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에밀은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를 지나 열 다섯 살에서부터 20살의 기간인 청년기에 이른다. 유아기에서는 신체의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여러 감각이 발달되는 단계이다. 아동기에는 책보다는 자연에서 직접적으로 배움을 얻어야 하는 단계이다. 소년기에는 지성이 발달하는 시기로 비로소 독서를 통해 배우는 시기이다. 아래 본문은 청년기에 속하는 본문으로 에밀은 이제 사회성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도덕성과 종교심을 키워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지나면 결혼과 사랑을 통하여 감정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단계이다.
고전본문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는 힘은 자유로운 피조물의 의지에 있다. 우리는 그 이상 더 나갈 수 없다. 의미가 없는 것은 자유라는 말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말이다. 적극적인 동기가 되는 행동의 결과가 아닌 어떤 행동은 사실 원인 없는 결과들을 가정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사고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원초적인 충동이 없거나, 아니면 모든 원초적인 충동은 어떠한 사진의 원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소유 자유가 없는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가 있고, 그 자체로 그는 비물질적인 실체에 의해서 움직인다.(중략) 인간이 능동적인면서 동시에 자유롭다면, 그는 그 자신의 동의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신적 섭리에 의해서 새겨진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섭리 탓으로 돌리수 없다. 섭리는 악을 의지하지 않는다. 이 악은 인간이 그에게 부여된 자유를 남용할 때 인간이 행한 것이다. 섭리는 그것을 하도록 막지 않고, 또한 매우 약한 피조물에 의해서 행해진 잘못은 신의 시각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거나, 그것을 막음으로써 더 큰 악을 촉발시키거나 그의 본성을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섭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어, 선을 선택하거나 악을 거부하게 했다. 섭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에게 부여된 능력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그 자신이 선택을 하게 했다. 하지만 섭리는 엄격하게 인간의 자유를 제한해서 그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 전체 질서를 혼란시키수 없게 했다. 인간이 행하는 악은 세계의 체계에 영향을 미치지지 않고 그 자신에게만 영향을 준다.
[출전] 루소,『에밀』 제4권
토론하기
(1) 루소에게 있어 자유와 악의 관계를 설명해 보자.
(2) 루소는 왜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허용했다고 생각했을까?
(3) 악의 문제를 의지의 문제로 설명하는 루소의 관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자유(自由)라는 말은 자기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루소가 의지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에게 악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와 불가분 관련을 맺고 있다. 악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의 선택의 결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루소가 물려받은 그리스도교적 관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 앞에서 인간이 악을 선택함으로써 이 세상에 악이 들어왔고, 그것은 인간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영향을 크게 받았던 마니교라는 페르시아 종교에서는 세상을 악이라는 실체와 선이라는 실체가 우주적인 대립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원론적 종교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자리가 없다. 인간은 선에 속하거나 악에 속하거나 두 가능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소에게 의미가 없는 단어는 자유가 아니라 필연, 즉 ‘반드시 그러함’이라는 말이다. 루소가 말하듯이 자유가 없는 의지는 진정한 의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않았다면, 자신의 뜻이 발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소에 따르면 신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남용하기를 바라지 않지만, 신은 인간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신은 악을 행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일까? 루소 자신도 두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첫째, 신에게는 인간이 저지른 악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둘째, 악을 막으려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악을 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수 있다. 루소가 보기에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인간 스스로 악을 극복하고 선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설령 인간이 악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그 악이란 신의 정해 놓은 전체 체계를 흔들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악을 허용한다. 그렇게 보면 루소의 신은 인간이 스스로 악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선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해할 수 있다.
키워드
선, 섭리,악, 자유
전후맥락
에밀은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를 지나 열 다섯 살에서부터 20살의 기간인 청년기에 이른다. 유아기에서는 신체의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여러 감각이 발달되는 단계이다. 아동기에는 책보다는 자연에서 직접적으로 배움을 얻어야 하는 단계이다. 소년기에는 지성이 발달하는 시기로 비로소 독서를 통해 배우는 시기이다. 아래 본문은 청년기에 속하는 본문으로 에밀은 이제 사회성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도덕성과 종교심을 키워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지나면 결혼과 사랑을 통하여 감정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단계이다.
고전본문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는 힘은 자유로운 피조물의 의지에 있다. 우리는 그 이상 더 나갈 수 없다. 의미가 없는 것은 자유라는 말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말이다. 적극적인 동기가 되는 행동의 결과가 아닌 어떤 행동은 사실 원인 없는 결과들을 가정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사고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원초적인 충동이 없거나, 아니면 모든 원초적인 충동은 어떠한 사진의 원인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소유 자유가 없는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가 있고, 그 자체로 그는 비물질적인 실체에 의해서 움직인다.(중략) 인간이 능동적인면서 동시에 자유롭다면, 그는 그 자신의 동의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가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신적 섭리에 의해서 새겨진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섭리 탓으로 돌리수 없다. 섭리는 악을 의지하지 않는다. 이 악은 인간이 그에게 부여된 자유를 남용할 때 인간이 행한 것이다. 섭리는 그것을 하도록 막지 않고, 또한 매우 약한 피조물에 의해서 행해진 잘못은 신의 시각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거나, 그것을 막음으로써 더 큰 악을 촉발시키거나 그의 본성을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섭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어, 선을 선택하거나 악을 거부하게 했다. 섭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에게 부여된 능력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그 자신이 선택을 하게 했다. 하지만 섭리는 엄격하게 인간의 자유를 제한해서 그의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 전체 질서를 혼란시키수 없게 했다. 인간이 행하는 악은 세계의 체계에 영향을 미치지지 않고 그 자신에게만 영향을 준다.
[출전] 루소,『에밀』 제4권
토론하기
(1) 루소에게 있어 자유와 악의 관계를 설명해 보자.
(2) 루소는 왜 신이 인간에게 자유를 허용했다고 생각했을까?
(3) 악의 문제를 의지의 문제로 설명하는 루소의 관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
해설읽기
자유(自由)라는 말은 자기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루소가 의지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소에게 악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와 불가분 관련을 맺고 있다. 악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의 선택의 결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루소가 물려받은 그리스도교적 관점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 앞에서 인간이 악을 선택함으로써 이 세상에 악이 들어왔고, 그것은 인간의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젊은 시절 영향을 크게 받았던 마니교라는 페르시아 종교에서는 세상을 악이라는 실체와 선이라는 실체가 우주적인 대립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원론적 종교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자리가 없다. 인간은 선에 속하거나 악에 속하거나 두 가능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소에게 의미가 없는 단어는 자유가 아니라 필연, 즉 ‘반드시 그러함’이라는 말이다. 루소가 말하듯이 자유가 없는 의지는 진정한 의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않았다면, 자신의 뜻이 발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소에 따르면 신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남용하기를 바라지 않지만, 신은 인간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신은 악을 행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일까? 루소 자신도 두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첫째, 신에게는 인간이 저지른 악이 하찮게 보일 수도 있고, 둘째, 악을 막으려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악을 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수 있다. 루소가 보기에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인간 스스로 악을 극복하고 선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신다. 하지만 설령 인간이 악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그 악이란 신의 정해 놓은 전체 체계를 흔들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악을 허용한다. 그렇게 보면 루소의 신은 인간이 스스로 악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선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해할 수 있다.
키워드
선, 섭리,악,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