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타일러는 인간의 관습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터무니없게 보이는 크고 작은 실천에 주목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어떤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믿음이나 종교적 실천도 그 잊힌 의미를 원래의 맥락 속에서 복원할 때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래의 본문 직전에는 세계 각지의 재채기 관습이 소개됩니다. 타일러는 다양한 민족들에게서 재채기를 하고 나서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이상한 관용어들이 외쳐진다는 데 주목합니다. 가령 줄루족은 재채기가 영들의 임재를 나타낸다고 여기기에, 그들에게는 재채기 후 영들을 찬양하는 말을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부족은 재채기를 하면 그 틈에 악한 영이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기에, “네게서 떨어져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도 재채기 한 후에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외치는 관습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다소 우스꽝스러운 관습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존재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고대의 믿음을 가정할 때, 재채기 후 다양한 외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일러는 도처에 영들이 존재하다가 재채기하는 순간에 침입해올 수 있기에 영들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에 따라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고대의 믿음에 따라 재채기에 관한 관습이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아래 본문은 타일러가 두 번째로 제시하는 토대 희생제의의 사례입니다. 재채기처럼 가볍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례에 비해, 토대 희생제의의 사례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며 인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전본문
이처럼 교회나 벽이나 다리의 토대가 견고해지려면 인간의 피나 유폐될 희생자가 필요하다는 관념이 유럽 민간전승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는데, 뿐만 아니라 지역 연대기나 구전은 그러한 일들이 지역마다 일종의 역사적 사실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가령 1463년에 노가트의 무너진 댐을 보수해야 했을 때, 농부들은 산사람을 집어던지라는 충고를 듣고서 어떤 거지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서 그곳에 가라앉혀버렸다고 한다. 튀링겐의 전설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람들은 리벤슈타인 성을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미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사왔고, 성벽을 만들 때 그 속에 아이를 집어넣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석공들이 일할 동안 아이는 케이크를 먹고 있다가 외쳤다. “엄마, 난 엄마가 아직 보여요.” 좀 있다가 아이는 소리쳤다. “엄마, 난 엄마가 아직 조금 보여요.” 석공들이 마지막 돌을 쌓아올렸을 때 아이는 울부짖었다. “엄마, 이제는 엄마를 전혀 볼 수 없어요.” 전설에 따르면, 코펜하겐의 성벽은 세워지는 것만큼 빠르게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고한 어린 소녀를 데려와서 장난감과 먹거리들이 놓인 탁자 앞의 의자에 아이를 앉혔다. 소녀가 놀이를 하고 먹고 있을 동안, 열두 명의 숙련된 석공들이 그녀 위로 둥근 천장을 덮어버렸다. 그러고 나자 쨍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그 벽이 세워졌고, 이후로는 쭉 견고하게 서 있었다. 이탈리아의 전설에 따르면, 아르타의 다리는 사람들이 숙련된 건축가의 아내를 벽속에 집어넣고 담을 치기 전까지는 자꾸만 무너져 내렸는데, 그녀는 죽어가면서 그 다리가 앞으로 꽃자루처럼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고 한다. 데티네즈(Detinez)를 세운 슬라브 족장들은 오래된 이교도식 관습에 따라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친 소년을 잡아오게 해서, 그를 토대 속에 매장시켰다. 세르비아의 전설에는 세 형제가 스카드라(스쿠타리)의 요새를 세우려고 뭉쳤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해마다 낮에 삼백 명의 석공이 세워놓은 것들을 밤에 악령(빌라)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악마를 달래려면 인간 희생물을 바쳐야 했고, 세 형제는 일꾼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러 온 세 아내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는 이를 희생시키기로 했다. 세 형제는 모두 각자의 아내에게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렇지만 두 형은 이를 배반하고 각자의 아내에게 이를 경고했고, 막내의 아내만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건축물 속에 붙박이로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어서 열두 달 동안 아기를 데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오늘날에도 세르비아의 부인들은 그 훌륭한 어머니의 무덤을 방문하는데, 그곳은 아직까지 석회 때문에 희뿌연 물이 요새 벽 아래로 흘러나와서 표시된다. 최근의 사례로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피로 주춧돌이 적셔지기 전에는 탑을 완성할 수 없었던 보티건에 관한 우리 영국의 전설이 있다. 우리는 희생제의의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그러한 희생자의 대체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텅 빈 관을 벽 안에 넣었고, 덴마크에서는 교회가 견고히 서있도록 제단 아래 벽 속에 양을 넣었으며, 교회 경내에서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가장 먼저 말을 산 채로 매장함으로써 마수걸이를 했다. 현대 그리스에서는 그러한 관념을 보여주는 눈에 띄는 잔재가 다음의 미신에서 살아남아 있다. 곧 주춧돌이 놓인 뒤 가장 먼저 지나가는 사람은 그 해에 죽게 될 것이기에, 석공들은 그 빚을 절충하기 위해 양이나 검은 수탉을 주춧돌 위에 놓고 죽인다는 것이다. 독일 전설에서도 매우 비슷한 발상이 나타나는데, 곧 수탉이 가장 먼저 건너가게끔 고안된 장치 때문에 미리 약속된 수수료인 영혼을 받지 못한 다리 건설의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독일 민간전승에 따르면, 새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양이나 개가 먼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관념이 자주 되풀이되는 다양한 신화적 주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마땅히 참작하더라도, 기록된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은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을 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 오래 살아남은 피에 굶주린 미개 의식(儀式)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지금 우리가 다소 덜 문화화된 나라들을 살펴본다면, 오늘날에도 희생자를 바쳐서 땅의 영들을 달래기 위해서든 아니면 희생자 자신의 영혼을 수호 귀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든, 그 의식이 뚜렷한 종교적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가 제시한 사례에서, 어른들은 왜 어린아이를 산 채로 벽 속에 유폐했나요?
(2) 주위에서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이를 묵인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 또는 그러한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자신이 희생양이 된 적이 있나요? 그때 사람들은 어떤 명분을 내세웠고, 희생양이 된 사람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요? 튀빙겐의 사례에 비추어 답해 봅시다.
(3) 어떤 집단이 구성원들의 안위를 위해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는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띕니다. 그러한 일이 왜 문제가 되는지 튀링겐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자기 생각을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위의 본문은 타일러가 문화의 잔존물을 설명하는 장에 실려 있습니다. 타일러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끔찍하게 느껴지는 전설과 민담 속 이야기들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열거합니다. 가령 스코틀랜드에서는 픽트족이 건축물의 주춧돌을 인간의 피로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중 하나인 성 콜룸바는 심지어 수도원의 토대 밑에 성 오란을 산 채로 매장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뿐만 아닙니다. 새로 다리를 세우거나 건물을 지을 때, 인간의 피가 필요하다는 관념이 유럽의 민간전승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왜 그런 끔찍한 이야기가 유럽 도처에서 끈질기게 나타났을까요?
본문에 실린 튀링겐의 전설을 읽어보면 눈앞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 그림이 너무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성을 짓습니다. 그 성이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짓고 싶어 합니다. 성을 튼튼하게 지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초 공사를 꼼꼼하게 하고, 좋은 재료를 써서 벽을 세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미에게 돈을 주고 어린 아이를 사온 것이지요. 사람들은 성벽을 만들 때 그 속에 아이를 집어넣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얌전히 있으라고 케이크를 줬나 봅니다. 아이가 앉아서 케이크를 먹을 동안 석공들은 벽을 쌓아올립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팔아넘겼고, 자신은 영원이 벽 속에 유폐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에게 외칩니다. 엄마가 아직 보인다고. 그런데 점점 더 벽이 높아집니다. 아이는 엄마가 아직 조금 보여요! 하고 외치다가 마침내 울부짖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전혀 볼 수 없어요.” 자신을 팔아넘긴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튀링겐에서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코펜하겐의 전설에서도 어린 소녀에게 장난감과 간식을 주고 아이가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석공들이 벽으로 덮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지 유럽에서만 그러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일러는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아시아에서도 그러한 끔찍한 의식들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런 끔찍한 전설들의 바탕에는 어떤 관념이 깔려 있을까요?
타일러는 성벽이나 다리 등을 지을 때 희생자를 바쳐서 땅의 영들을 달래거나 혹은 희생자 자신의 영혼을 수호 귀신으로 바꾸려는, 그리하여 성벽이나 다리 등을 견고하게 만들려는 의식들을 토대 희생제의로 일컫습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러한 전설이나 관습의 바탕에는 인간의 피를 요구하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타일러는 아이들의 게임이나 잘 알려진 속담과 수수께끼들, 우스꽝스러운 혹은 끔찍한 전설과 관습들을 사소한 것 또는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러한 것들은 철학적으로 유의미합니다. 인류의 초기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키워드
토템 희생제의, 희생양, 수호 귀신
전후맥락
타일러는 인간의 관습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터무니없게 보이는 크고 작은 실천에 주목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어떤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믿음이나 종교적 실천도 그 잊힌 의미를 원래의 맥락 속에서 복원할 때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래의 본문 직전에는 세계 각지의 재채기 관습이 소개됩니다. 타일러는 다양한 민족들에게서 재채기를 하고 나서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이상한 관용어들이 외쳐진다는 데 주목합니다. 가령 줄루족은 재채기가 영들의 임재를 나타낸다고 여기기에, 그들에게는 재채기 후 영들을 찬양하는 말을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부족은 재채기를 하면 그 틈에 악한 영이 재채기를 한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기에, “네게서 떨어져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도 재채기 한 후에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외치는 관습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다소 우스꽝스러운 관습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존재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고대의 믿음을 가정할 때, 재채기 후 다양한 외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일러는 도처에 영들이 존재하다가 재채기하는 순간에 침입해올 수 있기에 영들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에 따라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고대의 믿음에 따라 재채기에 관한 관습이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아래 본문은 타일러가 두 번째로 제시하는 토대 희생제의의 사례입니다. 재채기처럼 가볍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사례에 비해, 토대 희생제의의 사례들은 잔인하고 끔찍하며 인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전본문
이처럼 교회나 벽이나 다리의 토대가 견고해지려면 인간의 피나 유폐될 희생자가 필요하다는 관념이 유럽 민간전승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는데, 뿐만 아니라 지역 연대기나 구전은 그러한 일들이 지역마다 일종의 역사적 사실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가령 1463년에 노가트의 무너진 댐을 보수해야 했을 때, 농부들은 산사람을 집어던지라는 충고를 듣고서 어떤 거지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서 그곳에 가라앉혀버렸다고 한다. 튀링겐의 전설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람들은 리벤슈타인 성을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미에게 돈을 주고 아이를 사왔고, 성벽을 만들 때 그 속에 아이를 집어넣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데, 석공들이 일할 동안 아이는 케이크를 먹고 있다가 외쳤다. “엄마, 난 엄마가 아직 보여요.” 좀 있다가 아이는 소리쳤다. “엄마, 난 엄마가 아직 조금 보여요.” 석공들이 마지막 돌을 쌓아올렸을 때 아이는 울부짖었다. “엄마, 이제는 엄마를 전혀 볼 수 없어요.” 전설에 따르면, 코펜하겐의 성벽은 세워지는 것만큼 빠르게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고한 어린 소녀를 데려와서 장난감과 먹거리들이 놓인 탁자 앞의 의자에 아이를 앉혔다. 소녀가 놀이를 하고 먹고 있을 동안, 열두 명의 숙련된 석공들이 그녀 위로 둥근 천장을 덮어버렸다. 그러고 나자 쨍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그 벽이 세워졌고, 이후로는 쭉 견고하게 서 있었다. 이탈리아의 전설에 따르면, 아르타의 다리는 사람들이 숙련된 건축가의 아내를 벽속에 집어넣고 담을 치기 전까지는 자꾸만 무너져 내렸는데, 그녀는 죽어가면서 그 다리가 앞으로 꽃자루처럼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고 한다. 데티네즈(Detinez)를 세운 슬라브 족장들은 오래된 이교도식 관습에 따라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친 소년을 잡아오게 해서, 그를 토대 속에 매장시켰다. 세르비아의 전설에는 세 형제가 스카드라(스쿠타리)의 요새를 세우려고 뭉쳤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해마다 낮에 삼백 명의 석공이 세워놓은 것들을 밤에 악령(빌라)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악마를 달래려면 인간 희생물을 바쳐야 했고, 세 형제는 일꾼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러 온 세 아내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는 이를 희생시키기로 했다. 세 형제는 모두 각자의 아내에게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렇지만 두 형은 이를 배반하고 각자의 아내에게 이를 경고했고, 막내의 아내만 아무런 의심 없이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건축물 속에 붙박이로 집어넣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도록 구멍을 만들어서 열두 달 동안 아기를 데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오늘날에도 세르비아의 부인들은 그 훌륭한 어머니의 무덤을 방문하는데, 그곳은 아직까지 석회 때문에 희뿌연 물이 요새 벽 아래로 흘러나와서 표시된다. 최근의 사례로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피로 주춧돌이 적셔지기 전에는 탑을 완성할 수 없었던 보티건에 관한 우리 영국의 전설이 있다. 우리는 희생제의의 역사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그러한 희생자의 대체물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텅 빈 관을 벽 안에 넣었고, 덴마크에서는 교회가 견고히 서있도록 제단 아래 벽 속에 양을 넣었으며, 교회 경내에서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가장 먼저 말을 산 채로 매장함으로써 마수걸이를 했다. 현대 그리스에서는 그러한 관념을 보여주는 눈에 띄는 잔재가 다음의 미신에서 살아남아 있다. 곧 주춧돌이 놓인 뒤 가장 먼저 지나가는 사람은 그 해에 죽게 될 것이기에, 석공들은 그 빚을 절충하기 위해 양이나 검은 수탉을 주춧돌 위에 놓고 죽인다는 것이다. 독일 전설에서도 매우 비슷한 발상이 나타나는데, 곧 수탉이 가장 먼저 건너가게끔 고안된 장치 때문에 미리 약속된 수수료인 영혼을 받지 못한 다리 건설의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독일 민간전승에 따르면, 새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양이나 개가 먼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관념이 자주 되풀이되는 다양한 신화적 주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마땅히 참작하더라도, 기록된 전통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은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을 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 오래 살아남은 피에 굶주린 미개 의식(儀式)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지금 우리가 다소 덜 문화화된 나라들을 살펴본다면, 오늘날에도 희생자를 바쳐서 땅의 영들을 달래기 위해서든 아니면 희생자 자신의 영혼을 수호 귀신으로 바꾸기 위해서든, 그 의식이 뚜렷한 종교적 목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가 제시한 사례에서, 어른들은 왜 어린아이를 산 채로 벽 속에 유폐했나요?
(2) 주위에서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이를 묵인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 또는 그러한 분위기에 동조하거나 자신이 희생양이 된 적이 있나요? 그때 사람들은 어떤 명분을 내세웠고, 희생양이 된 사람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요? 튀빙겐의 사례에 비추어 답해 봅시다.
(3) 어떤 집단이 구성원들의 안위를 위해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는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띕니다. 그러한 일이 왜 문제가 되는지 튀링겐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자기 생각을 말해 봅시다.
해설읽기
위의 본문은 타일러가 문화의 잔존물을 설명하는 장에 실려 있습니다. 타일러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끔찍하게 느껴지는 전설과 민담 속 이야기들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열거합니다. 가령 스코틀랜드에서는 픽트족이 건축물의 주춧돌을 인간의 피로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중 하나인 성 콜룸바는 심지어 수도원의 토대 밑에 성 오란을 산 채로 매장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뿐만 아닙니다. 새로 다리를 세우거나 건물을 지을 때, 인간의 피가 필요하다는 관념이 유럽의 민간전승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왜 그런 끔찍한 이야기가 유럽 도처에서 끈질기게 나타났을까요?
본문에 실린 튀링겐의 전설을 읽어보면 눈앞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 그림이 너무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성을 짓습니다. 그 성이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짓고 싶어 합니다. 성을 튼튼하게 지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초 공사를 꼼꼼하게 하고, 좋은 재료를 써서 벽을 세우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우리가 보기에는 엉뚱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미에게 돈을 주고 어린 아이를 사온 것이지요. 사람들은 성벽을 만들 때 그 속에 아이를 집어넣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얌전히 있으라고 케이크를 줬나 봅니다. 아이가 앉아서 케이크를 먹을 동안 석공들은 벽을 쌓아올립니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팔아넘겼고, 자신은 영원이 벽 속에 유폐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에게 외칩니다. 엄마가 아직 보인다고. 그런데 점점 더 벽이 높아집니다. 아이는 엄마가 아직 조금 보여요! 하고 외치다가 마침내 울부짖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전혀 볼 수 없어요.” 자신을 팔아넘긴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튀링겐에서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코펜하겐의 전설에서도 어린 소녀에게 장난감과 간식을 주고 아이가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석공들이 벽으로 덮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단지 유럽에서만 그러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타일러는 아프리카, 폴리네시아, 아시아에서도 그러한 끔찍한 의식들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런 끔찍한 전설들의 바탕에는 어떤 관념이 깔려 있을까요?
타일러는 성벽이나 다리 등을 지을 때 희생자를 바쳐서 땅의 영들을 달래거나 혹은 희생자 자신의 영혼을 수호 귀신으로 바꾸려는, 그리하여 성벽이나 다리 등을 견고하게 만들려는 의식들을 토대 희생제의로 일컫습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러한 전설이나 관습의 바탕에는 인간의 피를 요구하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타일러는 아이들의 게임이나 잘 알려진 속담과 수수께끼들, 우스꽝스러운 혹은 끔찍한 전설과 관습들을 사소한 것 또는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러한 것들은 철학적으로 유의미합니다. 인류의 초기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키워드
토템 희생제의, 희생양, 수호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