다. 보편주의란 보편적인 원리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인데, 만일 보편적 원리가 무너진다면 자연과 사회 모두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에서 생겨난 생각이다. 칸트의 선과 악의 구분이 절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키워드
경향성, 도덕률, 선, 악, 선의지,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