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방대한 민족지 저술인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1935)의 4~7부에서 트로브리안드의 언어를 다룬다. 그의 분석은 언어학적 이론의 깊이와 분석의 치밀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트로브리안드의 농경언어와 주술문구들을 광범위하게 분석한다. 이 책은 언어문제에 천착한 최초의 민족지로도 평가된다.
말리노프스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국에는 토착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쉽게 따라잡고 그들의 말을 빠르게 받아적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말리노프스키는 토착어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결코 단어들의 긴 목록을 암기하거나 문법과 구문론의 원칙들을 파악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들의 사회적 방식과 문화적 배치에 익숙해지는 것이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당대의 언어학 이론들뿐만 아니라 언어 교육과 관련된 학자와 문헌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는 트로브리안어드어의 독특성을 화용론에서 발견하면서 맥락에 따른 의미의 차이와 변형을 강조한다. 어떤 담화도 실제 발화의 맥락에서 그 기능을 포착해야지만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족지학자들이 언어의 화용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곧 맥락과 결부된 언어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에 조사 대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하면서, 당대의 인류학적 풍토, 즉 현지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수집된 자료에 근거해서 논의를 전개하는 안락의자의 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지적하고 있다.
고전본문
언어학적 연구에서 개별 용어들의 번역은 가장 단순한 임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나아가 용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문제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다른 어떤 것과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언뜻 보기에 역설적이지만 완전히 평이하며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 곧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시작해봅시다. 이것은 두 종류의 문명화된 언어들 뿐 아니라 ‘토착적인’ 언어와 ‘문명화된’ 언어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두 문화들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상당어구를 찾는 어려움도 더 커집니다.
잠시 더욱 친숙한 유럽의 언어들로 돌아가 보자. 러시아나 폴란드의 소설 혹은 과학 서적을 영어로, 혹은 그 반대로 번역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밀한 언어적 상당어구는 결코 발견될 수 없다는 점을 알 것입니다. 번역은 항상 원래의 것을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그것은 결코 단어 대 단어의 교환이 아니며 오히려 항상 전체 맥락들의 번역입니다.
어떤 언어를 피상적으로 훑어보면서 번역이 전혀 불가능한 용어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 무수한 단어들 중에 몇 개만 언급하자면, ‘sport’, ‘gentleman’, ‘fair-play’, ‘kindness’, ‘quaint’, ‘forlorn’과 같은 영어 단어들은 결코 외국말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다시 만들어질 뿐입니다. [...]
만약 단지 식사를 주문하기 위해서, 우산의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서, 혹은 거리에서 길을 묻기 위해서 충분한 정도로만 두 단어 사이의 상당어구를 대충 지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배데커(Baedecker) 책의 몇몇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언어적 지침이, 혹은 싸구려 포켓 사전이나 올렌도르프(Ollendorf) 책이 적절한 번역을 확실히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과학적 분석에서 단어를 수많은 구어적, 상황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장치로서 정의한다면, 번역이란 대응하는 장치와 규칙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요점을 좀 더 분명하게 해줍니다. 독일어 단어를 영어로, 혹은 그 반대로 대체해서 곧바로 사용될 수 있는, 두 언어들 사이의 단순한 상당어구는 발견될 수 없습니다.
[...]
이제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는 진부한 의견에 대한 우리의 역설은 모양이 갖추어졌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의 단어를 또 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번역이 상응하는 장치들, 은유적 확장과 숙어적 격언을 충분한 범위에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러한 과정은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때조차 단지 단어와 표현을 가지고 곡예를 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갈 때, 우리는 문화적 배치, 제도, 관심, 그리고 가치 체계들이 엄청나게 변화한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의미에서 번역은 단지 다른 언어의 용법과 관련될 뿐 아니라 종종 단어의 배후에 있는 서로 다른 문화적 현실과 관련됩니다. 근대 언어들을 가르치는 모든 새로운 체계는 [...] 실제로 이러한 상황적인 언어 이론을 충실히 채택했고 단어의 번역 불가능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
두 언어 사이에서 단어 혹은 원문의 번역 가능성은 단지 언어 상징들을 재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문화적 맥락의 통일에 기초해야 합니다. 두 문화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을 때조차, 진정한 이해를 기반으로 언어학적 도구들의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은 항상 어렵고, 수고스러우며, 섬세한 재조정의 문제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번역은 왜 어려운 작업인가요? 말리노프스키의 설명에 비추어 번역이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2) 제3자를 통해서 누군가 했던 말의 일부만 전해 듣고 화가 났지만, 말의 맥락을 알게된 후 오해가 풀렸던 경험이 있나요? 본문을 읽으며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봅시다.
(3) 말의 맥락을 이해해야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민족지 서술을 위해서뿐 아니라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왜 중요한지, 현대사회에서 집단 간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보세요.
해설읽기
이 본문은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제 4부의 2장의 일부이다. 말리노프스키는 4~7부까지 트로브리안드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2장의 제목은 “번역 불가능한 말의 번역”이다. 말리노프스키는 기본적으로 한 언어의 단어가 다른 언어의 단어로 완벽하게 번역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흔히 우리는 낯선 언어를 배울 때 낯선 단어를 우리의 단어와 일대일 대응시켜서 외우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민족지를 서술할 때 단어 대 단어의 번역 과정은 보기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말이란 언제나 상황의 맥락 속에서 발화되면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본문에서 그 문제를 건드린다. 말리노프스키는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말리노프스키는 번역이란 단어 대 단어의 교환이 아니며, 원래의 것을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이라는 점, 전체 맥락들을 번역하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sport’나 ‘gentleman’ 같은 영어 단어가 원래의 맥락에서 갖는 풍부한 뉘앙스와 함의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어에서 요리와 음악과 미술 용어로 사용되는 단어들, 가령 ‘bel canto’, ‘diva’, ‘macaroni’ 같은 단어들은 외국어로 번역되기 어렵다. 말리노프스키는 그 이유가 문화마다 특정한 측면이 더 풍부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리노프스키가 미국어(American)와 영어(Enlish)를 구별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다양한 사례들을 예시하며 말리노프스키가 말하려는 바는, 모든 언어에는 그 문화에 적합하며 그곳의 환경, 제도, 장치 및 태도와 가치에만 적합한 단어들이 있고, 그러한 단어들은 번역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리노프스키는 전문적인 용어들뿐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 가령 ‘eye’, ‘hand’, ‘mouth’ 같은 단어들도 등호를 사용해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유럽 언어들만 생각하더라도 각 단어의 파생적인, 은유적인, 숙어적인 용법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번역은 언어의 용법 뿐 아니라 단어 배후에 있는 문화적 현실과도 관련된다. 그러니 한 단어나 문장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언제나 문화적 맥락의 이해와 관련된 매우 어려운 과업이 된다. 그래서 말리노프스키는 진정한 번역을 위해서는 민족지와 언어학이 결합된 서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그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민족지, 화용론, 번역, 현지조사
전후맥락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방대한 민족지 저술인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1935)의 4~7부에서 트로브리안드의 언어를 다룬다. 그의 분석은 언어학적 이론의 깊이와 분석의 치밀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트로브리안드의 농경언어와 주술문구들을 광범위하게 분석한다. 이 책은 언어문제에 천착한 최초의 민족지로도 평가된다.
말리노프스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국에는 토착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쉽게 따라잡고 그들의 말을 빠르게 받아적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말리노프스키는 토착어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결코 단어들의 긴 목록을 암기하거나 문법과 구문론의 원칙들을 파악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들의 사회적 방식과 문화적 배치에 익숙해지는 것이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당대의 언어학 이론들뿐만 아니라 언어 교육과 관련된 학자와 문헌들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는 트로브리안어드어의 독특성을 화용론에서 발견하면서 맥락에 따른 의미의 차이와 변형을 강조한다. 어떤 담화도 실제 발화의 맥락에서 그 기능을 포착해야지만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민족지학자들이 언어의 화용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곧 맥락과 결부된 언어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에 조사 대상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판하면서, 당대의 인류학적 풍토, 즉 현지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수집된 자료에 근거해서 논의를 전개하는 안락의자의 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지적하고 있다.
고전본문
언어학적 연구에서 개별 용어들의 번역은 가장 단순한 임무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나아가 용어들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문제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다른 어떤 것과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언뜻 보기에 역설적이지만 완전히 평이하며 절대적으로 옳은 명제, 곧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시작해봅시다. 이것은 두 종류의 문명화된 언어들 뿐 아니라 ‘토착적인’ 언어와 ‘문명화된’ 언어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두 문화들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상당어구를 찾는 어려움도 더 커집니다.
잠시 더욱 친숙한 유럽의 언어들로 돌아가 보자. 러시아나 폴란드의 소설 혹은 과학 서적을 영어로, 혹은 그 반대로 번역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밀한 언어적 상당어구는 결코 발견될 수 없다는 점을 알 것입니다. 번역은 항상 원래의 것을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그것은 결코 단어 대 단어의 교환이 아니며 오히려 항상 전체 맥락들의 번역입니다.
어떤 언어를 피상적으로 훑어보면서 번역이 전혀 불가능한 용어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 무수한 단어들 중에 몇 개만 언급하자면, ‘sport’, ‘gentleman’, ‘fair-play’, ‘kindness’, ‘quaint’, ‘forlorn’과 같은 영어 단어들은 결코 외국말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다시 만들어질 뿐입니다. [...]
만약 단지 식사를 주문하기 위해서, 우산의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서, 혹은 거리에서 길을 묻기 위해서 충분한 정도로만 두 단어 사이의 상당어구를 대충 지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배데커(Baedecker) 책의 몇몇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언어적 지침이, 혹은 싸구려 포켓 사전이나 올렌도르프(Ollendorf) 책이 적절한 번역을 확실히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과학적 분석에서 단어를 수많은 구어적, 상황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장치로서 정의한다면, 번역이란 대응하는 장치와 규칙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요점을 좀 더 분명하게 해줍니다. 독일어 단어를 영어로, 혹은 그 반대로 대체해서 곧바로 사용될 수 있는, 두 언어들 사이의 단순한 상당어구는 발견될 수 없습니다.
[...]
이제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는 진부한 의견에 대한 우리의 역설은 모양이 갖추어졌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의 단어를 또 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번역이 상응하는 장치들, 은유적 확장과 숙어적 격언을 충분한 범위에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러한 과정은 물론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때조차 단지 단어와 표현을 가지고 곡예를 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갈 때, 우리는 문화적 배치, 제도, 관심, 그리고 가치 체계들이 엄청나게 변화한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의미에서 번역은 단지 다른 언어의 용법과 관련될 뿐 아니라 종종 단어의 배후에 있는 서로 다른 문화적 현실과 관련됩니다. 근대 언어들을 가르치는 모든 새로운 체계는 [...] 실제로 이러한 상황적인 언어 이론을 충실히 채택했고 단어의 번역 불가능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
두 언어 사이에서 단어 혹은 원문의 번역 가능성은 단지 언어 상징들을 재조정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문화적 맥락의 통일에 기초해야 합니다. 두 문화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을 때조차, 진정한 이해를 기반으로 언어학적 도구들의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은 항상 어렵고, 수고스러우며, 섬세한 재조정의 문제입니다.
[출전] 말리노프스키,『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토론하기
(1) 번역은 왜 어려운 작업인가요? 말리노프스키의 설명에 비추어 번역이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2) 제3자를 통해서 누군가 했던 말의 일부만 전해 듣고 화가 났지만, 말의 맥락을 알게된 후 오해가 풀렸던 경험이 있나요? 본문을 읽으며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봅시다.
(3) 말의 맥락을 이해해야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민족지 서술을 위해서뿐 아니라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왜 중요한지, 현대사회에서 집단 간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보세요.
해설읽기
이 본문은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제 4부의 2장의 일부이다. 말리노프스키는 4~7부까지 트로브리안드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2장의 제목은 “번역 불가능한 말의 번역”이다. 말리노프스키는 기본적으로 한 언어의 단어가 다른 언어의 단어로 완벽하게 번역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흔히 우리는 낯선 언어를 배울 때 낯선 단어를 우리의 단어와 일대일 대응시켜서 외우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민족지를 서술할 때 단어 대 단어의 번역 과정은 보기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말이란 언제나 상황의 맥락 속에서 발화되면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말리노프스키는 본문에서 그 문제를 건드린다. 말리노프스키는 한 언어의 단어들은 결코 또 다른 언어의 단어들로 번역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말리노프스키는 번역이란 단어 대 단어의 교환이 아니며, 원래의 것을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 재창조하는 일이라는 점, 전체 맥락들을 번역하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sport’나 ‘gentleman’ 같은 영어 단어가 원래의 맥락에서 갖는 풍부한 뉘앙스와 함의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어에서 요리와 음악과 미술 용어로 사용되는 단어들, 가령 ‘bel canto’, ‘diva’, ‘macaroni’ 같은 단어들은 외국어로 번역되기 어렵다. 말리노프스키는 그 이유가 문화마다 특정한 측면이 더 풍부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리노프스키가 미국어(American)와 영어(Enlish)를 구별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다양한 사례들을 예시하며 말리노프스키가 말하려는 바는, 모든 언어에는 그 문화에 적합하며 그곳의 환경, 제도, 장치 및 태도와 가치에만 적합한 단어들이 있고, 그러한 단어들은 번역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리노프스키는 전문적인 용어들뿐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 가령 ‘eye’, ‘hand’, ‘mouth’ 같은 단어들도 등호를 사용해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유럽 언어들만 생각하더라도 각 단어의 파생적인, 은유적인, 숙어적인 용법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번역은 언어의 용법 뿐 아니라 단어 배후에 있는 문화적 현실과도 관련된다. 그러니 한 단어나 문장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언제나 문화적 맥락의 이해와 관련된 매우 어려운 과업이 된다. 그래서 말리노프스키는 진정한 번역을 위해서는 민족지와 언어학이 결합된 서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스스로 그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민족지, 화용론, 번역, 현지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