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루소의『에밀』제4권은 에밀에게 도덕성과 종교성을 교육시키는 장이다. 이 장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사보아 보좌신부의 고백’인데, 루소는 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자연주의적 종교론을 기술하고 있다. 자연주의적 종교론은 자연 속에 드러난 신적 섭리를 느끼고 그 느낌을 종교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에밀은 자연 속에 드러난 신성에 대한 감각을 계발하면서 종교적 성숙한 존재가 되어 간다.
고전본문
모든 것이 평온한 곳에서는,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와 선함은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선함은 모든 지각이 있는 존재의 무한정한 힘과 자기 사랑이 초래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전능한 존재는 그의 피조물의 존재 안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다. 창조와 보존은 힘의 영원한 과업업이다. 전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은 죽은 자의 신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해를 입히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전능한 존재는 선한 것만을 의지한다.(주-고대인들이 최고의 신을 ‘최대의 선’이라고 할 때 옳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최고로 선한 힘’이라고 말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선함은 그의 능력으로부터 나오고, 그는 위대하기 때문에 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로 선한 자는, 그가 최고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로 정의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질서를 만드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선이라고 부르고, 질서를 보존하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른다.
-루소『에밀』제4권 중에서
토론하기
(1) 위에서 전능한 존재의 성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2) 루소는 정의와 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3) 정의와 선에 대한 루소의 관점에 대해서 비판해 보자.
해설읽기
루소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연 안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에게 발생하는 악은, 인간의 개인적인 문제이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루소가 바라본 우주는 질서정연한 체계이다. 인간이 고통의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연을 그 감정을 주지 않았다. 자연의 질서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선함은 곧 정의로움이다. 루소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이 타락 상태에 있기 때문에, 신의 구원으로 회복이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루소가 결별했음을 의미한다. 루소는 소위, 그리스도교의 원죄를 믿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자유의지의 남용이 전체 세계의 질서를 교란시킬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능한 존재는 선을 열망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 세계를 창조하고 보존하려고 한다. 그 신의 힘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 미친다. 그 신은 선한 일만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루소는 질서를 낳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선이라고 부르고, 질서를 보존하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정의라고 부른다. 질서를 창조한 것도 신이고, 질서를 보존하는 것도 신이다. 왜냐하면 신은 질서만 만들어놓고, 세계에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질서를 계속 보존하고 싶어하는 이 신적 존재의 의지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다.
키워드
사랑, 악, 자연, 정의, 전능한 존재
전후맥락
루소의『에밀』제4권은 에밀에게 도덕성과 종교성을 교육시키는 장이다. 이 장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사보아 보좌신부의 고백’인데, 루소는 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자연주의적 종교론을 기술하고 있다. 자연주의적 종교론은 자연 속에 드러난 신적 섭리를 느끼고 그 느낌을 종교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에밀은 자연 속에 드러난 신성에 대한 감각을 계발하면서 종교적 성숙한 존재가 되어 간다.
고전본문
모든 것이 평온한 곳에서는,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와 선함은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선함은 모든 지각이 있는 존재의 무한정한 힘과 자기 사랑이 초래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전능한 존재는 그의 피조물의 존재 안으로 자신을 던져 넣는다. 창조와 보존은 힘의 영원한 과업업이다. 전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은 죽은 자의 신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해를 입히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전능한 존재는 선한 것만을 의지한다.(주-고대인들이 최고의 신을 ‘최대의 선’이라고 할 때 옳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최고로 선한 힘’이라고 말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선함은 그의 능력으로부터 나오고, 그는 위대하기 때문에 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로 선한 자는, 그가 최고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로 정의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질서를 만드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선이라고 부르고, 질서를 보존하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른다.
-루소『에밀』제4권 중에서
토론하기
(1) 위에서 전능한 존재의 성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2) 루소는 정의와 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3) 정의와 선에 대한 루소의 관점에 대해서 비판해 보자.
해설읽기
루소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연 안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에게 발생하는 악은, 인간의 개인적인 문제이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루소가 바라본 우주는 질서정연한 체계이다. 인간이 고통의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은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지 자연을 그 감정을 주지 않았다. 자연의 질서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부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선함은 곧 정의로움이다. 루소는 기본적으로 자연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이 타락 상태에 있기 때문에, 신의 구원으로 회복이 필요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루소가 결별했음을 의미한다. 루소는 소위, 그리스도교의 원죄를 믿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서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자유의지의 남용이 전체 세계의 질서를 교란시킬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능한 존재는 선을 열망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 세계를 창조하고 보존하려고 한다. 그 신의 힘은 살아 있는 존재에게 미친다. 그 신은 선한 일만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악을 행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루소는 질서를 낳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선이라고 부르고, 질서를 보존하는 질서에 대한 사랑을 정의라고 부른다. 질서를 창조한 것도 신이고, 질서를 보존하는 것도 신이다. 왜냐하면 신은 질서만 만들어놓고, 세계에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질서를 계속 보존하고 싶어하는 이 신적 존재의 의지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다.
키워드
사랑, 악, 자연, 정의, 전능한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