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세 단계를 구별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관찰하고 각각의 활동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서로 연결 짓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양한 양상들을 종합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들을 통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업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사실들을 서둘러서 통합하는 일에는 위험이 뒤따른다고 지적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 자신이 빠졌던 함정, 현지에서 좌충우돌했던 경험을 진술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만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자료에서 나타나는 미흡함을 집요하게 짚어나간다.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종류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래의 본문은 말리노프스키가 밝힌 자신의 현지조사의 문제점 중 일부를 다룬다. 그것은 바로 사진이다.
고전본문
내 현지조사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결점이 있는데, 거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곧 사진입니다. 만약 당신이 내 책을 다른 현지조사 설명들과 비교한다면, 내 책의 사진들이 장비 면에서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사진을 부차적인 일로 취급했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증거 수집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실수였습니다. 경작지에 대한 자료를 완성하면서, 나는 내 필드노트들을 사진과 대조하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진술을 재구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 현지조사의 방법을 거스르는 한두 가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소위 보기 좋음과 접근성의 원칙에 의거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갔습니다. 만약 카메라를 통해 그림이 멋지게 보이고 잘 어울리면, 나는 스냅 사진을 찍었습니다. 따라서 수확의 어떤 국면들, 에를 들면 마을과 경작지에서 타이투의 전시, 매혹적인 주술적 구조물이 있는 캄코콜라 예식 등은 잘 표현됩니다. 그러나 경작지에서의 첫 번째 예식의 경우, 나는 그것을 단 한번만 목격했는데, 그때는 날씨가 나빴고 빛이 매우 적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는 빌라말리아의 어떤 의식이 수행되는 광경을 퍼붓는 빗속에서 목격했으며, 나머지는 동틀녘에 목격했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으로 기록해야 하는 예식들의 목록을 작성한 후에 이러한 사진들을 반드시 찍는 대신에, 나는 특이한 수집품을 모으는 것과 같은 수준에서 -거의 현지조사의 보조적인 오락처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타고난 수완이나 소질이 없기 때문에, 사진은 내게 늘 긴장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좋은 기회조차도 너무나 자주 놓쳐 버릴 뿐이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덤불치기, 덩이줄기의 솎아내기, 여자들이 소구획에서 잡초 뽑기하는 모습, 무엇보다도 수확의 모든 국면을 보여줄 수 없었던 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활동들을 적어도 수백 번 목격했습니다. [...] 나는 날마다 앉아서, 내일 역시 비슷한 하루가 될 거라고 느끼면서 -이것은 아마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지켜보았습니다. [...] 실제 카야쿠의 사진을 전혀 찍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매우 화가 납니다. 사실상 실제 경작지 회의는 보통의 사교 모임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작지 회의는 확실히 심정적으로 기록물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사진을 찍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진이든 언어적인 것이든 혹은 묘사에 관한 것이든, 내 자료에서 나타나는 모든 미흡함의 일반적인 원인은 다른 모든 민족지학자처럼 나 역시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들에만 매혹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연설 유형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유형들- 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언어학 자료들의 가치가 얼마나 심하게 떨어졌는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두막 앞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스냅 사진으로 찍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오두막 앞에 일상적으로 앉아 있는 남자들의 무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기능적 접근 방법에도 위배되는 치명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기능적 접근 방법의 요점은 형식이 기능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서 수다를 떨려고 어떤 집 앞의 깔개에 둘러 앉아 있는 것은 동일한 열두 명이 중요한 경작지 안건을 위해 모인 것과 똑같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적 현상으로서, 두 무리는 전쟁용 카누가 사고야자 숟가락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8장과 그 뒤의 비판 부분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트로브리안드인의 생활을 연구하면서 일상적인, 두드러지지 않은, 단조로운, 그리고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무시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첫째로 마침내 주로 트로브리안드에서 시작된 기능적 현지조사가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나의 실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말리노프스키가 스스로의 현지조사 방식에서 발견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2)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친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3) 본문에서는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용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보기 좋은 것, 접근성이 좋은 것만을 촬영하려는 경향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상적인 장면, 소소한 모임, 시시해 보이는 활동의 기록이 갖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해설읽기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연구실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자신이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론을 수립하는 이른바 ‘안락의자 인류학자’식 연구에 반대했다. 말리노프스키가 인류학의 길에 들어선 20세기 초반에는 인류학계에서도 현지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조사를 수행하더라도 비교적 단기간에 통역자에게 의존해서 정보를 입수하는 일이 많았다. 그에 비해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장기간에 걸쳐 본격적인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그리하여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기본 원칙을 수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말리노프스키 이후로 인류학자들에게 현지조사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 방법도 체계화되었다. 즉 제대로 된 현지조사를 위해서 연구자는 단지 이국적인 낯선 장소를 잠시 방문해서 통역자를 통해 토착민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지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토착 언어를 습득하고, 토착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서 조사연구를 수행하도록 기대되었다.
그런데 말리노프스키는 그토록 치열하게 현지조사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현지조사 및 민족지 기록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조사 및 민족지 서술에서 발견되는 오류와 빈틈을 스스로 비판했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민족지 저술에 부록 형식으로 실었다. 다른 인류학자들의 민족지 결과물에 비해 자신의 저서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말리노프스키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어려운 자신이 결점을 일부러 끄집어내어서 공표한다.
본문은 말리노프스키가 자신의 현지조사의 중요한 결점 중 하나로 사진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부분이다. 먼저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이 사진을 부차적이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증거 수집 방식으로 여겼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때가 1935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현지조사자가 사진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말리노프스키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아마도 책에 실린 사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이 현지에서 작성한 필드노트를 사진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놓친 것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기도 했다. 그가 밝힌 자신의 결함 중 하나는 보기 좋은 장면을 찍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접근 가능한 순간에 사진을 촬영했다는 점이다. 그는 반드시 사진으로 기록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미리 작성하고 촬영에 임하는 것을 대안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 말리노프스키는 또한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에 매혹되기 쉬운 민족지학자의 경향을 경고하며, 스스로도 그러한 함정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장면들, 두드러지지 않은 소규모 활동들이야말로 한 사회를 지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화려한 것에 눈을 빼앗긴 나머지, 너무나 시시하고 단조롭게 보이는 일상의 중요성을 놓치기 쉽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오류, 한계, 결점을 왜 굳이 드러냈을까? 말리노프스키는 어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민족지학자는 어떠한 암시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회,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태도이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리노프스키가 기울이는 이러한 노력은 낯선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보여준다.
키워드
민족지, 민족지학자, 사진 기록
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세 단계를 구별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관찰하고 각각의 활동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서로 연결 짓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양한 양상들을 종합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들을 통합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업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사실들을 서둘러서 통합하는 일에는 위험이 뒤따른다고 지적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 자신이 빠졌던 함정, 현지에서 좌충우돌했던 경험을 진술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만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자료에서 나타나는 미흡함을 집요하게 짚어나간다.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종류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래의 본문은 말리노프스키가 밝힌 자신의 현지조사의 문제점 중 일부를 다룬다. 그것은 바로 사진이다.
고전본문
내 현지조사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결점이 있는데, 거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곧 사진입니다. 만약 당신이 내 책을 다른 현지조사 설명들과 비교한다면, 내 책의 사진들이 장비 면에서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사진을 부차적인 일로 취급했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증거 수집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실수였습니다. 경작지에 대한 자료를 완성하면서, 나는 내 필드노트들을 사진과 대조하는 가운데 수없이 많은 진술을 재구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 현지조사의 방법을 거스르는 한두 가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소위 보기 좋음과 접근성의 원칙에 의거했던 것입니다. 중요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마다,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갔습니다. 만약 카메라를 통해 그림이 멋지게 보이고 잘 어울리면, 나는 스냅 사진을 찍었습니다. 따라서 수확의 어떤 국면들, 에를 들면 마을과 경작지에서 타이투의 전시, 매혹적인 주술적 구조물이 있는 캄코콜라 예식 등은 잘 표현됩니다. 그러나 경작지에서의 첫 번째 예식의 경우, 나는 그것을 단 한번만 목격했는데, 그때는 날씨가 나빴고 빛이 매우 적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는 빌라말리아의 어떤 의식이 수행되는 광경을 퍼붓는 빗속에서 목격했으며, 나머지는 동틀녘에 목격했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진으로 기록해야 하는 예식들의 목록을 작성한 후에 이러한 사진들을 반드시 찍는 대신에, 나는 특이한 수집품을 모으는 것과 같은 수준에서 -거의 현지조사의 보조적인 오락처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타고난 수완이나 소질이 없기 때문에, 사진은 내게 늘 긴장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좋은 기회조차도 너무나 자주 놓쳐 버릴 뿐이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덤불치기, 덩이줄기의 솎아내기, 여자들이 소구획에서 잡초 뽑기하는 모습, 무엇보다도 수확의 모든 국면을 보여줄 수 없었던 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활동들을 적어도 수백 번 목격했습니다. [...] 나는 날마다 앉아서, 내일 역시 비슷한 하루가 될 거라고 느끼면서 -이것은 아마도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지켜보았습니다. [...] 실제 카야쿠의 사진을 전혀 찍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매우 화가 납니다. 사실상 실제 경작지 회의는 보통의 사교 모임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작지 회의는 확실히 심정적으로 기록물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나는 그 사진을 찍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사진이든 언어적인 것이든 혹은 묘사에 관한 것이든, 내 자료에서 나타나는 모든 미흡함의 일반적인 원인은 다른 모든 민족지학자처럼 나 역시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들에만 매혹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연설 유형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유형들- 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언어학 자료들의 가치가 얼마나 심하게 떨어졌는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두막 앞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스냅 사진으로 찍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오두막 앞에 일상적으로 앉아 있는 남자들의 무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기능적 접근 방법에도 위배되는 치명적인 잘못이었습니다. 기능적 접근 방법의 요점은 형식이 기능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서 수다를 떨려고 어떤 집 앞의 깔개에 둘러 앉아 있는 것은 동일한 열두 명이 중요한 경작지 안건을 위해 모인 것과 똑같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화적 현상으로서, 두 무리는 전쟁용 카누가 사고야자 숟가락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8장과 그 뒤의 비판 부분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트로브리안드인의 생활을 연구하면서 일상적인, 두드러지지 않은, 단조로운, 그리고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무시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은, 첫째로 마침내 주로 트로브리안드에서 시작된 기능적 현지조사가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나의 실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말리노프스키가 스스로의 현지조사 방식에서 발견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2)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친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3) 본문에서는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용으로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보기 좋은 것, 접근성이 좋은 것만을 촬영하려는 경향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상적인 장면, 소소한 모임, 시시해 보이는 활동의 기록이 갖는 힘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해설읽기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연구실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자신이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론을 수립하는 이른바 ‘안락의자 인류학자’식 연구에 반대했다. 말리노프스키가 인류학의 길에 들어선 20세기 초반에는 인류학계에서도 현지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조사를 수행하더라도 비교적 단기간에 통역자에게 의존해서 정보를 입수하는 일이 많았다. 그에 비해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장기간에 걸쳐 본격적인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그리하여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의 기본 원칙을 수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말리노프스키 이후로 인류학자들에게 현지조사는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 방법도 체계화되었다. 즉 제대로 된 현지조사를 위해서 연구자는 단지 이국적인 낯선 장소를 잠시 방문해서 통역자를 통해 토착민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지에서 오래 머무르면서 토착 언어를 습득하고, 토착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서 조사연구를 수행하도록 기대되었다.
그런데 말리노프스키는 그토록 치열하게 현지조사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현지조사 및 민족지 기록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조사 및 민족지 서술에서 발견되는 오류와 빈틈을 스스로 비판했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민족지 저술에 부록 형식으로 실었다. 다른 인류학자들의 민족지 결과물에 비해 자신의 저서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말리노프스키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리기 어려운 자신이 결점을 일부러 끄집어내어서 공표한다.
본문은 말리노프스키가 자신의 현지조사의 중요한 결점 중 하나로 사진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부분이다. 먼저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이 사진을 부차적이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증거 수집 방식으로 여겼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의 초판이 출판된 때가 1935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현지조사자가 사진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말리노프스키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아마도 책에 실린 사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이 현지에서 작성한 필드노트를 사진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놓친 것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기도 했다. 그가 밝힌 자신의 결함 중 하나는 보기 좋은 장면을 찍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접근 가능한 순간에 사진을 촬영했다는 점이다. 그는 반드시 사진으로 기록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미리 작성하고 촬영에 임하는 것을 대안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 말리노프스키는 또한 극적이고 예외적이며 선정적인 것에 매혹되기 쉬운 민족지학자의 경향을 경고하며, 스스로도 그러한 함정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장면들, 두드러지지 않은 소규모 활동들이야말로 한 사회를 지탱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화려한 것에 눈을 빼앗긴 나머지, 너무나 시시하고 단조롭게 보이는 일상의 중요성을 놓치기 쉽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말리노프스키는 자신의 오류, 한계, 결점을 왜 굳이 드러냈을까? 말리노프스키는 어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민족지학자는 어떠한 암시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회,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태도이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리노프스키가 기울이는 이러한 노력은 낯선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보여준다.
키워드
민족지, 민족지학자, 사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