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의 다음 본문은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민족지를 실제로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그 서술 방식에서도 참고로 삼을 만하다. 나중에 출판된 일기에서 엿보이듯이,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현지조사의 극심한 개인적 스트레스 속에서도 ‘과학적인 기록’을 계속해나갔다. 연구자가 자신의 관찰을 어떻게 체계적인 증거물로 정리할 것인지는 조사 방법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이며, 이 책에서 말리노프스키가 제시하는 기록과 정리의 방식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좀 더 살펴보면, 그는 먼저 제도와 관습을 개관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도표화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잡다한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는 “토착민 관습의 법칙과 규칙성을 찾아내고 이에 맞는 정확한 공식을 자료수집과 토착민의 진술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다보면 현실의 삶은 바로 이러한 정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실제의 삶은 어떤 법칙도 엄격히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정한 관습이 실행되는 방식, 그리고 민족지 기술자가 딱 떨어지도록 공식화한 법칙들을 토착민이 어떻게 지키는지를 관찰하고, 또 사회학적 현상에서 거의 항상 일어나는 예외들을 관찰함으로써 보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록하는 일을 중요시했다. 또한 그는 민족지적 진술, 특징적인 이야기, 전형적인 구두표현, 민간전승항목, 주술법 등을 모아서 기록 자료집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풍부한 도표와 지도, 설계도와 함께 주요 주술문구들을 비롯한 방대한 기록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토착민 생활의 곳곳에서 약동하는 생활의 결들을 한 가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강박적이면서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타문화에 대한 이러한 섬세한 태도는 높이 살만한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언제나 살아서 약동하는 사회생활의 복잡성에 흥미를 느꼈다. 따라서 그는 당시 여러 이론가들이 그러했듯이 단지 ‘원시사회’의 추상적인 구조뿐 아니라, 낯선 인간 집단이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풍부함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경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의 풍부한 결을 서술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인간사회 문화의 복합성을 그려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본문
이론적인 연구자가 현지조사 기록을 다룰 때 만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온갖 기록이 풍부한 가운데 허점이 나타날 경우, 그러한 허점의 성격을 판단해야 한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허점은 부주의함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요? 아니면 기회가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그 주제에 대해서 정말로 “말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마지막 가능성을 사실상 처음부터 배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가장 뛰어난 현지조사자 중 하나와 함께 연구하는 동안 민족지 영역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논의했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직접 현지로 떠나기 몇 년 전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그의 조사를 통해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전혀 없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단지 나를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그 무렵 전형적인 슬라브인이었던 나는 내 앵글로색슨 친구를 더 압박했고, 현지조사자에게는 관련된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주제는 가족이었고, 영역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지역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는 가구(家口)가 있거나 혹은 없을 것이며, 남편, 아내, 자식들이 함께 살고, 함께 자고, 함께 먹든지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내 친구는 벽에 등을 기대면서 결론지었습니다. “글쎄,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네.” 나는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서 모두 알아내는 것이 자네의 빌어먹을 임무였단 말일세.”라고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좀 더 공손하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인류학자는 적어도 그가 어떤 현상을 찾고 있었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그가 그것을 찾으려고 시도하지 못했다고 진술해야 합니다.
“말할 것이 전혀 없다.”의 원칙은 아마도 인류학자가 경험적인 면에서 충분한 진보를 이루지 못한 주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실패와 부정확함을 세심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현지조사자의 의무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가 민족지를 기록할 때 자신의 실패와 오류, 실수 등을 빠짐없이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떤 중요한 결과물을 발표하거나 제출할 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나 부족한 점 등을 진지하게 설명한 경험이 있나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3) 중요한 문제일수록, 성공에 대한 이야기보다 실패와 시행착오에 관한 이야기가 진지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패와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진지하게 말해지고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 보세요.
해설읽기
위의 본문에는 말리노프스키의 현지조사 민족지 서술의 특징이 선명히 드러난다. 말리노프스키는 민족지를 서술할 때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물만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현지에서 얻은 성과뿐 아니라 현지에서 겪은 어려움, 조사와 연구 및 집필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 시행착오, 부족한 부분, 오류까지도 민족지 서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글에서 트로브리안드 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지조사자의 좌충우돌을 생생하게 드러내려고 시도했으며, 독자를 현지조사자의 좌충우돌 모험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이처럼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결과 뿐 아니라 과정까지도 민족지에 포함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본문은 제3부의 부록2에 실린 글이다. 부록2의 제목은 ‘무지와 실패의 고백’이다. 이 장의 도입부에서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을 “말할 것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는 태도에서 찾는다. 현지조사 기록을 읽을 때 어떤 세부사항이 비어있는 경우, 연구자는 과연 그 현상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현지조사자가 기록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부주의해서 또는 기회가 없어서 기록하지 못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말리노프스키는 그러한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특정 주제나 사안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애당초 취하지 않는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민족지에서 특정 주제가 비어있을 경우, 인류학자라면 자신이 그 현상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못한 것인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는 자신의 실패, 부정확함, 오류, 실수, 부주의함 등을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고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 위의 단락 및 이어지는 본문에서 자신이 알아챈 스스로의 “허점과 실패, 그리고 혼란”을 집요하리만큼 세세하게 기록한다.
키워드
현지조사, 민족지, 트로브리안드
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의 다음 본문은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민족지를 실제로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그 서술 방식에서도 참고로 삼을 만하다. 나중에 출판된 일기에서 엿보이듯이,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현지조사의 극심한 개인적 스트레스 속에서도 ‘과학적인 기록’을 계속해나갔다. 연구자가 자신의 관찰을 어떻게 체계적인 증거물로 정리할 것인지는 조사 방법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이며, 이 책에서 말리노프스키가 제시하는 기록과 정리의 방식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좀 더 살펴보면, 그는 먼저 제도와 관습을 개관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활동들을 체계적으로 도표화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잡다한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는 “토착민 관습의 법칙과 규칙성을 찾아내고 이에 맞는 정확한 공식을 자료수집과 토착민의 진술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다보면 현실의 삶은 바로 이러한 정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실제의 삶은 어떤 법칙도 엄격히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정한 관습이 실행되는 방식, 그리고 민족지 기술자가 딱 떨어지도록 공식화한 법칙들을 토착민이 어떻게 지키는지를 관찰하고, 또 사회학적 현상에서 거의 항상 일어나는 예외들을 관찰함으로써 보완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록하는 일을 중요시했다. 또한 그는 민족지적 진술, 특징적인 이야기, 전형적인 구두표현, 민간전승항목, 주술법 등을 모아서 기록 자료집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책에는 풍부한 도표와 지도, 설계도와 함께 주요 주술문구들을 비롯한 방대한 기록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토착민 생활의 곳곳에서 약동하는 생활의 결들을 한 가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강박적이면서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타문화에 대한 이러한 섬세한 태도는 높이 살만한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언제나 살아서 약동하는 사회생활의 복잡성에 흥미를 느꼈다. 따라서 그는 당시 여러 이론가들이 그러했듯이 단지 ‘원시사회’의 추상적인 구조뿐 아니라, 낯선 인간 집단이 경험하는 일상생활의 풍부함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경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생활의 풍부한 결을 서술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인간사회 문화의 복합성을 그려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전본문
이론적인 연구자가 현지조사 기록을 다룰 때 만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온갖 기록이 풍부한 가운데 허점이 나타날 경우, 그러한 허점의 성격을 판단해야 한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허점은 부주의함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요? 아니면 기회가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그 주제에 대해서 정말로 “말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마지막 가능성을 사실상 처음부터 배제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가장 뛰어난 현지조사자 중 하나와 함께 연구하는 동안 민족지 영역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논의했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직접 현지로 떠나기 몇 년 전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그의 조사를 통해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전혀 없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단지 나를 노려보기만 했습니다. 그 무렵 전형적인 슬라브인이었던 나는 내 앵글로색슨 친구를 더 압박했고, 현지조사자에게는 관련된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할 권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애썼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된 주제는 가족이었고, 영역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지역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는 가구(家口)가 있거나 혹은 없을 것이며, 남편, 아내, 자식들이 함께 살고, 함께 자고, 함께 먹든지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내 친구는 벽에 등을 기대면서 결론지었습니다. “글쎄,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네.” 나는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서 모두 알아내는 것이 자네의 빌어먹을 임무였단 말일세.”라고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좀 더 공손하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인류학자는 적어도 그가 어떤 현상을 찾고 있었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그가 그것을 찾으려고 시도하지 못했다고 진술해야 합니다.
“말할 것이 전혀 없다.”의 원칙은 아마도 인류학자가 경험적인 면에서 충분한 진보를 이루지 못한 주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실패와 부정확함을 세심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현지조사자의 의무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가 민족지를 기록할 때 자신의 실패와 오류, 실수 등을 빠짐없이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떤 중요한 결과물을 발표하거나 제출할 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나 부족한 점 등을 진지하게 설명한 경험이 있나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3) 중요한 문제일수록, 성공에 대한 이야기보다 실패와 시행착오에 관한 이야기가 진지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실패와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진지하게 말해지고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 보세요.
해설읽기
위의 본문에는 말리노프스키의 현지조사 민족지 서술의 특징이 선명히 드러난다. 말리노프스키는 민족지를 서술할 때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물만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현지에서 얻은 성과뿐 아니라 현지에서 겪은 어려움, 조사와 연구 및 집필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 시행착오, 부족한 부분, 오류까지도 민족지 서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글에서 트로브리안드 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지조사자의 좌충우돌을 생생하게 드러내려고 시도했으며, 독자를 현지조사자의 좌충우돌 모험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이처럼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결과 뿐 아니라 과정까지도 민족지에 포함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본문은 제3부의 부록2에 실린 글이다. 부록2의 제목은 ‘무지와 실패의 고백’이다. 이 장의 도입부에서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을 “말할 것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하는 태도에서 찾는다. 현지조사 기록을 읽을 때 어떤 세부사항이 비어있는 경우, 연구자는 과연 그 현상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현지조사자가 기록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부주의해서 또는 기회가 없어서 기록하지 못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말리노프스키는 그러한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특정 주제나 사안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애당초 취하지 않는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민족지에서 특정 주제가 비어있을 경우, 인류학자라면 자신이 그 현상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못한 것인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자는 자신의 실패, 부정확함, 오류, 실수, 부주의함 등을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고 진지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 위의 단락 및 이어지는 본문에서 자신이 알아챈 스스로의 “허점과 실패, 그리고 혼란”을 집요하리만큼 세세하게 기록한다.
키워드
현지조사, 민족지, 트로브리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