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맥락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등장은 여성들이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근대 철학 사상이 지니는 내적 모순을 간파한 데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사회의 이념적 기반이 된 18세기의 계몽사상에 따르면, 진리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탐구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진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창조물이므로, 일단 교육을 받기만 하면 합리적 추론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로 계승되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개인들은 사회의 진보에 이바지하므로 국가의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세습 신분에 기초한 불이익이나 제약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이념과 결합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자유주의 사상을 접한 사상가나 여성들은, 교육과 노동, 선거권, 법의 측면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여성들을 보면서, ‘왜 계몽사상의 신조가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 동안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며 사회 변혁에 크게 공헌하였다. 주요 봉기 때마다 거리를 점령하는 데 앞장섰고, 정치 클럽과 협회, 회합의 발언대에 올라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789년 10월 5일에서 6일까지 이틀 동안 파리에서 약 6,000여 명의 여성 시민들은 국왕과 왕비에게 생존권을 요구하며 파리의 도심을 가로질러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을 감행했고, 이것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또 1789년에서 1793년까지 정치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표출하는 탄원서가 발행되었는데, 거기에는 공화주의 여성운동 단체 56개가 함께했다. 성직자, 귀족 그리고 제3신분, 이렇게 세 계층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1789년 5월에 다량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175년 만에 개최된 전국 삼부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삼부회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귀족에서부터 종교인, 민중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포함하여 작성했던 <진정서>는 무산되고 말았다. 여성들은 프랑스 혁명기의 가두 시위나 다양한 저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정치적 권리를 지닌 개인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여성에게는 관직에 진출할 권리나 투표할 권리 모두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시민사회는 여성이 새로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에 동등한 구성원으로 포함되는 것을 거부한 셈이었다.
고전본문
전문(前文)
국민을 대표하는 어머니, 딸, 누이는 국민의회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한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무지, 망각 또는 멸시만이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들이기에,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여성의 성스러운 천부적 권리들을 이 엄숙한 선언을 통해 공표한다. 이 선언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항시 제시되어 끊임없이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시키기를, 여성과 남성의 권력 행사 행위가 매 순간 이 정치 체제의 지향점에 견주어 더욱 존중될 수 있기를, 단순 명료한 원칙들에 입각한 여성 시민의 주장들이 언제나 헌법과 미풍양속의 유지, 모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용기와 빼어난 도덕적 고결함을 지닌 우리 여성들은 후원을 베푸는 절대자와 함께 다음과 같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들을 인지하고 선언한다.
제1조 모든 여성은 자유롭게 태어나 남성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리에 입각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제4조 자유와 정의는 모든 것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데 있다. 여성의 천부적 권리 행사를 가로막는 제약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항구적인 폭정뿐이다. 이 제약은 자연과 이성의 법을 통해 개혁되어야 한다.
제6조 법은 일반의지의 표명이어야 한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해 법 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적인 직위와 직무를 맡을 수 있다.
제10조 그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있어서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류는 여성이 가진 가장 귀중한 권리 중 하나다. 이러한 자유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적법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여성 시민은 야만적인 편견이 진실을 감추도록 하는 강요에서 벗어나 ‘자신이 자신에게 속한 아이의 어머니임’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법으로 규정된 경우에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13조 공권력을 유지하고 행정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조세는 여성과 남성에게 평등하게 요구되며, 여성은 모든 부역과 모든 힘든 노동에 참여한다. 따라서 직위, 직업, 책임, 권한, 산업의 분배에서도 동일한 몫을 가져야 한다.
-올랭프 드 구주,『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중에서
토론하기
(1) 올랭프 드 구즈가 인권 선언과 별도로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작성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2)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어떤 방식으로 제한받고 있는지 말해보자.
(3) 정치적으로 권리를 제한받는 집단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고자 할 때 올랭프 드 구즈에게 배우고 참조할 만한 지점이 있는지 말해 보자
해설읽기
전문은 국민의회가 여성을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거부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1791년 4월 7일에 제정된 헌법이 민법상의 성인 연령 규정을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하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이성적 사유 능력과 독립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한 것과 어긋난다, 때문에 국민의회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 주권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타락과 공공의 불행을 야기하는 유일한 원인이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 제1조는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제4조에서 여성들이 남성이 행사하는 항구적인 폭정에서 벗어나 천부적 권리를 행사해야 함을 강조한 것은 프랑스대혁명이 여성을 배제한 반쪽짜리 혁명이었다고 성토하는 것이다. 올랭프 드 구즈에게 여성의 천부적 권리란 제6조에서 요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표가 되고 법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었다. 구즈는 여성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였고, 보통선거를 포함한 정치 행위에의 여성 참여를 역설했다. 유명한 제10조에서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발언을 통해 구즈는 향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의 불씨를 제공했다. 제11조는 당시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이 임신 또는 출산을 할 경우 군주법에 의해 판사 앞에서 혼인 여부를 고백해야 했고, 그로 인해 여성이 사랑과 사회생활에 실패한 아픈 기억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의 어머니임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을 통해 구즈는 그런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 동안 여성들은 도시 곳곳에서 정치 클럽을 결성하여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후 헌법 본문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직접세를 납부하는 유산자 남성 시민만이 능동 시민으로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고, 무산자 남성과 모든 여성은 시민권은 가지나 공권력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동시민이 되었다. 1792년 8월 10일 봉기로 왕권이 철폐된 후 첫 공화국 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에서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의 구분이 없어져 모든 성인 남성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으나 여전히 여성은 배제되었다. 지롱드파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산악파 혁명정부는 1793년 10월 20일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던 혁명적 공화주의 여성 시민 협회를 비롯한 여성 정치 클럽을 해체했고, 10월 30일에는 모든 여성의 정치적인 회합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가정과 자녀를 돌보는 여성의 자연적 소명과 정치 활동이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올랭프 드 구즈는 이 기간에 벽보를 붙이는 등의 정치활동을 계속하다가 검거되었고 혁명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키워드
여성 시민, 프랑스대혁명, 인권 선언, 참정권
전후맥락
서구에서 페미니즘의 등장은 여성들이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근대 철학 사상이 지니는 내적 모순을 간파한 데서 출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사회의 이념적 기반이 된 18세기의 계몽사상에 따르면, 진리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탐구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진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창조물이므로, 일단 교육을 받기만 하면 합리적 추론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주장은 19세기로 계승되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개개인들은 사회의 진보에 이바지하므로 국가의 간섭은 최소화되어야 하고 세습 신분에 기초한 불이익이나 제약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이념과 결합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자유주의 사상을 접한 사상가나 여성들은, 교육과 노동, 선거권, 법의 측면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여성들을 보면서, ‘왜 계몽사상의 신조가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 동안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며 사회 변혁에 크게 공헌하였다. 주요 봉기 때마다 거리를 점령하는 데 앞장섰고, 정치 클럽과 협회, 회합의 발언대에 올라 정치적인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789년 10월 5일에서 6일까지 이틀 동안 파리에서 약 6,000여 명의 여성 시민들은 국왕과 왕비에게 생존권을 요구하며 파리의 도심을 가로질러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을 감행했고, 이것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또 1789년에서 1793년까지 정치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표출하는 탄원서가 발행되었는데, 거기에는 공화주의 여성운동 단체 56개가 함께했다. 성직자, 귀족 그리고 제3신분, 이렇게 세 계층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1789년 5월에 다량의 <진정서>를 작성하여 175년 만에 개최된 전국 삼부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삼부회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귀족에서부터 종교인, 민중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포함하여 작성했던 <진정서>는 무산되고 말았다. 여성들은 프랑스 혁명기의 가두 시위나 다양한 저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정치적 권리를 지닌 개인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여성에게는 관직에 진출할 권리나 투표할 권리 모두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시민사회는 여성이 새로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에 동등한 구성원으로 포함되는 것을 거부한 셈이었다.
고전본문
전문(前文)
국민을 대표하는 어머니, 딸, 누이는 국민의회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한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무지, 망각 또는 멸시만이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들이기에,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여성의 성스러운 천부적 권리들을 이 엄숙한 선언을 통해 공표한다. 이 선언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항시 제시되어 끊임없이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시키기를, 여성과 남성의 권력 행사 행위가 매 순간 이 정치 체제의 지향점에 견주어 더욱 존중될 수 있기를, 단순 명료한 원칙들에 입각한 여성 시민의 주장들이 언제나 헌법과 미풍양속의 유지, 모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용기와 빼어난 도덕적 고결함을 지닌 우리 여성들은 후원을 베푸는 절대자와 함께 다음과 같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들을 인지하고 선언한다.
제1조 모든 여성은 자유롭게 태어나 남성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하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리에 입각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제4조 자유와 정의는 모든 것을 그 주인에게 돌려주는 데 있다. 여성의 천부적 권리 행사를 가로막는 제약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하는 항구적인 폭정뿐이다. 이 제약은 자연과 이성의 법을 통해 개혁되어야 한다.
제6조 법은 일반의지의 표명이어야 한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해 법 제정에 참여해야 한다. 법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모든 여성 시민과 남성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적인 직위와 직무를 맡을 수 있다.
제10조 그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있어서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류는 여성이 가진 가장 귀중한 권리 중 하나다. 이러한 자유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적법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여성 시민은 야만적인 편견이 진실을 감추도록 하는 강요에서 벗어나 ‘자신이 자신에게 속한 아이의 어머니임’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법으로 규정된 경우에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13조 공권력을 유지하고 행정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조세는 여성과 남성에게 평등하게 요구되며, 여성은 모든 부역과 모든 힘든 노동에 참여한다. 따라서 직위, 직업, 책임, 권한, 산업의 분배에서도 동일한 몫을 가져야 한다.
-올랭프 드 구주,『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중에서
토론하기
(1) 올랭프 드 구즈가 인권 선언과 별도로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작성한 의도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2)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어떤 방식으로 제한받고 있는지 말해보자.
(3) 정치적으로 권리를 제한받는 집단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고자 할 때 올랭프 드 구즈에게 배우고 참조할 만한 지점이 있는지 말해 보자
해설읽기
전문은 국민의회가 여성을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거부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1791년 4월 7일에 제정된 헌법이 민법상의 성인 연령 규정을 남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하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이성적 사유 능력과 독립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한 것과 어긋난다, 때문에 국민의회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 주권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경멸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타락과 공공의 불행을 야기하는 유일한 원인이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 제1조는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제4조에서 여성들이 남성이 행사하는 항구적인 폭정에서 벗어나 천부적 권리를 행사해야 함을 강조한 것은 프랑스대혁명이 여성을 배제한 반쪽짜리 혁명이었다고 성토하는 것이다. 올랭프 드 구즈에게 여성의 천부적 권리란 제6조에서 요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표가 되고 법 제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성격의 것이었다. 구즈는 여성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였고, 보통선거를 포함한 정치 행위에의 여성 참여를 역설했다. 유명한 제10조에서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발언을 통해 구즈는 향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의 불씨를 제공했다. 제11조는 당시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이 임신 또는 출산을 할 경우 군주법에 의해 판사 앞에서 혼인 여부를 고백해야 했고, 그로 인해 여성이 사랑과 사회생활에 실패한 아픈 기억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아이의 어머니임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을 통해 구즈는 그런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 동안 여성들은 도시 곳곳에서 정치 클럽을 결성하여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후 헌법 본문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직접세를 납부하는 유산자 남성 시민만이 능동 시민으로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고, 무산자 남성과 모든 여성은 시민권은 가지나 공권력에 참여하지 못하는 수동시민이 되었다. 1792년 8월 10일 봉기로 왕권이 철폐된 후 첫 공화국 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에서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의 구분이 없어져 모든 성인 남성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으나 여전히 여성은 배제되었다. 지롱드파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산악파 혁명정부는 1793년 10월 20일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던 혁명적 공화주의 여성 시민 협회를 비롯한 여성 정치 클럽을 해체했고, 10월 30일에는 모든 여성의 정치적인 회합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가정과 자녀를 돌보는 여성의 자연적 소명과 정치 활동이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올랭프 드 구즈는 이 기간에 벽보를 붙이는 등의 정치활동을 계속하다가 검거되었고 혁명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키워드
여성 시민, 프랑스대혁명, 인권 선언, 참정권