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타일러는 종교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장의 첫머리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문화적 수준이 너무 낮아서 종교적인 개념이 전혀 없는 부족이 존재할까? 이른바 종교의 보편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수 세기에 걸쳐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도 없이 그야말로 ‘주장’만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편협하게 자기가 믿는 종교를 기준 삼아 ‘종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잡고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종교’는 고등한 인종들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종교 현상들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협소한 렌즈입니다. 타일러는 수많은 민족지 자료들을 근거로, 세계 각지의 원주민 사회에서 종교적 개념과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종교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확장하려고 시도합니다. 주목할 것은, 타일러가 이를 위해 좀 더 넓은 의미범위를 갖도록 새롭게 종교를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영적인 존재들에 관한 믿음”을 광의의 종교 정의로 채택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애니미즘(animism)’으로 일컫습니다. 타일러는 애니미즘이 인류 중에서 매우 낮은 단계의 부족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지만, 현대 문화의 한복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애니미즘은 “야만인”으로부터 문명화된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의 기반을 이룬다는 것이지요.
고전본문
여기서 나는 종교의 순수하게 도덕적인 측면을 다루기보다는, 오히려 애니미즘이 고대의 전 세계적인 철학을 구성하는 한, 물론 실제로 그러하지만, 믿음이 곧 이론이고 숭배가 곧 실천인 세계의 애니미즘을 연구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의 과제는 여태껏 이상하게도 과소평가되고 무시되었던 자료들을 연구를 위해 구체화하려고 애쓰면서, 하등 인종들의 기본적인 애니미즘을 가능한 대로 명확하게 가시화하고, 그것이 고등한 문명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추적해서 다소 미흡하더라도 개략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
우리가 고려해야 할 주제의 첫 번째 분야는 인간의 영혼 및 다른 영혼들에 관한 교리입니다. [.] 생각하는 인간은, 낮은 수준의 문화에서도, 두 종류의 생물학적 문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첫째로, 무엇이 살아있는 몸과 죽은 시체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요? 무엇이 자고 깨는 것, 망아(忘我), 질병, 죽음을 야기하는 것일까요? 둘째로, 꿈이나 환상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형상들은 무엇일까요? 고대의 야만인 철학자들은 이러한 두 종류의 현상을 바라보면서, 아마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속한 두 가지, 곧 생명과 혼령(phantom)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추론에서부터 첫발을 내디뎠을 것입니다. 이 둘은 분명히 몸과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데, 생명은 몸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고, 혼령은 몸의 이미지 혹은 두 번째 자아를 이룹니다. 또한 둘 다 몸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곧 생명은 몸이 무감각해지거나 죽도록 놓아두고 몸을 떠날 수 있으며, 혼령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야만인들은 아마 두 번째 발걸음도 쉽게 떼어놓았을 텐데, 문명인들은 그것을 돌이키기란 극도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명과 혼령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둘 다 몸에 속하니, 그것들이 또한 서로에게 속하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영혼의 현현이어서는 안 될 까닭이 무엇인가요? 그러면 생명과 혼령이 결합된다고 여겨봅시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잘 알려진 개념으로서, 허깨비 영혼(apparitional-soul), 유령 영혼(ghost-soul)이라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어쨌든 이는 하등 인종들이 지닌 인격적 영혼이나 영에 관한 실제 개념에 부합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띠는데, 그 본질은 수증기나 얇은 막, 혹은 그림자의 일종이며, 그것은 그것이 생기를 불어넣은 개체에게서 생명과 사유의 원인입니다. 또한 그것의 과거 혹은 현재의 신체 소유자의 개별적 의식과 자유의지를 독립적으로 소유합니다. 그리고 몸을 훨씬 멀리 떠나서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물리적 힘을 드러내 보이며, 특히 깨어있거나 잠든 사람에게, 몸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그 몸과 닮은 환영(幻影, phantasm)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사물의 몸에 들어가고, 그것을 소유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정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소간 차이에 따라 바뀌더라도,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일반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견해들은 임의적이거나 관습적인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멀리 떨어진 인종들 사이에서 그러한 시각이 균등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떤 종류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생각도 거의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분명한 감각적 증거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대답하는, 상당히 일관되고 합리적인 원시 철학에 따라 해석된 교리들입니다. 실제로 원시 애니미즘은 자연의 사실들을 매우 잘 설명해주기에, 그것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까지 침투하였습니다. 비록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 철학이 원시 애니미즘을 많이 수정했고 현대 철학은 이를 더욱 가차 없이 다루었지만, 애니미즘은 아직까지도 원래의 특징적 흔적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원시 시대의 가보(家寶)가 문명화된 세계의 현존하는 심리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는 인간이 어떤 현상을 경험하면서 영혼을 상상하게 되었으리라고 추정하나요?
(2) 어린 시절, 꿈속에 나타난 인간의 형상들에 대해 무언가를 상상한 적이 있나요? 꿈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무엇을 상상했는지 기억을 이야기해 보세요.
(3) 현대 문화 속에는 애니미즘적 상상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많습니다. 현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가운데 애니미즘적 주제를 담고 있는 사례를 떠올려보고,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해보세요.
해설읽기
대항해 시대 이후로 낯선 세계를 만나게 된 유럽인들 중에는 자신이 만난 부족에게 종교가 없다고 단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타일러는 탐험가나 여행자, 심지어 선교사들이 단언한 “그들에게는 종교가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그들의 확신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특히 어떤 이들은 최고 신격이나 사후 심판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느냐와 같은 협소한 기준으로 한 사회에서 종교의 유무를 판별하곤 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종교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할 때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타일러는 이처럼 하나의 종교만 이해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종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어떤 종교도 나머지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타일러는 시야를 더 넓게 확장하도록 독자를 독려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협소한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본질적인 근원으로 돌아가서 가장 중요한 핵심만을 짚은 종교 정의를 내리는 것입니다. 타일러는 최소한도의 종교 정의로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제안합니다. 그러한 최소한도의 종교 정의를 가지고 다양한 원주민 문화를 들여다보면, 이전에 종교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에서 종교적인 믿음과 관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타일러의 생각입니다.
타일러는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애니미즘(animism)으로 일컫습니다. 애니미즘은 영혼, 숨, 생명 등을 의미하는 ‘아니마(anima)’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타일러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교리를 애니미즘이란 이름 아래 연구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영혼 또는 영적인 존재를 믿게 되었을까요? 타일러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실제 현상을 관찰하면서 촉발되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특히 두 종류의 생물학적 현상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첫째는 살아있는 몸과 죽은 시체의 차이 문제입니다. 잠자는 사람과 죽은 시체는 언뜻 보면 누워서 가만히 있는 모습이 흡사합니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금방 구분해냅니다. 뭔가 다릅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둘째는 꿈이나 환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꿈에서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봅니다. 그 형상들은 무엇일까요? 타일러는 고대의 야만인 철학자들이 그러한 물음들을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영혼을 상상하게 되었으리라고 추론합니다. 본문에서 타일러는 하등 인종들이 상상한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합니다. 그것은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영혼에게서 나옵니다. 그것은 몸을 떠나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나타날 수 있고, 보통은 오감으로 감각하기 어렵지만 종종 물리적인 힘을 드러내 보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심지어 사물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소유하고 움직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타일러가 하등 인종들의 영혼에 관한 상상으로 제시한 내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세계 각지의 민담과 전설에서, 혹은 현대 문화에서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접해보았던 내용일 것입니다. 타일러는 이와 같은 견해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영혼의 교리는 자연의 사실들을 설명해주는 상당히 일관되고 합리적인 원시 철학입니다. 일종의 원시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일러는 이와 같은 영적 존재들의 실존에 대한 믿음이 내세에 대한 믿음, 다양한 신격들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의 본문은 타일러가 제시한 방대한 ‘종교과학’ 논의의 일부입니다.
키워드
종교 과학, 애니미즘, 영혼
전후맥락
타일러는 종교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장의 첫머리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문화적 수준이 너무 낮아서 종교적인 개념이 전혀 없는 부족이 존재할까? 이른바 종교의 보편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타일러가 볼 때, 그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수 세기에 걸쳐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대답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도 없이 그야말로 ‘주장’만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편협하게 자기가 믿는 종교를 기준 삼아 ‘종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잡고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종교’는 고등한 인종들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종교 현상들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협소한 렌즈입니다. 타일러는 수많은 민족지 자료들을 근거로, 세계 각지의 원주민 사회에서 종교적 개념과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종교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확장하려고 시도합니다. 주목할 것은, 타일러가 이를 위해 좀 더 넓은 의미범위를 갖도록 새롭게 종교를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영적인 존재들에 관한 믿음”을 광의의 종교 정의로 채택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애니미즘(animism)’으로 일컫습니다. 타일러는 애니미즘이 인류 중에서 매우 낮은 단계의 부족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지만, 현대 문화의 한복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애니미즘은 “야만인”으로부터 문명화된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의 기반을 이룬다는 것이지요.
고전본문
여기서 나는 종교의 순수하게 도덕적인 측면을 다루기보다는, 오히려 애니미즘이 고대의 전 세계적인 철학을 구성하는 한, 물론 실제로 그러하지만, 믿음이 곧 이론이고 숭배가 곧 실천인 세계의 애니미즘을 연구하자고 제안합니다. 나의 과제는 여태껏 이상하게도 과소평가되고 무시되었던 자료들을 연구를 위해 구체화하려고 애쓰면서, 하등 인종들의 기본적인 애니미즘을 가능한 대로 명확하게 가시화하고, 그것이 고등한 문명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추적해서 다소 미흡하더라도 개략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
우리가 고려해야 할 주제의 첫 번째 분야는 인간의 영혼 및 다른 영혼들에 관한 교리입니다. [.] 생각하는 인간은, 낮은 수준의 문화에서도, 두 종류의 생물학적 문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첫째로, 무엇이 살아있는 몸과 죽은 시체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요? 무엇이 자고 깨는 것, 망아(忘我), 질병, 죽음을 야기하는 것일까요? 둘째로, 꿈이나 환상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형상들은 무엇일까요? 고대의 야만인 철학자들은 이러한 두 종류의 현상을 바라보면서, 아마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속한 두 가지, 곧 생명과 혼령(phantom)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추론에서부터 첫발을 내디뎠을 것입니다. 이 둘은 분명히 몸과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데, 생명은 몸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고, 혼령은 몸의 이미지 혹은 두 번째 자아를 이룹니다. 또한 둘 다 몸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곧 생명은 몸이 무감각해지거나 죽도록 놓아두고 몸을 떠날 수 있으며, 혼령은 몸에서 떨어져 나와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야만인들은 아마 두 번째 발걸음도 쉽게 떼어놓았을 텐데, 문명인들은 그것을 돌이키기란 극도로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명과 혼령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둘 다 몸에 속하니, 그것들이 또한 서로에게 속하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영혼의 현현이어서는 안 될 까닭이 무엇인가요? 그러면 생명과 혼령이 결합된다고 여겨봅시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잘 알려진 개념으로서, 허깨비 영혼(apparitional-soul), 유령 영혼(ghost-soul)이라고 이야기할 만합니다. 어쨌든 이는 하등 인종들이 지닌 인격적 영혼이나 영에 관한 실제 개념에 부합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띠는데, 그 본질은 수증기나 얇은 막, 혹은 그림자의 일종이며, 그것은 그것이 생기를 불어넣은 개체에게서 생명과 사유의 원인입니다. 또한 그것의 과거 혹은 현재의 신체 소유자의 개별적 의식과 자유의지를 독립적으로 소유합니다. 그리고 몸을 훨씬 멀리 떠나서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물리적 힘을 드러내 보이며, 특히 깨어있거나 잠든 사람에게, 몸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그 몸과 닮은 환영(幻影, phantasm)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사물의 몸에 들어가고, 그것을 소유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정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소간 차이에 따라 바뀌더라도,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일반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견해들은 임의적이거나 관습적인 산물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멀리 떨어진 인종들 사이에서 그러한 시각이 균등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야말로 어떤 종류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는 생각도 거의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분명한 감각적 증거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대답하는, 상당히 일관되고 합리적인 원시 철학에 따라 해석된 교리들입니다. 실제로 원시 애니미즘은 자연의 사실들을 매우 잘 설명해주기에, 그것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까지 침투하였습니다. 비록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 철학이 원시 애니미즘을 많이 수정했고 현대 철학은 이를 더욱 가차 없이 다루었지만, 애니미즘은 아직까지도 원래의 특징적 흔적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원시 시대의 가보(家寶)가 문명화된 세계의 현존하는 심리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전]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원시 문화』
토론하기
(1) 타일러는 인간이 어떤 현상을 경험하면서 영혼을 상상하게 되었으리라고 추정하나요?
(2) 어린 시절, 꿈속에 나타난 인간의 형상들에 대해 무언가를 상상한 적이 있나요? 꿈속에 나타난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무엇을 상상했는지 기억을 이야기해 보세요.
(3) 현대 문화 속에는 애니미즘적 상상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작품이 많습니다. 현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가운데 애니미즘적 주제를 담고 있는 사례를 떠올려보고,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해보세요.
해설읽기
대항해 시대 이후로 낯선 세계를 만나게 된 유럽인들 중에는 자신이 만난 부족에게 종교가 없다고 단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타일러는 탐험가나 여행자, 심지어 선교사들이 단언한 “그들에게는 종교가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그들의 확신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특히 어떤 이들은 최고 신격이나 사후 심판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느냐와 같은 협소한 기준으로 한 사회에서 종교의 유무를 판별하곤 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종교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할 때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타일러는 이처럼 하나의 종교만 이해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종교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어떤 종교도 나머지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타일러는 시야를 더 넓게 확장하도록 독자를 독려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협소한 시야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본질적인 근원으로 돌아가서 가장 중요한 핵심만을 짚은 종교 정의를 내리는 것입니다. 타일러는 최소한도의 종교 정의로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제안합니다. 그러한 최소한도의 종교 정의를 가지고 다양한 원주민 문화를 들여다보면, 이전에 종교가 없다고 확신했던 곳에서 종교적인 믿음과 관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타일러의 생각입니다.
타일러는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애니미즘(animism)으로 일컫습니다. 애니미즘은 영혼, 숨, 생명 등을 의미하는 ‘아니마(anima)’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타일러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교리를 애니미즘이란 이름 아래 연구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영혼 또는 영적인 존재를 믿게 되었을까요? 타일러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실제 현상을 관찰하면서 촉발되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특히 두 종류의 생물학적 현상이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첫째는 살아있는 몸과 죽은 시체의 차이 문제입니다. 잠자는 사람과 죽은 시체는 언뜻 보면 누워서 가만히 있는 모습이 흡사합니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금방 구분해냅니다. 뭔가 다릅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둘째는 꿈이나 환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꿈에서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봅니다. 그 형상들은 무엇일까요? 타일러는 고대의 야만인 철학자들이 그러한 물음들을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영혼을 상상하게 되었으리라고 추론합니다. 본문에서 타일러는 하등 인종들이 상상한 영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단히 묘사합니다. 그것은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영혼에게서 나옵니다. 그것은 몸을 떠나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나타날 수 있고, 보통은 오감으로 감각하기 어렵지만 종종 물리적인 힘을 드러내 보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심지어 사물 속에 들어가서 그것을 소유하고 움직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타일러가 하등 인종들의 영혼에 관한 상상으로 제시한 내용이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세계 각지의 민담과 전설에서, 혹은 현대 문화에서도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접해보았던 내용일 것입니다. 타일러는 이와 같은 견해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타일러가 볼 때 영혼의 교리는 자연의 사실들을 설명해주는 상당히 일관되고 합리적인 원시 철학입니다. 일종의 원시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일러는 이와 같은 영적 존재들의 실존에 대한 믿음이 내세에 대한 믿음, 다양한 신격들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의 본문은 타일러가 제시한 방대한 ‘종교과학’ 논의의 일부입니다.
키워드
종교 과학, 애니미즘,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