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문화가 우연이나 섭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아니고 무작위적인 선택의 산물도 아니며, 법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달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여겼다. 타일러는 자연 현상에서 그 본성과 법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문화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문화과학이 가능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산출한 원인과 그 현상의 일반적 인 법칙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문화과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일러는 “지식에 이르는 가능한 모든 길을 탐구해야 하고, 열려 있는 모든 문을 들여다보려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제안한 문화과학은 단지 지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류 문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래의 본문은 타일러의 대표작, 두 권으로 된 『원시문화』의 마지막 장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문명의 진보를 원하는 지식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제시한다. 여기서 타일러가 제시하는 문화과학의 목적은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인류학의 목적이기도 했다.
고전본문
원시 문명과 현대 문명의 관계에 대한 이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연구 과정에서 제기된 견해들의 실제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고고학이 연구자의 마음을 지금껏 알려진 가장 멀리 떨어진 인간 생활의 조건으로 인도해서 그러한 생활이 명백히 야만인 유형에 속했음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또한 퇴적 자갈밭의 매머드 뼈 한가운데서 발굴되어 민족학자의 책상 위에 놓인 대충 만든 돌도끼가 그에게는 단순하지만 교묘하고, 어설프지만 목적이 있으며, 기술적 수준은 낮지만 최고의 발달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한 원시 문화의 유형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요? 물론, 인간의 역사와 선사(先史)는 지식의 일반적 체계에서 적절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문명의 세계적이며 장구한 진화에 관한 이론은 철학적 마음이 순수과학의 주제로서 열렬한 관심으로 받아들일만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그러한 연구는 현대의 관념과 행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 힘의 원천으로서 실제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화되지 않은 고대인들이 생각하고 행했던 것과, 문화화된 현대인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일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적용 불가능한 이론적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작업은 현대의 견해와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가장 건전한 현대적 지식의 강력한 토대에 기초한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까지 단지 그러한 유형들이 형성된 더욱 초기의 조야한 문화 단계에 유용했던 지식에 근거한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초기 역사는 우리의 지성적, 산업적, 그리고 사회적 상태의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부 사항들과 관계가 있지만, 그러한 관계는 그로 인해 가장 가혹한 영향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거의 무시되어 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무생물계와 생물계의 척도, 힘, 구조와 관련된 선진 과학에서조차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라는 원칙을 채택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그러나 심각한 잘못입니다. 만약 과학적 체계가, 그것이 가끔 그런 척하는 신탁의 계시라면, 선행하는 단순한 견해나 공상의 조건에 주목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대적 교과서에서 돌아서서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고루한 논문들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은, 자기가 하는 작업의 역사로부터 이론과 사실의 관계에 관한 더욱 진실한 시각을 얻고, 현재 유통되는 각각의 가설의 성장 과정에서 그것의 존재 이유와 진의를 파악하는 것을 배우며, 심지어 옛 출발점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현재의 선로가 지나갈 수 없는 장벽에 막혀 멈춰진 듯한 곳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우리는 행복하게도, 자주 닫히는 발견과 개혁의 문들이 가장 활짝 열려 있는 지성사와 도덕사의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처럼 좋은 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설득력 있는 논거와 끊임없는 사실 검증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의 점증하는 힘과 범위는 세계를 이전보다 더욱 꾸준하고 지속적인 추세로 진보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역사가 선례에 따라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전통주의자들과 논객들의 더욱 뻣뻣하고 지루한 시대를 예상해야 할 텐데, 그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교의를 맹종하며 수용하면서도 그들의 방법을 좇아 더 나은 증거를 통해 더 높은 목표에 이를 수 없는, 혹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권위에 호소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우리 가운데 문명의 진보를 몹시 원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에, 미래에 진보가 억제된다 하더라도 더 높은 수준에서 억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문화에서 건전한 것들의 촉진자와 잘못된 것들의 개혁자에게 민족지는 이중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발달 교리로 깊은 인상을 남김으로써 그들이 조상을 기리며 과거 시대의 진보의 과업을 이어가도록 인도하고, 또한 세계에 빛이 증가했기 때문에, 그리고 미개인 무리들이 암중모색하던 곳에서 문화화된 사람들은 흔히 선명한 시야를 가지고 앞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활기차게 진보의 과업을 계속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로운 미신이 된 조잡한 옛 문화의 유물을 드러내고 이것을 파괴하도록 표시하는 것은 민족지의 가혹한, 때로는 고통스러운 직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덜 상냥하다고 해도, 인류의 유익을 위해 긴급히 요청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진보를 돕고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 모두에 적극적인 문화과학은 본질적으로 개혁자의 과학입니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가 문화과학을 개혁자의 과학으로 일컬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2) 여러분은 자신의 진로를 생각할 때, 나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인류학자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개혁자로 그린 타일러에 비추어, 여러분의 미래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적어 보세요.
(3)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려는 개혁자의 마음으로, 현대사회에서 세상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눠 보세요.
해설읽기
타일러는 자신의 책, 『원시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 가 원시 문명과 현대 문명의 관계에 관한 연구라고 말한다. 제목이 ‘원시문화’이니 지적인 호기심으로 원시시대의 문화만을 소개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기대를 접는 것이 좋겠다. 타일러의 방대한 연구는 실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대와의 관계를 알아내고, 인류 문화의 법칙성을 파악하며, 그리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 위한 지식인으로서의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타일러는 인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이해득실의 실랑이와 소란한 온갖 견해의 압력이 존재하는 당대의 문화를 다루기보다는 지나간 역사를 살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원시문화나 선사시대 고고학 연구가 그저 지적인 유희를 위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그러나 본문에서 타일러는 그러한 견해들을 단호히 기각한다. 그는 현대 문화와 가장 조잡한 야만인의 조건 사이에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문명화된 세계 안에서는 온갖 견해가 혼종되어 있다. 타일러는 현대세계에는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에 대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합리적이고 타당한 견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주목한다. 마땅히 하등한 지적 수준에 속한 견해들이 아직까지 잔존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타일러는 무엇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 견해이고 무엇이 과거의 조야한 교리가 현대 지식의 옷을 입고 되살아난 ‘미신’인지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일러는 자신이 살아가는 19세기 후반을 발견과 개혁의 문들이 가장 활짝 열려 있는 시대로 지칭했다. 이러한 “좋은 날”을 지속시키기 위해, 아니 더 좋은 날을 만들어가기 위해, 타일러는 건전한 것들을 촉진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혁하자고 제안한다. 타일러는 세계에 빛이 증가했기 때문에 문명인들은 더욱 활기차게 진보의 과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일러가 제안한 근대 학문으로서의 인류학이란 인류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학문, 진보를 돕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는 개혁자의 과학인 것이다.
키워드
개혁자, 문화 과학, 진보, 인류학
전후맥락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문화가 우연이나 섭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도 아니고 무작위적인 선택의 산물도 아니며, 법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달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여겼다. 타일러는 자연 현상에서 그 본성과 법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문화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문화과학이 가능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산출한 원인과 그 현상의 일반적 인 법칙을 찾아내고 연구하는 문화과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일러는 “지식에 이르는 가능한 모든 길을 탐구해야 하고, 열려 있는 모든 문을 들여다보려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제안한 문화과학은 단지 지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류 문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아래의 본문은 타일러의 대표작, 두 권으로 된 『원시문화』의 마지막 장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문명의 진보를 원하는 지식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제시한다. 여기서 타일러가 제시하는 문화과학의 목적은 그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인류학의 목적이기도 했다.
고전본문
원시 문명과 현대 문명의 관계에 대한 이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이제 연구 과정에서 제기된 견해들의 실제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고고학이 연구자의 마음을 지금껏 알려진 가장 멀리 떨어진 인간 생활의 조건으로 인도해서 그러한 생활이 명백히 야만인 유형에 속했음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또한 퇴적 자갈밭의 매머드 뼈 한가운데서 발굴되어 민족학자의 책상 위에 놓인 대충 만든 돌도끼가 그에게는 단순하지만 교묘하고, 어설프지만 목적이 있으며, 기술적 수준은 낮지만 최고의 발달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한 원시 문화의 유형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요? 물론, 인간의 역사와 선사(先史)는 지식의 일반적 체계에서 적절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물론, 문명의 세계적이며 장구한 진화에 관한 이론은 철학적 마음이 순수과학의 주제로서 열렬한 관심으로 받아들일만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 그러한 연구는 현대의 관념과 행위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 힘의 원천으로서 실제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화되지 않은 고대인들이 생각하고 행했던 것과, 문화화된 현대인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일 사이의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적용 불가능한 이론적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작업은 현대의 견해와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가장 건전한 현대적 지식의 강력한 토대에 기초한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까지 단지 그러한 유형들이 형성된 더욱 초기의 조야한 문화 단계에 유용했던 지식에 근거한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초기 역사는 우리의 지성적, 산업적, 그리고 사회적 상태의 가장 심층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부 사항들과 관계가 있지만, 그러한 관계는 그로 인해 가장 가혹한 영향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기에 거의 무시되어 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무생물계와 생물계의 척도, 힘, 구조와 관련된 선진 과학에서조차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라는 원칙을 채택하는 것은 흔히 나타나는, 그러나 심각한 잘못입니다. 만약 과학적 체계가, 그것이 가끔 그런 척하는 신탁의 계시라면, 선행하는 단순한 견해나 공상의 조건에 주목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대적 교과서에서 돌아서서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고루한 논문들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은, 자기가 하는 작업의 역사로부터 이론과 사실의 관계에 관한 더욱 진실한 시각을 얻고, 현재 유통되는 각각의 가설의 성장 과정에서 그것의 존재 이유와 진의를 파악하는 것을 배우며, 심지어 옛 출발점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현재의 선로가 지나갈 수 없는 장벽에 막혀 멈춰진 듯한 곳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우리는 행복하게도, 자주 닫히는 발견과 개혁의 문들이 가장 활짝 열려 있는 지성사와 도덕사의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처럼 좋은 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설득력 있는 논거와 끊임없는 사실 검증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의 점증하는 힘과 범위는 세계를 이전보다 더욱 꾸준하고 지속적인 추세로 진보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역사가 선례에 따라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전통주의자들과 논객들의 더욱 뻣뻣하고 지루한 시대를 예상해야 할 텐데, 그때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교의를 맹종하며 수용하면서도 그들의 방법을 좇아 더 나은 증거를 통해 더 높은 목표에 이를 수 없는, 혹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권위에 호소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우리 가운데 문명의 진보를 몹시 원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에, 미래에 진보가 억제된다 하더라도 더 높은 수준에서 억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문화에서 건전한 것들의 촉진자와 잘못된 것들의 개혁자에게 민족지는 이중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발달 교리로 깊은 인상을 남김으로써 그들이 조상을 기리며 과거 시대의 진보의 과업을 이어가도록 인도하고, 또한 세계에 빛이 증가했기 때문에, 그리고 미개인 무리들이 암중모색하던 곳에서 문화화된 사람들은 흔히 선명한 시야를 가지고 앞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활기차게 진보의 과업을 계속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로운 미신이 된 조잡한 옛 문화의 유물을 드러내고 이것을 파괴하도록 표시하는 것은 민족지의 가혹한, 때로는 고통스러운 직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덜 상냥하다고 해도, 인류의 유익을 위해 긴급히 요청되는 일입니다. 따라서, 진보를 돕고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 모두에 적극적인 문화과학은 본질적으로 개혁자의 과학입니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가 문화과학을 개혁자의 과학으로 일컬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2) 여러분은 자신의 진로를 생각할 때, 나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인류학자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개혁자로 그린 타일러에 비추어, 여러분의 미래의 활동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적어 보세요.
(3)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려는 개혁자의 마음으로, 현대사회에서 세상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눠 보세요.
해설읽기
타일러는 자신의 책, 『원시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 가 원시 문명과 현대 문명의 관계에 관한 연구라고 말한다. 제목이 ‘원시문화’이니 지적인 호기심으로 원시시대의 문화만을 소개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기대를 접는 것이 좋겠다. 타일러의 방대한 연구는 실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대와의 관계를 알아내고, 인류 문화의 법칙성을 파악하며, 그리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기 위한 지식인으로서의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타일러는 인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이해득실의 실랑이와 소란한 온갖 견해의 압력이 존재하는 당대의 문화를 다루기보다는 지나간 역사를 살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원시문화나 선사시대 고고학 연구가 그저 지적인 유희를 위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그러나 본문에서 타일러는 그러한 견해들을 단호히 기각한다. 그는 현대 문화와 가장 조잡한 야만인의 조건 사이에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문명화된 세계 안에서는 온갖 견해가 혼종되어 있다. 타일러는 현대세계에는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에 대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합리적이고 타당한 견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주목한다. 마땅히 하등한 지적 수준에 속한 견해들이 아직까지 잔존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타일러는 무엇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합리적 견해이고 무엇이 과거의 조야한 교리가 현대 지식의 옷을 입고 되살아난 ‘미신’인지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일러는 자신이 살아가는 19세기 후반을 발견과 개혁의 문들이 가장 활짝 열려 있는 시대로 지칭했다. 이러한 “좋은 날”을 지속시키기 위해, 아니 더 좋은 날을 만들어가기 위해, 타일러는 건전한 것들을 촉진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혁하자고 제안한다. 타일러는 세계에 빛이 증가했기 때문에 문명인들은 더욱 활기차게 진보의 과업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일러가 제안한 근대 학문으로서의 인류학이란 인류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학문, 진보를 돕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는 개혁자의 과학인 것이다.
키워드
개혁자, 문화 과학, 진보,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