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오늘날 생태계는 나날이 파괴되고 종들이 절멸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풍요가 흘러넘치지만 여전히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는 기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아르네 네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며 대답을 모색해보려 한다. 네스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그러나 위트를 잃지 않고서 이러한 물음을 묻고 또 대답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네스가 선택한 핵심어는 ‘느낌’과 감정이다. 네스는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도 ‘느낌’과 감정의 힘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네스는 마음 없는 지성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면서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현실에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생명의 본질적 가치, 모든 존재의 연결됨 등에 관한 직관과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네스의 심층생태학에는 흔히 ‘반이성적’, ‘반합리주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왔고, 그의 논의는 근대 서구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감정적 반작용이며 신비주의에 가깝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네스의 논의는 반(反)이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확장된 통합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다. 네스는 스피노자의 ratio 개념을 가져와서, 좀 더 조화로운, 감정 혹은 느낌과 통합된 이성을 제안한다. 스피노자의 ratio는 보통 ‘이성’이라고 관습적으로 번역되어 왔지만, 17세기 철학자가 ratio라고 불렀던 것은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 개념과 매우 다르다.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 개념은 몸에서 분리되고 맥락에서 분리된,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리의 느낌과 감정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상상되어 왔지만, 스피노자의 ratio는 “우리의 능동적 감정을 키우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종의 내적 나침반이다. 스피노자를 참조해서, 네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성의 재신체화(再體現, reembodiment)를 요청한다. 즉 정신과 신체, 사실과 가치, 자연과 문화의 잘못된 이분법을 극복하는, 느낌과 감정을 아우르는 이성을 다시금 발견하고 거기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고전본문
내가 추상적 사고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얻은 명성은, 만약 내가 그 대신 성숙하고 고귀한 감정생활을 발달시키기 위해 헌신했다면 얻게 되었을 명성보다 의심할 여지없이 눈에 띄게 더 크다. 후자의 경우라면, 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되었을 것이다. “네스를 아세요? 성숙하고 고귀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추상적 주제에 발을 디딤으로써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나는 내 일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해 겸손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결코 삶이 어렵다거나 내가 부적합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 까닭은 대체로 내 삶의 출발점이 엄청나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사랑했고, 나도 사랑받았다. 나는 늘 나 자신에 대해 확고한, 그렇지만 과장되지 않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적어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희미하지만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더 유능한 사람들이나 훨씬 더 훌륭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적대자들이 내뱉은 상처를 주는 말들은 어떠한 흉터도 남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는 운 좋은 놈이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부심과 자존감은 기반으로 삼을만한 견고한 토대이다. [...]
어떤 아이들은 환상적이고 거대한 것들에 대해 강렬한 느낌을 키운다. 나는 모든 교육에서 경이가 좀 더 강조되고 “확실한” 것이 좀 더 배경으로 물러나기를 원한다. 거대한 숫자들, 거대한 물결, 거대한 시간 간격, 별들 사이의 거대한 거리, 그리고 위대한 목표와 일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이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찾도록, 위대함에 대한 느낌과 더불어 조그마한 것에 대한 느낌을, 조그마한 즐거움을, 물 위의 잔물결들을 찾도록 고무해야 한다.
나는, 어른이 삶에 대해 어린애 같은, 상상에 의한 경이감을 계속 간직하는 것이 이롭다고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좀 더 진지하게 믿는다. 아이들은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선에 대해 덜 규정되고 더 어렴풋한 태도를 갖고 있다. 만약 부모가 상상 속에서 경탄하는 데 참여한다면, 그들의 자녀의 상상력은 학창시절을 견디고 더 잘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들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상상이 마구 뻗어나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성숙의 과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조건이 내가 “삶의 예술가들”-독일어 단어를 사용하면 lebenskünstler, 삶의 예술에 능숙한 자, 쾌활한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자-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유머와 놀이가 없이는 거대한 전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불꽃을 잃어버리기 쉽다. 절망적이고 심각한 문제들에 깊이 연루된 혹은 연루되었던 어떤 사람들, 가령 달라이 라마나 간디 같은 사람들이 항상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웃음 없이는 거의 그들의 과업을 계속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감정과 철학에 대해 되돌아봄으로써,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이성으로 불려왔던 것이 아니라 느낌에 집중해서- 삶 속에서 그들의 기회들에 대해 창조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들은 학문적 철학에서 매우 적게 논의되는데, 그 점은 놀라우면서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 강의실에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거의 고마움을 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좋든 나쁘든 감정이 크고 작은 갈등에서 담당하는 특정한 역할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하지만, 일반적인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철학의 맥락 속에서 감정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드물다. 나는 사람들에게 느낌의 발달과 성숙은 지식의 발달과 성숙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하며, 그것들이 학교와 대학에서 촉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출전] 아르네 네스,『삶의 철학-더 깊은 세계에서의 이성과 느낌』
토론하기
(1) 네스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를테면 오늘날의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하기 위한 불꽃, 혹은 동력으로서 무엇에 주목하나요?
(2) 머리로 이해한 것보다 어떤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중요한 결정을 하고 행동에 나섰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3) 중고등학교에서, 나아가 대학 강의실에서 저마다의 감정과 느낌을 되돌아보고 감정의 역할에 대해 정기적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해설읽기
네스는 젊은 나이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철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했고 철학자로서 명성을 누렸습니다. 네스는 자신의 명성이 성숙하고 고귀한 감정보다는 추상적 사고에 헌신함으로써 부여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스는 우리가 생태파괴적 문화에서 돌이켜서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느낌’의 힘에 대해 희망적이고 대담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낌과 감정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의 본문은 “놀기 좋아하는 인간과 놀고 있는 인간”이라는 소제목 아래 실려 있습니다. 재미있는 제목이지요? 네스는 감정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만든다는 데 주목합니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확실한’ 것들보다 경이가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거대한 것, 위대한 목표도 중요하지만,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찾는 일, 조그마한 것에 대한 느낌, 조그마한 즐거움을, 물 위의 잔물결을 찾는 일도 중요하며, 아이들을 교육할 때 후자를 고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상상에 의한 경이감을 유지하고 고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삶의 예술, 곧 유머와 놀이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달라이 라마나 간디 같은 사람들이 항상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구절은 유쾌합니다. 이들이 크고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동력은, 네스에 따르면, 웃음입니다. 웃음, 놀이 같은 것들은 상상, 경이 등과 함께 네스에게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 절의 제목에 ‘놀기 좋아하는 인간과 놀이하는 인간’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네스는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느낌에 집중해서 삶의 기회들을 되돌아보도록 권합니다. 네스에 따르면,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철학의 맥락에서 감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의는 드뭅니다. 네스는 지식의 발달과 성숙만큼이나 감정과 느낌의 발달과 성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합니다.
키워드
유머, 놀이, 느낌, 감정 경이
전후맥락
오늘날 생태계는 나날이 파괴되고 종들이 절멸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풍요가 흘러넘치지만 여전히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는 기쁘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노르웨이의 철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아르네 네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며 대답을 모색해보려 한다. 네스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그러나 위트를 잃지 않고서 이러한 물음을 묻고 또 대답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네스가 선택한 핵심어는 ‘느낌’과 감정이다. 네스는 우리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도 ‘느낌’과 감정의 힘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네스는 마음 없는 지성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면서 이성과 감정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현실에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정의 조화와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생명의 본질적 가치, 모든 존재의 연결됨 등에 관한 직관과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네스의 심층생태학에는 흔히 ‘반이성적’, ‘반합리주의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왔고, 그의 논의는 근대 서구사회의 합리성에 대한 감정적 반작용이며 신비주의에 가깝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네스의 논의는 반(反)이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확장된 통합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다. 네스는 스피노자의 ratio 개념을 가져와서, 좀 더 조화로운, 감정 혹은 느낌과 통합된 이성을 제안한다. 스피노자의 ratio는 보통 ‘이성’이라고 관습적으로 번역되어 왔지만, 17세기 철학자가 ratio라고 불렀던 것은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 개념과 매우 다르다.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 개념은 몸에서 분리되고 맥락에서 분리된, 그리고 본질적으로 우리의 느낌과 감정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상상되어 왔지만, 스피노자의 ratio는 “우리의 능동적 감정을 키우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종의 내적 나침반이다. 스피노자를 참조해서, 네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성의 재신체화(再體現, reembodiment)를 요청한다. 즉 정신과 신체, 사실과 가치, 자연과 문화의 잘못된 이분법을 극복하는, 느낌과 감정을 아우르는 이성을 다시금 발견하고 거기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고전본문
내가 추상적 사고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얻은 명성은, 만약 내가 그 대신 성숙하고 고귀한 감정생활을 발달시키기 위해 헌신했다면 얻게 되었을 명성보다 의심할 여지없이 눈에 띄게 더 크다. 후자의 경우라면, 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되었을 것이다. “네스를 아세요? 성숙하고 고귀한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추상적 주제에 발을 디딤으로써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나는 내 일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해 겸손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결코 삶이 어렵다거나 내가 부적합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 까닭은 대체로 내 삶의 출발점이 엄청나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사랑했고, 나도 사랑받았다. 나는 늘 나 자신에 대해 확고한, 그렇지만 과장되지 않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적어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희미하지만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더 유능한 사람들이나 훨씬 더 훌륭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적대자들이 내뱉은 상처를 주는 말들은 어떠한 흉터도 남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는 운 좋은 놈이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부심과 자존감은 기반으로 삼을만한 견고한 토대이다. [...]
어떤 아이들은 환상적이고 거대한 것들에 대해 강렬한 느낌을 키운다. 나는 모든 교육에서 경이가 좀 더 강조되고 “확실한” 것이 좀 더 배경으로 물러나기를 원한다. 거대한 숫자들, 거대한 물결, 거대한 시간 간격, 별들 사이의 거대한 거리, 그리고 위대한 목표와 일 사이에는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이들이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찾도록, 위대함에 대한 느낌과 더불어 조그마한 것에 대한 느낌을, 조그마한 즐거움을, 물 위의 잔물결들을 찾도록 고무해야 한다.
나는, 어른이 삶에 대해 어린애 같은, 상상에 의한 경이감을 계속 간직하는 것이 이롭다고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좀 더 진지하게 믿는다. 아이들은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선에 대해 덜 규정되고 더 어렴풋한 태도를 갖고 있다. 만약 부모가 상상 속에서 경탄하는 데 참여한다면, 그들의 자녀의 상상력은 학창시절을 견디고 더 잘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들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상상이 마구 뻗어나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성숙의 과정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조건이 내가 “삶의 예술가들”-독일어 단어를 사용하면 lebenskünstler, 삶의 예술에 능숙한 자, 쾌활한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자-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유머와 놀이가 없이는 거대한 전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불꽃을 잃어버리기 쉽다. 절망적이고 심각한 문제들에 깊이 연루된 혹은 연루되었던 어떤 사람들, 가령 달라이 라마나 간디 같은 사람들이 항상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웃음 없이는 거의 그들의 과업을 계속해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감정과 철학에 대해 되돌아봄으로써,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이성으로 불려왔던 것이 아니라 느낌에 집중해서- 삶 속에서 그들의 기회들에 대해 창조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들은 학문적 철학에서 매우 적게 논의되는데, 그 점은 놀라우면서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 강의실에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거의 고마움을 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좋든 나쁘든 감정이 크고 작은 갈등에서 담당하는 특정한 역할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의하지만, 일반적인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철학의 맥락 속에서 감정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드물다. 나는 사람들에게 느낌의 발달과 성숙은 지식의 발달과 성숙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하며, 그것들이 학교와 대학에서 촉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출전] 아르네 네스,『삶의 철학-더 깊은 세계에서의 이성과 느낌』
토론하기
(1) 네스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를테면 오늘날의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하기 위한 불꽃, 혹은 동력으로서 무엇에 주목하나요?
(2) 머리로 이해한 것보다 어떤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중요한 결정을 하고 행동에 나섰던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세요.
(3) 중고등학교에서, 나아가 대학 강의실에서 저마다의 감정과 느낌을 되돌아보고 감정의 역할에 대해 정기적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해설읽기
네스는 젊은 나이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철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했고 철학자로서 명성을 누렸습니다. 네스는 자신의 명성이 성숙하고 고귀한 감정보다는 추상적 사고에 헌신함으로써 부여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스는 우리가 생태파괴적 문화에서 돌이켜서 지속가능한 삶,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느낌’의 힘에 대해 희망적이고 대담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낌과 감정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의 본문은 “놀기 좋아하는 인간과 놀고 있는 인간”이라는 소제목 아래 실려 있습니다. 재미있는 제목이지요? 네스는 감정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도록 만든다는 데 주목합니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확실한’ 것들보다 경이가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거대한 것, 위대한 목표도 중요하지만,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찾는 일, 조그마한 것에 대한 느낌, 조그마한 즐거움을, 물 위의 잔물결을 찾는 일도 중요하며, 아이들을 교육할 때 후자를 고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상상에 의한 경이감을 유지하고 고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삶의 예술, 곧 유머와 놀이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달라이 라마나 간디 같은 사람들이 항상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구절은 유쾌합니다. 이들이 크고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동력은, 네스에 따르면, 웃음입니다. 웃음, 놀이 같은 것들은 상상, 경이 등과 함께 네스에게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 절의 제목에 ‘놀기 좋아하는 인간과 놀이하는 인간’이 들어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네스는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느낌에 집중해서 삶의 기회들을 되돌아보도록 권합니다. 네스에 따르면,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철학의 맥락에서 감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의는 드뭅니다. 네스는 지식의 발달과 성숙만큼이나 감정과 느낌의 발달과 성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을 되풀이해서 강조합니다.
키워드
유머, 놀이, 느낌, 감정 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